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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영 개인사업자와 병의원에 도움되는 내용들

출산휴가 신청법 쉽게 정리 – 작은 회사의 경우

 
출산휴가의 정식명칭은 출산전후휴가이다. 사용자(사업주)가 임신 중의 여성근로자에게 출산 전후에 부여하는 휴가이다. 필자는 사업주로서 처음 임신한 직원 분을 위해 내용을 검색하게 되었는데, 정말 복잡해서 용어 공부와 정부해당부처에 잦은 전화까지 필요한 부분임을 깨달았다. 아무튼 그 방법을 자세히 정리해서 그냥 따라하면 될 수 있게 글을 작성했다.
 

0. 개요

1) 지원 가능 대상
– 비정규직 정규직 여부와 무관하게, 고용보험(4대 보험의 하나) 납부액이 없더라도, 모든 출산 예정인 여성 노동자가 쓸 수 있다. 여기까지 들으면 꿈 같은 소리라고, 사장에게 말하면 금방 피식 웃으며 쌍욕하겠다고 상상이 되지만…출산휴가의 처음 60일은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금액이 최대 150만원이나 되기 때문에 현실적인 얘기가 되었다.
 
출산전후휴가 급여 상한액 135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인상 by 복지뉴스
 
2) 출산휴가 가능 기간과 급여 금액
– 출산일 전후로 총 3개월 사용이 가능하다. 우선 지원 대상 기업(근로자 수가 500인 이하 제조업, 300인 이하 건설·운수·창고·통신업, 기타 100인 이하 사업장)인 경우는 첫 60일에 대해 통상임금 전액이 지원된다. 예컨데 월 마다 늘 받던 임금이 200만원이라면, 정부로부터는 150만원을 받고, 사장으로부터는 나머지(200만 빼기 150만)인 50만원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 출산휴가의 마지막 30일은 받는 기준이 따로 있다. 고용보험(4대보험의 하나)에 가입되어 있고, 근로자가 정규직으로서 4대보험을 납부하는 ‘피보험단위 기간’ 이 총 180일 이상이어야 한다. 현 직장 뿐 아니라 이전 직장 경력도 연결되어 있다면 합산해서 피보험단위 기간에 더할 수 있다. 이 마지막 한 달의 기간은 정부가 150만원을 준다. 사업주가 따로 더 지급해주는 금액은 없다.
출산휴가 사업집행절차 고용노동부
 

1. 출산전후휴가신청

근로자 사업주가 협의해서 출산휴가 기간을 정한다. 사업주가 필요 서류를 발부해 주어야만 근로자의 출산휴가 신청이 정부 고용센터에서 진행이 되므로, 서로 같이 화기애애하게 협상을 하면 좋겠다.
 

2. 출산전후휴가 확인서 발급 (사업주측 담당)

이 과정은 고용보험 인터넷 사이트에서 진행한다. 출산 휴가 시작 당일부터 고용보험 사이트에서 작성이 가능하다. 해당 기업의 공인인증서 로그인이 필요하므로, 사업주나 관리 직원이 진행을 해야 한다. 아래의 블로그 링크에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다.
https://m.blog.naver.com/hello6503/221007727057
 

3. 급여지급 신청 (근로자가 담당)

1) 신청 시기
– 우선지원대상기업(보통 작은 기업들)의 경우 휴가 시작날 이후 1개월 부터 휴가가 끝난 날 이후 12개월 이내 신청을 해야 한다. 한 번 신청하면 땡이 아니고, 휴가기간중 30일 단위로 3번 신청을 하는 것이다.
– 휴가가 모두 끝나고 하면 일괄신청도 가능한데(12개월 내로만 신청하면 자격이 되므로), 즉 3개월치 휴가 월급을 끝나고 몰아 받는 식이다. 돈이 달마다 궁하지 않다면 시도해보면 되겠다.
2) 신청 서류
– 근로자가 가까운 고용센터에 제출하는 서류들이다.
① 출산전후휴가 급여 신청서 (고용보험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운 받을 수 있음)
② 출산전후휴가 확인서 1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준다. 휴가 시작 당일 이후 발부 가능)
③ 통상임금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휴가 시작일 전 3개월의 임금대장, 근로계약서 등 사본 1부, 임금대장은 기업과 연결된 회계/세무사무소에 부탁하면 발부해줌)
④ 휴가기간 동안 사업주로부터 금품을 지급받은 경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 (통상 임금을 보전 받은 은행 통장 입금 내역등을 출력해서 제출)
⑤ 유산이나 사산을 하였음을 증명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진단서 (유산.사산 휴가일 때만 제출. 임신기간이 적혀 있어야 함)
이 많은 서류들을 모조리 준비해서 가까운 고용센터를 찾아가면 된다. 고용센터 위치는 아래 링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출산휴가 시작일 1달 후부터 급여 신청이 가능하다.
 
