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차 미가입 차량 폐차, 중고차 구매 II
전 애마를 폐차 시킨 후 한동안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많이 흡입해 목이 아파지고, 집 – 회사로 싣고갈 짐도 많아져 어쨌든 차를 사기로 했다. 사고로 돈이 많이 깨졌기 때문에 비싼 신차 말고 중고차를 알아보았다.
1. 쓸만한 중고차 차종 검색
잔존가치 높고, 고장 안 나는 차종을 찾았는데, 아래 기사를 참고할 만 했다.
매경 2017 중고차 인기 순위
해외의 중고차 품질 평가 기사는 도움이 더 많이 되었다. ‘컨슈머리포트(Consumer Report)’ 는 미국 소비자연맹 발간의 잡지인데, 기업으로부터 무료 샘플이나 광고비를 전혀 받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전에 노트북 컴퓨터 사는 등으로 검색해 보았는데, 기사 하나도 허투로 쓴게 없어 좋았다.
아래 링크의 컨슈머리포트 기사를 보면 미국 시장에 소개된 다양한 가격대의 중고 차종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기아 소울이 3번이나 중복 추천되어 있던 것, 도요타 렉서스는 거의 전 기종(CT, ES, LS, GS, RX)이 중복 추천되어 있는게 인상 깊었다.
57 Best Used Cars 2025 Consumer Reports
2. 중고차 매물 검색
고장 적은 중고 차종을 검색한 후에는 실제로 차를 판매하는 딜러나 개인을 찾아야 했다. 필자는 SK엔카 를 선택했는데, 일단 타 사이트(카즈, 보배드림)에 비해 매물 수가 더 많고, SK엔카 직영점에서 사면 세금계산서 받고, 카드 결제하는게 정식으로 처리되어서 개인사업자 세금 절세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단 사이트를 통해 원하는 차종을 원하는 가격대로 검색했다. 필자는 무사고 차량만 집중적으로 찾았다. SK엔카의 각 매물 소개 글에서 대부분 사고 여부를 확인 가능했고, 그 내역이 없다면 카히스토리 사이트에서 해당 차의 보험 처리 내역을 유료(한 건당 1천원 정도)로 확인할 수 있다. 100만원 미만의 처리 건으로 범퍼/휀더/문짝/본네트철판 등을 단순 교환한 것은 무사고 차량으로 분류된다.
www.carhistory.or.kr
3. 중고차 딜러, 개인 판매자 만나러 가기
개인 판매자를 만나러 가는 것과 정식 딜러를 만나러 가는 건 준비 과정이 완전히 다르다. 개인 판매자 차량의 경우 <차량등록원부>와 <카히스토리> 확인은 기본으로 미리 한다. 시승에 필요한 자동차보험도 미리 챙겨야 하고, 차량 이전등록도 두 당사자가 같이 시청/구청에 가서 해결해야 한다. 자세한 과정은 아래 사이트에 잘 정리되어 있다.
중고차 개인거래 절차 Tip 초보용
딜러 판매차량의 경우 이보다 훨씬 수월하다. 중고차 시승시 필요한 보험도 중고차 업체 앞으로 걸려있고, 차량 이전등록도 신분증 사본만 맡기면 업체에서 대리로 해준다. 구매할 차량 가격과 이전비(이전등록세금+딜러수수료)를 지불하고, 자동차보험만 가입하면 바로 차를 몰고 나갈 수 있다.
자차 미가입 차량 폐차, 중고차 구매 I
사회 초년병이 되어 처음 구입했던 차는 소형 하이브리드 승용차였다. 파워가 딸리긴 했지만 연비가 좋아서 7년 동안 잘 타고 다녔다. 하지만 결정적 실수를 시작한 건, 5년 동안 사고 한 번 없었다고 자차 가입을 2년 전부터 안 한 것이었다. 자동차보험료가 한 해에 몇 십만원 할인되기는 했다. 하지만 급발진 사고에 말려들어 상기 사진처럼 차가 망가지자 막심한 손해가 시작되었다.
