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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악마가 있다 I – 어머니에게 두 번 버림받음

정두영은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강도행각을 벌이면서 17명을 다치게 하고 그 중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 살인자이다. 체포 된 후 단순 강도 목적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피해자들을 잔혹하게 죽인 이유가 뭐냐는 경찰의 질문에 “제 안에 악마가 있어요. 그 악마가 한 짓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그의 강도 살인 행각을 전혀 모르고 있던 정두영의 동거녀의 부모는 “정씨는 술담배도 안하고 말 수가 적으며 점잖고 매너 있어 성실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고 진술했다. 정두영은 겉으로는 점잖지만 어떤 악마적인 분노를 마음에 숨기고 있던 것 같다. 그 안의 악마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정두영은 1968년 부산시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출생했다. 그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암으로 투병하고 있었고, 두영이 2세가 되던 해 끝내 사망한다. 남편의 죽음으로 생계가 곤란해진 정두영의 어머니는 아기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거나 영양을 공급해주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아이들을 삼촌 집에 맡기고 재혼한다. 그리고 정두영이 다섯 살 되던 해, 삼촌마저 요란스런 조카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버린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 한 번은 어머니에게, 또 한 번은 삼촌에게 버림받은 정두영은 큰 정서적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려는 듯, 일곱 살 때 어머니가 고아원으로 찾아와 두영을 새아버지 집으로 데려간다. 그대로 양친과 성장했으면 좋았겠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경제적 부담과 부부간 갈등이 커져서 두영은 도로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차라리 처음부터 계속 고아원에 두었더라면 상처를 덜 입었을 것이다.

두영은 어머니에게 두 번이나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운 가운데 공격적 행동을 일삼아서 문제아가 된다. 고아원 안 남자 아이들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 같아서, 세면 때리고 약하면 맞는 게 보통이었다. 선천적으로 작은 체구 때문에 놀림과 괴롭힘을 많이 당한 두영은 결국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폭력’ 뿐 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만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두영은 고아원의 통제를 물리치고 거리로 나가 범죄를 생계수단으로 삼아 살기 시작했다. 직업을 얻을만한 기술도 없고, 자길 보살펴줄 사람도 없었으므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다 자란 정두영은 키가 168cm에 체중 54kg인 작은 체구였다. 그래서 보호 장비로 항상 칼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열 여덟 살이던 1986년 5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마주친 교사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는 자기를 불심검문하는 방범대원을 칼로 찔러 살해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12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어지는 글 – 내 안에 악마가 있다 II

리플리 증후군과 살인자 철학자 – 루이 알튀세르

리플리 증후군(Ripley’s Syndrome)은 가상적인 정체성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맞추어 사는 인격 장애의 유형이다. 주로 자존심에 미달하는 학벌이나 경제∙사회적 위치에 대한 거짓말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결국 완전히 다른 사람의 삶을 인생 연기하듯 살게 된다.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 대표적 사례로 나온 적이 있는데 있는데 제목은 ‘신입생 엑스맨’ 이었다. 시작이 미스테리 영화처럼 섬뜩했다. 한 대학교 신입생 OT에서 왁자지껄 어울려 놀고 있는 남자 신입생이 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작년 다른 대학교 신입생 행사에도 참석해서 놀았었고, 사진에도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전년도 다른 학교에서도, 그 전전년도 어딘가에서도… 확인 결과 그는 6년 동안 48개의 다른 대학에 신입생으로 들어와 과 행사에 참석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며 살았던 걸로 드러났다.

취재진은 엑스맨을 찾아내 만났고 가짜 신입생 역할을 해야만 했던 이유를 듣는다. 그는 성장 과정에서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의식을 끊임없이 주입 받은 것 같다. 그의 아버지는 대학교수로 엘리트 의식이 강했고 누나 넷은 모두 일류대학에 진학해서 자랑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외동 아들인 자기만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에 진학하자 현실과 조합할 수 없었고 결국 진짜 자신이 아닌 가짜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특이 하지만 슬프기도 한 사연이었다. 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거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인격의 가면을 심리학적 용어로 ‘페르소나'(persona) 라고 한다. 페르소나는 본래 그리스의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게 심리학적으로 보편적인 단어가 된 건 어느 사람이나 조금씩은 사회적인 필요로 가면을 쓰고 살고 있어서이다.

