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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作 – 죽음도 생과 같다면

자기비하는 괴로운 생각 같지만 실은 중독성이 있다. 막장에 몰리면 유머 같은게 생겨서 그렇다. 일본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년~1948년)는 자신의 삶의 궤적을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으로 그렸었다. 소설 제목이 어울리게 가출, 불륜, 알콜중독, 마약중독, 정신병원 폐쇄병동 감금, 중간중간 총 네 차례 자살시도로 이어진 생활을 하다가, 기생과의 동반자살 성공으로 죽었다. 하지만 자기비하의 끝이 우울만은 아니어서, 대표 장편소설 <사양斜陽>에서 주인공 여성의 입을 빌어 “나는 확신한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반면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삶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탐구한 끝에 아래와 같은 문장을 남겼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그는 자살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철학적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안 하기로 했다. 이런 긴 사색의 결과를 <시지프 신화>, <이방인> 등의 저작으로 표현했다. 카뮈는 젊은 나이(만44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영광된 삶을 살다가 교통사로로 사망했다. 이것도 참 부조리 했다. “자살은 아니다” 라는 결론을 위해 그렇게 노력한 사람이 사고로 죽다니.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작가 카뮈의 성격이 투영된 존재로, 내성적이면서 무감각한 태도를 지녔다. 작품 속 대사처럼 세상에는 “아무 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라고 생각해서다. 뫼르소는 양로원에 나가 살던 어머니가 죽은 걸 알고도 슬퍼하지 않는다. 대신 장례식장에 가서 담배를 피고 사탕을 먹다가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그는 이런 행동을 눈길 끌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감정이 그에겐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사회의 이방인으로 되었다.

실은 사람은 모두 의지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아기일 때 부터 엄마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명 자체를 잃기 때문이다. 바닷가 모래 사장의 아기 거북이는 알에서 나오자마자 바닷물 쪽으로 마구 기어간다. 다른 어른 거북이가 “바닷물에 빨리 안들어가면 너는 죽어” 라고 소리쳐 준적도 없지만 아기 거북이는 본능적으로 기어간다. 인간도 비슷하게 아기는 엄마를 찾고 칭얼대도록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그러니 뫼르소가 사회성도, 가족과의 유대도 잊고 이방인이 된 것은 분명 길고 긴 세월 좌절과 배신과 분노와 허무를 견디며 조용히 그렇게 된 걸로 보인다. 비정한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장기간의 스트레스가 흔한 일이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공장에서 찍혀나오듯 사회에 나오고 있다. 그 중 이방인 기질이 특출난 사람은 어떤 사건을 일으키고 신문과 언론에 싸이코패스 범죄자로 낙인찍혀 등장한다. 뫼르소도 살인을 저지르고 사회에서 같은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범죄자와는 뛰어나게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건 그가 진지한 사색을 통해(작가 카뮈처럼) 삶의 방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확립한 사람이고, 그걸 지키느라 자기 목이 잘리는 길로 끌려 갔기 때문이다. 뫼르소에게 있어 생의 이념은 사랑이나 혁명, 잘 먹고 잘 살기 혹은 사회적 성공 같은게 아니었다. 순수한 에너지, 순수한 리비도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게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아래 단락들을 읽어보자. 뫼르소를 사랑했던 동네 여자 마리와의 일화이다.

