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정인의 국민학교 시절 기억은 환한 햇빛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에는 콘크리트(아스팔트가 아닌)로 포장된 언덕 길이 있었다. 정인은 네모난 책 가방을 메고 고개 숙인 채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회색 시멘트 바닥에는 늘 작은 돌멩이들이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언덕 꼭대기에 이르러 얼굴을 들면 하얀 햇빛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섬광은 언덕 위에 있는 집과 가게를 하얗게 지웠고, 이어서 그 너머 높이 있는 푸른 하늘과 구름을 보여주었다. 이 풍경은 정인에게 알 수 없는 애상을 준다. 아름다운 대상을 보면 이유 없이 슬퍼질 수 있다는 걸 꼬마는 배웠다. 그리고 어른이 된 정인은 같은 감정으로 아직도 망막에 남은 것 같은 당시의 하늘을 떠올리고 있다.
햇빛은 그가 뛰어 놀던 학교 운동장도 비추고 있다. 남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축구공을 차고 있었고, 여자 애들은 운동장 구석에서 고무줄 놀이를 했다. 정인은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걸 어색해 했기 때문에 벤치에 앉아서 구경을 하거나 학교 정원의 연못에 가서 헤엄치는 붕어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했다. 정인은 그 따뜻한 봄의 운동장에서 요한이라는 아이를 처음 보았다. 요한은 학교 국어 선생님의 아들이었다. 이 얘는 다른 평범한 남자 애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마 그의 하얀 피부와 여리고 고운 얼굴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아들이었고, 늘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요한은 이미 온 학교 아이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정인은 햇빛 아래서 걸어가는 요한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치 운동장에 있는 다른 수백 명의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걸음걸이는 우아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고 있었지만 움직이는 모습이 끊겨 보였다. 첫 눈에 그에게 빠져버린 정인의 기억이 영화의 오픈 앵글 촬영처럼 움직임을 끊어지게 기록했던 것이다. 요한은 밝은 햇빛에도 조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맑은 눈 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건 관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같은 학년의 국민학생들 중에서 풍경을 관조할 수 있는 아이는 요한 밖에 없었다.
정인이 처음 요한을 바라보던 날의 기억은 어른이 된 정인의 마음에 아직도 특별하게 남아있다. 옛날의 향수가 밀려와 가벼운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을 만든다. 아이답지 않은 요한의 모습을 어른 정인은 지금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보고 있다. 그때와 별로 변함없는 흠 없는 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모습을…
햇빛이 어두워진 저녁에도, 그 다음날에도 정인은 요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기 삶의 기준이 정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요한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생겼던 것이다. 그는 고고하고 신비한 미(美)가 결정을 이룬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형질은 정인이 늘 그리워한 부성과 모성을 합쳐 놓은 모양이었다. 매일 늦게 집에 들어오고 와닿지 않는 훈계만 말하는 아버지, 매일 집에서 독수리처럼 아들의 공부를 감시하던 어머니. 이 두 명과 학교 선생님들이 설정해 놓은 세계에서는 어떤 꿈도 꿀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한을 보면 어둡고 갇힌 세계를 뛰어넘어 밝은 섬광을 당당히 마주보는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때 정인은 물론 환상을, 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춘기가 시작되지 않은 소년의 마음은 동성의 아이에게서 훗날 잊지 못할 연인을 떠올리는 것 같은 감정을 이끌어낸다. 정인은 때때로 요한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정인은 요한과 같이 먼 나라로 떠나고 있었다. 몰래 외항선에 숨어들기도 했고, 비행기 날개 위에 같이 매달려서 날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둘이 찾아간 나라에는 아무 사람도 없는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카밀레 꽃이 무수히 피어있었다.
꼬마 정인의 지배자는 당연히 어머니였다. 아버지도 지배자이긴 했지만 군림하되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아들 말고 신경 쓸 직장 일이 많았으므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아무튼 지배자 어머니의 법전에서 허용된 행위 중 재미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정말 단 하나도!
