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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가 스스로 죽는 이유 – 융의 영혼의 지도

 
18년 전,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항공기 테러 사건을 텔레비전 뉴스로 보았었다. 화면은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중 하나의 고층 부분이 비행기 추돌로 인해 부셔져, 연기를 내며 타고 있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윽고 방송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각도로부터 또 다른 비행기가 아주 빠르게 날아왔다. 그 물체는 거대한 빨간 섬광을 만들면서 다른 쪽 빌딩과 부딪혀 터졌다. 항공기 납치와 자살 비행을 감행했던 테러리스트들은 비행기 승객과 함께 모두 죽었다.

사건 당시 나는 대학생 후반기였고, 졸업 후 진로를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국가고시도 준비해야 하고, 군 대체 복무도, 직장 생활을 위해 뭘 배우고 익힐지도 정해야 했다. 그런데 다른 쪽 세계에서는 비행기 납치를 위해 무슨 흉기를 준비해야 하고, 승무원들은 어떻게 제압하고, 비행기는 어떻게 몰고, 목표 건물과 부딪힐 때는 항공기 각도를 어떻게 해야 충격파가 큰지를 연구하는 일군이 있었다.

나중에 깨달은 바는, 개인이 혼자 한다면 시작하지도 않고, 진행되지도 않을 엄청나게 황당한 일들이 어떤 엄청난 집단(주로 이상한 쪽으로) 속에 들어가면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는 점이었다.

대학생이 미래를 위해 자격증을 따고 열심히 공부하는 건 좋은 기업에 들어가 이름을 높이고(돈과 명성), 좋은 이성을 만나 가정을 꾸리기(사랑) 위해서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테러리스트들은 돈, 명성, 사랑은 커녕 자기 몸이 산채로 불에 타 숯이 되었다가 폭발과 함께 가루가 되는 미래를 위해 면밀히 준비를 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나지만, 이들은 끝나지 않는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카를 구스타프 융(1875년~1961년)은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Analytical Psychology)의 창시자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매일 같이 쓰이는 ‘콤플렉스’ 라는 개념을 도입한 걸로 유명하고, 인간 성격 유형을 체계화한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검사의 이론을 제공한 걸로도 유명하다.

융은 종교와 신화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는데, 기독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결국 종교적인 순교자 혹은 테러리스트들이 왜 자발적으로 죽는 지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내놓았다. ‘집단 무의식’ 개념이 그것이다.

그는 인간의 ‘자아’가 생명을 가진 한 개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공유하는 집단 무의식이라는 더 넓은 정신 세계와 소통한다고 보았다. 무당 접신이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악령 빙의 같은 현상과 비슷하다. 그런 소통 부위 중에 이상한 세계도 있는 것이다.

…무의식이 더는 정신이 아닌 곳에 도달하며 비정신적 영역, 즉 정신을 넘어 존재하는 ‘세계’로 확산된다고 보았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이 비정신적 세계가 무의식 안에 있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위대한 미스터리의 경계선들인 정신 밖의 지각, 동시성, 몸의 기적적 치유 등에 접근하게 된다. – <융의 영혼의 지도> p42​

융의 이론에 따르면 집단 무의식은 ‘원형’ 과 ‘본능’ 의 결합이다. 본능이야 개인이 매일 느끼고 소비하는 익숙한 힘이지만, 원형이라는 개념은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원형(archetype)은 개인이 아닌, 어떤 엄청난 집단(주로 나쁜 쪽으로)의 무의식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자아는 원형적 이미지와 직면할 때, 그 이미지에 깊이 빠져들고 압도되어 저항하고 싶은 마음조차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경험은 매우 풍부하고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원형적 이미지와 에너지의 동일화를 통해 융은 자아 팽창, 심지어는 정신이상에 대한 정의를 내리게 된다. 예를 들어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강력한 말로 사람들을 확신시키고 선동하여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데, 이러한 가르침은 갑자기 감화된 사람들이나 참 신자들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삶 자체는 깃발과 십자가 같은 이미지, 그리고 민족주의, 애국심, 종교나 나라에 대한 충절을 위해 희생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사회 개혁 운동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합리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것들에 노력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참여자들은 “이 일은 내 삶에 깊은 의미를 준다! 이것은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미지와 관념은 자아에 강력한 동기부여를 해주며 가치와 의미를 생성한다. 인식은 빈번히 본능을 압도하고 주도한다. – <융의 영혼의 지도> p149

신을 위해 죽는다는 원형은 무슬림 테러리스트에게 삶의 본능 보다 강한 만족감을 주는 것 같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분명 그렇게 설명될 수 있다. 오늘 날에도 비슷한 집단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자살 테러 공격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런 강렬한 정신적 힘이 ‘돈’ ‘명성’ ‘사랑’ 같은 가치도 우습게 보일 정도로 한 인간의 정신을 주조했다. 그리고 자살과 살인의 미학으로의 통로가 되었다.
 