고용노동청(지청)/고용센터 찾기
 

★ 포인트 정리

▶ 출산휴가는 출산 전과 후로 나누어 써야함. 출산 후의 휴가 기간은 연속하여 45일이상이 되어야 한다(예를 들어 출산 전에 휴가를 두 달 쓰고, 출산 후에 한 달(30일) 쓰는 건 불가능).
▶ 비정규직이라도 신청 가능. 다만 처음 60일은 임금을 받을 수 있지만, 마지막 30일은 고용보험에 들어있지 않으므로 급여 수령이 불가능하다. 출산휴가의 낌새를 느낀 사업주가 근로자를 미리 내보내려는 시도도 가능하다. 만일 사업주가 출산전후휴가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 쌍둥이(다태아) 출산의 경우 출산 휴가를 3달이 아닌 4달로 늘려 쓸 수 있다.
▶ 사업주 자신은 여자이고, 임신했어도 출산휴가를 쓸 수 없다. 사업주(사용자)는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므로 그렇다. 사업주 개인 판단으로 정부 돈 못 받는 휴가를 쓰면 된다.
▶ 출산 휴가 급여 모의 계산
https://www.ei.go.kr/ei/eih/eg/pb/pbPersonBnef/retrievePb330Info.do
▶ 주요 내용 참고 사이트
https://www.ei.go.kr/ei/eih/eg/pb/pbPersonBnef/retrievePb0301Info.do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66371
 

해외 주식 거래 시 환전 수수료 아끼기 – 키움 신한 미래에셋 3사 환율 우대 비교

미국 아마존 웹사이트와 배송대행지를 이용해서 200달러 이하 무관세 제품의 해외 직구를 가끔 한다. 해외배송비 등 전체 부가 경비를 포함해도 우리나라 인터넷 최저가 보다 싼 유명 브랜드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물건 직구하듯이 주식도 해외 직구하고 있는데, 중국 상해와 홍콩 시장 종목을 주력으로, 미국 시장 종목을 그 다음으로 해서 돈을 붓고 있다. 2015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주위에 얘기하면 정말 특이한 데 투자한다는 반응이었지만, 현재에 와서는 해외 주식 투자가 한 트렌드가 된 느낌이다.
 

넉 달간 14조원 거래… 해외주식도 ‘직구 시대’

 
요즘처럼 미국 달러 환율이 3년 내 최저점에 근접한 때는 달러를 사서 우량한 미국 주식 종목을 사두면, 장기적으로 환차익에다 종목 매매 차익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해외주식 환율 우대 네이버금융
상기 네이버 환율 페이지를 보면, 우측 단에 고시환율이 적혀 있는 게 보인다. 고시환율은 은행 별로 다르고(신한이 하나보다 조금 더 싸다), 실물 현찰을 거래하는 것과 은행 송금(전신환) 보내는 것도 각각 환율이 다르다. 해외 주식 투자자가 신경 써야 할 지표는 “송금 보낼 때” 환율이다.

KB, NH, 삼성, 신한, 키움, 하나, 미래에셋 등등 해외증권 거래가 되는 증권사들이 모두 같은 환율로 원화를 바꿔주면 헷갈리지 않겠지만, 각각 모조리 다른 환율을 적용하고 있다.

같은 고시환율이더라도 ‘스프레드’ 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시중 은행에 가면 ‘50% 환전 우대’, ‘30% 환전 우대’라고 선전하는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스프레드를 그 퍼센트만큼 깎아 주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블로그 링크에 설명이 잘 되어 있다.

외화 환전수수료(스프레드) 알아보기

증권사 중 스프레드가 가장 저렴한 곳은 미래에셋대우로, ‘5원’이다(아래 링크 기사 참고). 다른 곳은 거의가 10원 수준이다. 기본 스프레드가 두 배 차이나는 상태에서 몇 퍼센트 우대라는 말에 현혹되면 호갱이 될 수밖에 없다.
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106000169

 

필자는 키움, 신한, 미래에셋대우 3개사 증권 계좌를 이용하고 있는데(더 좋은 환전 우대 찾다가, 대체 입고 이벤트 참여 하느라 이렇게 늘어남), 각 증권사 스마트폰 앱 상에서 실제로 확인 가능한 우대환율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알아보겠다(같은 시간, 같은 고시차 환율 적용).