어제는 토요일이라 약속했던 대로 마리가 찾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몹시 정욕을 느꼈다. 마리가 붉고 흰 줄무늬가 있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가죽 샌들을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탄력 있어 보이는 젖가슴이 완연히 드러나 보였고, 햇볕에 그을어 갈색이 된 얼굴이 꽃처럼 아름다웠다.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요?” 하고 마리는 말했다. 나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정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고 설명을 했다. 게다가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녀 쪽이고, 나는 그저 승낙을 했을 뿐이다. 그러자 마리는, 결혼이란 건 중대한 일이라고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아니야.” 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자기와 같은 관계로 맺어진 다른 여자로부터 같은 청혼이 있었어도 승낙을 했을 것인가. 다만 그것만이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리는 자기가 나를 사랑하는지 어떤지를 생각해 보는 듯했으나, 나는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길이 없었다. 잠시 또 묵묵히 있다가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이상스러운 사람이라고, 아마 그 때문에 자기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내가 싫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더 할 말이 없어 잠자코 있노라니까, 마리는 웃으면서 내 팔을 붙들고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언제든지 그녀가 원한다면 곧 결혼을 하자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장의 제안을 이야기해 주니까, 마리는 파리를 알고 싶다고 했다.

예쁜 여자에게 성욕은 느끼지만 사랑은 느끼지 않는다. 여자가 그에 대해 질문하면 솔직하게는 대답한다. 이상한 것은 마리가 그런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된 것 같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연인을 대할 때 성욕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래서 자신의 사랑이 순수하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강할수록, 길어질 수록 위선스러워진다. 뫼르소가 순수하다고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는 누구나 느끼는(어린이 제외) 가장 강렬한 열망에 편견이 없으며, 사회적 고정 관념에는 무감각하다. 작가 카뮈의 설명에 따르면 뫼르소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이런 것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사람이다.

뫼르소는 우연한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부 검사 및 대중들로부터 한껏 비난 받게 된다. 살인 자체는 사소한 시비 끝에 난 우발로 해석될 수 있었지만, 모친상 때 슬퍼하지 않은 것, 모친상 다음 날 여자랑 잤다는 사실이 같이 어울리면서 완전히 싸이코패스로 찍힌다. 하지만 뫼르소는 항상 “세상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느끼고 내면 에너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죽은 것도, 그 다음 날 여자랑 동침한 것도 스스럼 없이 느꼈었다. 그는 사회를 통해 만들어진 이방인이었고, 정직한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싸이코 취급한다.

다시금 종이 울리고 피고석 문이 열렸을 때 나에게 밀려온 것은 장내의 침묵, 그리고 그 젊은 신문기자가 눈을 옆으로 돌린 채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그 야릇한 감각이었다. 나는 마리가 있는 쪽을 보지 못했다. 시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장이 나에게 이상스러운 말로, 나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되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히는 감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 어떤 배려의 표시 같은 것 이었다고 생각된다. 간수들은 나에게 아주 부드럽게 대했다. 변호사는 나의 손목 위에 그의 손을 올려놓았다. 나는 이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재판장이 나에게 무엇이든지 덧붙여 말할 것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깊이 생각해 보았다. “없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내가 끌려 나온 것은 그때 였다.

사람을 법으로 심판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공적 힘의 공통적인 목소리는 왜 그렇게 사느냐, 너는 옳지 않다 똑바로 살아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결국 같은 차원의 세계에 산다. 자기에게 옳고 진리인 것이 항상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수는 없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신을 믿던 시대에는 그런게 통했다. 유럽에서는 기독교 사상이,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적 도리가 그 절대적 믿음이었고, 그걸 어기는 개인이나 집단을 모조리 죽이기도 했다. 뫼르소는 하지만 믿지도 않는 사회 이념에 맞게 자기를 꾸미지 않았고(어머니가 죽은 게 실은 너무 슬펐지만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재판관님! 이라고 하지 않음), 순간의 자연과 현상에 충실했다(그래서 장례식 다음날 마리랑 자고, 살인 재판이 진행되는 중간에도 밖의 거리의 뜨거운 바람과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소리에 시적 감상을 느낌). 하지만 그게 보통 사람들에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결국 사형수가 되고 만다.

