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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IV – 릴리푸트 읍

아버지 난장이가 굴뚝에서 떨어져 죽은 후 자식들 영수, 영호, 영희는 각각 은강자동차, 은강전기, 은강방직에 취직한다. 은강 그룹 회사의 일은 고되었지만 임금은 적었다. 네 명의 가족을 둔 그 해 도시 근로자의 최저 이론 생계비는 83,480원이었지만, 삼 남매의 수입 총액은 80,231원이었다. 즉 세 명이 죽어라 일해도 가족이 몸을 유지할 정도의 돈 밖에 못벌었다. 소설의 화자는 그래서 ‘생산 공헌도’ 라는 말을 한다. 공장이 있다면 그걸 돌리는 노동으로 인한 수익이 있을 텐데 그게 얼마인지는 상층 경영자들만 안다.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을 정도만 월급을 주고 나머지 이익은 회장과 자기들이 가져간다. 은강 그룹 말고 다른 회사의 경영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절대적으로 정당한 임금 책정 기준은 없다. 다른 회사보다 나은 임금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맞춰서 낮은 임금을 준다면? 노동자들은 어느 회사에 가도 덫에 걸린 느낌이었을 것이다. 영수는 은강 그룹 회장이 사회 복지를 위해 20억원을 희사한 다는 신문기사를 본다. 아래는 이에 대한 지부장과 영수의 대화이다.

“이건 제가 신문 기사를 오려 두었던 것입니다.”
“나도 그 기사를 봤어.”
“회장님이 사회 복지를 위해 해마다 20억원을 내놓으시겠다는 기사지?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해마다 거액을 희사하시겠다는 거야. 이미 복지 재단의 이사진이 결정됐을걸. 그건 훌륭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노사협의 때 회사측에 상기시켜 주실 게 있습니다.”
“그게 뭐지?”
“그 돈은 조합원들의 것입니다.”
“어째서?”
“아무도 일한 만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금은 너무 쌉니다. 제가 받아야 할 정당한 액수에서 깎여진 돈도 그 20억원에 포함됩니다.”
“좋은 걸 지적해 줬네.”
“정작 받을 권리가 있는 노동자들에게 주지 않은 돈을 이제 어떤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는 건지 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회장은 회사 노동자들에게는 최저 생계비도 안 되는 월급을 주고 있다. 직원들에게는 인색하지만 사회복지기금 기부는 한다. 회사 돈으로 하면서 좋은 평판은 자신이 누린다. 차라리 회장이 자기 집안 만을 위해 돈을 쓰는 게 솔직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런 조직 안에서 노동자들이 생산 공헌도를 위해 싸워봐도 얻을 게 별로 없었다. 원체 일이 바쁘기 때문에 투쟁할 틈이 없기도 했다. 게다가 공장 안에서는 경영자 뿐 아니라 선참 직원도 아래 사람을 괴롭힌다.

​나는 승용차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부품들을 날라다 주었다. 한 대의 승용차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품으로 만들어졌다. 선참 공원들은 열심히 일했다. 조립 라인의 조립공들은 나를 또 하나의 보조 기계로 보았다. 공장장에게는 공원 전체가 기계였다.

공장에선 사람도 기계처럼 기능으로 평가되었다. 기능이 떨어지면 폐기 처분(해고)되는 것도 기계와 같았다. 행복과 의미를 위해 일을 하는 건데 일을 위해 의미를 포기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답답한 세상에 지친 난장이의 아들과 딸은 국제 난장이 마을 ‘릴리푸트읍’ 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며 사는 소박한 삶을 꿈꾸고 있다.

영희의 이야기를 나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영희는 독일 하스트로 호수 근처에 있다는 릴리푸트 읍 이야기를 했다. 자세히 듣지 않아도 슬픈 이야기였다. 돌아간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나려고 했다. 릴리푸트 읍은 국제 난장이 마을이다. 여러 나라의 난장이들이 그곳에 모여 살고 있다. 키가 칠십 팔 센티미터로 세계에서 제일 작은 사나이인 터키인 난장이도 최근에 그곳으로 이주했다. 릴리푸트 읍의난장이 인구는 늘어만 간다. 릴리푸트 읍을 제외한 곳은 난장이들이 살기에 모든 것의 규모가 너무 커서 불편하고 또 위험하다.

지금 릴리푸트 읍의 난장이들은 자기들의 특수 의료 문제, 사회 심리적인 문제, 그리고 재정 문제 등을 토의하고 있다. 해결해야 될 몇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우리는 극히 행복하다>고 마리안느 사르 읍장은 말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III – 팬지꽃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위 문장을 처음 읽었다. 마음에 울림이 퍼지는 것 같았다. 그 후로 십 년이 넘게 지났고, 난쏘공 책을 두세 번 더 읽었지만 문장은 변함없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팬지의 꽃말은 “나를 생각해 주세요” 이다. 두 송이의 팬지는 한 쌍의 남여를 나타내고, 어린 소녀가 그걸 폐수에 버렸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행복을 포기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난장이의 딸 영희는 갈 곳 없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망치는 길로 들어선다.

그녀는 집을 나와 입주권을 사들인 부동산 업자를 찾아간다. 이 업자는 전부터 예쁘게 생긴 영희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 남자는 영희에게 옷을 여러 벌 사주고는 영동에 있는 그의 집으로 데려 간다. 영화 <강남 1970>에 나올 만한 욕망에 충실한 남자인 것 같다. 영희는 날마다 그와 자면서 몸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좋아서 그런 건 아니고 헐값에 팔려버린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떨어져 버린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에 심란한 꿈도 꾼다. 꿈 속에서 오빠들이 공장에 취직되어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난장이 아버지가 달을 왕복하는 모습도 본다. 그리고 어머니가 어린 딸을 걱정하는 모습도 본다.

“너의 증조할머니 동생 한 분이 알몸 시체로 수리조합 봇물에 막혀 있었단다. 왜 그랬는지 아니? 주인 서방과 잠자리를 함께했기 때문야. 주인 여자가 너의 증조할머니 동생을 사매질해 숨지게 했단다.”
“엄마, 전 달라요.”
“같아.”
“달라요.”
“같아.”
“달라요!”

영희의 윗 대 어른인 증조할머니 동생은 잘못도 없이 죽임을 당하고 알몸 시체로 저수지에 버려진다. 떠내려가다 봇물에 걸린 모습으로 사람들 구경거리가 되었다. 노비가 있던 조선시대에는 이같은 일이 충분히 가능했고, 주인 여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가난은 난장이 아버지 가문에 대를 이어 내려왔고, 이제 영희도 선조 할머니처럼 몸을 내주며 생활을 찾는 형편이다. 그녀는 부동산 투기업자의 금고 안에 있던 입주권과 돈을 훔쳐서 새벽에 몰래 빠져나온다. 하지만 이미 철거가 되어 폐허가 된 집에 돌아왔을 때 난장이 아버지가 높은 굴뚝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까만 쇠공이 머리 위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날아갔다. 아버지가 벽돌 공장 굴뚝 위에 서서 손을 들어 보였다. 어머니가 조각마루 끝에 밥상을 올려놓았다. 의사가 대문을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가 나의 손을 잡았다. 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울음이 느리게 나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울지마, 영희야.”
큰오빠가 말했었다.
“제발 울지마. 누가 듣겠어.”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큰 오빠는 화도 안 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그래. 죽여 버릴께.”
“꼭 죽여.”
“그래. 꼭.”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