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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세 XVI – 장난감

할머니는 길고 긴 세월을 지나 다시 아기가 되어 있었다. 윗옷은 내복만 입고 아랫도리에는 기저기를 차고 이부자리에 누워 있었다. 요 옆에는 외숙모가 가져져다 놓은 아기 장난감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원색의 플라스틱 블록을 줄로 연결해 놓은 것도, 큰 곤봉같이 생긴 딸랑이도 있었다. 외숙모는 할머니 돌보는 것 외에 다른 가사일도 많이 해야 했는데, 할머니가 잠에서 깨서 칭얼거리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난감들을 아이가 있는 다른 집에서 얻어다 놓았는데, 다행히 곧잘 이것들을 가지고 노신다고 했다.

이불 속에 모로 누운 할머니는 어디가 불편한지 주름과 검버섯 가득한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외숙모는 할머니가 보통은 찡그린 표정이지만 어쩔 때는 맑은 눈빛을 보일 때도 있다면서 얘기를 해 주었다. 거실에 비스듬한 저녁 햇빛이 들어오던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혼자 똑바로 앉아서 멀쩡한 표정으로 벽에 걸린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외숙모는 신기해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 “할망, 도 닦안?” 그러자 할머니는 예전의 싹싹한 목소리로 “아니구다. 고마 앉아 있는 거구다.” 라고 대답하셨다고(정인은 밝고 시원했던 할머니의 말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정인은 할머니에게 밥을 먹여 드리겠다고 말했다. 외숙모는 할머니 보러 온 사람 중에 그런 거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없었는데 기특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인은 어머니가 미리 꼭 그렇게 하라고 해서 자원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수저로 떠 주는 음식을 한참을 입안에 물고 있었고 국물과 밥 알을 입가로 줄줄 흘렸다. 한 그릇을 떠드렸지만 반 그릇 정도 밖에 목으로 넘기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할머니는 다시 장난감이 널려 있는 이부자리로 돌아갔고 잠에 드셨다. 외숙모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정인도 사랑방에 가서 잠을 좀 자라고 했다. 정인은 푹신한 침대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어둡고 높고 넓은 천장을 보고 누웠는데 입술이 굳어지고, 따뜻한 눈물이 새어나와 관자놀이 방향으로 흘러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모사세 XV – 기억

할머니가 험한 서울 거리에서 3일을 노숙하고도 별 일 없었다는 건 다행이었다. 이제 혼자 두면 어느 도시까지 가버릴지 모르는 할머니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정인의 외삼촌, 즉 외할머니의 아들이 당시에 한라산 기슭 마을에 살았는데 그쪽으로 보내드리기로 했다. 정인은 할머니가 제주도로 떠나는 걸 배웅도 못했다. 학교가야 했기 때문에.

그 후 몇 년간 정인은 할머니를 잊고 살았다. 할머니가 하던 일은 어머니가 이어서 했고 생활의 변화는 미미했다. 정인이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을 맞았을 때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를 방문하기로 했다. 정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 다 제주도 출신이었고 양가 친척들이 제주도에 많이 살았다.

정인의 일행이 외삼촌 댁에 도착하니 외삼촌 내외가 나와 반겼다. 그리곤 산보를 나간 외할머니를 모시고 오겠다며 곧 밖으로 나갔다. 시골 마을은 안전해서 할머니를 밖으로 산책 보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외할머니는 외삼촌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3년 만에 만난 손자와 사위를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쳤다. 사랑방에서 정인과 동생과 아버지는 외숙모가 차려준 차와 과자 쟁반을 가운데 두고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장모님 잘 있었수까?” 할머니는 간단하게, “잘 있었저.” 라고 대답했다.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리고 손자인 정인과 동생을 보며 말했다. “너그 두 아는 형제 다냐?” 정인은 이때 할머니가 자신의 기억 을 완전히 잊었음을 알았다.