그는 단두대가 설치된 광장에 주인공으로 끌려갈 날만 기다리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진지한 사색을 계속한다… 그리고 마침내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서 생과 죽음이 어색함도 공포도 없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현상을 체험한다. 세상이 자신과 닮아서 형제처럼 이어져 있는 느낌, 다르게 말하면 자기 마음의 소리와 외부 세계의 소리가 박자가 완전히 맞은 채 합주되는 것 같은 상황이다. 사형수를 위로하러 방문했던 카톨릭 사제와의 대화에서 시작해 그는 이런 생사生死의 초월을 극적으로 외쳤다. 읽으니 눈물이 났다.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은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그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그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나와 더불어 그처럼 나의 형제라고 자처하는, 특권 가진 수많은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제는 그들을 진정시키고, 한동안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히 괴어 있었다. 그는 마침내 돌아서서 사라졌다.

그가 나가 버린 뒤에,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침상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눈을 뜨자 얼굴 위에 별이 보였으니 말이다. 들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밤 냄새, 흙냄새, 소금 냄새가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잠든 그 여름의 그 희한한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근처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시간 같았었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이 틀림없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었다.

니체를 읽으면 좋은 이유 V – 운명의 주인

​고난과 시련이란 이름의 마차를 타고
폭풍 이는 벌판 위에 영원히 피어나라
Wake up, my queen 첫 눈물의 여왕이여
Now arise, my queen 운명의 주인이여
너 홀로 의지의 배를 타고 내게로 오라
이 영겁의 고독에서 몸부림치는
날 구해다오

넥스트(N.EX.T)의 ‘사탄의 신부(新婦)’ 라는 곡의 가사이다. 이제 고인이 된 신해철님은 철학과 출신 답게 실존주의 분위기의 가사를 자주 썼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운명의 주인이여’ 라는 부분에서 항상 감동을 받았다. 운명의 주인 이라는 말은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된다는 것과 비슷한 뜻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니체 해설서를 많이 쓴 고병권 작가님의 책 구절을 읽어보자.

우리가 니체를 동정할 필요는 없다. 동정을 받아야 할 쪽은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시작과 끝만이 아니라 생애의 대부분에서 주인 노릇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왜 만들어 놓은지도 모르는 가치와 규범에 복종하고, 미리 정해져 있던 길을 따라 의미없는 생을 이어간다면 그 생은 죽음보다도 비참한 게 아닐까. 그러나 니체는 적어도 자기 삶의 많은 순간들에서 주인이었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용했다. 스스로를 돌이켜 봤을 때, 인생의 처음 20년 정도는 외부에서 정해놓은 가치와 규범에 복종했던 삶이었다. 너무 당연한거라 느끼고 의식도 못하고 있었지만 삶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중산층으로 태어나 학벌을 만들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하지만 그렇게 정해진 생을 사는 건 결국 허무의 문제를 불러온다.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필요가 있다. 운명의 주인 이라는 말에는 우선 자기 운명은 멋진 것이라는 함의가 있고, 또 그것의 주인은 오직 자신 뿐이라는 자신감도 담겨있다. 내 운명은 거지같이 살다가 거지같이 죽는거야 라고 믿는 운명의 주인은 없다. 그렇다면 니체 자신이 생각한 운명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의 저서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를 읽으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나는 나의 운명을 안다. 언젠가는 나의 이름에는 엄청난 사실이 추억으로 연상이 될 것이다. 즉 세상에서 전대미문의 대 위기와 가장 심원한 양심의 갈등, 그리고 이제까지 신뢰되고 요구되었으며,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에 거역하여 만들어졌던 결정에 대한 추억 말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처럼 스스로를 새 시대의 사상적 구원자로 생각했던 것 같다. 2천년 전의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하거나 그마저 넘어서는. 그래서 앞으로도 기독교계로부터는 영원히 욕을 먹을 것 같다. 니체는 이렇게 거대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평범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과는 지구와 별처럼 떨어진 사색을 했다. 따라서 그의 책을 이해하려면 그의 입장을 상상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처음 읽으면 횡설수설로 들리는 니체의 저작들은 당대의 유명한 사상가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들에게 니체는 정신을 해방시키는 종교의 교주였다.

