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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를 읽으면 좋은 이유 I – 우울하다면

마음 속 즐거움이 어디갔는지 모르는 때가 있다. 아침 일찍부터 직장 가서 일하지만 의욕이 없다. 퇴근 후 집에서 TV를 보는 것도 재미없고, 운동이나 다른 취미를 찾을 마음도 안 든다. 텔레비전 드라마 속 언제나 화장한 얼굴의 남여 주인공 – 운동할 때도 잘 때도 화장하고 있다 – 은 열띤 표정으로 인생의 목표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공허하다. 어려서 기계처럼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를 하다가, 커서는 기계처럼 직장에서 시키는 일을 처리한다. 사회 전체가 강물처럼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출세에 대한 욕구가 채워진다면, 아니면 쾌락이나 마약에 퐁당 빠질 수 있다면 삶의 의미에 대한 걱정도 안하게 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권력도 없고 쾌락을 편하게 누릴 수 없다. 험담과 불평만 쌓여갈 뿐이다. 이런 우울한 강물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는가? 카프카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도 평범한 소시민으로 태어났으며, 다수 대중과 마찬가지로 암담한 생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카프카는 암담을 예술적으로 뛰어넘었고, 삶을 문학 작품처럼 만들었다. 어떻게 그랬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그의 인생 궤적을 살펴보자.

카프카는 19세기 말엽 보헤미아(체코) 프라하의 유대인 중산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래는 아이 시절의 사진 들인데 참 어여쁘게 생겼다. 하지만 아이 카프카가 집에서 귀여움만 받은 건 아니었다.

Baby kafka 3 combined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자수성가한 상인이었고 기골이 장대했는데, 집안에서 폭군처럼 살았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은 생활력이 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폐쇄적이고 고집이 세다는 단점도 보통 같이 있다. 그는 자신과 아주 다른  아들(감상적이고, 생활력 없고, 연약한 체격의 카프카)에게 막말을 일삼고 윽박질렀다. 카프카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년 시절의 상처를 훗날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라는 책에서 밝혔다.

대체로 아버지께서는 평생을 힘들게 일하셨고, 자식들을 위해, 특히 저를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하셨다구요. 그 덕에 제가 아무런 걱정 없이 호사스럽게 살았고, 배우고 싶은 건 무엇이건 마음대로 다 배울 수 있었다구요. 배고픔으로 근심한 적이 없었다는 건 아무 걱정 없이 살았다는 말 아니냐구요. 그럼에도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에게 고마운 줄 알라고 하신 적이 없다구요. … 그런데 저만 이상하게 옛날부터 아버지로부터 숨으려고 했다는 거죠. 제 방 안으로, 책 속으로, 정신 나간 친구들 틈으로(막스 브로트 같은 친구들), 또 엉뚱한 생각 속으로 틀어박히려고만 했다는 거예요.

읽어보니 슬프다. 아버지 헤르만은 아들의 평생 친구인 막스 브로트를 정신 나갔다고 생각했고, 아들이 몰두한 일 – 글쓰기, 문학책 읽기, 정신나간 친구와 모임 등등 – 을 모두 무시했다. 카프카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치려 했지만 그것도 편한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헌신한 건 사실이고, 그건 마음에 죄책감을 남기기 때문이다.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고, 다가갈 수도 멀리할 수도 없는 갈팡질팡은 나중에 <판결>이라는 단편에 몽환적으로 나타난다. 카프카는 아버지로 인해 자신감은 쪼그라 들었지만, 예민하면서 감수성 풍부한 성격을 키운다. 그리고 이런 성격은 모계 쪽 기질을 이어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아래는 이주동 님作 <카프카 평전>에서 옮긴 내용인데 한 번 읽어보자.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는 장티푸스로 일찍 돌아가셨다. 딸의 죽음으로 해서 어머니의 외할머니께서는 우울해지기 시작해서 식음을 전폐하고 아무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딸이 죽은 지 일 년 후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분의 시체는 엘베강에서 인양되었다.

카프카는 이러한 외가의 특성 중에서 무엇보다 자신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정신적이고 예술적인 특성 이외에도 “부끄러움을 잘 타며 지나칠 정도로 겁먹은 듯한 겸손함, 소심함 그리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리는 것” 이라고 말했다.

지나친 겸손함과 소심함은 카프카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그가 쓴 연애 편지들이 사후 유명세를 타고 출판되었는데, 자신이 불안정하고 부족한 존재라는 걸 줄곧 토로하는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카프카를 심리적 안정에서 멀어지게 한 건 가정환경 말고도 또 있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다민족 국가이긴 했지만 그 속에서도 유대인은 특별한 취급을 받았다. 거의 평생 살았던 도시 프라하는 체코인이 다수였지만 지배계층은 독일어를 쓰는 게르만인이었다.

카프카는 신분 상승을 원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독일계 김나지움에서 교육을 받았고, 대학에서는 법률 전공을 택했다. 유대인으로서 인종 편견에 대비해야 했고, 다수 민족(체코인)에 속하지도 않으면서, 독일어를 쓰는 상류층에 끼어들도록 교육받았으니 소속감이란걸 가지기 힘든 상황이다. 예를 들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이슬람 권에서 온 사무직 근로자로 사는 것과 기분이 비슷했을 것 같다. 카프카의 작품은 소외와 불안, 항거불능의 감정을 잘 녹여내었다고 평가받는데, 스스로의 쓰린 경험을 승화한 것이라 더욱 진실하다. 그는 사람을 히키코모리로 만드는 장애물들을 문학을 이용해 예술적으로 극복했다. 즐거움을 잊고 사는 일반인에게 귀감이 될 부분이다. 구체적 내용은 다음 글에서 이어서 쓰도록 하겠다.

이어지는 글 – 카프카를 읽으면 좋은 이유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