지루함과 투쟁심을 일깨우는 것들뿐이었는데 이게 정인이 역사책에 나오는 민란의 두목들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정인은 압제자를 바라보는 눈으로 어머니를 보았고 그녀는 공부에 집중 안 하고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정인을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정인은 기어 다니는 아기의 환상을 본다. 자신도 한 때 어머니 앞에서 부드러운 하늘색 옷을 입고 턱받이를 두르고 평화롭게 놀고 있던 작은 아기였다.
정인이 가정을 벗어나 학교로 등교했을 때 그곳의 지배자는 또 따로 있었다. 아이들을 잔소리와 몽둥이로 통제하고 있던 학교 선생님들이었다. 그 때는 학원 폭력이라든지 학생 인권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유롭게 학생들을 때릴 수 있었다. 그들은 높이 솟은 아파트 단지 가운데 자리잡은 광장(아고라), 즉 학교 운동장과 성스러운 교정을 다스리는 왕처럼 살았다. 학교는 독립된 섬 같았고 그 안에서 권력은 도전 받지 않았다. 선생님의 법전도 어머니의 법전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즐거움을 봉쇄하는데 주 목적이 있었다. 학교 복도에서 만화책을 들고 다니다 걸리면 책을 빼앗겼다. 방과후에 오락실에 간 게 들통나면 싸대기를 맞았다. 수업시간에 졸다가 발견되면 머리채 휘둘림을 당했다. 한 반에 50명의 국민학생이 모여 있는 교실은 사람 모임 보다는 원숭이 집합소 같았으므로 이런 폭력이 조금 불가피하기는 했다.
선생님의 폭력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되어 아이들도 폭력의 도구적 우수성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이 모여있는 교실은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았다. 약한 애는 맞았고 강한 애는 때렸다. 쳐다보는 눈빛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야 이 새끼야 뭘 야려” 라는 대사와 함께 휙 주먹이 날아간다. 그러면 맞은 아이는 코피를 흘리며 눈빛을 얼른 내린다. 분식집 주인의 아들은 가난하다고 맞았다. 말을 더듬고 몸치였던 시장 방앗간 아이는 하루는 말 더듬었다고, 다른 하루는 몸치라고 맞았다. 이렇게 두들겨 맞은 아이가 표정이 풀리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모습도 보았다. 정인은 난만한 폭력의 위험성에 눌리는 듯한 위압감을 느꼈다. 키 작고 만화책 읽는 것과 전자 오락 외에 잘하는 게 없던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이 10살에 이미 거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인은 누구의 따뜻한 품에 안겨 있었을까? 그 품에 사람은 없었다. 정인은 수줍은 남자애라서 친구가 없다시피 했다. 혼자 즐기는 오락과 만화와 영화의 품에만 안겨 있을 뿐이다. 정인은 투명하고 둥근 어항에서 헤엄치는 분홍색 금붕어였다. 따뜻한 피를 그리워하는 작은 냉혈동물이었다. 하지만 정인의 이마저 보금자리도 결국 엄마의 침입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때 정인은 드래곤볼이라는 일본 만화책에 빠져있었었다. 일주일에 이천원 밖에 안 되는 용돈을 알뜰히 모아 오백원 짜리 해적판 만화책을 차곡차곡 수집했다. 용돈은 학교 준비물을 사라고 주어졌지만 정인은 만화책을 위해 모두 희생했다. 결국 30권이 넘는 만화책 전집을 모을 수 있었는데 방 바닥에 책을 흩어놓고는 뒹굴뒹굴 구르며 아무 책이나 골라 읽곤 했다. 드래곤볼은 어느 권을 읽든 놀랍게 재미있었다.
정인은 하교 길에 간만에 나온 새 드래곤볼 단행본 한 권을 사고는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멀리 언덕 가에 있는 집을 바라보았는데 마당에서 무얼 태우는지 연기가 은은히 올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정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 마당 한 켠에 드래곤볼 만화책이 수북히 쌓여있었고, 어머니는 무더기 곁에 앉아서 나무 막대기를 불쏘시게 삼아 불을 지피고 있었다.