너는 너 자신의 주인, 또한 네 덕성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예전에는 덕성이 너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도구일 뿐이다. 너는 자신의 의사 결정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더 높은 목표를 위해서 네 힘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는 모든 가치 판단을 할 때 미래를 지향하고 고려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많은 깨달음을 주는 니체의 말이다. 덕성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정해놓은 것이다. 우리나라 상황을 예로 들면 열심히 공부하는 것, 열심히 일하는 것,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 등이다. 당연하게 정해져 있어서 실제로 옳은지 생각도 안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절실히 깨닫은 목표의식이 없다면 그건 노예의 덕성이다. 왜 공부하는지, 왜 일하는지, 왜 이념을 수호해야 하는지 생각없이 시키는 대로 한다면 결국 허무의 문제가 찾아온다. 높은 목표를 찾으면 노예의 덕성을 뛰어 넘을 수 있다. 예전에는 강박이고 피로를 주던 덕성이 이제는 필요할 때 쓰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 목표의식은 자신의 운명을 찾았을 때만 충족된다.

이어지는 글 – 니체를 읽으면 좋은 이유 VI

카프카를 읽으면 좋은 이유 V – 보이지 않는 악마

카프카는 자신의 단편소설 중 <시골의사>와 <판결>을 특히 맘에 들어 했다고 한다. 두 작품을 읽어보니 동감이 갔다. 카프카가 아니면 누구도 아닐 황량하고 아름다운 문학이었다. 아래는 단편 <시골의사>의 잊기 어려운 결미 부분이다.

절대로 이런 식으로 집에 돌아가지는 않겠다. 나의 번창하는 의사생활은 망했다. 후임자가 내 자리를 넘본다. 그러나 소용 없는 짓. 그가 나를 대신하지는 못할테니. 내 집 안에서는 구역질나는 마부가 날뛰고, 로자는 그의 제물이다.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벌거벗은 채, 이 불운을 극한 시대의 혹한에 맨몸으로 내던져져, 지상(地上)의 마차에다 지상의 것이 아닌 말들로, 늙은 나는 나를 이리저리 내몰고 있구나. 내 털외투가 마차 뒤에 걸려 있다. 하지만 내 손은 거기까지 닿지 않고 변덕스러운 환자 주위의 불한당들 중 어느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속았구나! 속았어! 한번 야간 비상종의 잘못된 울림을 따랐던 것 – 그것은 결코 보상할 수가 없구나.

두서없는 시골의사의 말은 시적이지만 의미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프카가 살아온 인생에서 피어난 특이한 심리상태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흔히 고독, 소외, 불안, 항거불능 같은 단어로 대표된다. 카프카의 여인 중 한 명이었던 밀레나 폴락이 남긴 추도사가 있는데, 남자를 깊이 사랑했던 여인이 쓴 것이니 만큼 그 심리에 대한 훌륭한 이해를 보여준다. 한 번 읽어보자.

카프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실하지만 세상에 낙담한 채 자신의 길만을 외롭게 걸었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무방비 상태의 인간을 전멸시키는, 보이지 않는 악마 로 가득 찬 세계를 보았다. 카프카는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예민했고, 아름답고 고결한 존재가 그렇듯 투쟁하기에는 너무 허약했다. … 카프카는 타인을 알 수 있는 위대한 감식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유별나고도 심오한 방법으로 세계를 파악했던 카프카는 그 자체로도 유별나고도 심오한 하나의 세계였다. … 이 책들은 건조한 아이러니와 감각적인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세계를 투명하게 파악하기 때문에 카프카는 이 세계를 감당할 수 없으며, 이성적 사고가 아니라면 카프카에겐 죽음만이 남는 것이다.