 

해외주식 환율 우대 키움 달러화-horz 편집2

키움증권 HTS 영웅문 캡처

 

해외주식 환율 우대 신한 달러화-horz 편집

신한금융투자 – 글로벌 FNA 외화 예금 우대금리와 연계

 

해외주식 환율 우대 미래 달러화-horz 편집

미래에셋 HTS m.Global 캡처

 

사진상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 달러화, 중국 위안화 모두 미래에셋대우가 가장 저렴한 우대환율을 제공해 준다(달러 1081.0, 위안화 168.74). 신한금융투자가 그다음이었는데(달러 1082.6, 위안화 169.05), 신한의 경우 ‘글로벌FNA외화예금’ 이란 걸 신한은행에서 개설하고, 신한금융투자 해외계좌에 연결하면 간편하게 사용 가능하다. 물론 그렇게 해도 미래에셋 보다 비싸니, 환율을 민감하게 고려한다면 미래에셋을 선택하는 게 낫겠다. 키움은 3사 중에 가장 환율이 비쌌는데(달러 1085.7, 위안화 169.55), 이렇게 바로 HTS 상에서 환전하지 않고, 주거래 은행에서 우대환율로 환전 후 키움증권 해외계좌로 송금하면 더 싸게 할 수 있다. 자세한 방법은 필자의 이전 블로그 글을 아래 링크해두었으니 참고 바란다.

미국 주식 살 때 환율 우대 받는 방법 – 키움증권 이용 해외 주식 거래 I

★ 맺음 말
오늘 원화로 천만 원을 환전 시 미래에셋에서는 9250.69 달러를 받을 수 있고, 신한금융투자에서는 9237.0달러, 키움에서는 9210.6 달러를 받을 수 있다. 천만 원 당 40달러 즉 4만 원 이상이나 차이 난다. 환율우대를 받지 못하면 미리 0.4% 손실을 안고 가는 것이다. 해외증권 계좌 개설 때는 미리 환전에 유리한 곳, 해외 주식 거래 수수료가 저렴한 곳을 찾아서 개설하기를 추천하고 싶다.

피눈물을 잉크 삼아 쓰는 중국 주식 투자 후기 III – 행운에 속지 마라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즉 우리나라의 IMF 사태가 발생하기 전 코스피 지수는 792.29 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위기가 최절정이던 1998년 지수는 280까지 내려갔다. 삼성전자 같은 초우량 주식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충격적인 3~4만원대로 폭락했다(금년 4월 30일 액면분할 전 삼성전자 가격은 주당 265만원).

2008년에는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 불리는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월 다우존스 지수는 6,627 저점을 찍었다.

2015년 6월 경에는 중국 증시 폭락 사태란게 발생했다. 1997년과 2008년에는 주식 계좌에 돈이 없었으므로 강 건너 불구경 할 수 있었지만, 이때는 내 해외 주식 홍콩과 상하이 계좌에 억이 넘는 돈이 들어가 있었다. 하한가를 수없이 맞으며 공포의 물타기를 감행했는데, 그 때 팔아치운 주식들이 지금 얼마인지 확인하면 눈물이 솟아나와 앞을 가릴 지경이다.

1997년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2008년 미국시장에서 냉정하게 우량주를 보유하며 지금까지 기다렸다면 분명 엄청난 수익을 얻었을 것이다(280이던 코스피는 2,500이 되었고, 6,627이던 다우는 24,886이 되었으니까).

떨어지면 다시 오른다는 건 간단한, 영원의 진리지만 막상 위기의 상황에 다다르면 머리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열심히 벌어서 주식으로 바꾼 나의 자산이 몇 달 사이 반으로 줄어든 사태를 체험하며, 진지하게 중국 주식 투자 공부를 시작했다. 여러 주식 관련 서적을 도서관에서 빌려보며 궁리했는데 그 중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한 책이 나심 니콜라스 탈렙의 <행운에 속지 마라> 였다. 아래 책 속 구절을 읽어보자.

