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세 III – 유혹과 강박

아이 정인의 기억은 원초적인 감정 덩어리가 비누방울 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기억 안에는 정확한 언어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펑 터지기 쉬웠다. 정인은 외모 만 보면 그냥 사탕 막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그의 정신까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다. 어른 정인은 아이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부터 이미 굉장한 크기의 에너지가 유혹과 강박 공포의 형체를 띠고 머리를 휘젖고 있었구나 생각을 한다.

정인이 느꼈던 ‘유혹’ 을 말해주는 일화는 이렇다. 꼬마 정인은 가족들과 광나루 근처에 있는 넓은 야외 수영장에 갔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수영복을 입은 수 많은 사람들이 수영장을 어항처럼 메우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성이 정인의 시선을 완전히 정지시켰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당시에 흔치 않은 노출이 심한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보통 수영복과 다르게 가슴과 가슴사이가 길게 도로가 난 것 처럼 파여 있었다. 도로 양측으로는 당연히 유방 언덕이 솟아 있었다. 정인은 일차 성징만 가진 꼬마였다. 하지만 여자의 도발적인 모습은 원래 유혹의 대상이 아닌 꼬마에게 충분한 전기 충격을 주었다. 이 미모의 여성은 선글라스 안에서 왜 이 얘가 자기 야한 모습을 넊나가서 보고 있는 걸까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정인이 느꼈던 건 알 수 없는 미로와 같은 정신을 헤매는 강렬한 전기의 흐름이었다.

다음으로 강박이라는 건 정인에게 자연스럽게 박혀버린 생각의 흐름이다. 여기에는 엄마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다. 엄마는 정인을 늘 감시하고 통제하는 존재였다.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11년후에 벌어질 대학입시 전쟁의 조망은 정인의 가정 전체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었다. 정인은 학교 수업 진도와 숙제를 어머니에게 확인 받아야 했는데 이건 매일 벌어지는 고문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이미 공부가 더럽게 재미 없다는 걸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셰퍼드에 비유했다. 주인이 감시를 안 하면 일 안하고 먹고 노는 동물. 정인은 훗날 셰퍼드가 머리 좋고 강인하며 충성심 강한 훌륭한 개라는 걸 알았지만, 어쨌든 위로 되는 사실은 아니었다. 모든 걸 통제했던 엄마가 준 강박의 에너지는 몹시도 강한 것이어서 다른 이미지의 그녀를 떠올리기 어렵게 했다. 한 번은 부모님이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가 며칠 만에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엄마는 활짝 웃는 반가운 미소로 정인을 맞았다. 이 표정이 정인에겐 낯선 놀라움이었다. 그는 자신이 엄마에게 반가울 수 있는 존재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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