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III – 팬지꽃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위 문장을 처음 읽었다. 마음에 울림이 퍼지는 것 같았다. 그 후로 십 년이 넘게 지났고, 난쏘공 책을 두세 번 더 읽었지만 문장은 변함없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팬지의 꽃말은 “나를 생각해 주세요” 이다. 두 송이의 팬지는 한 쌍의 남여를 나타내고, 어린 소녀가 그걸 폐수에 버렸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행복을 포기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난장이의 딸 영희는 갈 곳 없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망치는 길로 들어선다.
그녀는 집을 나와 입주권을 사들인 부동산 업자를 찾아간다. 이 업자는 전부터 예쁘게 생긴 영희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 남자는 영희에게 옷을 여러 벌 사주고는 영동에 있는 그의 집으로 데려 간다. 영화 <강남 1970>에 나올 만한 욕망에 충실한 남자인 것 같다. 영희는 날마다 그와 자면서 몸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좋아서 그런 건 아니고 헐값에 팔려버린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떨어져 버린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에 심란한 꿈도 꾼다. 꿈 속에서 오빠들이 공장에 취직되어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난장이 아버지가 달을 왕복하는 모습도 본다. 그리고 어머니가 어린 딸을 걱정하는 모습도 본다.
“너의 증조할머니 동생 한 분이 알몸 시체로 수리조합 봇물에 막혀 있었단다. 왜 그랬는지 아니? 주인 서방과 잠자리를 함께했기 때문야. 주인 여자가 너의 증조할머니 동생을 사매질해 숨지게 했단다.”
“엄마, 전 달라요.”
“같아.”
“달라요.”
“같아.”
“달라요!”
영희의 윗 대 어른인 증조할머니 동생은 잘못도 없이 죽임을 당하고 알몸 시체로 저수지에 버려진다. 떠내려가다 봇물에 걸린 모습으로 사람들 구경거리가 되었다. 노비가 있던 조선시대에는 이같은 일이 충분히 가능했고, 주인 여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가난은 난장이 아버지 가문에 대를 이어 내려왔고, 이제 영희도 선조 할머니처럼 몸을 내주며 생활을 찾는 형편이다. 그녀는 부동산 투기업자의 금고 안에 있던 입주권과 돈을 훔쳐서 새벽에 몰래 빠져나온다. 하지만 이미 철거가 되어 폐허가 된 집에 돌아왔을 때 난장이 아버지가 높은 굴뚝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까만 쇠공이 머리 위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날아갔다. 아버지가 벽돌 공장 굴뚝 위에 서서 손을 들어 보였다. 어머니가 조각마루 끝에 밥상을 올려놓았다. 의사가 대문을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가 나의 손을 잡았다. 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울음이 느리게 나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울지마, 영희야.”
큰오빠가 말했었다.
“제발 울지마. 누가 듣겠어.”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큰 오빠는 화도 안 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그래. 죽여 버릴께.”
“꼭 죽여.”
“그래. 꼭.”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