자차 보험이 있으면 차가 망가져 폐차를 하게되어도, 중고차 시세 기준으로 보상을 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자차 미가입 차량 폐차는 소정의 폐차매입비만 받고 말소를 하는 것이다. 나의 애마를 그렇게 고철 덩이로 처리한건 가슴아픈 일이었다. 그래도 돈을 조금이라도 남기려면 그러는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자세한 과정은 아래와 같다.
1. 폐차 전 준비
– 자동차 할부금, 과태료, 벌금 등을 완납 상태로 만듬
– 자동차 등록증, 차주 신분증을 준비
– 자동차 보험 약관상 주행거리 특약 등이 있다면 미리 계기판 사진 찍어두기 (차 폐차 후에는 찍을 수가 없으므로)
2. 폐차 전문 업체 의뢰
– 인터넷에 “폐차 매입” 을 검색해도 되고, 아는 차량 정비소 통해서 업체를 알아볼 수도 있음. 폐차할 때는 폐차하는 비용을 차주가 내는 게 아니고, 폐차 매입 비용을 업체에서 받을 수 있다. 고철값만 치면 40만원 정도, 써먹을 부품이 많은 인기있는 차종의 경우 그보다 더 받는다.
3. 자동차 말소 처리
– <폐차 증명서>, <자동차 등록증> 챙겨서 관할 관청(시/구청/차량등록소) 방문, 자동차 말소 등록을 진행. 폐차 전문 업체에 부탁하면 대리로 해주는 경우도 많음. <자동차말소등록사실증명서> 서류를 받아 보관한다.
– 폐차 1개월 이내에 말소처리를 하지 않으면 50만원 과태료 부과됨. 말소 안 하면 자동차 관련 세금이 계속 날아오기 때문에 당연히 공식 말소를 해야함.
4. 자동차세 환급
– 말소처리 후 관할구청 세무2과에 전화(인터넷 검색하면 번호 나옴). 미리 납부했던 자동차세 환급을 요청(자동차세는 보통 연초에 1년치를 미리 납부함).
– 담당 공무원님이 차량 말소 상태를 확인한 후, 통장 번호를 불러달라고 함. 1~2주 내로 통장으로 환급금액이 들어옴.
5. 자동차 보험료 환급
– 폐차증명서, 신분증, 통장사본 등 서류를 준비한 후 가입 보험사에 전화를 해서 처리. 1년 선납 금액 중 말소처리 된 이후 기간 만큼의 금액을 환급 받을 수 있음.
여기까지 하면 차량 폐차와 말소의 복잡한 과정은 모두 끝난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얼른 중고차를 사서 일상 생활로 복귀하는 좋은 방법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흉터 제거 연고 성능과 가격 – 켈로코트, 더마틱스울트라
시중에서 판매되는 흉터 제거 연고 중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제품은 단 하나이다. <켈로코트>로, 실리콘 코팅으로 피부를 보호해서 흉터를 줄이는 연고이다.
미국 FDA 승인 (K002488) 미국 특허 (5741509)
<더마틱스울트라>도 비슷한 피부 실리콘 코팅 연고인데, 원래 켈로코트와 같은 제조사에서 만들어 다른 이름인 <더마틱스>로 판매하던 제품을, 2007년 판매사인 Valeant사가 제조사를 이전한 후, 비타민 C 성분을 추가해서 더마틱스울트라로 출시한 것이다.
가격은 Original 제품인 켈로코트(6g)가 조금 더 비싸서 인터넷 최저가가 2만2천원 정도, 더마틱스울트라(7g)는 1만8천원 정도이다. 켈로코트는 일반 의원이나 피부 클리닉에서 원내 판매도 하고 있다.