내가 아는 바로는 트레이더의 탈진에 대해 정확하게 속성을 조사한 연구는 없다. 그러나 제대로 통제할 수 없음에도 그렇게 높은 변동성에 매일매일 노출된다면 생리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보아야 한다(이런 노출이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도 아직까지는 연구된 바가 없다). 긍정적 자극과 부정적 자극은 그 속성과 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이제 이 둘을 처리하는 두뇌의 부위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라. 이익 직후의 결정과 손실 직후의 결정은 합리성 수준이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다. – 110 페이지

저자는 경제학만이 아닌, 심리학이나 신경생리학 분야에도 두드러진 식견을 보여준다. 주식 가격의 오르내림이 기업 실적과 똑같이 비례한다면 경제학만 알아도 되겠지만, 시장은 항상 비합리적인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고 있으므로 같이 공부가 필요한 분야라 하겠다.

탈렙이 말했듯이 예상치 못한 손실을 맞은 후 사람들은 합리성이 떨어진 결정을 내린다. 필자도 그랬는데, 워렌버핏이 투자했다고 해서 나도 샀던 중국 대표 전기차 회사 BYD(01211HK) 투자가 대표적이었다. 이 종목을 2015년 2월초 27.56 홍콩달러(HKD)에 2000주 매수했다. 원화로 8백만원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중국 증시 폭락 전인 그 해 5월 BYD는 54.5 HKD 고점을 찍었다. 3달 만에 앉아서 8백만원 번 걸로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주식은 팔기 전에는 비트코인 같은 사이버머니 일 뿐이다. 폭락장이 시작되자 이게 진짜 폭락인지 조정장인지 헷갈리다가 시간을 다 보냈고, 7월 초에는 마이너스 되기 전에 팔자라는 기분으로 29.8 HKD 에 전량 매도를 했다. 위기가 지나간 후 BYD는 순조롭게 올라서 83.7 HKD 고점을 찍다가 현재는 조정이 와서 52.7 HKD 가격으로 있다. 즉 내가 그릇된 물타기로 손해본 기회비용은 BYD 한 종목만 천 만원이 넘는다. 손실 직후 결정은 역시나 합리성이 떨어진다.

아무튼 중국 증시 폭락 사태 이후 피눈물로 배운 원칙은 아래와 같다.


 

★ 주식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워렌버핏 옹도 말했던 ‘돈을 잃지 않는 것’

– 부가 설명 : 성철 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만약 성철 스님같은 유명인이 아닌 껄렁한 주위 남자가 똑같은 말을 했다면 ‘뭔 헛소리야’ 라는 반응을 들을 것이다. ‘돈을 잃지 않는 것’ 은 단순한 말이지만, 심각하게 듣는 사람에게는 명언이 되고, 아닌 사람에게는 헛소리가 된다.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익금 만을 재투자해야 하고, 수익금을 다시 주식에 몰빵하지 않는게 좋다. 자제력을 발휘해서 은행예적금이나 증권사 CMA에라도 일부 저장해 두자. 현금이 없으면 좋은 종목이 폭락해도 들어갈 수가 없어진다.

 

★ 저점과 고점은 하늘만 안다.

– 2015년 6월 중국 증시 대 붕괴전, 그걸 예측한 전문가는 없었다. 연말까지 상해지수가 1만 포인트(3년 지난 현재 그 1/3에도 못 갔다)에 갈 거라는 전문가는 있었다. 증시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너무 많아서, 90% 제반여건이 우호적이어도, 나머지 10%가 안 좋아서 폭락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예측에 냉소하자는 게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도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 미리 정해놓고 있어야 한다. 그릇된 자신감으로 예측에 확신을 가지면 <행운에 속지마라> 책에 소개된 아래 사례처럼 된다. 저자가 알고 지낸, 뉴욕 맨해튼 파크 애비뉴 고급 주거지에 살며, 15년 넘게 트레이딩 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전문 트레이더도 자만에 빠져 파산했다.

내가 알고 지낸 동료들 가운데 역사가 주는 교훈을 무시한 사람들이 가장 처참하게 파산했다. 그런 사람 중에 파산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정말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파산한 방식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단지 돈을 잃는 데 그치지 않았다. 돈을 잃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시점에 돈을 잃었다. 크든 작든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그 위험에 일격을 당하는 일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파산한 트레이더들의 특징을 보면, 이들은 자신이 시장을 잘 파악하고 있으므로 불리한 사건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들이 위험을 감수한 것은 용감해서가 아니라 단지 무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비슷한 이유로 파산한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다. 1987년 주식시장 붕괴 때 파산한 사람들, 1990년 일본 붕괴 때 파산한 사람들, 1994년 채권시장 붕괴 때 파산한 사람들, 1998년 러시아 사태 때 파산한 사람들, 나스닥 주식을 공매도 했다가 파산한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모두 “이번에는 다르다” 또는 “우리 시장은 다르다”고 주장하며 체계적이고 지성적인 듯한 경제 논리를 내세웠다. 서점마다 이런 붕괴를 자세히 설명하는 책들이 널려 있었는데도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공개된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 95 페이지

