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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I – 난장이와 도도새의 투쟁

대학생 시절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책을 처음 읽고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 충격은 짜릿한 게 아니고 음울하고 야릇한 느낌의 충격이었다. 보통의 소설과 다르게 이야기 흐름과 시점이 뒤죽박죽 되어 있고 무대는 70년대 수도권 빈민촌이지만 동화책에 나올 만한 상황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게다가 서술이 건조하고 간결하지만 서정적인 느낌이 난다. 이를 테면 아래와 같은 문단이다.

“나는 도도새다.”
지섭이 말했었는데, 윤호는 이렇게 근사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형, 도도새는 어떤 새지?”
“십칠 세기말까지 인도양 모리티우스 섬에 살았던 새다. 그 새는 날개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날개가 퇴화했다. 나중엔 날을 수가 없게 되어 모조리 잡혀 멸종당했다.”

Dwarf II 20121220205428!Dodo_reunion-Rothschild_original도도새(Dodo Bird)는 서양의 대항해 시대 이후 행해진 인간의 미개지 훼손으로 발견된 지 180년 만에 완전히 사라진 새이다. 힘 없는 동물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인간의 잔인성을 상징한다. 작품 속 지섭은 빈민 노동자들에게 연민을 품고 그들을 위해 싸우는 지식인이다. 스스로 도도새라고 하는데, 날개가 없어 걸어다닐 수 밖에 없지만(사회적 힘이 없음) 그 처지로나마 투쟁하는 자신의 상황을 빗대었다. 싸우지 않는다면 도도새처럼 멸망하고 말 것이다.

12편의 단편 소설이 묶어진 이 작품은 각각의 단편이 독립적인 이야기를 진행하면서도 등장인물과 사건이 계속 중첩되면서 나아간다. 첫 번째 단편인 ‘뫼비우스의 띠’ 와 마지막 단편인 ‘에필로그’ 는 수미상관적이며 동시에 액자식 구조이다. 먼저 한 고등학교 교실에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있고 그들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존경하는 한 교사가 나와서 꼽추와 앉은뱅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필로그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꼽추와 앉은뱅이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고 작별하는 것으로 종결된다. 이런 구조는 난장이와 도도새, 머리카락좌 같은 표현과 함께 소설의 환상적이고 슬픈 분위기를 잘 구현한다.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나는 제군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 사물을 옳게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상기는 첫 단편에서 학생들이 유일하게 신뢰하는 교사가 한 말이다.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 즉 말이 안 되는 걸 말이 되게 하는데 쓰이곤 한다. 그 같은 상황이 소설 안 판자촌 철거 소동에서 보여진다. 1971년 실제 있었던 경기도의 ‘광주 대단지 사건’ 이 배경이다. 당시 서울은 산업화로 인한 급격한 인구 유입으로 판자촌이 과포화된 상태였다. 정부는 이걸 정리하기 위해 판자촌 주민들을 경기도 광주의 허허벌판으로 이주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거기에 동조해 가난한 사람들은 집단 대이동을 해서 황무지에 판자집을 새로 만들고 삶을 꾸려나간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토지 개발 붐을 타고 재개발이 추친되고 구청에서는 철거 계고장이 나온다. 계고장의 내용은 지었던 집을 자진 철거하고 떠나야 하며 만약 자진해서 않으면 ‘주택 개량 촉진 임시 조치법’ 에 따라 강제 철거 하고 그 비용도 판자집 주민이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개(疏開)되는 사람들에게 아파트 입주권이 배분되긴 하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그들은 아파트 살 돈이 없어서 판자촌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판자촌을 불도저로 밀고 정리된 땅에 부동산 투기업자들이 들어와 돈을 번다. 그들과 공생하는 부패 관료들은 법을 강조한다. 이럴 때 ‘법’ 은 기득권자를 위한 차가운 도구로 쓰인다. 아래는 난장이가 철거에 대해 자식들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시에서 아파트를 지어 놨다니까 얘긴 그걸로 끝난 거다.”
“그건 우릴 위해서 지은 게 아녜요.”
영호가 말했다.
“돈도 많이 있어야 되잖아요?”
영희는 마당가 팬지 꽃 앞에 서 있었다.
“우린 못 떠나. 갈 곳이 없어. 그렇지 큰 오빠?”
“어떤 놈이든 집을 헐러 오는 놈은 그냥 놔두지 않을 테야.”
영호가 말했다.
“그만둬.”
내가 말했다.
“그들 옆엔 법이 있다”

이어지는 글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