켈로코트나 더마틱스울트라 같이 피부에 바르는 실리콘인 Cyclopentasiloxane(CPX) 성분을 함유한 연고의 의학적 효능은 여러 논문들을 통해 검증이 되어있다. 인용이 많은 순서로 링크 주소를 아래 나열했다.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918339/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989813/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4486716/
논문들의 공통적인 결론은, 아직 대규모의 이중맹검 임상실험이 없었다는 사실은 아쉽지만, 실리콘 겔 타입의 흉터 연고가 비후성(튀어나온) 흉터나 켈로이드의 병변 감소에 효과가 있었으며, 부작용 없이 안전했다는 내용이다. 아래 상세한 사용방법을 정리해 보았다.
1. 적용 흉터
상기 사진과 같은 튀어나온 흉터에 사용
비후성이 아닌 즉 움푹 파여 있는 흉터에는 별 효과가 없음
2. 사용 시점, 기간
일반적인 상처의 경우, 아문 후 부터 사용
(후시딘이나 포비돈 등 연고/소독약을 사용하고 완전히 아물어서 물이나 포비돈이 닿아도 아프지 않은 상태)
수술 흉터의 경우 실밥 제거 후 부터 사용
최소 60일~90일 기간을 사용해야 효과적
3. 사용 방법
깨끗하고 마른 피부에 얇게 펴 바름, 다른 항생제 연고 위에 덧바르지 말기
4~5분 정도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린 뒤 화장하거나 옷을 착용
1일 1회 사용 (운동성이 높은 관절 등의 부위는 1일 2회 사용)
★ 다른 흉터 연고들
콘투락투벡스는 독일의 다국적 제약회사 Merz가 출시한 흉터제거연고이다. 양파 추출물(Extractum cepae), 헤파린(Heparin), 알란토인(Allantoin)을 배합해서 만들었다. 양파추출물의 항염작용, 헤파린(혈액응고방지제)의 붉은기, 멍을 가라앉히는 기능, 알란토인의 수분공급, 침투력 강화의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 하지만 실리콘 겔 타입의 흉터 연고 들에 비해 의학 논문의 뒷받침이 덜 되어 있고, 미 FDA 승인도 없다. 상처 표면이 튀어 나와있지 않고, 붉은 기 없애는 게 주목적이라면 한 번 고려해 보면 되겠다.
모즈구스, 성경으로 사람 치기 – 베르세르크 쉽게 설명 I
미우라 켄타로(三浦建太郎)작의 베르세르크(Berserk,ベルセルク)는 1990년 가을 처음 단행본 1권이 발행된 이래 24년 넘게 37권까지 진행된 중세 판타지 풍의 대작이다.
주인공인 가츠는 전쟁 중 집단 교수형으로 처형된 여인에게서 태어났다. 죽은 어머니의 자궁 밑으로 떨어져 울고 있는 아기를 지나가던 용병부대가 발견하고 부대원 중 한 명의 부인이었던 여자가 불쌍히 여겨 데려가 키운다. 가츠는 양모와 양부를 따라 전쟁터를 전전하며 성장하고 자연스럽게 용병단의 병사가 된다. 가츠는 후에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그리피스가 이끄는 용병단인 ‘매의 단’과 맞닥뜨리는데 그리피스와 일대일 대결에서 패배하고 그의 부하가 된다.
그리피스는 평민 출신으로 여자보다 아름다운 외모에 무적의 검술과 지략을 지닌 남자이다. 그는 패왕의 알이라고 불리는 ‘진홍의 베헤리트’를 가지고 있는데 이 물체는 눈코입이 달려있는 계란처럼 생겼다. 베르세르크의 세계에는 현세(現世)와 연결되는 유계(幽界)가 있고 이곳에는 고드핸드(God Hand)라고 불리는 마왕과 같은 존재들이 있다. 진홍의 베헤리트는 인과율(因果律,causality)에 따라 신의 의지를 받들 인간에게 주어지고 그 소유자를 216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일식의 날 고드핸드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그런데 베헤리트의 힘을 얻어 고드핸드가 되려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리피스는 그 때까지 자신의 부하이자 동료로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했던 매의 단 단원 들을 모두 악마인 사도(apostle)의 제물로 바친다. 이리하여 그리피스는 천 년에 한 번 완성되는 5번째이자 마지막인 고드핸드 페무토(Femto)가 된다.