생각 버리기 연습 – 시간은 빨리 흐르고 사랑은 사라진다

어린 시절엔 매일마다 어떤 대상을 두근거리며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일들이 계속 벌어졌고 감각 자체가 예민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쓸데없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보니 사랑을 느끼는 예민한 감각을 잃어버렸다. 응답하라 1988에서 정환이가 덕선이를 버스에서 보호해주는 장면을 보니, 중학교나 고등학생 시절 한 여자애를 사랑했던 감각이 얼마나 강렬했었는지가 상기되었다. 기쁨으로 몸이 떠다니는 것 같은 그런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순수한 사랑을 찾는 일은 연애 전문 친구보다는 스님의 조언을 듣는 게 좋을 것 같다. 전자는 욕망을 가르치고, 후자는 지속되는 사랑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토종 승려인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이 쓴 생각 버리기 연습 책은 마음을 예민하게 분석해서 어릴 적 순수했던 감각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마음이 오로지 ‘보다 강한 자극을 위해 내달리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기 어려운 이유도 담담하고 은은한 행복감보다 부정적인 사고가 더 강한 전기 자극을 뇌에 주기 때문이다.

마음은 강한 자극을 좋아한다. 그게 설령 화가 치미는 불쾌한 기억이라 할지라도 강한 자극은 자석처럼 머리에 달라붙는다. 어린 시절 머리에는 이런 강한 자극이 적었지만 크면서 기억의 찌꺼기라고 할 수 있는 덩어리들이 쌓여간다. 그렇게 되면 일을 해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어도 집중이 흐트러지고 생각이 딴 데 가있는 느낌을 받는다.

1초 동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0.1초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 0.9초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나 과거의 잡음이 남긴 메아리에 휘둘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오감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둔해지고, 멍청한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10초 중 9초는 현실감이 사라지고, 한 시간에 54분은 멍청히 있게 된다. 결국 나이를 먹어 과거를 돌아보면, ‘몇 년이 한 순간에 지난 것 같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현실 그 자체에 직결되지 않는 망상에 탐닉한 결과, 현실감이 사라지고 행복감도 사라진다.

행복은 순간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데서 온다(seize the day). 오감을 다해 대상에 집중할 수 없으면 행복도 같이 사라진다. 만약 어떤 남자가 자기 여자친구 A를 꼭 안아주는데 실은 다른 여자 B를 그리는 잡념을 가진다면 포옹의 기쁨이 그만큼 사라진다. 여자 A도 나무나 돌이 아닌 이상 남자친구가 이상한 것을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데도 자신의 유일한 시공(時空)으로서의 대상에 집중하지 않으면 즐거움이 탈색된다. 스님이 다시 요약해서 말해주는 부분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원인은, 과거로부터 엄청나게 축적되어온 생각이라는 잡음이 현실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정보를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의 잡음이 현실감각에 완전히 승리할 때, 사람들은 둔해진다.

따라서 어릴 적 사랑을 되돌리는 방법은 먼저 몰두할 수 있는 일과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에 자신의 오감을 놓고 다른 강하고 필요 없는 자극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이건 아령을 가지고 근육 운동을 하듯이 생각을 가지고 하는 수련이 필요한 부분이다. 불교의 참선이나 요가처럼, 또는 기독교의 기도처럼 마음에 티끌을 없애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못 생긴 채 살아남는 법