루이 알튀세르는 알제리 태생, 프랑스 국적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다. 그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라는 자서전을 썼다. 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학술 작업으로 이름을 떨친 것도 있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목 졸라 죽이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도 있었다. 그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아내를 죽였다는 이유로 기소 면제 처분을 받았고 감옥 대신 정신 병원에 갇혀서 이 자서전을 집필하게 된다.

저자 루이 알튀세르는 평생 자신의 정체성 없이 다른 사람으로 존재한다고 느꼈다. 그가 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는지, 그런 운명을 강요한 가족의 영향과 성장 과정을 되돌아 보는 것이 책의 중심 내용이다. 신입생 엑스맨처럼 그도 진정한 자기로 살 수 없는 굴레를 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고 또 그래야만 하는 존재이다. 만일 부모의 양육이 병적인 것이라면 아이는 그 운명은 그대로 받을 수 밖에 없다. 루이 알튀세르의 어머니는 어려서 한 남자와 약혼했는데 그는 1차 세계 대전에 징집되어 나가 전쟁터에 전사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상향과 같던 옛 약혼자를 평생 잊지 못했다. 그래서 죽은 사람 약혼자의 대체물로 그의 형인 샤를르 알튀세르와 결혼 한다. 결혼 후 얻은 첫 아이에게는 옛 약혼자의 이름을 따서 ‘루이’ 라는 이름을 준다.

소년 루이 알튀세르는 어머니가 자기를 자신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공군 조종사로서 프랑스의 베르덩 하늘에서 죽었던 옛 약혼자의 그림자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아래는 이에 대한 알튀세르의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엄마가 바라는 삶을 사는 것은 가능한 일이면서 동시에 불가능한 일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삶은 “죽음의 영역 안이나 죽음의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 곧 진정한 주체성 없이 이미 죽은 인물의 대체물로서 살아가는 것에 불과했다.

이런 심리의 덫에 걸린 알튀세르는 아무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없고 또 어떤 사람의 사랑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느낀다. 사랑은 받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고, 남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면 결국 자신도 사랑받지 못한다. 알튀세르는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으면서도, 그와 반대되는 전능에 대한 열망도 키운다. 이는 우울증의 결과인데, 자기 혐오 콤플렉스는 더 파괴적인 에너지를 모아서 발산할 수 밖에 때문이다. 그 파괴의 결말은 자기 부정의 강박 때문에 온전히 사랑해주지 못했던 아내 엘렌느를 목 졸라 죽이는 걸로 나타나고 말았다.

어느 옛 여자 배우의 이야기 – 무경계, 켄 윌버

옛날 배우 문숙씨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TV 드라마에 출연했다. 나이 스무 살이 되던 해(1974년) 영화 ‘태양을 닮은 소녀’ 오디션을 보면서 당대 유명한 영화 감독이었던 이만희 씨와 처음 만났다. 그녀는 나이가 23살이 더 많고 이혼 경력도 있던 이 감독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훗날 이 감독과의 첫 만남을 “가슴이 두근두근 막 떨리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라고 회고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영화 감독이라는 직업은 지금처럼 휘황찬란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감독은 하루 촬영이 끝나면 남자 배우와 스텝들과 모여앉아 막걸리 말술을 마셨다. 빈털터리였던 이만희 감독은 집도 없어, 서울 충무로의 삼류여관에서 문숙과 동거 생활을 했다. 하지만 어려운 생활이 사랑에 지장은 되지 않았는지, 교외의 백양나무 숲으로 가서 둘 만의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이만희 감독은 75년 봄 ‘삼포 가는 길’ 영화를 편집하던 중 병원으로 실려간다. 간경화 말기였다. 고통에 참을 수 없던 이 감독은 지인들에게 ‘피주사’ 라고 불리던 알부민 주사를 놓아달라고 애원했다. 알부민 주사는 당시 미8군에서만 구할 수 있었고, 주사 후 2시간 정도만 상태가 회복됐다. 주사가 반복될수록 효과는 급격히 떨어졌다. 결국 그는 고통과 이어진 혼수 속에서 죽었다. 두 남녀가 처음 만난 지 1년 만이었다. 벅찬 사랑의 감정만 경험하고 연인을 보냈기에 그리움은 참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문숙씨가 당시를 회고하면서 한 말이다.