외할머니의 삶 십 수년의 기간 동안 정인은 그녀의 희로애락의 가운데 있었다. 남편은 돈 벌러 외국에 가서 죽은 지 살았는지도 몰랐고 딸은 사나워져 있었다. 하지만 강보 속의 손자 아기는 귀여웠다. 아기는 유치원생이 되고, 말 안 듣는 국민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지나 얼굴에 여드름과 수염이 난 무뚝뚝한 중학생이 되었다. 할머니는 매일 얘에게 어떤 맛있는 걸 먹일까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앞에 앉아 있는 아이가 누군지 잊어버렸다.

이 사건으로부터 2년 후, 정인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이번에는 정인 혼자 제주도로 가서 친척들 집을 돌아다녔다. 외할머니는 저번의 고즈넉한 시골집이 아닌, 제주시의 작은 연립주택으로 옮겨져 외숙모의 돌봄 아래 있었다. 2년 전의 할머니는 사람을 못 알아보긴 했지만 혼자 걸어 다니고 밥을 차려먹고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무것도 못 했다.

모사세 XIV – 할머니

고등학생 정인은 제주도 시골 길을 달리는 승용차 안에 있다. 어버지는 운전을 했고 동생도 뒷자리에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안개가 서린 한라산이 보였다. 흐린 푸른빛의 산은 혼자서 지평선을 다 채운 것처럼 커 보였다. 차는 포장이 안 되어 있는 시골 흙 길로 들어섰고, 마을 어귀 표지석이 있는 곳을 지나쳤다. 그 때 정인은 바위 위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외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지나가는 차나 사람을 투명한 듯 바라보며 한없이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몇 년 만에 스치며 본 것이지만 정인의 마음 속엔 어두운 예감이 솟아올랐다. 왠지 껍질은 같지만 속은 완전히 다른 할머니 같았다.

외할머니는 정인이 아기에서 중학생이 될 동안 쭉 서울에 살았다. 할머니가 이상해진 건 정인이 중학교 3학년 되던 해 먼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부터였다. 동네도 낯선데다 아파트에 처음 살게 되어 적응을 못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뿐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자꾸 돌보던 아기 이야기를 했다. 이사오기 전 단독 주택 1층에는 정인의 가족이, 2층엔 친가 사촌 형 부부와 두 살 아기가 살았었다. 할머니는 아기를 때때로 봐주었다. 이제 집도 멀리 떨어져 다시 볼 일 없을 아기(할머니는 정인의 외할머니이고, 아기는 정인의 친가 쪽이었으니)가 유령처럼 때때로 나타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가족들이 “이제 그런 아기 없어요” 라고 말하면, “아녀, 고 쪼그만 아기 하나 이서” 라고 대답했다.

다른 증상도 생겼다. 하루는 아침에 집을 나가더니 종일 밖을 돌아다니다 저녁에 돌아왔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물으면,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희죽 웃었다. 정인은 방과 후에 헤매고 다니는 할머니를 찾으러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여행 반경은 날이 갈수록 넓어졌다. 밤새도록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다음 날 온 가족이 차를 타고 먼 동네와 노숙인 강제 수용 센터 같은 곳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나흘이 지나 성남의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는 떠날 때 입었던 옷 그대로 검은 비닐봉지 하나만 손에 들고 파출소에 앉아있었다. 봉지 안에는 생수병과 건어포 남은 것이 있었다. 며칠 동안 어디서 잤는지, 어떻게 한강다리를 건너고 서울도 벗어나 성남까지 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배고프거나 지친 기색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멍한 표정은 먼 과거만 바라보는 사람 같았다. 게다가 돌아오자마자 아기부터 찾았다.