 

★ 평범한 장세에서는 반드시 분할 매수 분할 매도, 폭락장에서는 대량 매수 고려

– 상해증시가 한창 잘나가던 2015년 상반기, 일대일로(一帶一路) 관련 인프라 주식이 폭등했다. 나는 조바심에 중국철도건설(601186), 대진철도(601006) 같은 종목을 대량으로 추격 매수했다. 그리고 아직도 이 두 종목은 마이너스 25%에서 마이너스 50% 정도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종자돈이 감당할 수 있을만큼 분할해서 매수하고, 상승장에서도 분할 익절로 리스크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나는 양도소득세가 면제되는 250만원 만큼은 매년 익절하고 있다. 반면 폭락장에서는 멘탈이 무너져 좋은 주식을 싼 값에 팔 생각을 하지 말고, 평소 눈여겨 보던 우량주를 저가 매수할 생각을 하자. 워렌 버핏은 1988년 다우지수가 하루에 20% 폭락한 블랙먼데이 직후 코카콜라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고 한다. 필자는 현재 중국 주식 계좌가 플러스 전환한 상태인데, 폭락장에서 평안보험(601318)이나 알리바바(BABA), 상해자동차(600104) 같은 괜찮은 종목 들을 집중 매수한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피눈물을 잉크 삼아 쓰는 중국 주식 투자 후기 II

이미 대세가 정해진 다음 논평하기는 쉽지만 아직 싹도 나지 않은 걸 예측하기는 어렵다. 주식도 마찬가지이다.

2015년 1월 2일, 나는 처음 중국 주식에 손을 대었다. <지금 중국 주식 천만원이면 10년 후 강남 아파트를 산다>라는 책에 감명을 받고 저자의 추천 종목에 투자를 했다. 후강통 시행 전에 출간된 책이라 홍콩 시장 종목들만 소개되어 있었다.

책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도상에 있으며, 잘 찾아보면 미래의 삼성화재, 미래의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널렸다고 했다. 확실히 우리나라가 중진국이던 1990년대 삼성화재나 삼성전자를 사두었다면 현재 수천 퍼센트를 넘는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투자로 거금을 날리고 나서 생긴 냉정함으로 돌아보면, 물론 삼성화재, 삼성전자같이 될 기업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기업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중진국에서 이제 거의 선진국에 왔듯이, 중국도 꼭 그렇게 되리라는 법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중국의 역사적 전통과 그들 공산당의 추진력을 믿었었다.

아직 후진 농업 국가이던 시절 6.25 전쟁에서 미국군을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 공격했고(맥아더 총사령관은 중공이 그들의 후진 장비를 가지고 미군에 도전할 마음도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선을 압록강에서 지구 위도 3도 정도 아래인 휴전선 근처로 밀어냈다. 덩샤오핑은 전쟁에서 인해전술 쓰듯 많은 인민을 동원해서 경제발전을 이룩하려 했는데, 참고했던 것이 싱가포르의 국가 관료 주도 경제개발 모델이었다. 이 모델은 우리나라가 군사독재 시절 추구했던 것과도 비슷하다.

자존심 강한 민족주의 감정과 우리나라 70년대 비슷한 국민 동원 능력이 결국 중국의 경제 발전을 지속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믿음은 냉철한 주식 투자에 한해 보면 거시 경제 흐름에 대한 참고점 하나가 될 뿐이었다. 이보다 복잡한 기업 분석이나 투자 기법이 결합되어야 투자에서 피눈물 흘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피눈물 많이 흘리고 깨달은 사실이다.

아무튼 2015년 나의 생애 첫 투자 종목은(나는 국내 주식 투자 경험도 없었다) 인민재산보험(2328HK)이었고, 강남 아파트 책에서 추천한 다른 종목인 BYD나 보리협흠도 매수했다. 처음 사고 계속 오르니 마음이 즐거웠다. 용기가 생겨 상해주식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스스로 종목 분석하지 않고 <지금 ‘당장’ 중국본토 A주에 투자하라> 책에서 추천한 종목들을 느낌에 따라 당장 당장 매수해 갔다.

