카프카를 읽으면 좋은 이유 IV – 멋진 상처

멋진 상처를 가지고 나는 세상에 왔다. 그것이 내가 세상에 나오는 몸치장의 전부였다.
I came into the world with a fine wound; that’s all I have to my name.

카프카 시골의사 I Entry-Wound_art.jpg<시골의사>는 카프카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두 개의 단편 중 하나이다. 상기의 구절은 작중에서 병으로 죽어가는 소년이 집으로 왕진 온 시골의사에게 한 말이다. 작품 전체를 상징하는 의미심장한 대사이다.

카프카의 여느 작품들처럼 여기도 악몽 속을 열심히 헤매고 다니는 것 같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직업이 의사인 이 남자와 죽어가는 소년이 소설의 두 주인공이다. 이 외에도 하녀인 ‘로자’ 가 있고 그녀를 유혹해서 거의 강간하는 ‘마부’ 도 있다.

<성>이나 <소송>에도 등장하는 설정이지만, 작품 속의 남자는 젊은 여자를 금세 육체적으로 범한다. 초면에 껴안고 애무를 하더니 어느새 약혼자가 되어있는 등. 카프카의 소설은 어두운 무의식을 민감하게 포착하는데, 도덕의 제어를 받지 않고 꿈틀대는 성 에너지를 극화한 것 같다. 처음엔 이상하지만 읽다 보면 거부하기 힘든 중독성이 뭔지 알게된다.

연인 관계인 것 같은 하녀 로자를 집에 두고(마부의 성적인 제물이 될 것을 두려워함), 시골의사는 마차를 타고 앓아누운 소년의 집에 도달한다. 마차를 준비하는 과정이나 길을 달리는 모습 모두 꿈 속의 장면 같다. 시골의사는 소년을 진찰하고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한다.

짐작했던 대로다. 소년은 건강한 것이다. 약간 혈색이 나쁘고 걱정하는 어머니가 커피를 흠뻑 먹여놓았을 뿐, 건강하고, 그저 발길로 뻥 차 침대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세계를 개선하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누워 있게 내버려 두자. 나는 구역(區域)에 고용되어 있는데, 이건 너무하다 싶은 지경까지 나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봉급은 적은데도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인색하지 않고 그들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한다. 아직 나는 로자를 돌보아야 하고 그 다음에야 소년이 권리가 있을 터이며 나 역시 죽고 싶다. 여기 이 끝없는 겨울에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이 작품을 해석하는 중요한 관점 중 하나는 시골 의사와 환자 소년을 다른 두 사람으로 보지 않고, 카프카 자아 안에 있는 인격을 둘로 분리한 것으로 파악한다. 시골의사는 자신이 세계를 개선하는 사람이 아니고 고용되어 있는 처지라고 하는데,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하지 못하는 능력의 한계를 토로한 것이다. 시골의사는 소년이 멀쩡한 줄 알았지만 나중에야 그의 옆구리에 끔찍한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발견한다, 정말로 소년이 아프다는 것을. 그의 오른쪽 옆구리, 허리께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상처는 여러 가지 농담(濃淡)의 장밋빛, 깊은 곳은 진하고 가장자리께로 올수록 옅어지며 고르지 않게 모인 피로 연하게 오돌도돌한 것이 파헤친 광산처럼 열려 있었다. 그것은 멀리서 본 모양이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니 더 심한 상태가 나타났다. 누가 그것을 나직이 으흑 소리를 토하지 않고 들여다보겠는가? 굵기와 길이가 내 작은 손가락만한 벌레들이 본디 색깔에다가 피까지 뿌려져 분홍색으로, 상처의 안쪽에 들러붙은 채 조그만 흰머리와 수많은 작은 발들로 빛 있는 쪽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불쌍한 아이야, 너를 도울 길이 없구나. 나는 너의 큰 상처를 찾아내었다. 네 옆구리의 이 꽃으로 말미암아 너는 죽을 것이다.

이 무서운 상처는 소년 – 카프카 자신 – 의 가장 어두운 일면을 나타낸다. 세상에 나오면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멋진 상처’ 이다. 하지만 상처가 꽃처럼 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카프카는 스스로를 외롭고 소외될 수밖에 없는 인간라고 인식했다. 그 때문에 연인을 만나 사랑하면서도 맘껏 다가서지 못하고 약혼과 파혼을 반복한다. 하지만 상처는 역설적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그가 평생을 두고 몰두한 글쓰기는 고난과 상처로부터 만 제대로 피어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프카에게 궁극적인 구원은 죽음이 되고 말았는데, 그의 육체적 상처였던 폐-후두 결핵이 악화되어 연인 도라 디아만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다. 그의 문학이 줄곧 예기해왔던 처절하지만 예술적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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