모사세 XII – 파랑도

정인의 외할머니는 제주도 남쪽 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외할머니의 인생에 대해서 정인은 자세하게 들은 적이 없다. 물어 본 적도 없다. 다만 어린 정인에게 하나 이상했던 건 외할머니는 있지만 외할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분명 외할머니의 딸인 정인의 어머니가 있으니(외삼촌도 있고) 외할아버지도 존재했어야 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략하게 흘려들은 것이 전부였다. 외할아버지는 돈 벌러 외국(아마 일본)으로 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가난한 시대에 남편 없이 자식들을 키우는 여인의 신세가 얼마나 고달팠을까. 정인은 공부하고 먹고 자는 의무밖에 없는 국민학생이어서 외할머니가 길고 긴 세월 아무 보상 없는 가사 노동에 시달렸다는 것에 애틋한 감정도 없었다. 그냥 해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성악설(性惡說)에 어울리는 어린아이의 행동을 십 년은 감당하고도 외할머니는 정인을 예뻐했다. 이런 할머니의 마음에 대한 실마리는 아래 소개할 파랑도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다. 이건 외할머니가 어린 딸(정인의 어머니)에게 들려주었던 전설 이야기이다.

제주도 남쪽 어촌 마을에는 해녀(海女)들이 살았다. 그들은 까만 고무 옷을 입고 잠망경 하나 쓰고서 바다에 들어가 해삼, 전복, 소라 같은 걸 따왔다. 어느 일이나 그렇듯 많은 것을 얻으려면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마을 근처 해안에서는 귀한 해삼이나 전복을 얻을 수 없다. 조그만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서 암초 근처에 내려 잠수를 하면 비싸게 팔리는 해산물들을 따올 수 있다. 그날도 나이 든 노련한 우두머리 해녀 한 명과 대여섯의 아낙네들이 작은 배를 타고 ‘파랑도’ 라고 불리는 섬을 찾아 나갔다. 배에는 젊은 새댁 한 명도 타고 있었는데 그녀의 첫 아기는 돌도 지나지 않았다. 여인은 아침에 강보 속의 아기가 쌔근쌔근 사랑스럽게 자고 있는 걸 확인했고 웃음을 지었다.

파도가 높을 때만 이따금씩 보이는 파랑도는 사실 도(島)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바위덩어리였다. 우두머리 해녀는 아래 해녀들에게 절대로 배와 암초에서 멀리 떨어지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파랑도 근처의 해류는 아주 거칠었기 때문이다. 새댁 해녀는 일이 서툴렀지만 그날따라 운이 좋게도 귀한 해삼 한 마리를 딸 수 있었다. 가시 같은 돌기가 온몸에 40개나 선명하게 돋아있는 것으로 시장에서 쌀 댓 말 가격에 팔렸다. 기쁜 마음에 해삼을 어망에 담아놓고 부리나케 같은 게 또 없나 물속으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바닷속을 헤매고 다니다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늘 위 높이 떠있는 태양은 똑같이 눈부신 햇빛을 쏘아주고 있다. 왠지 사람을 노곤하게, 감상에 잠기게 하는 그런 빛… 수경 너머로 넘실대는 초록색 바닷물, 그 사이로 보이는 끝없는 수평선. 여기엔 알 수 없는 몽환이 숨겨져 있다. 바다 밑 해류에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우두머리 해녀는 그걸 민감하게 느꼈다. 소용돌이 같은 물살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거기에 휘말리면 살아서 육지로 갈 수 없다는 것도. 그녀는 멀리 떨어져버린 어린 새댁을 불렀다. 새댁은 열심히 헤엄쳐 돌아오려 했지만 배와의 거리는 점점 절망적으로 멀어졌다. 헐떡거리는 입으로 바닷물이 조금씩 들어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짠 맛이 나지않았다. 힘이 빠져 몸이 무거워지면서 감각도 멍해진 것이다. 그녀는 다가오는 확실한 죽음을 보았다. 새댁은 남은 힘을 다해 소리쳤다. “성님 인자 오지 맙서! 나가 딴 걸랑 집에 애기 줍서!”

어차피 죽게 되었으니 자기를 두고 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딴 귀한 돌기 해삼은 세상모른채 자고 있을 집의 아기에게 먹여 달라고 했다. 삶아서 부드러운 죽으로 끓여 먹여주기를… 여자는 죽어 바다에 떠다닐 시체가 되지만 마지막 생각은 아기를 떠올렸고 마지막 말이 전할 것도 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