보유 현금을 다 쓰고서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 투자금을 마련했고, 어느새 중국 주식에 투자한 총 금액이 월급의 10배가 넘는 상황이 되었다. 2015년 1월부터 그해 6월까지는 우량주라 소개된 어떤 종목에 돈을 넣어도 50%는 오르는 활황 장세이어서, 이런 무모한 일이 계속될 수 있었다. 당시 중국 주식 투자 네이버 카페에는 “XXX 종목 달려주네요 ㅎㅎㅎ” 류의 글들이 수도 없이 올려져 있었다.

필자는 아직도 다음의 대화를 생생히 기억하는데, 원통한 마음이 생생함이 되었던 것이다. 아는 동생에게 중국 주식에 투자해 천만 원 넘게 벌었다고 자랑하니, 그는 “형 그럼 지금 다 팔아버리는 게 낫지 않아?” 라고 했다. 나는 짐짓 “지금 팔면 안 되지. 아직 다 오르지도 않았는데.” 라고 대답했다. 그때가 2015년 5월이었는데, 그의 말을 따랐다면 피눈물 흘릴 일도 없었을 텐데.

2015년 6월 중국 상해시장 주식 대 폭락이 시작되었고, 홍콩시장도 뒤를 따랐다. 나는 물론 이게 잠시 있는 조정기간 일 걸로 알았다. 상해주식은 상한가 하한가 제한이 10%였는데, 투자한 전 종목이 하한가를 맞는 신기한 경험도 몇 날 했다. 홍콩시장은 상한 하한 제한이 없는 무서운 곳이었다. 가지고 있던 알리건강 이나 V1 group 이 아침 개장 후 1시간도 안 되어 20%씩 폭락하는 꼴도 보았다.

피눈물을 잉크 삼아 쓰는 중국 주식 투자 후기 III – 행운에 속지 마라

피눈물을 잉크 삼아 쓰는 중국 주식 투자 후기 I

저의 회고는 2016년 6월 25일 브렉시트 다음 날부터 시작합니다.

어제 브렉시트(brexit)로 나의 중국 주식, 즉 상해와 홍콩 시장 종목들은 다시 수직 낙하를 했다. 충분히 떨어졌었다고 생각했지만 더 떨어져 버렸다. 이제 HTS를 켜고 손익률을 확인하는 게 두려울 정도이다. 평소 소비에 있어 검소와 가성비(가격대 성능비)를 추구했던 내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중국 주식에 넣게 되었는지, 악몽 같은 지금 상황에서도 의아한 기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이렇게 말을 했다. “Life can only be understood backwards; but it must be lived forwards”. 삶은 살아보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미래를 보며 살아야 한다 라는 의미이다. 지금 피눈물을 잉크 삼아 중국 주식 투자 후기를 쓰는 이유는, 과거를 회고해서 정리하고, 그중 이해되는 것에서 희망을 찾아 향후 투자에 시금석으로 삼으려는 의미이다.

필자의 주식 투자는 중국이란 나라의 역사책을 읽는 게 재미있고, 미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데서 시작되었다.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中國에 있다고 믿고 동서남북의 나라들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등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중화사상(中華思想)도 결정적 도전을 받는 시기가 왔다. 아편전쟁으로 문이 열리는 서구 열강의 침략이었다. 이전의 오랑캐들은 전쟁을 걸면서도 중국을 세계 최고, 최대의 국가로 인정 했었다. 거란의 요나라도 여진의 금나라도 몽골의 원나라도 만주의 청나라도 그랬다. 그런데 서양 세력은 중국을 뛰어넘는 군사력 이외에도 고유의 문명, 문화적 발전상을 가지고 있었다.

2천 년 가까이 공맹(孔孟)의 유교 문명을 자신들, 그리고 다른 모든 민족이 추구해야하는 지고(至高)의 이상이라 여겼던 중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자존심 상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상적 돌파구를 찾는다. 그중 하나가 당시 세계의 부르주아(bourgeois) 문명 국가들을 유령처럼 홀리고 있던 공산주의 사상이었다. 창시자인 독일의 마르크스는 중국과 같은 농업생산 국가에서 근대적 공산혁명이 일어날 거라 전혀 생각지 않았다고 하지만, 혁명은 일어나고 말았다.