인터넷 뉴스를 보면 연예인 사진 수 만 개를 볼 수 있다. 기사 제목은 항상 자극적이다. “XX의 굴욕 없는 뒤태”, “초미니를 입고 계단 오르는 OOO”. 엘리트 지식인인 신문 기자들이 왜 매일 이런 제목을 만드는지 생각할 수 있다. 인터넷 광고 수익은 기사의 클릭 횟수에 비례해서 지불된다. 사이트 방문 횟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본능과 연결되는 기사를 만들어야 한다.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는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주목할만한 실험을 했다. 개한테 음식을 주면서 매번 종소리를 딸랑 냈더니 나중에는 음식을 안 주고 딸랑 소리만 내도 개가 침을 흘리는 것을 발견했다. 파블로프는 이 실험의 성과로 19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어렵지 않고 별로 비용도 안 들 것 같은 이 실험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유는 그 광범위한 적용 가능성 때문이다. 인간의 고차원적 행동이라는 것도 자극과 반응, 거기에 끼어든 조건 형성, 조건 반사가 복잡하게 쌓이고 쌓여서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블로프의 이론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광고 전략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한 자극(예프고 야한 사진)과 동반된 조건 반사(네티즌의 클릭)를 통해 광고사는 수익을 창출한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연예인 사진이나 성형외과 광고가 없는 곳은 경복궁 같은 유적지 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온 도시를 광고판으로 만들었고 그중 미모는 가장 강한 마력을 지녔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아무 마력이 없는 예쁘지 않은 존재는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는 질문에 대한 괜찮은 해답을 준다.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사람들의 주목을 쉽게 끌 만큼 못 생긴 여자이다. 그녀는 추녀가 겪을 수 있는 온갖 치욕과 멸시를 당해왔다. 남자 작가의 글이지만 여자의 아픔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아마도 작가 역시 사회적인 스펙 싸움에서 져서 굴욕을 당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동감을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래는 여주인공의 회고이다.

세상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단다, 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저의 어둠을 장애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수히… 저를 장애인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저는 분명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들과 함께 학교를 다녀야 했고, 남들과 비슷한 옷을 입어야 했고… 그리고 언제나 남들과 다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역시나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라는 여자의 운명입니다.
 
어린 시절은… 그랬습니다. 남자아이들은 제게… 적어도 제게는 언제나 짐승과 같았습니다. 사람을 습격하는 짐승… 배가 고프지 않아도 무언가를 물어뜯는 짐승… 순수한 장난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짐승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아이들이 두렵습니다. 순수한 만큼, 어떤 죄책감이나 거리낌도 없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이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아이들과 같은 정신연령을 지닌 어른들도 많습니다. 어떤 성자가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해도, 제 삶은 결국 이들과 함께.. 이들에 속해 있어야 했습니다.

작가는 또한 미모 지상주의의 성질에 대해 예리한 분석을 한다. 그것은 본능과 생리 반응에 수반된 결과만이 아니었다. 미모 숭배는 배금주의나 학벌지상주의와 마찬가지로 세상 모든 것에 등급을 매기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경쟁시키는 사회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있다(에리히 프롬의 책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움). 소설의 히로인과 히어로는 그런 이념과 싸우며 자신들만의 사랑을 만들어 간다. 아래는 그들이 부서지고 나서 깨달은 생각을 말해주는 남자 주인공의 말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서로를 간호하는 느낌으로 걸어가던 길고 긴 골목도 잊을 수 없다. 인간의 골목… 그저 인생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불과한 인간들의 골목… 모든 인간은 투병 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미운 오리 새끼와 백조

바쁘기만 한 학교와 직장에서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모두들 외로운 섬처럼 고립되어 살아간다. 분명 친한 것처럼 느껴지는 동료가 있지만, 그건 같이 일할 동안만 느끼는 착각일 때가 많다. 직장을 옮기고 공유할 게 없어지면 인간관계는 기능을 다한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사람 얼굴이 꺼지듯 나는 그 사람이 필요한 존재에서 지워져 버린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고 냉소에 빠질 필요는 없다. 진심 어린 작가가 쓴 진심 어린 글을 읽으면 세상에는 잇속을 초월한 괜찮은 인간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를 읽으며 영화 게이샤의 추억(Memoirs of a Geisha)이 생각났다. 두 작품 모두에서 어린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 명은 소년이고 다른 한 명은 소녀였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게이샤의 추억의 주인공 치요(오고 스즈카 분)는 딸을 다 키우면 굶어 죽을 형편이던 집안에서 났다. 치요의 부모는 하는 수 없이 치요는 게이샤 집에 하인으로, 치요의 언니는 홍등가에 돈을 받고 판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 아버지에게 이런 식으로 버림받은 치요의 마음은 많이 아팠을 것이다. 게이샤 집에서도 학대 받으며 하녀 일을 하던 중 이와무라 회장(와타나베 켄 분)을 만난다.