밀레나가 말한대로 카프카는 예민하고 고결한 존재였다. 그는 유별난 방법으로 세계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보았는데, 그건 부조리로 가득차 있는 꿈과 같은 세계였다. ‘건조한 아이러니와 감각적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는 말은 카프카는 현실의 부조리(아이러니)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능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실존주의는 보통 “정해진게 없고 모든게 부조리한 이 세상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카프카의 문학과 실존주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부분이다.

만약 카프카가 가졌던 세계관와 거리가 먼, 소속감과 정동이 뚜렷한 삶을 살았다면 그의 소설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본들 미친놈 일기장 읽는 것과 비슷할 뿐일 것 같다. 카프카의 책은 프랑스의 실존주의 사상가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는데, 그들 역시 고독하고 정신적 투쟁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무척 마음에 들어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모든 배경을 취합해 <시골의사>의 마지막 단락을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시골의사는 한번 야간 비상종의 잘못된 울림을 따랐기 때문에 의사생활이 망해버린다. 이는 인생에서 생의 방향을 정확히 인도하는 경보는 없다는 걸 의미한다. 잘못된 신호로 그는 연인 로자를 구역질나는 마부에게 넘길 수 밖에 없었다(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림). 벌거벗었다는 건 마음을 지켜주는 방어막(신앙이나 은총)이 없다는 걸 뜻하고, 말들은 원초적 본능을 상징한다(프로이트의 분석에도 나와있듯이). 하지만 지상의 것이 아닌 말이기 때문에(본능을 떠난 천상의 정신에도 매어 있으므로) 그는 혼란스럽다. 구원을 주는 털외투는 손에 닿지 않고 불한당 들은 의사(치유자)의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은 보상받을 수 없다. 정해진 게 없는 인생에서 한 번 지나간 길은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를 읽으면 좋은 이유 II – 실존주의

키르케고르는 실존주의 사상의 시조로 불리고 있다. 이전의 근대적 합리주의와 확연히 구별되는 사상을 처음 전개했기 때문이다. 실존주의가 어떻게 다른 사상인지 위키 백과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은 설명이 나온다.

실존주의(實存主義, 프랑스어: Existentialisme)는 개인의 자유, 책임, 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적, 문학적 흐름이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각자는 유일하며, 자신의 행동과 운명의 주인이다.

조금 추상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운명의 주인’ 이라는 말은 참 맘에 들었었다. 일단 내게 어떤 운명이 있다는 것이 새롭고, 내가 그 운명의 주인이 된다는 건 꿈꾸며 살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를 정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사르트르가 한 말을 또 참고해보자. 그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는 유명한 선언을 했다.

본질(本質)이라는 건 본래가 되는 성질 혹은 가치이다. 그런데 이 가치는 사회에 의해서 정의된다. 본질이라고 통용되려면 다수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연장선으로 삶의 본질이라는 것도 사회에 의해 정의된다. 우리나라는 유교 전통이 강한 곳이니 출세와 지위가 삶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스스로 돌이켜봐도 어려서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해서 공부하고, 선생님이 좋은 대학가라고 해서 대학가고, 다 크니 주위 사람들이 선망하는 위치를 찾으려 노력했던 삶이었다. 즉 삶 대부분이 운명이라는 말을 쓸 가치가 없게 타성적이었다. 이런 타성이 지속되면 편견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로봇이 되어버린다. 반면 실존(實存)은 실제가 되는 존재이다. 실존을 찾기 위해선 주관적 느낌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남들이 뭐라든 신경 안 쓸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의 의견도 어차피 사회의 통념이고 강요된 운명이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는 경건하지만 사색적이고 우울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에 뛰어난 사고 능력을 키운 것 같다. 고독과 소외감에 고생하다보면 신선한 꿈을 찾게 마련이다. 1835년의 여름방학, 젊은 22세의 대학생인 키르케고르는 코펜하겐을 떠나 셸란(Saeland)의 북부를 두루 여행한다. 그는 북 셸란의 최북단에 있는 길레라이레(Gilleleije)란 마을에 이르렀고, 장엄한 해협의 물결이 보이는 절벽 위에 서서 사색에 잠겼다. 압도적인 자연 경관의 도움인지 그는 예지의 절정을 경험한다. 키르케고르는 마침내 자기의 사고와 생존의 결정적 근거를 찾아내었다고 하는데 아래가 그의 말이다. 실존주의 사상이 담긴 서사시 같다.