페무토가 된 그리피스는 검은 매 형상의 갑주를 두른 악마 같은 모습인데, 그는 가츠가 보는 앞에서 매의 단의 단원이자 가츠의 연인이었던 캐스커를 윤간한다. 일식 의식때 제물로 바쳐진 인간은 목에 표적이 새겨지고 모두 사도들에게 잡아 먹히는데 가츠는 한 쪽 팔을 잃고 죽음 직전까지 가지만 정체불명의 해골기사에 의해 캐스커와 함께 구출된다. 해골기사는 가츠와 그리피스의 관계와 비슷하게 첫 번째 고드핸드인 보이드(Void,ボイド)에게 희생된 후 복수를 위해 떠돌던 기사였다.
가츠는 그리피스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고드핸드의 부하 격인 사도들을 찾아 죽이면서 그의 행적을 쫓는다. 가츠는 그리피스가 유계에서 현세로 강림하게 되는 장소인 ‘단죄의 탑’ 근처에서 법왕청에서 파견된 성철쇄 기사단과 만나는데 기사단의 사제 역할을 하는 ‘모즈구스’가 이때 등장한다.
미우라 켄타로는 기독교 성서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작품을 구성했다고 한다. 인간이었다가 고드핸드가 되고 그러다 현세로 강림하는 그리피스는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를 합친 이미지를 지녔다. 사제 모즈구스는 중세의 잔인한 이단 신문관을 연상시키는데 이제껏 봐온 만화의 등장인물 중 가장 독특한 표정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성격 그대로 아주 네모난 얼굴을 가졌다.
표정은 석상 같고 뭘 해도 신의 이름을 얘기한다.
평온해보이지만 실제로는 멀쩡한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 몰살시킨적이 많다.
거기에 원한을 품고 그를 습격한 무리를 성철쇄기사단과
사형집행인처럼 생긴 자기 부하들의 도움으로 몽땅 묶어놓고 아래처럼 말을 한다.
해맑은 미소가 어울려 보이기도 하지만…
모즈구스가 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혹은 자기 뜻을 거스르는 자)를 만나면
어떻게 돌변하는지는 아래를 보면 알 수 있다.
모아이 석상 같던 얼굴에 갑자기 핏줄이 곤두서고 네모난 이빨이 다 보인다.
모즈구스는 성경책(실제 기독교 성서가 아닌 작품 속 종교의 성전)을 휘둘러
불쌍한 남자의 두개골을 함몰 시켜 버린다.
성경책으로 사람을 쳐서 죽이는 모즈구스의 모습은
종교를 징벌 도구로 쓰는 사람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이후 모즈구스는 ‘단죄의 탑’ 주위에 몰려든 난민들을 상대로
더욱더 막장 이단 심문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비트코인의 성공 이유 – 암호화폐 쉽게 설명
최근의 비트코인 가격 폭등 사태를 바라보며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2년전 시작한 중국 주식 투자에서 경험했듯이, 타이밍을 일찍 잡지 못하면 돈을 벌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미 놓친 것 같은 대박을 생각하며 혼자 울적해졌다. 하지만…
상기 그래프는 톰슨-로이터, 블룸버그 등 세계 유수의 금융정보 분석 기관들이, 지난 40년간 일어났던 전지구적 금융자산 버블을 수치화 해서 내놓은 것이다. 이걸 보니 비트코인이 단시간에 얼마나 올랐는지 감이 잘 온다.
