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세 I – 영원 반사

세상에는 빛이 있다. 빛이 있기 전에는 어둠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성경의 창세기에도 그렇게 적혀있다. 빛은 움직이고 반사할 수 있어서 그만큼 어둠을 줄인다. 거울은 항상 빛을 온전히 투영해 나누어준다. 어두운 날이면 거울에 비친 모습은 어둡고, 밝은 햇빛이 있는 날 모습은 해와 함께 빛난다. 일곱 살 정인은 이를 신기하게 여겼다. 그는 집 안을 이리저리 걸어다니는 걸 좋아했다. 하루는 이층으로 가는 나무 계단을 올라서 창가로 갔다. 벽 시계가 조용한 초침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는 아카시아 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정인은 의자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는데 넓었던 창문 턱 공간에는 액자와 책들이 놓여 있었다.

정인은 거기서 두 개의 네모난 거울이 경첩으로 한 면을 맞대고 붙어 있는걸 보았다. 마주보는 거울은 서로가 서로의 영상을 투영하며 계속 안 쪽으로 똑같은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거울 사이에 손가락을 넣으니 똑 같은 손가락 모양이 점점 작아지면서 이어진다. 손가락을 까닥까닥하면 길게 줄서 있는 작은 손가락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정인의 마음은 이상 야릇한 것을 느꼈다. 작은 공간에 갇혀 있지만 끝 없이 이어져 있다. 한 방울 물에 비친 태양처럼 세상 안에 다른 작은 세상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아이 시절의 기억은 모호한 바다를 떠다니는 배처럼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정인은 아기 조카를 보며 자신이 아기였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힌트를 얻는다. 하늘색 턱받이를 목에 두르고 점박이 옷을 입은 이 아기는 앉아서 정인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어디론가 기어간다. 쇼파를 만나면 그 위로 기어오른다. 쇼파 등의 커다란 쿠션 위로도 올라가려 바둥거려 보지만 안 되서 헉헉 소리를 내고 있다. 어른들은 힘들지 않아도 헉헉 소리를 내지만 이 아기는 꼭 힘들때만 소리를 낸다. 아직도 바둥대고 있는 아기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마루에 내려주면 이제는 장난감 정글이 있는 곳으로 기어간다. 초록색 플라스틱 나무를 손으로 잡으며 겨우 일어나더니 나무에 달린 기린 인형의 귀를 입에 물고 빤다. 다가가 그 모습을 보면 입에 기린 귀를 문 채 정인을 빤히 쳐다본다. 하얗고 까만 눈의 대비가 선명하다.

정인은 이 아기를 처음 대하고 충격을 받았다. 가치판단이 없이 무구함 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정인 자신은 무서울 정도로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생각이 많은 어른들 옆에서 이 아기는 언제나 평화롭게 놀고 있다. 상대를 속이지 않고, 미워하는 것도 없으며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표정에 전광판처럼 나타난다. 정인도 아기로서 엄마 앞에서 기어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도 이런 순진무구함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언제 다 잃어버렸는지는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 정인이 기억이라는 관념을 이해하기 시작한 건 국민학교 1학년 때였다. 서울 서쪽의 작은 도시였던 광명시에는 ‘자수하여 광명 찾자’ 라는 현수막이 도시 어귀에 걸려 있었다. 정인은 광명을 찾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고 자수하면 도시를 어떻게 찾게 되는 건지 생각했다. 지저분한 회색 개천이 서울과 경계를 이루며 흘렀고 그 개천가의 20평 짜리 연립주택에 엄마, 아빠, 누나,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지금처럼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고 장래의 꿈도 없었다. 머리 아픈 생각보다 보다는 원초적인 기쁨과 공포가 희미한 기억의 영상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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