나에게 참으로 없었던 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자각이었다. 내게 없었던 것은 결코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하느냐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 어떤 행위에도 일정한 인식이 앞서야 하므로 인식이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문제는 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내가 참으로 무엇을 하기를 원하고 계신가를 아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내게 진리인 진리를 찾는 것, 내가 그것을 위하여 살고 또 죽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이념(Idee)을 찾아내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이른바 객관적인 진리를 찾아낸들 그것은 나에게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인식의 명령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며, 또 그 명령을 통해서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그 명령이 내 안에 생생하게 집어넣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것이 내가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이것이 내게 없었다. 이것은 마치 내가 이미 집도 얻고 가구도 장만했지만 거기서 인생의 희비를 같이 나눌 연인을 아직 찾지 못해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과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내게 없었던 것은 참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사상 전개를 결코 내자신의 것이 아닌 것 위에, 즉 객관적이라고 하는 것 위에 세우지 않고 내 생존의 가장 깊은 뿌리와 맺어져 있는 것 위에, 즉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신적(神的)인 것에 뿌리박고 있으며 비록 온 세계가 무너진다 하더라도 굳게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것 위에 세우게 될 것이다(진리란 Idee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발견했는가? 내가 찾아온 자기를, 나의 혼을 얻은 것은 아니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자신을 알도록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gnothi seauton). 사람이 평안함과 의의를 얻는 것은 그가 자기자신을 내면적으로 이해하고 자기의 길을 찾았을 때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길은 절망이라고 하는 저 따분한 저주 받은 동행자 곧 삶의 이로니를 면할 길이 없다. 내면적 근거가 없는 사람은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 몸을 지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진리인 진리를 찾는 것, 나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생각을 발견하는 것이다.
The thing is to find a truth which is true for me, to find the idea for which I can live and die.

앳된 청년이었던 키에르케고르의 이 깨달음은 실존철학의 탄생을 의미했다. 나와 상관 없는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나에게 진리인 진리를 발견하는 것, 그것을 위하여 살고 또 죽기를 원하는 이념을 찾는 것이다. 타성적 삶을 사는 것은 안락한 가구가 있는 집에 사랑하는 연인 없이 사는 것처럼 맥 빠진 일이다. 하지만 실존을 찾아 사는 것은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연인 – 키르케고르의 경우 레기네 올젠의 이미지가 투영됨 – 과 같이 사는 것이다. 이것이 키르케고르 스스로 불안과 우울이 엇갈리는 생 한가운데서 찾아낸 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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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를 읽으면 좋은 이유 I – 첫 사랑, 레기네 올젠

옛날 재미있게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 문고판 책의 표지에는 ‘한 순간도 잊지 못한 첫 사랑의 기억’ 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 말은 메아리처럼 마음을 울렸었다. 첫 사랑이라는 존재는 정말로 실제적이지만(그리움을 간절히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기루 같다(소유해서 내 옆에 둘 수 없으므로). 실존주의의 시조로 불리는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 (Søren Aabye Kierkegaard : 1813~1855)에게서 처음 연상되어 떠오르는 단어는 ‘첫 사랑’ 이다. 그가 첫 사랑을 만난 후 어떻게 그걸 지켜 갔는지를 본다면, 이 남자를 개츠비 못지않은 순정파로 여길 수 있다.