2015년 말에 투자해서 지금 뛰어 내렸으면 집도 차도 회사도 같이 달라졌을 텐데.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암호화폐를 공부하며 투자 진입시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블록체인 화폐가 단지 한 번 떴던 투기 수단으로서 사라져 버릴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관리 주체가 없는 송금 – 화폐의 저비용 전지구적 이체
실물 화폐도, 예금이나 증권도 관리 기관이 필요하다. 국립은행, 민간은행, 민간금융투자회사 등이다. 이들이 우리나라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0%가량이나 된다.
MK 증권 : 금융업 올 시총 폭풍성장
은행株선 하나금융 증가율 1위
이렇게 큰 기관들이 빌딩을 임대하고, 설비를 갖추고, 직원들 월급 주고, 나라에 세금을 내고 하는데는 천문학적 돈이 들어간다.
암호화폐의 획기적인 점은 제삼의 관리 주체 없이, 즉 돈 많이 드는 기구 없이 낮은 비용으로 전세계 개인과 개인이 자산 거래를 하는 전대미문의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비트코인은 특정 국가에 상장된 특정 기업을 모체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 창시자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인류 역사상 집도 사고 땅도 살 수 있는 화폐가 실체 없는 민간인으로부터 비롯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황당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발명한 수단이 개인 스마트 기기가 지배하는 시대에 맞는 안전하면서도 획기적인 컨셉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2. 블록체인 (block chain) – 화폐의 신용성 보증
만일 자신이 찍힌 몰카 야동이 <소라넷> 같은 곳을 통해 전국에 유통되고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면, 생각만으로 모공이 송연해진다. 인터넷은 익명으로 야동을 포함한 수 많은 데이터를 무한정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집단 공유의 가능성을 전자화폐의 신용성을 위해 쓴다면 어떨지.
블록체인은 인터넷을 통해 기록되는 공공 거래 장부이다. 암호화폐의 전체 거래 리스트를 끊임없이 업데이트 하게 되는데, 각각의 기본 단위인 ‘분산 노드’의 기록은 독립적으로, 거의 실시간으로 개정되기 때문에 거래 내역을 조작해서 이익을 챙기려 하는 해커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해커 집단이라도 전세계 PC와 스마트 기기에 퍼져 있는 특정 야동을 모두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블록체인은 수많은 개인이 보유한 다른 종류 스마트 기기의 각기 다른 보안 암호와 방화벽에 의해 보호되고 있고, 한 곳의 노드에서 에러가 발생하거나 해커 공격이 들어와도, 다른 다수 노드의 데이터를 통해 정보 신뢰성(전체 장부의 거래 기록)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조작이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먼 미래에 대규모 조작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를 지닌 해커집단이 등장할 지라도, 조작자 보다는 정직한 채굴자가 되는 편이 그들의 이익에 더 부합하게 될 확률이 높다.
3. 채굴 (mining) – 화폐의 가치하락 방지
비트코인을 얻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이다.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국가 공인 화폐를 통해 구매하거나, 비트코인 거래 샵에서 현물과 교환하거나, 고성능 컴퓨터를 돌려 채굴(mining) 하는 것이다. 작업증명이라고도 불리는 ‘채굴’은 컴퓨터를 통해 복잡한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다. 수학문제의 난이도는 채굴량이 증가할 수록 계속 높아지고 있다. 장난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 점점 발행량이 줄고 자연스레 화폐 가치하락(인플레이션)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거품론을 주장하는 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비트코인은 실체가 없는 게임머니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표적 실물 화폐인 미국 달러화도 1971년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로는 국립은행이 양적완화가 필요하면 더 찍어내는 상징적 신용 담보물로 기능하고 있다. 금본위제가 아예 없었던 우리나라 원화는 더더욱 상징적인 종이 화폐이다. 국가가 존립하면 그 가치가 인정되고, 전쟁으로 망하게 되면 가치가 다시 종이 가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관리주체 없이, 인터넷 서버만으로 돌아가는 비트코인은 어떤 가치 폭락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까?
