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세 IX – 지배자와 피지배자
꼬마 정인의 지배자는 당연히 어머니였다. 아버지도 지배자이긴 했지만 군림하되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아들 말고 신경 쓸 직장 일이 많았으므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아무튼 지배자 어머니의 법전에서 허용된 행위 중 재미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정말 단 하나도!
지루함과 투쟁심을 일깨우는 것들뿐이었는데 이게 정인이 역사책에 나오는 민란의 두목들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정인은 압제자를 바라보는 눈으로 어머니를 보았고 그녀는 공부에 집중 안 하고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정인을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정인은 기어 다니는 아기의 환상을 본다. 자신도 한 때 어머니 앞에서 부드러운 하늘색 옷을 입고 턱받이를 두르고 평화롭게 놀고 있던 작은 아기였다.
정인이 가정을 벗어나 학교로 등교했을 때 그곳의 지배자는 또 따로 있었다. 아이들을 잔소리와 몽둥이로 통제하고 있던 학교 선생님들이었다. 그 때는 학원 폭력이라든지 학생 인권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유롭게 학생들을 때릴 수 있었다. 그들은 높이 솟은 아파트 단지 가운데 자리잡은 광장(아고라), 즉 학교 운동장과 성스러운 교정을 다스리는 왕처럼 살았다. 학교는 독립된 섬 같았고 그 안에서 권력은 도전 받지 않았다. 선생님의 법전도 어머니의 법전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즐거움을 봉쇄하는데 주 목적이 있었다. 학교 복도에서 만화책을 들고 다니다 걸리면 책을 빼앗겼다. 방과후에 오락실에 간 게 들통나면 싸대기를 맞았다. 수업시간에 졸다가 발견되면 머리채 휘둘림을 당했다. 한 반에 50명의 국민학생이 모여 있는 교실은 사람 모임 보다는 원숭이 집합소 같았으므로 이런 폭력이 조금 불가피하기는 했다.
선생님의 폭력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되어 아이들도 폭력의 도구적 우수성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이 모여있는 교실은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았다. 약한 애는 맞았고 강한 애는 때렸다. 쳐다보는 눈빛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야 이 새끼야 뭘 야려” 라는 대사와 함께 휙 주먹이 날아간다. 그러면 맞은 아이는 코피를 흘리며 눈빛을 얼른 내린다. 분식집 주인의 아들은 가난하다고 맞았다. 말을 더듬고 몸치였던 시장 방앗간 아이는 하루는 말 더듬었다고, 다른 하루는 몸치라고 맞았다. 이렇게 두들겨 맞은 아이가 표정이 풀리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모습도 보았다. 정인은 난만한 폭력의 위험성에 눌리는 듯한 위압감을 느꼈다. 키 작고 만화책 읽는 것과 전자 오락 외에 잘하는 게 없던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