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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문학으로 사이코드라마를 구현

 
심리극(心理劇) 즉 사이코드라마(psychodrama)는 연극의 틀을 이용한 심리 요법이다. 괴로운 정신을 안고 있는 의뢰인이 연기를 통해 감정을 표출하도록 하고, 극에 참여한 집단이 함께 이해와 해결을 꾀한다. 강렬한 감정에 몰입한 연기자도, 그걸 관찰하는 연출자나 관객도 새로운 영감으로 치유 받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작품은 마치 문학을 사이코드라마로 엮어 놓은 것 같다. 사람이 유년기부터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인간관계의 파열과 정신적 외상, 그리고 그걸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다채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연극처럼 보여준다.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나 카를 융의 책에서 볼 법한 의미심장한 꿈과 상징이 나온다. 몰입해서 읽으면 사이코드라마의 참가자처럼 심리 치유를 받을 수 있다.
 

 
​작품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알게된 5명 친구 그룹의 일원이었다. 남자 3명 여자 2명의 구성인데, 다자키를 제외한 4명은 모두 이름에 색을 상징하는 글자(적청백흑)가 있었다. 이들은 신성한 비밀결사체처럼 모임을 특별히 여겼고, 각자가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모여 어울렸다.
 
그런데 대학교 2학년 시절, 주인공은 갑자기 영문도 모른채 다른 4명 전부로부터 절교 선언을 당한다. 충격 받은 다자키 쓰쿠루는 그후 반 년의 세월을 방에서 혼자 죽음만을 생각하며 보낸다. 자살 충동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가 특이한데, 어느 날 신비한 꿈을 꾸었고 그걸 통해 처음으로 ‘질투심’을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꿈을 꾸기 전 그는 누군가를 시샘하거나 질투해본 적이 없었다.
 
다자키 쓰쿠루의 성격 즉 투명한 색채를 말해 주는 부분이다. 색깔 없이 비어 있기 때문에 소유욕 없이 살 수 있었다(피아 구분이 없는 아기처럼). 그가 가장 집착했던 친구 모임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감정은 소속감과 애정이었다. 그게 가슴 아프게 깨지고 난 후 질투심이라는 걸 마침내 알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어른)으로 살기 시작한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30대 중반의 안정적 직장인(도쿄의 철도 기업 소속)이 되었고 새로운 애착(질투)의 대상이 될 여자를 만난다. 여행 컨설턴트로 일하는 2세 연상의 기모토 사라(木元 沙羅)이다. 그녀는 다자키 쓰쿠루에게 어떤 치유받지 못한 상처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 원인을 해결할 순례여행을 떠나게 한다. 15년도 전에 헤어져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4명 친구를 다시 찾도록 만든건데 덕분에 다자키 쓰쿠루는 멀고 먼 유럽 핀란드까지 가게 된다.
 
작품에서 색채를 가진 인물은 단 6명이 있다. 친구 그룹에 속했던 오우미 요시오(青海 悦夫), 아카마쓰 게이(赤松 慶), 구로노 에리(黒埜 恵里), 시라네 유즈키(白根 柚木)와 주인공이 대학생 시절 처음 만나 친해졌던 연하 친구 하이다 후미아키(灰田 文紹), 그리고 하이다의 회상 속에만 등장하는 신비의 인물 미도리카와(緑川) 이다.
 
개인적으로 시라네 유즈키(통칭 시로 혹은 유즈)와 미도리카와 두 명이 주인공의 색채를 채우는데 큰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 緑 초록색 – みどりかわ 미도리카와

미도리카와는 주인공과 같은 시대의 사람이 아니고, 친구 하이다 후미아키(灰田 文紹)의 아버지가 과거에 만났던 인물이다. 하이다가 아버지에게 들은 얘기를 다시 다자키 쓰쿠루에게 들려주면서 알려진 것이다.
 
하이다의 아버지는 대학생 시절 외딴 시골 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피아니스트라고 하는 미도리카와라는 사람이 산장의 손님으로 온다. 아래는 이 둘의 대화이다.