4. 암호화폐 경쟁자들 – 비트코인의 운명을 결정하리라
이더리움(Ethereum)은 비트코인에 자극을 받아 탄생한 야심찬 프로젝트이다. 똑같이 블록체인에 기반하지만 화폐(코인)의 거래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전자 계약 혹은 거래 내역을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프로토콜로도 기능한다. 이더리움이 대중화된다면, 개인이 계약 내용을 정하고 발행한 채권을 P2P로 거래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대형 은행이나 금융투자기관이 들으면 싫어할 미래이다. 그래서인지 JP 모건,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의 대기업들까지 이더리움 기반의 소프트웨어 네트워크에 테스트 협력사로 참여하여 실용성을 검증하고 있다. 막을 수 없는 대세로 판단된다면 그들로서도 지분참여를 해서 이익을 지키려 할 것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신개념이 발명되었으니 이더리움 이외에도 다른 무수한 경쟁자들이 등장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된다. 이들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암호화폐의 양적 팽창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생태계가 몰락할지, 아니면 다른 돌파구를 찾을지는 오직 시간이 지나보아야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일본 동경대 교수이자 대장성 관료 출신의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作 <가상통화 혁명>의 책구절을 옮겨보겠다. 2014년이라는 이른 시간(비트코인 시세 폭등 1년전)에 시대흐름에 민감한 사람은 이미 이런 선경지명을 가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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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은 비트코인이 중앙은행의 관리를 받지 않으므로 통화일 수 없다고 말한다. 또 금 같은 물적 자산의 보증이 업기에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비트코인은 지금까지 인류가 축적해온 통화의 상식을 거스르는 존재이며, 따라서 언젠가는 파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의 보증이나 중앙은행의 관리가 통화의 필요조건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예금통화는 중세 이탈리아의 환전상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때 이미 통화는 금화가 아닌 상태였다. 물건에서 정보로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17세기까지는 중앙은행이 없는 통화 제도가 계속되었다.
…IT 혁명 자체가 회귀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의 세계, 즉 소규모 독립 자영업자의 경제로 회귀하는 움직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대의 위대한 순환이 또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그때까지의 가내수공업을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바꿔놓았다. 동력을 사용해 기계를 움직이게 되면서 공장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다양한 산업에서 단일 기업이 원료 조달부터 최종 제품의 제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을 직접 하는 수직통합 방식이 채용되어 대기업이 경제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IT는 원칙적으로 이런 움직임을 역전시킬 수 있다. PC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작은 조직이나 개인도 기존의 대형 컴퓨터와 같은(혹은 그것을 능가하는) 계산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인터넷이 통신 비용을 크게 줄여준 덕분에 수직통합을 분해해 수평분업 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집중에서 분산으로 이행한다는 의미에서 과거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목적은 낡은 경제로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뒷받침된 분권 경제의 구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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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통화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동방 박사의 방문’을 떠올렸다. 마태복음(2장 1~13절)을 보면 예수의 탄생을 안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으며 베들레헴에 도착해 세 가지 선물을 예수에게 바쳤다. 선물 중 두 개는 약이었고 하나는 황금이었다.