그는 길거리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던 소녀 치요를 발견하고는 빙수를 사주며 위로의 말을 해준다. 지금은 울고 있지만 커서는 훌륭한 게이샤가 될 것이라고(게이샤는 일본에서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미모와 교양을 갖춘 예능인의 위치에 있었다). 그 순간 희망 없이 살아가던 소녀는 하나의 꿈을 품는다. 치요는 회장에게서 받은 돈을 손에 쥐고 천 개의 주(朱)색 기둥이 늘어선 길을 달려 신사로 간다. 한 달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동전을 전부 신전에 바치고는 진심을 다해 기도한다. 꼭 게이샤로 성공해서 회장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주인공 제제는 뽀르뚜가(마누엘 발라다리스)를 만나면서 비슷한 감격에 젖는다. 빈민가 소년인 제제는 싸움만 일삼아 가족들로부터 검은 양 취급을 받았다. 제제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사소한 잘못에도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뽀르뚜가는 그의 거친 행동 이면에 애정을 갈구하는 순수함이 있다는 것을 알아본다. 집 뒤 뜰에 있는 라임 오렌지 나무를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대화를 하는 것도 소통 할 수 있는 사람을 그리워해서 보인 행동이었다.

제제의 인생은 그를 유일하게 이해하고 사랑해주었던 뽀르뚜가로 인해 완전히 변한다. 미운오리새끼는 백조가 되었고, 처음 받은 사랑은 감격스러워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작품은 이제 48세의 어른이 된 제제가 죽은 뽀르뚜가를 그리움에 회상하며 말을 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눈물 없이 읽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내 안에 악마가 있다 III – 아기와 엄마를 피했던 악마

2000년 3월 11일 운동을 마치고 부산 서구 서대신동의 고급 주택가 집으로 돌아온 김인숙(가명,39세)씨는 안방에서 무언가가 탕탕하고 부딪히고 있는 소리를 듣는다. 이상한 마음에 같이 사는 언니와 가정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탕탕 소리는 곧 멈추었다. 이윽고 안방에서 칼을 든 낯선 남자가 걸어 나오는 걸 본다.

세 번째 범행에서 자기보다 덩치가 큰 남자에게 제압당할 뻔한 위기를 겪은 정두영은 5개월 동안 범행을 저지르지 못했다. 하지만 10억이라는 목표를 위해 다시 범행을 결심한다. 넘기 쉬워 보이는 집의 담장을 넘은 후 열려 있는 현관문을 열고 조용히 침입했다. 거실에는 두 살 정도로 보이는 아기가 두영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서 혼자 놀고 있었다. 정두영은 현관 옆방에서 물건을 훔치고 나오는 중 50대 가정부와 마주친다. 그는 얼른 부엌으로 뛰어가서 칼부터 챙겨 들었다. 정두영은 가정부를 위협해 안방으로 끌고 간 다음 두 손을 묶고 방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그 위에 이불을 뒤집어씌웠다. 그사이 거실에서 혼자 있던 아기가 울자 안아다가 작은방에 놓고 문을 닫았다. 심상치 않은 소리에 2층에 있던 김인숙씨의 언니가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칼을 든 정두영과 마주친다. 그는 이 40대 여인 역시 칼로 위협해 안방으로 데려와서는 가정부 아주머니가 엎드려 있던 이불 안으로 같이 밀어 넣었다.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면 죽여버린다는 위협과 함께.

그는 묵직한 아령을 들고서 집에 있는 금고를 부수기 시작했다. 한참 금고를 부수는데 이불 속에 엎드려 있던 40대 여성이 몰래 침대 머리맡에 있던 야구방망이를 집어 들고 정두영을 뒤에서 내리쳤다. 하지만 긴장한 탓인지 방망이는 강도의 등을 스쳤을 뿐이었다. 정두영은 곧 방망이를 뺏어 들고 아주머니들을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두 여자는 곧 목숨을 잃었고, 핏자국이 사방으로 튀어있는 방에서 그는 아령으로 금고 부수기를 계속했다. 2시간 동안이나 아령을 사용했는데 그때 집주인인 김인숙씨가 들어왔다.

정두영은 그녀를 칼로 위협해서 안방으로 들어가게 한 후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려 죽이려 했다. 하지만 바닥에 쓰러진채 맞으며 비명을 지르던 여인은 자신의 아기를 생각하고는 마음을 다잡는다. 그녀는 “살려주세요. 아기가 있어요.” 라고 침착하게 말했다.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자 야구방망이는 멈췄다. 짧은 침묵 끝에 정두영은 “아기 잘 키워. 신고하면 죽인다” 라는 말을 뱉더니 그녀에게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 두영이 두 살 아기 일 때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는 두 번이나 그를 고아원에 버렸었다. 훗날 체포된 후 밝힌 바에 따르면 여인을 죽이면 아기가 자기처럼 불행한 고아가 될 거라는 생각에 살려두었다고 한다.