​미도리카와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 마른기침을 한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인간에게는 모두 저마다 색깔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알아?”
“아니, 모릅니다.”
“그럼 가르쳐 주지. 인간에게는 제각기 자신의 색깔이 있어서 그게 몸의 윤곽을 따라 희미하게 빛나면서 떠올라. 후광처럼, 아니면 백라이트처럼. 내 눈에는 그 색깔이 뚜렷이 보여.”
미도리카와는 술잔에 스스로 술을 따라 핥듯이 마셨다. “그 색깔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건가요?” 하이다는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미도리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선천적인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자격이야. 눈앞에 다가온 죽음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주어져. 그리고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이어지지. 그 자격은 지금 나에게 주어졌지.”
하이다는 잠시 침묵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미도리카와는 말했다. “세상에는 기분 좋은 색깔이 있는가 하면 보기 괴로운 색깔도 있어. 즐거운 색깔이 있는가 하면 슬픈 색깔도 있지. 빛이 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엷은 사람도 있고, 이거 정말 피곤한 일이야. 그런게 보기 싫어도 보이니까 말이야.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기 싫어져. 그러니까 이런 산골로 흘러들어 온 거지.”
하이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따라잡기에 급급했다. “그렇다면 내 색깔도 미도리카와 씨에게는 보인다는 겁니까?”
“아, 물론 보이지 무슨 색인지 자네에게 말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서 말인데, 내가 할 일은 어떤 색깔을 가지고 어떤 특징적인 방식으로 빛을 내는 사람을 찾는 거야, 죽음의 티켓도 사실 그런 상대에 한해서만 건네줄 수 있어. 아무에게나 무작정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인간에게는 각각 색깔이 있고, 그걸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미도리카와 자신이 그 능력이 있는데, 이걸 가진 사람은 죽음의 티켓이라는 것을 색채를 가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티켓을 받은 사람은 한 달내로 죽는다. 데스노트 만화같은 내용인데 이어지는 대화를 읽으면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지각이란 그 자체로 완결되는 거지 뭔가 구체적인 성과로 바깥에 드러나는 건 아니야. 어떤 이익 같은 것도 없어. 그게 어떤 건지 말로 설명 하는 것은 불가능해. 직접 경험 해 보는 수 밖에 없어. 다만 한 가지 자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일단 그런 진실의 정경을 보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무서우리만치 밋밋해 보인다는 거야. 그 정경에는 논리도 비논리도 없어. 선도 악도 없고,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 돼, 자네 자신도 융합의 일부가 되지. 자네는 육체라는 틀에서 벗어나 이른바 형이상적 존재가 돼. 자네는 직관이 돼. 참으로 멋진 느낌인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 절망적인 느낌이기도 하지.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삶이 얼마나 하찮고 깊이가 없었는지, 거의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되니까 말이야. 어떻게 이런 인생을 참고 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전율하고 말지.​

미도리카와가 가진 녹색은 자연 그대로를 의미하는데 ‘육체의 틀을 벗어난’ 초월 상태이기도 하다. 선과 악, 논리와 비논리를 괘념치 않는 해탈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미도리카와도 한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데, 현실이 감동이 없고 밋밋하다는 것이었다.
 
이 미도리카와라는 인물을 정리하면, 작품의 중심 테마인 ‘색채’가 무엇인지 처음 설명을 해주었고, 이렇게 너무 깨달아서 허무해진 녹색의 미도리카와와 투명한, 아직 미지의 공간이 무한한 주인공이 대비가 된다.
 

무감동증 Anhedonia 사람 머리(생각)가 풀처럼 뻣뻣해짐

 

★ 白 하얀색 – しらね ゆずき 시라네 유즈키

주인공의 고등학생 시설 가장 가까웠던 5명 친구 그룹의 일원이었던 시로는 백설공주 같이 예뻤다고 표현되어 있다. 하얀색은 순수를 상징하는데, 그래서 쉽게 오염될 수도 상처 받을 수도 있다. 시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나고야 지역의 음대에 진학하는데, 이때부터 몰락하기 시작한다.
 

Edvard Munch (Norwegian: Pubertet)

 
순수와 반대되는 이미지이고 그걸 파괴할 가능성이 가장 큰게 성적 에너지, 리비도인데 시로는 세상의 일부인 이런 차원의 힘과 융합을 못하고 결국 자기를 망가뜨리게 된다.