나는 왜 가상통화에서 ‘동방 박사의 방문’을 떠올렸을까? 그 이유는 가상통화가 IT 혁명의 세 번째 선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선물은 개인용 컴퓨터이고, 두 번째 선물은 인터넷이다. 이 두 가지는 이미 세계를 크게 바꿔놓았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경제활동에는 항상 송금이라는 행위가 동반되는데, 이 송금과 관련해 기존의 체제가 계속되는 한 앞에서 이야기한 ‘산업혁명 이전으로 회귀’는 완전한 형태로 실현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컴퓨터 기술의 결정체인 새로운 통화가 세계를 바꾸려 하고 있다. 이 혁명이 성공한다면 현대의 동방 박사는 방문한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2014년 5월 노구치 유키오
피를 흘리지 않고 사는 꿈 – 채식주의자, 한강
도덕이나 규범도 힘의 균형 하에 작동한다. 힘 차이가 너무 나면 도덕은 무시되고, 힘센 쪽이 규범을 넘어 상대를 폭행한다. 재벌이 술에 취해 변호사를 때리고, 마카다미아 때문에 움직이는 비행기를 세우고 사무장을 내리게해도 처벌 받지 않는다. 만약 재벌 회사가 망해서 힘의 균형이 맞춰지면 그때는 제대로된 벌이 부과된다. 만약 힘의 차이가 더 현격한 사람과 동물의 관계라면 어떨까? 이 경우 도덕이라는 것은 완전히 한 쪽이 정한다. 철창 속에 사육하다가 필요할 때 꺼내 죽이고, 피와 살을 먹기 편하게 포장한다. 맛있는 제품이라고 방송국 광고도 한다. 고기를 먹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되지만, 분명 잔인하고 이기적이면서, 천연덕스럽게 처리되고 있다.
사회에서 인간 관계는 정도가 다를 뿐 명령과 복종, 폭력과 피폭력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 쪽은 이용하고, 다른 한 쪽은 이용당한다. 즉 인간 동물 관계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이런 현상들에 민감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폭력이 수반된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주의자’의 길로 들어가기로 한다. 단순히 건강을 위한 게 아니고 ‘꿈’에 의해 살아가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꿈 속에서 그녀는 육식하는 동물이 아니라 평화로운 식물이 되었고, 그래서 깨어있는 일상에서도 속옷을 안 입고, 고기도 안 먹고, 광합성 하도록 햇볕을 쬐며 살아간다. 하루는 영혜 부부가 남편 회사의 사장이 주최한 부부동반 모임에 가게 되는데 아래와 같은 이상한 반응을 얻고 만다(당연하게도).
아까부터 아내의 젖가슴을 흘끔거리고 있던 전무 부인이 말했다. 마침내 그녀의 화살은 아내에게 직접 날아왔다.
“채식을 하는 이유가 어떤 건가요? 건강 때문에…… 아니면 종교적인 거예요?”
“아니요.”
아내는 이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전혀 의식하지 않은 듯, 태연하고 조용하게 입을 떼었다. 불현듯 소름이 끼쳤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꿈을 꿨어요.”
나는 재빨리 아내의 말끝을 덮었다.
“집사람은 오랫동안 위장병을 앓았어요. 그래서 숙면을 취하지 못했죠. 한의사의 충고대로 육식을 끊은 뒤 많이 좋아졌습니다.”
…정작 아내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내가 나와의 잠자리를 의도적으로 계속 피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 그녀는 숫제 청바지 차림으로 잤다 – 우리는 아직 겉보기에 정상적인 부부였다. 하루가 다르게 그녀가 여위어가고 있다는 것, 새벽에 내가 알람시계를 더듬어 끄고 몸을 일으켜보면 어둠 속에서 눈을 치켜뜬 그녀가 꼿꼿한 자세로 누워 있다는 것이 예전과 다를 뿐이었다. 회사에서 주선한 외식 후 사람들은 한동안 나를 미심쩍게 대했으나, 내가 성사시킨 프로젝트가 괄목할 만한 수입을 거둬내자 모든 것이 묻혀지는 듯했다.
영혜는 육식을 거부한 이래로 햇빛이나 나무나 물과 비슷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꿈’을 통해 그런 존재로 접어드는 건데, 비정한 세상에서 상처받은 순수한 영혼이 꿈으로 도피했다고 볼 수 있다. 영혜는 자기 환상을 남편 회사 높은 사람들에게도 천연덕스럽게 얘기한다. 꿈에 완전히 동화되어 버려서 그렇다. 그녀의 피를 흘리지 않고 사는 꿈 은 <채식주의자> 첫 번째 단편 말미에서 병원 분수대(물) 옆에서 상의를 모두 벗고(햇빛 쬐려고) 앉아 있는걸로 표현된다. 정신병 아니면 노출증 환자의 행동이라고 보였지만, 스스로에게는 광합성을 하고 사는 생명체 ‘나무’가 된 것이었다.