이건 정인이 그동안 즐겨온 유희활동이 집 안에서 완전히 금지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정인의 어머니는 대학입시가 얼마 안 남았다는 심려를 10살짜리 국민학생 정인을 보며 느끼고 있었다. 입학 고시까지 8년이라는 세월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타는 초조함은 시간을 주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정인은 이제 집에서 노는 꼴을 보이지 않고 어떻게든 공부하는 꼴을 보여야 했다. 어머니는 정인이 방과 후에 집에 돌아오면 저녁식사를 먹였다. 그리곤 책상에 앉혀서 공부를 시켰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책을 읽기도 했고 아니면 무슨 뜨개질 같은 걸 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된 목적은 감시였다. 정인은 전과와 문제집을 펴놓고 열심히 딴 생각에 잠겨 들었다. 국영수 과목은 모두 더럽게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정인의 마음에 들었던 과목이 있었는데 바로 역사 과목이었다.
정인은 엄마가 참고서 말고 사다 주는 드문 책이었던 한국사 만화책 전집과 교양 서적들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특히 일본 만화책을 엄마가 모조리 태워버린 이후로는 더욱 반복해서 읽었다. 그래서 학교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들은 모두 익히 외우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정인은 수 많은 역사 사건 들 중 민란에 대한 이야기에서 제일 흥미를 느꼈다. 역사의 해석에 따르면 백성들은 지배자들의 착취에 허덕이다 결국은 봉기해서 일어난다. 착취는 과도한 세금일수도 과도한 노역일 수도 있었다. 명백한 것은 사회에는 항상 소수의 지배자가 있었고 거기에 복종하며 노예로 사는 다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혼자 집에 돌아가던 어느 햇빛 따스한 날이었다. 동네 골목을 걷는데 벽에 영화 포스터 한 장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영화 제목은 ‘개 같은 내 인생’ 이었다. 정인은 화들짝 놀랐다. 포스터 속 젊은 여자는 알몸으로 비스듬히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일단 제목에 ‘개 같은’ 이란 상스러운 말을 집어 넣은게 존경심이 들었다. 정인은 상스러운게 세상의 진실 중 하나란 걸 느끼고 있었다.
당시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은 한결같이 정제된 말과 정신상태를 보여주었다. 욕을 하는 일도 없고 벗고 다니는 일은 더욱 없었다. 정인이 기억하는 드라마 중 한 장면이 있다. 한 중년 부부가 밤에 같이 자러 누웠는데 방송용 조명이 켜져 있었기에 방은 저녁 때처럼 밝았다(이미 조명 부터가 드라마의 현실감을 방해하고 있다). 남편이 곁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그렇담 우리도…” 아내가 화답했다. “아이, 당신 왜 그러세요.” 나중에 알았지만 이건 늦둥이를 만들기 위해 성행위를 시도하는 남편과 거기에 부끄럽게 반응하는 아내를 묘사한 것이었다.
정인은 다른 하이틴 드라마도 기억한다. 한 고등학교에 부임해온 올곧은 남자 담임 선생님이 주인공이었다. 어느 날 한 건장한 체격의 남자애가 반으로 전학 온다. 원래 반을 장악하고 있던 키 크고 뚱뚱한 다른 남자애는 이 전학생에게 시비를 걸었고 둘은 학교 운동장 한 켠에서 맞붙는다. 둘 다 생긴 건 험악했지만 욕도 한 마디 하지 않고 “너 그러면 안돼”, “왜 그런 말을 하지?” 식의 대사를 읊고 있었다. 물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 차고 코피 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 아이들 대사의 95 퍼센트는 욕이었다. 게다가 정인은 주먹으로 맞고 발로 걷어 차이고 코피가 났었다. 오락실의 사이버 세계에서 상대를 농락하며 눌렀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웃기지도 않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니 ‘개 같은 내 인생’ 의 벗은 여배우가 더욱 정직해 보였다. 세상의 상스러움을 받아들이려는 정인의 노력은 할리우드 영화 감상으로 이어졌다. 이건 일본 만화랑은 또 다른 폭력성을 안겨 주는 훌륭한 도구였다. 정인의 마음에 충격을 안겨준 영화는 ‘로보캅’ 과 ‘프레데터’ 였다. 로보캅에서는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의 범죄자들이 총에 맞아 파리새끼 죽듯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살육의 장면은 마치 폭죽이 마구 터지는 걸 보는 것처럼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프레데터에서는 사람의 가죽을 산채로 벗겨서 죽이는 괴물이 등장한다. 괴물은 근육질의 군인 아놀드와 대결했는데, 그를 뺀 인간 동료는 모두 괴물에게 맞아 죽었다. 하지만 아놀드는 부비트랩을 설치해서 괴물을 반 죽음 상태로 만든다. 이상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프레데터에게 다가가 특유의 무뚝뚝한 저음으로 “도대체 네 정체가 뭐냐?” 라고 말을 거는 장면은 특히 감동적이었다.