여인은 언니와 가정부의 피투성이 시체 옆에서 이불에 덮힌채 통증을 참으며 있었다. 정두영은 그 후로도 한참을 아령을 휘둘러서 결국 금고를 부수고는 안에 있던 금품을 챙겨 들고 사라졌다. 김인숙씨는 간신히 기어 나와 아기가 무사하다는 것부터 확인했다. 그리고는 112에 신고전화를 걸었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내 안에 악마가 있다 II – 살인자가 되다

정두영은 방범대원을 칼로 살해한 죄로 12년간 복역한다. 1999년 교도소를 출소했을때 나이는 32세였다. 찾아 갈 곳도 없고 고용해줄 일자리는 더더욱 없었으므로 예전 절도 활동의 근거지였던 대전 충남 지역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그를 부산에 있던 친형이 부른다. 두영의 형은 고물상 간판을 걸고 가게를 하고 있었지만 실은 장물아비였다. 두영은 훔치고 형은 물건을 파는 동업 계약을 하고 수익은 7대 3 으로 나누기로 했다. 형은 서른 한 살이던 두영에게 스무 살 밖에 안된 여성 한 명을 소개시켜 주었는데 곧 동거 관계로 발전한다. 동거녀와의 사랑을 계기로 범죄 생활을 접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 하지만 여자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그의 열망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두영이 범죄자 사회에서 주워 듣기로는 ‘성인 오락실’ 이나 ‘실내 야구장’ 같은 가게를 마련하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창업 비용 10억을 마련하기 위해 강도 행각에 뛰어든다. 그는 경험상 빈집털이를 해봐야 얼마 돈을 못 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귀중품 보관 금고가 있을 법한 부자집에 일부러 사람이 있는 시간대에 침입하기로 했다. 흉기로 협박해서 금고 위치를 알아내 강탈하고 사람은 죽이는 방식이었다.

정두영의 연쇄 살인 중 첫 번째는 1999년 부산 서구 부민동의 고급 주택가에서 일어났다. 그는 청소년 시절 흉기를 가지고 다니다 불심검문에 걸려서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로는 절대 칼을 지참하지 않았다. 대신 범행 현장에 가서 식칼 같은 흉기를 먼저 챙겨 두곤 했다. 이 집에서도 먼저 부엌에서 칼을 챙겼고 안방과 거실을 뒤지던 중 50대 후반의 가정부와 마주친다. 그는 아주머니를 협박해서 화장실로 데려가 미리 준비한 끈으로 양 손을 뒤로 묶고, 머리를 바닥에 마구 내리 찧어 살해한다. 그리곤 현금 33만원을 털어서 달아난다. 경찰은 피해자의 머리와 얼굴 부위가 으스러질 정도로 가격당한 것을 발견하고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추정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두영은 불안한 마음에 몸을 숨기고 언론 보도를 주시한다. 자신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는 두 번째 범행을 시작했다. 동거녀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 위해 10억을 모으는 게 목표인데 처음 강도 짓으로 33만원 밖에 못 벌었다. 자신과 연인의 행복을 타인의 죽음과 편리하게 가르는 이 무감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두 번째 범행은 첫 번째 살인 이후 세 달이 지난 9월 15일 오후, 부산 서대신동의 고급 빌라촌에서 일어났다. 옥상 지붕을 타고 꼭대기 층인 6층 베란다로 내려갔고 빈 집이었던 그곳에서 현금 수백만 원과 귀금속 등을 챙긴다. 한 탕 더 하기 위해 이웃집 베란다로 넘어 들어갔는데 애완견이 짖어대는 바람에 부엌에 있던 50대 가정부에게 들킨다. 정두영은 강아지를 발로 멀리 차버리고 아주머니를 마구 때려 살해한다. 이 집에서도 현금 수 백 만원과 귀금속을 챙기고 베란다로 나온 뒤 옥상으로 올라가 도주한다.

세 번째 범행에서 정두영은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주택에 침입해서 마주친 50대 아주머니를 때려 살해하던 중 2층에 있던 아들이 내려온 것이다. 건장한 체격의 피해자 아들은 왜소한 두영을 주먹으로 몇 대 쳐서 바닥에 뉘였다. 하지만 아들은 방심했고 그 사이 정두영은 집에 침입할 때 미리 봐두었던 현관 신발장 위의 망치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간다. 두영은 망치를 들고 돌아와 남자의 얼굴을 내리쳤다. 겁에 질렸던 정두영은 쓰러진 남자에게 미친듯이 망치를 휘둘러 두개골이 부서지고 뇌와 뇌수가 밖으로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이어지는 글 – 내 안에 악마가 있다 I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