당시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런데 목숨을 거는 사랑을 했다. 삶이 끝난 줄 알았다. 낯선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 삶의 흔적, 고통의 흔적이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문숙씨는 백상예술상(74년)과 대종상 신인상(75년)을 수상했고, 당시 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인 배우였다. 계속 우리나라에 남았더라면 지금은 존경받는 중견 배우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과 실연은 그 모든 것을 의미 없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으로 간 그녀는 이런저런 종교의 문을 두드려 보면서 구도(求道)의 길을 걷는다. 기독교 교회의 가르침도 들어보았고, 남방 불교의 위파사나 수행도 5년이나 했다. 하지만 자신의 길을 찾은 느낌은 얻지 못했다. 그녀는 “몸이 기도가 된다” 는 인도 요가를 접하고 처음 초월의 체험을 했다고 한다.

미국 산타페에서 요가 선생을 만났다. 그는 내 몸이 기도문이 된다. 내가 영적 에너지(Spiritual energy)에 대한 통로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걸 체험했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나 다른 방식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이 방식이 나와 맞았다. … 힌두에는 여러 신이 있다. 요가의 신은 시바다. 시바는 버리는 신, 파괴의 신이다. 기독교의 회개, 불교의 참회처럼 요가는 철저하게 나를 버리는 과정이다. 육체적인 움직임을 통해 나를 버리는 작업이다.

우리나라에서 요가는 주로 다이어트 수단으로 보급되어 있지만 그녀는 전통적인 요가의 기본 사상을 설명하고 있다. 정신과 이어져 있는 몸을 움직임으로서 영적 에너지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런 요가 수행을 통해 머리에 끊임없이 맴도는 쓸모 없는 생각(거짓된 자아)을 버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다 버리고 비워진 인간 정신에는 원래 있던 것만이 남는다. 이에 대한 설명이다.

몸을 움직이다 텐션이 오는 지점에서 멈추라. 그 자세에서 길게 숨을 내뱉고, 들이마시는 걸 반복한다. 그럼 잠시 후에 텐션이 풀린다. 몸은 더 움직여진다. 그리고 그 다음 텐션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수많은 텐션, 수많은 에고를 만나고 열어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에는 수퍼에고를 만나게 된다. 슈퍼에고를 만나면 빅 마인드(Big mind)가 된다. 마음이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의식 확장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거기서 지혜도 나오고, 고요함도 나온다.

거대한 우주는 에너지 그 자체(Energy itself)이다. 인간이 생각을 다 버리면 그 우주와 만나게 된다. 그때는 인간 개체가 우주의 에너지와 하나가 된다. 그 에너지는 살아 있고, 의식이 있고, 지혜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자아가 온 우주와 한데 섞인 것과 같은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그로써 절대 떨쳐버릴 수 없을 것 같던 슬픔도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미국의 작가이자 사상가 켄 윌버는 자신의 저서 무경계 에서 이런 종류의 합일 정신을 잘 설명해놓았다. 그가 책에서 말한 구절이 문숙씨가 털어놓은 말과 너무나 흡사해서 놀랐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사라진 것 같은 합일 의식은 간절히 찾는 사람은 체험할 수 있는 것이란 뜻이다. 쉽게 생각해보면, 술만 많이 먹어도 자신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필름이 끊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켄 윌버가 말하는 건 하룻밤 있다 사라지는 해리가 아닌, 전 세계가 나 같고, 내가 전 세계 같이 느껴지는 합일 정신, 빅마인드이다.

“나는 누구인가?” 라고 하는 물음에 대한 모든 답은 정확히 자기와 비자기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기본적인 절차에서 비롯한다. 일단 전반적인 경계선이 그어지고 나면,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대단히 복잡한 것 – 과학적, 신학적, 경제적 – 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단순하거나 모호한 채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능한 모든 답은 처음 그은 경계선에 달려 있다.