하얀 피부에 찰랑거리는 직모 머리가 순진해 보이는 정인이 폭력에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는 건 별로 놀랄 일이 못 된다. 그는 항상 무관심하다가 기분 날 때마다 윽박지르는 아버지와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잔소리를 쏟는 어머니에게 매일 괴로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정인의 무의식은 부모님을 싫어하는 마음에 대한 죄책감 또한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는 발산이 필요했고, 그 강도는 높으면 높을수록 좋았다. 그게 개 같은 인생을 살면서 멀쩡한 정신이 되는 방식이었다.
정인이 즐긴 두 번째 주요 유희는 오락실이었다. 이건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가장 즐거운 취미활동이 되었다. 어떻게 돈이 들어오든 100원만 생기면 먼저 오락실로 달려갔다. 허름한 상가 건물 지하에 있는 오락실에서 들리는 효과음은 몽환적이었다. 담배연기가 안개처럼 깔려 있는 어두운 실내는 숭고한 인생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정인은 어른이 된 지금도 그때 듣던 동화같은 전자음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마치 그 소리가 어린 시절의 꿈을 되살려 주는 주문이 되는 것 처럼.
당시에는 스트리트 파이터 2 라는 게임이 전국 오락실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선택할 수 있는 주인공 수가 8명이나 되고 공격버튼이 6개나 있던 획기적인 게임이었다. 조이스틱을 잽싸게 돌리고 버튼을 타다다닥 눌러서 펼치는 공격 동작은 아주 부드러웠다. 정인은 인간 신체의 움직임이 구현하는 아름다움을 현대 무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락실 오락을 통해서 배웠다. 특히 같이 구르면서 발을 상대 배 위에 놓고 던져 버리는 켄의 기술은 실로 예술의 경지였다.
8명의 주인공은 각자 뚜렸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 괴물에 가까운 놈들도 있었고 비교적 사람에 가까운 놈들도 있었다. 브랑카, 달심, 장기에프, 혼다가 전자에 속했고 류, 켄, 가일, 춘리는 후자였다. 이 게임의 백미는 일 대 일 대전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이전의 오락이 혼자 아니면 둘이서 같이 미션을 완수하는 것이었던 반면 스트리트 파이터는 두 명이 맞붙어 실력을 겨루는 게임이다. 오락실 마다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애들 몇 명씩 생겨났는데 이들 뒤에는 조작법을 구경하려는 관중이 구름처럼 몰리곤 했다. 실력만 있으면 다른 사람을 게임 상에서 줘 팰수 있고 게다가 자신의 실력을 놀라운 듯 보는 관중이 있다는 사실은 정인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그는 미친듯이 조이스틱을 움직이며 연습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2 에서 최강은 가일과 달심이었다. 둘 다 장풍을 쏠 수 있었고 특화된 얍삽이 기술이 있었다. 하지만 정인은 대중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중국 무술 소녀 춘리를 가장 아꼈다. 그녀는 까만 스타킹 신은 반짝이는 다리로 멋도 모르는 국민학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만 강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가볍고 점프가 빠르지만 가일이나 류, 켄 같이 대공기가 강한 놈들에게 쉽게 잡히는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정인은 애정을 가지고 춘리의 싸움 기술을 혁신시켰다. 그는 춘리의 빠른 스탭을 이용해서 이리저리 지상에서 움직이다 갑자기 하단 발 차기를 썼다. 페이크 동작을 넣고 갑자기 상대방 등 뒤로 휙 점프를 해서 바로 던지기 기술을 걸었다. 상대방은 이 새로운 기술에 정신없이 속아 넘어갔다.