…”동성애였다는 거야?” 에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거와는 달라. 그애에게는 그런 욕구가 전혀 없었어. 분명해. 다만 유즈는 옛날부터 일관되게 성적인 것에 대해 아주 강한 혐오감을 가졌어. 아니, 공포심이라고 해도 좋을지 몰라. 어디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그건 나도 몰라. 우리는 무슨 일이든 대체로 솔직하게 이야기했지만, 성적인 것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니까. 나 같은 경우는 그런 쪽에 대해서는 열린 편인데, 유즈는 그런 이야기만 나오면 바로 화제를 돌려 버렸거든.”
“그래서 유산한 다음 유즈는 어떻게 됐어?”
“우선 대학을 휴학했어. 도저히 사람 앞에 나설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하고 집에 틀어박혀 도무지 바깥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어. 그리고 곧 거식증에 걸렸어. 먹으면 거의 토해 버리고, 그래도 남은 것은 관장을 해서 빼내는 거야. 그대로 갔으면 분명 죽었을 거야. 그러다 전문 카운슬러의 도움으로 거식증에서 벗어났지. 반 년 정도 걸렸을 거야. 한때는 정말 심각할 정도여서 체중이 40킬로그램도 나가지 않았어. 그때는 정말 유령처럼 보였어. 그렇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회복했지. 나도 매일같이 만나러 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격려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어. 그래서 1년만 휴학하고 그럭저럭 학교에 복학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어.”
“왜 거식증에 걸린 거야?”
“아주 간단한 이야기야. 생리를 멈추고 싶어서, 체중이 극단적으로 줄어들면 생리가 멈춰 버리니까. 그 애는 그걸 원한 거야. 다시는 임신하고 싶지 않았고, 아마도 여성이기를 포기하고 싶어 했어. 가능하면 자궁을 들어내 버리려 했으니까.”

하얀색의 시라네 유즈키는 자신에게 심겨져 있는 여성성을 거부해서 생리를 하지 않는 거식증에 빠지고 자궁을 없애겠다는 생각도 한다.
 
살면서 겪는 상처에 너무 빠지면 색이 바래지는데, 그녀는 그렇게 신비한 후광처럼 비치던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 아래는 그걸 묘사한 대목이다.

“…다만 이렇게 말하는 건 나도 정말 싫지만, 그 애, 옛날처럼 그렇게 예쁘지 않았어.”
“예쁘지 않았다.” 쓰쿠루는 상대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자신의 말이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아니, 예쁘지 않은 것하고는 좀 다를 거야.” 아카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말하면 될까, 물론 얼굴은 기본적으로 같으니까 보통 기준으로 말하면 그때도 역시 미인임에는 분명했어. 10대 시절의 시로를 모른다면, 사람들은 그 애를 보고 딱히 특별한 인상을 받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지만 난 옛날의 시로를 잘 알아. 그 애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마음 깊이 새겨져 있었거든. 그렇지만 그때 내가 본 시로는 그렇지 않았어.”
아카는 그때의 정경을 떠올리려는 듯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런 시로를 앞에 두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게 솔직히 말해 나에게는 꽤 괴로운 일이었어. 옛날에는 거기 있었던 뜨거운 뭔가를,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그 비범한 것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 그것이 더는 내 마음을 떨리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건 시로는 그때 벌써 생명력이 가져다주는 자연스러운 광채를 잃어버렸다는 거야. 그 애가 성격적으로는 내향적인 타입이었지만 중심에는 본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활발히 움직이는 뭔가가 있었어. 그 빛과 열기가 여기저기 틈을 찾아서 마구 바깥으로 새어 나왔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렇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런 건 이미 사라지고 없었어. 마치 누군가가 뒤로 돌아 들어가서 플러그를 뽑아 버린 것처럼. 예전에 그 애를 반짝반짝 빛나게 하고 싱싱한 물기를 머금게 했던 특유의 겉모습이 그땐 오히려 애처롭게 보였던 거야. 나이 문제가 아니아. 나이를 먹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고. 시로가 누군가에게 목을 졸려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정말로 안타까웠고 진심으로 불쌍했어. 어떤 사정이 있었든 그런 식으로 죽기를 바라지 않았어. 그렇지만 동시에 이런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어. 그 애는 육체적으로 살해되기 전에 어떤 의미에서 생명을 빼앗긴 상태였다고.”

시라네 유즈키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에게서 대비되는 것은, 색을 채움에 있어서 지나치게 순수하면 자아가 파괴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로는 자기를 잃고 환상에 빠져 주인공을 모함했고, 결국 자신의 생명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허무를 상징하는 초록색의 미도리카와와 소멸을 상징하는 하얀색의 시로를 순례 여행을 통해 경험한 다자키 쓰쿠루는 작품의 말미에서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깨닫는다.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어.” 그것이 쓰쿠루가 핀란드의 호숫가에서 에리와 헤어질 때 했어야 할, 그러나 그때 말하지 못한 말이었다.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고 잠들었다. 의식의 꼬리에 매달린 빛이 멀어져 가는 마지막 특급 열차처럼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작아지더니 밤 가운데로 빠져들어 사라졌다. 그리고 자작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만 남았다.​

마음에 티끌 하나 없이 순수했던 시절, 누구도 가를 수 없는 친구로서 믿음,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지녔던 것처럼 인생에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다짐이다. 그건 미도리카와와 시로가 가졌던 죽음의 충동(Thanatos)을 이겨낸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