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를 읽으면 좋은 이유 I – 첫 사랑, 레기네 올젠

옛날 재미있게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 문고판 책의 표지에는 ‘한 순간도 잊지 못한 첫 사랑의 기억’ 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 말은 메아리처럼 마음을 울렸었다. 첫 사랑이라는 존재는 정말로 실제적이지만(그리움을 간절히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기루 같다(소유해서 내 옆에 둘 수 없으므로). 실존주의의 시조로 불리는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 (Søren Aabye Kierkegaard : 1813~1855)에게서 처음 연상되어 떠오르는 단어는 ‘첫 사랑’ 이다. 그가 첫 사랑을 만난 후 어떻게 그걸 지켜 갔는지를 본다면, 이 남자를 개츠비 못지않은 순정파로 여길 수 있다.

키르케고르는 25세가 되던 해 14세 소녀 레기네 올젠(Regine Olsen)을 만난다. 이 둘은 즉각 서로에게 끌렸던 것 같으며 키르케고르는 계속 그녀 곁에 맴돌다가 3년 후 드디어 청혼한다. 그렇게 쇠렌과 레기네는 1년 간 약혼 상태로 있었다. 이 시기 그가 약혼녀에서 쓴 편지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정말 감동적인 연애편지였다. 하지만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남자의 마음 속에는 어떤 천사적이면서 악마적인 절망이 자라나고 있었다. 너무 귀엽고 어린 여자(레기네 사진 링크)를 사랑하고 있고, 약혼녀 역시 그를 깊이 사랑하는데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던걸까? 이걸 이해하려면 먼저 그의 가정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키르케고르는 북유럽의 작은 나라인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모직상인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키르케고르는 세 번째 부인의 막내아들이었는데, 그래서 부모의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 미카엘 페데르센(Michael Pedersen Kierkegaard)은 우울하고, 걱정이 많으며, 종교심이 깊으면서 매우 총명한 사람이었다(왠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주인공 성격 같다). 아버지는 경건한 신앙인으로서 자기의 죄를 남김없이 고백하고 싶었는지, 아직 성인이 안 된 키르케고르에게 비밀 두 가지를 말해준다. 첫 번째는 자신이 젊은 시절 황야에서 목동 일을 했는데, 추위와 배고픔에 몸서리친 끝에 하나님을 저주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키르케고르의 어머니는 집안의 하녀였고, 그녀와 혼전 간통으로 태어난 아이가 키르케고르라는 사실이었다.

키르케고르는 아버지의 이 대담한 고백을 듣고서 너무나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훗날 ‘대지진의 체험’ 이라고 했는데, 사람의 정신이 지진 난 땅 처럼 마구 흔들리는 광경을 상상해보면 그가 받은 충격의 정도가 잘 느껴진다. 아버지는 자신의 죄 때문에 집안 사람들이 33세(예수 그리스도가 살다간 나이) 이상 살 수 없는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머니는 아들이 22세 되던해 일찍 죽었고, 나머지 7남매 중 대부분이 어린 나이로 죽었다. 33세 이상 생존한 것은 키르케고르 자신과 형 페테르 뿐이었다.

키르케고르는 자기는 어짜피 서른 세 살 때 죽을테고, 천성적으로 어두운 성격 때문에 약혼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고 굳게 믿는다(근데 처음부터 그녀에게 접근은 왜 한걸까…). 레기네 올젠은 심적 절망에 빠진채 약혼남의 마음 돌려보려 노력한다. 이들의 약혼 소동은 코펜하겐 사람들이 모여 나누는 뒷말의 주요 소재가 될 정도여서 당시 레기네의 말과 행동은 기록으로 잘 남겨진 부분이다. 그녀는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충격’ 에 빠졌으며, 자신을 다시 돌보아 주지 않는다면 자살해 버릴 거라고 키르케고르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그녀는 자신을 잊어야만 행복해 진다는 확신으로 일부러 차갑게 반응한다. 어차피 결혼해보야 몇 해 못 가서 당신보다 더 젊은 여자에게 빠지게 될 거라는 둥 정 떨어지는 말을 하면서.

결국 이 약혼은 서로에게 절망을 안긴채, 일 년만에 파혼으로 끝났다. 레기네는 나중에 요한 프레데릭 슐레겔(Johan Frederik Schlegel)이란 남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여전히 그녀를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사랑했다. 첫 사랑은 그 강도의 변함 없이 평생 이어졌지만, 형태는 그 모양을 바꾸었다. 여자에 대한 사랑이 어떤 신적인 존재에 대한 간구로 바뀌었던 것이다. 죽은 베아트리체를 그리워하며 <신곡>을 썼던 단테가 연상된다. 실연의 기억이 결정적인 화학 반응을 일으켜 실존주의 철학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다음 글에서 이어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어지는 글 – 키르케고르를 읽으면 좋은 이유 II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