정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고 많은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이 국민학생은 하루 종일 스트리트 파이터만 생각했다. 페이크에 더 완벽을 기하기 위해 하단 발이 아닌 중단 주먹을 쓰기도 했고 제자리 점프를 그냥 뛰기도 했다. 밤이 될 때까지 오락실에서 있다 집에 돌아와도 춘리만 생각했다. 밤에 불끄고 잘 때도 어두운 천장에서는 상상 속의 춘리가 이리저리 점프하며 날아다녔다.
그렇게 몇 달을 오락실에 다니니 정인은 유명한 고수가 되어 있었다. 관객들은 춘리가 가일이나 달심을 농락하며 이기는 모습을 경외감에 차서 바라보았다. 그날도 정인은 학교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오락실로 달려가 백원 동전을 넣고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정인에게 도전한 상대방은 류를 쓰고 있었는데 정인과 높은 오락기계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첫 판에 정인은 류를 완전히 가지고 놀았다. 류가 장풍을 쏘면 제자리 점프로 피했고 류가 앞으로 점프하면 재빨리 뒤로 물러나 착지 지점에 하단 발차기를 걸어 넘어뜨렸다. 오락기 뒤 편의 남자가 씨발 씨발하며 동전을 다시 넣는 소리가 들렸다. 정인은 또 여유있게 그를 눌러주었다. 그는 가일로 바꾸어서 도전해왔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정인은 절대 허점이 큰 동작을 쓰지 않았다. 가일의 소닉붐을 피하며 접근해 아래 발차기를 하고 그대로 던지기로 연결시켰다. 그렇게 몇 번 당한 상대가 긴장해 어쩔줄 모르고 있으면 휙 등 뒤로 날아가 또 던지기를 걸었다.
하지만 이때 정인은 너무나 자기 실력에 도취되어 있었다. 조금은 가상 현실 세계에서 물러나 현실의 분노가 초래하는 씩씩 소리에 주의했어야 했다. 정인은 콤보 어택을 시작했다. 이건 날라차기의 타점을 최대한 늦춰서 때리고 지상에서 연속 공격을 하는 건데 2~3번의 콤보가 성공하면 잘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상대방은 5단, 6단 콤보까지 얻어맞고 있었다.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은 전혀 방어를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잔뜩 열받아 있던 상대는 정인을 두들겨 패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거리의 싸움꾼 이 오락실의 싸움꾼이 된 것이다. 첫 공격은 중단 발차기 였다. 일격에 정인은 오락실 의자 뒤로 털썩 쓰러졌다. 이어서 그가 구사하는 콤보에 때리는 족족 맞았다. 때리면서 “이 X새끼가 얍삽이를 써!”, “X발놈이 그딴식으로 께임을 해!” 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정인의 등 뒤에서 그의 플레이를 구경하던 관객들은 어느새 현실 세계의 폭행으로 바뀐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게 그들에게는 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정인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수그린채 계속 불쌍하게 얻어맞았고, 오락실 동전 교환 아줌마가 와서 말리는 바람에 이 싸움꾼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이승복 어린이 반공 영화를 본 것은 오래 지속되는 영향을 낳았다. 정인은 잔인한 살인마를 그렇게 생생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비가 출몰하는 산골 지역과는 상관없는 수도권 도시에 살고 있었지만 정인은 밤 마다 공비가 집에 들어오지 않을까 무서워했다.
훗날 다 큰 정인은 ‘리더스 다이제스트’ 라는 미국 잡지를 읽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했다. 부모는 아이가 하는 흔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라는 글이었다. 한 질문은 이랬다. 아이가 영화에서 본 괴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부모는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까요? 답은 “아빠 엄마는 이 비싼 집을 공들여 가꾸고 있단다. 여기에 괴물 같은 게 들어오게 하지는 않을꺼야” 였다. 정인은 아이들은 별별 질문을 다 하는구나 게다가 답변도 설득력있지는 않은데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자신도 아이 시절 공산당 공비가 집에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 했던 것을 떠올렸다. 이 생각은 다른 것 하나도 떠올리게 했다.
