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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II – 사랑이 없는 욕망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연작은 단편 마다 화자가 바뀐다. 난장이의 자식들이 화자가 되기도 하고 주부(신애)나 기업 후계자(경훈)가 화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작자가 이렇게 다양한 시점을 취한 이유는, 같은 현상도 시점에 따라 완전히 달리 보인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다. 첫 단편 ‘뫼비우스의 띠’ 에서 나온 두 굴뚝 청소부 아이 이야기가 그걸 뒷받침해주고 있다.

계층에 따라 분류하면 한 쪽 끝에는 빈민층이 있다. 판자촌에서 쫓겨나는 난장이와 그 가족들, 곡예단에 속해서 매를 맞는 곱추와 앉은뱅이 등이다. 그보다 조금 나은 계층은 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 지섭과 주부 신애가 있다. 반대로 재벌 가문에 속한 경훈과 부유한 집안에 속하지만 무언가 변화를 바라는 윤호와 은희도 있다. 작가는 하지만, 계층의 편을 가른 다음 한 쪽을 맹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가난한 사람들을 더 비참하게 하고, 부유한 사람들을 더 탐욕스럽게 하는 병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래 ‘우주여행’ 단편의 부분을 읽어보자.

“네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벌써 끝났을 거야. 이젠 책임을 져야 돼. 그렇지만 내가 아주 죽는 거로 믿지 마. 달나라에 가서 할 일이 많아. 여기서는 무엇하나 이룰 수가 없어. 지섭이 형이 책에서 읽었던 대로야. 시간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약속과 맹세는 깨어지고,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여기서 잃은 것들을 그곳에 가서 찾아야 돼. 자 망설이지 말고 쏴.”
윤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었다. 은희가 겨냥한 총끝을 그는 보았다.
“그럼 나를 위해서 한 가지만 도와 줘.” 하고 은희가 말했다.
“우주인을 만나면 내 답안지를 훔쳐가지 말라고 해.” 은희의 눈에도 눈물이 괴었다. 윤호는 온몸의 힘을 잃었다.
“이제 쏴.” 다시 말했다.
은희는 권총을 든 채 외투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그 안 원피스의 지퍼를 내렸다. 권총을 책상 위에 놓고 팔을 내리자 알몸이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처럼 다가가 눈물로 범벅이 된 윤호의 얼굴을 가슴과 두 팔로 감싸안았다.

윤호는 어머니가 일찍 죽은 바람에 애정이 결핍된 상태였다. 윤호의 가정교사 지섭은 그에게 난장이네 가족 이야기를 해준다. 윤호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알게 될 수록 같이 어울리는 부유층 아이들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하지만 그중 유일하게 깨끗한 마음씨를 가진 은희라는 여자애를 발견하고 좋아하게 된다. 대학 입시시험이 끝나고 자신의 집에서 은희를 만난 윤호는 자살을 하려던 마음을 버린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찾아낸 권총을 은희에게 건내주고 눈물을 흘린다. 은희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던 윤호를 어머니처럼 다가가 안아준다. 여기서 작가가 강조하는 건 ‘사랑’ 이고 그 반대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과 약속과 맹세를 지키지 않음(믿음이 없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섭은 가정교사일을 하지만 공장에도 취업하고 노동자를 교육시키는 일도 맡는다. 공장 노동자인 영수, 영호의 아버지인 난장이와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는데, 집이 헐리게 된 사정을 알고 난장이 집에 찾아온다. 열심히 일해도 더 절망에 빠지는 세상에서 난장이와 지섭은 결국 정신에 분열을 일으킨다. 조현병(정신분열증)이 있는 사람처럼 대사가 이그러진다. 번번히 시점이 변하고, 아련한 분위기 가운데 현실과 환상이 교차한다.

지섭은 말했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하긴!”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을 안 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했어.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 적 없으세요?”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
“얘들아!” 어머니의 불안한 음성이 높아졌다.

아버지와 지섭은 우리에게 대기권 밖을 날아다니는 사람들로 보였다. 두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달을 왕복했다.
“살기가 너무 힘들다.”
아버지가 말했었다.
“그래서 달에 가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다. 내가 할 일은 망원 렌즈를 지키는 일야. 달에는 먼지가 없기 때문에 렌즈 소제 같은 것도 할 필요가 없지. 그래도 렌즈를 지켜야 할 사람은 필요하다.”
“아버지, 도대체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넌 이때까지 뭘 배웠니?”
아버지가 말했다.
“뉴턴이 그 중요한 법칙을 발표하고 삼 세기가 지났어. 너도 그걸 배웠지? 국민학교 때부터 배웠어. 그런데 우주에 관한 기본 법칙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말하는구나.”
“그런데 누가 아버지를 달에 모시고 가겠대요?”
“지섭이가 미국 휴스턴에 잇는 존슨 우주 센터에 편지를 냈다. 그곳 관리인 로스씨가 답장을 보내올 거야. 후년에 우주 계획 전문가들과 함께 달에 가게 될 거다.”

난장이가 애써 지은 판잣집은 철거반이 부수러 오고 이제 달리 갈 곳도 없다. 불쌍한 그의 마음은 결국 꿈의 세계로 도피해 버렸다. 휴스턴 우주센터의 로스씨를 통해 달로 가서 천문대 일을 한다는 이상한 이야기이다. 달나라는 고통이 없는 이상세계를 뜻하고, 천문 관측일은 별을 쫓는, 다시 말해 꿈을 찾는 일을 의미하는 것 같다. 난장이의 큰 아들 영수는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야학으로 공부를 한다. 그는 환상에 빠진 아버지와 달리 좀더 현실적인 사회분석을 하고 공책에 아래와 같은 말들을 써놓는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도 폭력이다.