이 경계선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흔히 변경될 수 있고 변경된다는 것이다. 경계선은 다시 그어질 수 있다. 어떤 점에선, 자신의 영혼soul의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고 결코 가능하다거나, 획득할 수 있다거나,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그 영역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경계선의 가장 혁명적인 제작 또는 변경은 지고의 정체성 체험에서 일어난다. 이 지점에서는 자기 정체성 경계가 전우주를 포함할 정도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경계선이 전부 없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와 동일시할 경우, 그곳에는 더 이상 어떠한 안도 밖도 없으며 따라서 경계선을 그을 곳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자아를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명제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다. 하지만 켄 윌버는 생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며, 실제로 ‘나’ 라는 존재의 경계는 원래부터 없었다고 말한다. 알쏭달쏭하지만 굉장한 통찰력을 담고 있고 있는 말이다.

존재한다는 기억, 존재를 잊게 만드는 기억상실

기억은 감정과 연결되고, 감정은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추운 겨울날 새벽 거리를 걸으면 무표정한 사람들을 수없이 지나치지만 모두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같이 손을 잡고 걸었던 한 사람은 마주 잡은 손의 감각과 비스듬하게 보이던 얼굴, 외투, 나누던 말까지 모두 기억난다. 마음이 기억이 되고, 관계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그걸 끊어버리는 병도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린 사람은 기억을 잃어버린다. 사람의 뇌는 컴퓨터 메모리처럼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가 따로 존재한다. 이 부위가 알츠하이머로 인한 위축(atrophy)으로, 아니면 혈관 장애나 감염, 염증 등으로 파괴되면 사람은 기억을 잃는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던 간절한 기억도 깨끗이 날아가 버린다. 기억이 없기 때문에 매일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게 반복된다. 아래는 신경 질환에 관한 대중 저서로 유명했던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전 컬럼비아 대학 교수가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라는 책의 내용이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완전한 기억상실 뿐이다. 그것만이 내 삶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다.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 루이스 부뉴엘 1

그는 순간 속의 존재이다. 말하자면 망각이나 공백이라는 우물에 갇혀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게 과거가 없다면 미래 또한 없다. 끊임없이 변동할 뿐 아무 의미도 없는 순간순간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신경과 의사였던 저자는 뇌신경의 일부가 손상되어 기억을 자꾸 잃어버리는 환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이 없다면 과거가 없어질 뿐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도 없어진다. 결국 끝없이 변하는 순간순간만 남는다. 기억상실은 나이든 사람에게 나타나지만, 아예 기억이 시작도 안된 사람은 어떨까? 나는 집 마루에서 열심히 기어 다니는 아기 조카를 보며 기억 없이 사는 게 어떤 건지 느끼곤 한다. 작고 따뜻한 이 생명체는 자극에 반응하며 목적도 없이 순진무구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일정 이상 기억이 쌓여버린 어른은 그 집적에 반응해야만 한다.

감히 말하자면 우리는 무수히 잡다한 감각의 집적 혹은 집합체에 불과하다. 그러한 감각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차례차례 계승되고, 움직이고, 변하며, 흘러간다.

아기는 아니지만, 어른의 기억상실은 병원 치료의 대상이다. 올리버 색스 교수는 자꾸 기억을 잃는 환자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매일 일기를 쓰라고 권유했다. … 그러나 나의 권유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무엇보다도 그가 항상 일기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그가 일기장을 몸에 지니고 다니게 해야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별 효과를 얻지 못했다. 그는 날마다 짧은 메모를 일기장에 착실하게 적어놓기는 했지만 바로 그 전날 자신이 쓴 것을 보고도 그것을 이해하질 못했다. 자신의 필적이나 문체는 알아보았기 때문에 그 전날 자신이 무엇인가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곤 했다.

기억상실의 종착역은 존재의 망각이다. 기억이 없어지면 자신에 대한 자각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는 대다수에게 옳지만 이 환자의 경우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한다는 걸 자주 망각한다. 그래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가 되었다. 살고 있다는 것, 생각하고 있다는 것, 모두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어떤 병은 이 모든 걸 리셋시킨다. 고상한 의미로 포장되어 있는 사람의 존재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밀어 넣는 것이다.

Notes:

  1. Luis Buñuel (1900년 2월 22일 ~ 1983년 7월 29일) 스페인, 멕시코의 영화 감독, 각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