지도자인 모택동은 중국 강서 남부 산간의 정강산(井冈山)에서 35세 나이에 수 백명의 평민 출신 군대를 이끌고 일을 시작했다. 공산주의 간판을 걸고 있었지만 평범한 외부인에게는 산에 사는 비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초라한 집단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향후 중국 전토를 점령하고 현대 중국을 지배하는 엘리트의 뿌리가 되었다. 이들은 서양에서 건너온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역사 발전 이론을 공부했지만, 구체적 실현 수단은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 중국에는 자본주의 발달이 미약해서 대형 자본가들도 별로 없었으므로 봉건 지주와 민족주의적 군벌 연합 세력(장개석)을 주요 투쟁 대상으로 삼았다. 마르크스가 써놓은 이론과는 다른 정치 군사적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요즘 해외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IS를 보면 홍비(紅匪)로 불리던 예전 중국 공산 게릴라 집단과 비슷한 방식으로 싸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모택동과 주덕(朱德)의 중국 공산당 홍군(紅軍)은 현대 유격 전술의 완성자 답게 대규모 정규군을 이끄는 세력(장개석 군)에게 악몽 같은 전술과 의지를 선보였다. 현대의 서방 군대에게 IS가 악몽인 것과 비슷하다. 적이 다가오면 산으로 숨고, 적이 산까지 들어오면 매복했다가 한 명씩 사살하고, 지친 적이 후퇴하면 쫓아가서 기회를 잡아 타격했다. 화가 난 장개석이 정강산 전체를 70만 대군을 동원해 포위하고, 콘크리트 토치카와 가시철조망을 구축하며 신중하게 접근하자 이들은 대규모 탈출전을 벌였다. 장장 370일에 걸쳐, 9600km의 거리(서울 부산 거리의 30배)를 걸어서 중국 서부 내륙의 연안(延安)으로 이동했다(大長征).

이들은 중국에 들어온 일본제국군과도 싸웠고, 일본이 패망하자 장개석 군대와 다시 싸워 그들을 작은 섬 대만으로 쫓아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6.25 전쟁에서 그들은 2차세계대전을 통해 최강의 군대로 입증된 미국군에게 도전했다. 미국이 일본에 썼던 핵폭탄을 중공군 상대로도 쓸 거라는 예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모택동은 “상대가 원자폭탄을 쓰면 우리는 수류탄을 쓴다” 고 말하며 전쟁에 개입했다. 중공군 정도는 간단히 압살해 버릴 수 있다던 맥아더의 호언과는 달리, 팽덕회가 이끄는 중공군은 두 달여 만에 북한 전역을 미군과 연합군에게서 도로 빼앗았다. 공업 생산량이 미국에 비해서 없다시피 한, 그래서 전쟁에 필요한 중화기 생산 물량이 극단적으로 뒤짐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낸 전적이다. 산업 기반이 없는 IS가 서방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보이는 대담하고 막 나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만일 우리나라가 중공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미국에게 싸움을 걸었을까? 미국은 원자탄을 자기 마음먹은 자리에 떨어뜨릴 수 있고, 대규모 함대가 있어 해안 어디서든 상륙 작전을 벌일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와 소총만 가진 군대로 전쟁을 할 수 있었을까? 물론 절대 못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중공은 했고, IS도 지금 하고 있다. 세계 대부분 나라가 못할 일을 중공과 IS는 시도했으니 둘 사이에는 결정적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건 하나의 이념으로 지배 국민을 강하게 결집시키는 능력이다. 중공은 중화 민족주의와 결합된 공산주의 사상으로, IS는 이슬람 근본주의 사상으로 그런 전체주의를 이루었다. 중국은 전체주의의 힘을 가지고 전쟁 말고도 눈부신 경제 성장까지 이루었다. 전쟁으로 미국에 타격을 입혀서 쉽게 침략하지 못하는 군사 강국이 된 건 모택동 대의 공로이고, 10억이 넘는 국민을 경제 발전에 동원해서 현재 G2의 위상으로 국가를 올린 것은 등소평 대의 공로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서 하도록 하겠다.

피눈물을 잉크 삼아 쓰는 중국 주식 투자 후기 II

프레카리아트 II – 위험한 데는 니가 가라


 
중학생 시절 환상의 영화였던 <에일리언> 시리즈에는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 속 세계관에는 하얀 우유 같은 피를 가진 인조인간(synthetic)이 나온다. 제조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인간보다 하위의 존재이다. 영화 2탄에서 주인공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비롯한 일행이 다수의 에일리언에게 포위되었을 때, 누군가 위험한 배관을 통과해 드롭쉽(dropship)을 부르러 가는 게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영화 전체를 통해 오도방정을 떨던 허드슨 일병(빌 팩스톤)은 인조인간 비숍(랜스 헨릭슨)을 그 임무에 보내야 한다고 흥분해서 떠든다.(Right, Bishop should go. Good idea.)