지도자가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면 인간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희생이라는 말은 전혀 위선으로 변한다.

나는 과거의 착취와 야만이 오히려 정직하였다고 생각한다.
햄릿을 읽고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당하고, 또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

지배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할일을 준다는 것,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일,
그들이 목적 없이 공허하고 황량한 삶의 주위를 방황하지 않게 할 어떤 일을 준다는 것이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양반이 노비의 생산물을 가져가는게 당연한 일이었다. 서로에게 당연한 일이라 서로에게 불만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귀족과 평민의 구분이 지금은 없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지 현재 시대에도 일하는 사람 따로 있고, 일 안하고 먹고 노는 사람 따로 있다는 건 같다. 과거의 착취가 정직했다는 말은 현대의 착취가 형태를 바꾼 덕분에 더 비밀스럽고 위선적이 되었다는 말이다. 영수는 이 같은 부조리를 자각했고,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결함 덕분에 더 비참한 운명으로 몰락한다. 훗날 그는 교도소에 갇히고, 교수형을 당한다.

이어지는 글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III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I – 난장이와 도도새의 투쟁

대학생 시절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책을 처음 읽고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 충격은 짜릿한 게 아니고 음울하고 야릇한 느낌의 충격이었다. 보통의 소설과 다르게 이야기 흐름과 시점이 뒤죽박죽 되어 있고 무대는 70년대 수도권 빈민촌이지만 동화책에 나올 만한 상황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게다가 서술이 건조하고 간결하지만 서정적인 느낌이 난다. 이를 테면 아래와 같은 문단이다.

“나는 도도새다.”
지섭이 말했었는데, 윤호는 이렇게 근사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형, 도도새는 어떤 새지?”
“십칠 세기말까지 인도양 모리티우스 섬에 살았던 새다. 그 새는 날개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날개가 퇴화했다. 나중엔 날을 수가 없게 되어 모조리 잡혀 멸종당했다.”

Dwarf II 20121220205428!Dodo_reunion-Rothschild_original도도새(Dodo Bird)는 서양의 대항해 시대 이후 행해진 인간의 미개지 훼손으로 발견된 지 180년 만에 완전히 사라진 새이다. 힘 없는 동물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인간의 잔인성을 상징한다. 작품 속 지섭은 빈민 노동자들에게 연민을 품고 그들을 위해 싸우는 지식인이다. 스스로 도도새라고 하는데, 날개가 없어 걸어다닐 수 밖에 없지만(사회적 힘이 없음) 그 처지로나마 투쟁하는 자신의 상황을 빗대었다. 싸우지 않는다면 도도새처럼 멸망하고 말 것이다.

12편의 단편 소설이 묶어진 이 작품은 각각의 단편이 독립적인 이야기를 진행하면서도 등장인물과 사건이 계속 중첩되면서 나아간다. 첫 번째 단편인 ‘뫼비우스의 띠’ 와 마지막 단편인 ‘에필로그’ 는 수미상관적이며 동시에 액자식 구조이다. 먼저 한 고등학교 교실에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있고 그들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존경하는 한 교사가 나와서 꼽추와 앉은뱅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필로그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꼽추와 앉은뱅이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고 작별하는 것으로 종결된다. 이런 구조는 난장이와 도도새, 머리카락좌 같은 표현과 함께 소설의 환상적이고 슬픈 분위기를 잘 구현한다.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나는 제군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 사물을 옳게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상기는 첫 단편에서 학생들이 유일하게 신뢰하는 교사가 한 말이다.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 즉 말이 안 되는 걸 말이 되게 하는데 쓰이곤 한다. 그 같은 상황이 소설 안 판자촌 철거 소동에서 보여진다. 1971년 실제 있었던 경기도의 ‘광주 대단지 사건’ 이 배경이다. 당시 서울은 산업화로 인한 급격한 인구 유입으로 판자촌이 과포화된 상태였다. 정부는 이걸 정리하기 위해 판자촌 주민들을 경기도 광주의 허허벌판으로 이주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거기에 동조해 가난한 사람들은 집단 대이동을 해서 황무지에 판자집을 새로 만들고 삶을 꾸려나간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토지 개발 붐을 타고 재개발이 추친되고 구청에서는 철거 계고장이 나온다. 계고장의 내용은 지었던 집을 자진 철거하고 떠나야 하며 만약 자진해서 않으면 ‘주택 개량 촉진 임시 조치법’ 에 따라 강제 철거 하고 그 비용도 판자집 주민이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개(疏開)되는 사람들에게 아파트 입주권이 배분되긴 하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그들은 아파트 살 돈이 없어서 판자촌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판자촌을 불도저로 밀고 정리된 땅에 부동산 투기업자들이 들어와 돈을 번다. 그들과 공생하는 부패 관료들은 법을 강조한다. 이럴 때 ‘법’ 은 기득권자를 위한 차가운 도구로 쓰인다. 아래는 난장이가 철거에 대해 자식들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시에서 아파트를 지어 놨다니까 얘긴 그걸로 끝난 거다.”
“그건 우릴 위해서 지은 게 아녜요.”
영호가 말했다.
“돈도 많이 있어야 되잖아요?”
영희는 마당가 팬지 꽃 앞에 서 있었다.
“우린 못 떠나. 갈 곳이 없어. 그렇지 큰 오빠?”
“어떤 놈이든 집을 헐러 오는 놈은 그냥 놔두지 않을 테야.”
영호가 말했다.
“그만둬.”
내가 말했다.
“그들 옆엔 법이 있다”

이어지는 글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