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를 읽으면 좋은 이유 V – 보이지 않는 악마
카프카는 자신의 단편소설 중 <시골의사>와 <판결>을 특히 맘에 들어 했다고 한다. 두 작품을 읽어보니 동감이 갔다. 카프카가 아니면 누구도 아닐 황량하고 아름다운 문학이었다. 아래는 단편 <시골의사>의 잊기 어려운 결미 부분이다.
절대로 이런 식으로 집에 돌아가지는 않겠다. 나의 번창하는 의사생활은 망했다. 후임자가 내 자리를 넘본다. 그러나 소용 없는 짓. 그가 나를 대신하지는 못할테니. 내 집 안에서는 구역질나는 마부가 날뛰고, 로자는 그의 제물이다.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벌거벗은 채, 이 불운을 극한 시대의 혹한에 맨몸으로 내던져져, 지상(地上)의 마차에다 지상의 것이 아닌 말들로, 늙은 나는 나를 이리저리 내몰고 있구나. 내 털외투가 마차 뒤에 걸려 있다. 하지만 내 손은 거기까지 닿지 않고 변덕스러운 환자 주위의 불한당들 중 어느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속았구나! 속았어! 한번 야간 비상종의 잘못된 울림을 따랐던 것 – 그것은 결코 보상할 수가 없구나.
두서없는 시골의사의 말은 시적이지만 의미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프카가 살아온 인생에서 피어난 특이한 심리상태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흔히 고독, 소외, 불안, 항거불능 같은 단어로 대표된다. 카프카의 여인 중 한 명이었던 밀레나 폴락이 남긴 추도사가 있는데, 남자를 깊이 사랑했던 여인이 쓴 것이니 만큼 그 심리에 대한 훌륭한 이해를 보여준다. 한 번 읽어보자.
카프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실하지만 세상에 낙담한 채 자신의 길만을 외롭게 걸었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무방비 상태의 인간을 전멸시키는, 보이지 않는 악마 로 가득 찬 세계를 보았다. 카프카는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예민했고, 아름답고 고결한 존재가 그렇듯 투쟁하기에는 너무 허약했다. … 카프카는 타인을 알 수 있는 위대한 감식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유별나고도 심오한 방법으로 세계를 파악했던 카프카는 그 자체로도 유별나고도 심오한 하나의 세계였다. … 이 책들은 건조한 아이러니와 감각적인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세계를 투명하게 파악하기 때문에 카프카는 이 세계를 감당할 수 없으며, 이성적 사고가 아니라면 카프카에겐 죽음만이 남는 것이다.
밀레나가 말한대로 카프카는 예민하고 고결한 존재였다. 그는 유별난 방법으로 세계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보았는데, 그건 부조리로 가득차 있는 꿈과 같은 세계였다. ‘건조한 아이러니와 감각적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는 말은 카프카는 현실의 부조리(아이러니)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능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실존주의는 보통 “정해진게 없고 모든게 부조리한 이 세상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카프카의 문학과 실존주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부분이다.
만약 카프카가 가졌던 세계관와 거리가 먼, 소속감과 정동이 뚜렷한 삶을 살았다면 그의 소설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본들 미친놈 일기장 읽는 것과 비슷할 뿐일 것 같다. 카프카의 책은 프랑스의 실존주의 사상가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는데, 그들 역시 고독하고 정신적 투쟁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무척 마음에 들어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모든 배경을 취합해 <시골의사>의 마지막 단락을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시골의사는 한번 야간 비상종의 잘못된 울림을 따랐기 때문에 의사생활이 망해버린다. 이는 인생에서 생의 방향을 정확히 인도하는 경보는 없다는 걸 의미한다. 잘못된 신호로 그는 연인 로자를 구역질나는 마부에게 넘길 수 밖에 없었다(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림). 벌거벗었다는 건 마음을 지켜주는 방어막(신앙이나 은총)이 없다는 걸 뜻하고, 말들은 원초적 본능을 상징한다(프로이트의 분석에도 나와있듯이). 하지만 지상의 것이 아닌 말이기 때문에(본능을 떠난 천상의 정신에도 매어 있으므로) 그는 혼란스럽다. 구원을 주는 털외투는 손에 닿지 않고 불한당 들은 의사(치유자)의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은 보상받을 수 없다. 정해진 게 없는 인생에서 한 번 지나간 길은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