비숍은 체념한 듯 이렇게 말한다. “나도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인조인간이라고 바보는 아니니까요.” (Believe me, I’d prefer not to. I may be synthetic, but I’m not stupid.)

영화에서는 에일리언이 우글거리는 통로에 인조인간을 보내면 되었지만, 지금 현실 세계에서는 위험한 작업에 비정규직 일회용 청부 인력을 보내고 있다. <프레카리아트 –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책에 나온 생생한 묘사는 아래와 같다. 일본회사 <니콘>은 고위험 작업에 자기네 직원을 쓰지 않고 대신 청부 회사 <네크스타>에게 의뢰를 한다. 네크스타는 ‘유지’ 라는 남자를 작업에 투입했고, 유지 씨는 나중에 자살한다.

1월에는 동생이 유지 씨를 찾아왔다. 유지 씨는 평소 별로 가지 않는 게임센터에 동생을 데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는 게임을 하지 않고 게임에 열중한 동생을 싱글벙글 웃으며 그저 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재판에 의견서를 제출한 정신과 의사는 이 행동에 대해 “추억 만들기 행동의 가능성이 보인다.”고 기술했다. 과로에 의해 이미 우울증이 발병한 것이다. 이즈음부터 유지 씨의 머리에는 ‘자살’ 이라는 말이 맴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위장 청부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유지 씨가 죽었을 때 어머니는, 네크스타 쪽 직원에게 “(유지 씨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잘 모르겠다.” 는 것이었다. “클린룸이라는 방에서 일했지만, 저희는 들어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청부 회사는 현장이 어떤지도 모르고, 노동자가 어떤 심한 취급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관리라는 것도 소용이 없다. 파견처 회사는, 자기 회사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부리는 데에 무슨 방법이든 가리지 않는다.
 
유지 씨의 경우에 업무상 지시는 니콘이 내렸고, 네크스타는 업무 지시를 전혀 하지 않았다. 또한 유지 씨의 노동 시간에 대해서도 네크스타는 니콘에서 월말에 보고를 받아봐야 한다는 식이었고, 네크스타 쪽 직원은 유지 씨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면담을 할 뿐이었다. 결국, 외부에서 온 노동자인 유지 씨는 약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사용되기만 하다가 지칠 대로 지쳐 우울증이 생겼고 자살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것이 구조적인 ‘살인’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니콘 같은 대기업은 퇴직금이나 사회보험료를 안 주는 인력을 딱 필요할 때만 써서 좋다. 소중하기도 하고, 불만을 토로할 가능성 있는 정직원을 보호할 수 있어서도 좋다. 네크스타 같은 청부 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이런 일 의뢰가 끊임없으므로 돈을 벌어서 좋다. 유지 씨 같은 프레카리아트 처지 사람은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이런 곳에서 일하다 우울증에 빠져 자살의 길로 간다.

이 책을 읽고 제일 느낀 점은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유교식 자본주의 모델로 전후 경제 발전을 이끌고, 1980년대 말만 해도 향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상되었었다(지금의 중국도 같은 예상하에 있다). 하지만 익히 알려져 있듯이 1990년대 초부터 벌어진 부동산 버블 붕괴로 경제성장률 0퍼센트대를 10년 넘게 달성하며 경제가 주저 앉았다. 이런 장기 불황의 타개책 하나로 일본 대기업 집단과 정부는 비정규직 프레카리아트 노동 양식을 보급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시스템 하에서 유리한 자는 계속 유리해지고, 불리한 자는 계속 이용당한다는 점이다. 에일리언의 인조인간 처럼 이용당하는 사람들의 볼멘 목소리가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에서도 커지고 있는 걸로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책 안의 자조적인 구절을 인용해 보겠다. 나도 우리나라 TV에서 화장으로 무장한(치킨 먹을 때도 1mm 두께 얼굴 화장 하고 먹는다) 연예인이 현실과 동떨어진 꿈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광고를 볼 때면 비슷한 감상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도 텔레비전에서 전자제품 광고 같은 걸 보고 있자니 현란한 화면 너머에서 ‘이 상품은 위장 청부로 일하는 프리터의 미래를 소진시켜 만든 것입니다.’ 같은 내레이션까지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