정인이 보았던 ‘싸이코'(Psycho)라는 영화에 대한 기억이었다. 옛날 영화여서 요란하지 않고 조용한 편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무서운 건 더 했다. 여기엔 죽은 엄마를 대신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싸이코 남자가 나온다. 그는 백골의 시체가 된 엄마를 고운 옷을 입힌 채 잘 앉혀둔다. 가장 무서웠던 건 샤워실에 들어가 기분좋게 샤워하던 여자를 싸이코가 찔러 죽이는 장면이었다. 어린 정인은 옷을 벗고 목욕하고 있을 때 공비가 들어오지 않을까 무척 두려워 했었다. 발가벗은 채로 칼에 난도질 당해 죽는 상상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던가! 정인은 아이 시절 이미 가장 비참한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훗날 그는 이 영화가 인간이 태생 때 부터 가지는 공포의 원형을 형상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민학생이었던 정인은 목소리도 맑고 야한 생각도 안 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성적 에너지는 모양을 바꾸어서 이상한 전기자극을 흘려주고 있었다.
이제까지 말했던 공포나 강박, 유혹은 기억이 처음 기억이 되던 시절 정인의 마음 안에 새겨졌다. 그리고 국민학생 3학년 정인은 유희에 대한 자신의 기호를 처음 확립하기 시작한다. 그건 즐거움에 대한 욕구가 탄압에 대한 반대급부로 생겼기 때문이다. 정인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항상 공부를 시키고 언제나 정인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바빠서 밤 늦게 들어왔다. 방에서 나와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라고 인사하고 다시 방에 들어가는 게 아버지와의 접촉의 정례이자 전부였다. 아버지는 항상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주말에는 집에서 죽은 듯이 널부러져 잠만 잤다. 마치 몸이 쇠이고 바닥이 자석인 것 처럼 누워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나중에 커서 전쟁 같은 직장 생활에 대해 알게 된후 어린시절 아빠가 보여준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무튼 정인에게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달려가 안길 사람은 아니었다.
정인이 달려가 안기고 싶은 대상은 모두 일본에서 건너온 것들이었다. 오락실과 일본 만화책은 낙원 같은 행복을 이 꼬마에게 주었다. 정인은 국가적인 반일감정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다. 원수에게서 맛있는 꿀을 선물 받아 먹는 사람의 심정이었을까? 하지만 죄책감도 점점 희미해졌는데, 꿀은 일등품이었고, 원수가 진짜 원수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인은 고정 도덕을 뒤집을 것을 결심한다. 반일감정을 즐거움에 대한 탄압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미 부모님으로부터 비슷한 탄압을 받는다고 느끼고 있었으므로 권위가 있는 존재는 즐거움의 방해자라고 정의되었다. 이렇게 보면 부모님도 학교도 국가도 모두 억압자 연합이었다. 그들은 항상 옳은 걸 강요하지만 정인이 뭘 재미있어 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공부 안 하면 답답하다고 소리치며 두들겨 패려고 할 뿐. 반면 ‘해야 한다고 하는 것들’ 만 우글우글 있는 학교 담장을 넘으면 즐거움의 보금자리에 갈 수 있었다.
담장 너머에서는 사람이 설탕더미로 변해갔다. 어느 미남 청년 사장이 몰고 다니는 아이스크림 트럭 에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냉동 트럭 안에 들어가 무더기로 쌓인 아이스크림을 같이 핥아 먹었다. 그렇게 계속 핥다 보니 아이들은 어느새 사람이 아닌 아이스크림으로 변해 버렸다. 끝없이 떠도는 서커스단이 동네로 찾아오기도 했다. 단원 중에는 아름다운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서커스 단이 공연을 열면 이 예쁜 소녀를 뺀 다른 단원들은 모두 묘기를 부리다 사고로 죽었다. 단장은 소녀를 유혹의 미끼로 사용해서 관객들을 단원으로 불러 모은다. 이 이상한 서커스단은 이렇게 영원히 동네를 돌아다녔다. 이런 환상의 세계를 정인은 살고 있었지만 어른들은 물론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