키르케고르는 25세가 되던 해 14세 소녀 레기네 올젠(Regine Olsen)을 만난다. 이 둘은 즉각 서로에게 끌렸던 것 같으며 키르케고르는 계속 그녀 곁에 맴돌다가 3년 후 드디어 청혼한다. 그렇게 쇠렌과 레기네는 1년 간 약혼 상태로 있었다. 이 시기 그가 약혼녀에서 쓴 편지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정말 감동적인 연애편지였다. 하지만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남자의 마음 속에는 어떤 천사적이면서 악마적인 절망이 자라나고 있었다. 너무 귀엽고 어린 여자(레기네 사진 링크)를 사랑하고 있고, 약혼녀 역시 그를 깊이 사랑하는데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던걸까? 이걸 이해하려면 먼저 그의 가정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키르케고르는 북유럽의 작은 나라인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모직상인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키르케고르는 세 번째 부인의 막내아들이었는데, 그래서 부모의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 미카엘 페데르센(Michael Pedersen Kierkegaard)은 우울하고, 걱정이 많으며, 종교심이 깊으면서 매우 총명한 사람이었다(왠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주인공 성격 같다). 아버지는 경건한 신앙인으로서 자기의 죄를 남김없이 고백하고 싶었는지, 아직 성인이 안 된 키르케고르에게 비밀 두 가지를 말해준다. 첫 번째는 자신이 젊은 시절 황야에서 목동 일을 했는데, 추위와 배고픔에 몸서리친 끝에 하나님을 저주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키르케고르의 어머니는 집안의 하녀였고, 그녀와 혼전 간통으로 태어난 아이가 키르케고르라는 사실이었다.

키르케고르는 아버지의 이 대담한 고백을 듣고서 너무나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훗날 ‘대지진의 체험’ 이라고 했는데, 사람의 정신이 지진 난 땅 처럼 마구 흔들리는 광경을 상상해보면 그가 받은 충격의 정도가 잘 느껴진다. 아버지는 자신의 죄 때문에 집안 사람들이 33세(예수 그리스도가 살다간 나이) 이상 살 수 없는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머니는 아들이 22세 되던해 일찍 죽었고, 나머지 7남매 중 대부분이 어린 나이로 죽었다. 33세 이상 생존한 것은 키르케고르 자신과 형 페테르 뿐이었다.

키르케고르는 자기는 어짜피 서른 세 살 때 죽을테고, 천성적으로 어두운 성격 때문에 약혼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고 굳게 믿는다(근데 처음부터 그녀에게 접근은 왜 한걸까…). 레기네 올젠은 심적 절망에 빠진채 약혼남의 마음 돌려보려 노력한다. 이들의 약혼 소동은 코펜하겐 사람들이 모여 나누는 뒷말의 주요 소재가 될 정도여서 당시 레기네의 말과 행동은 기록으로 잘 남겨진 부분이다. 그녀는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충격’ 에 빠졌으며, 자신을 다시 돌보아 주지 않는다면 자살해 버릴 거라고 키르케고르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그녀는 자신을 잊어야만 행복해 진다는 확신으로 일부러 차갑게 반응한다. 어차피 결혼해보야 몇 해 못 가서 당신보다 더 젊은 여자에게 빠지게 될 거라는 둥 정 떨어지는 말을 하면서.

결국 이 약혼은 서로에게 절망을 안긴채, 일 년만에 파혼으로 끝났다. 레기네는 나중에 요한 프레데릭 슐레겔(Johan Frederik Schlegel)이란 남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여전히 그녀를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사랑했다. 첫 사랑은 그 강도의 변함 없이 평생 이어졌지만, 형태는 그 모양을 바꾸었다. 여자에 대한 사랑이 어떤 신적인 존재에 대한 간구로 바뀌었던 것이다. 죽은 베아트리체를 그리워하며 <신곡>을 썼던 단테가 연상된다. 실연의 기억이 결정적인 화학 반응을 일으켜 실존주의 철학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다음 글에서 이어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어지는 글 – 키르케고르를 읽으면 좋은 이유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