영혜와 다르게 현실적이었던 아버지, 어머니, 남편 등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경악해서 그녀를 정상적으로 돌려놓으려 한다. 영혜의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군인이었고, 어머니도 가족을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아래 어머니의 대사를 읽어보자.
네 꼴을 봐라. 지금. 네가 고기를 안 먹으면, 세상사람들이 널 죄다 잡아먹는 거다. 거울 좀 봐라, 네 얼굴이 어떤가 보란 말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영혜는 ‘약육’을 거부하고 있으니 세계에 남아있을 수가 없다. 덕분에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망가진 가전제품이 버려지는 것처럼”(작품 속 표현) 이혼 당한다. 그리고 언니인 인혜(지우 엄마)의 집에 얹혀 살기 시작한다. 인혜의 남편, 즉 형부는 채식주의자 영혜 주위에서 유일하게 현실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색다른 심미안을 가졌는데, 다른 사람들은 보통 변태성향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몽상적 예술 작가로서, 성실하게 가게를 운영하는 아내 인혜 덕에 먹고 살고 있다. 작품 속에서 그는 영혜의 남편과 정확히 대비되는 성격으로 나타난다. 아래는 이 남자가 이전 동서를 회상하며 한 생각이다.
그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제 동서라고 부를 필요도 없게 된 그녀의 옛 남편의 얼굴을 떠올렸다.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가치 외의 어떤 것도 믿지 않는 듯 건조한 얼굴, 상투적이지 않은 어떤 말도 뱉어본 적 없을 속된 입술이 그녀의 몸을 탐했을 거란 상상만으로 그는 일종의 수치를 느꼈다.
상기 회상에서도 느껴지듯, 영혜 형부는 일상의 틀을 벗어난, 속되지 않은 예술 작품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나이들어 배 나온 아저씨가 되도록 아무에게도 작품을 인정받지 못해 우울해 했다. 어느날 그런 울적을 아득히 날려버릴 흥분을 찾게 되는데, 그 대상이 처제 영혜의 엉덩이에 있는 ‘몽고반점’ 이었다. 우연히 자기 아내에게 처제가 아직도 몽고반점을 지니고 있다는 걸 들은 순간부터 그는 광폭한 열망을 뿜게 된다. 자해를 하고 정신병원 치료를 받고, 이혼 당하고 나서 집에 얹혀 살게된 처제를 주인공으로 어떤 표현 예술 비디오를 찍기로 했던 것이다. 채식주의자 영혜는 이 뜻밖의 제안에 쉽게 응한다.
“옷을 벗고, 몸에 물감칠을 할 거야.”
여전히 조용한 시선으로 그를 건너다보며 그녀는 입을 떼었다.
“……그리구요?”
“그러고 있으면 돼. 촬영이 끝날 때까지.”
“물감칠을…… 몸에 한다구요?”
“꽃을 그릴 거야.”
그녀의 눈이 일순 흔들린 것 같았다. 잘못 본 것인지도 몰랐다.
영혜 형부의 꿈은 리비도와 결합된 예술 창조 욕구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영혜 혼자의 나체 예술 비디오를 찍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도 꽃무늬 페인팅을 하고 처제와 함께 성행위를 하는 동영상을 촬영하게 된다. 당연히 아내에게는 사실을 숨기고 예술 작업하느라 외박한다고 둘러대었다. 퇴폐에 패륜이 결합된 행위 예술인 셈이다. 웃기고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작품의 중요한 테마를 품고 있는 것 같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리비도 즉 성욕은 모든 인간 에너지의 근본이다. 인간이 성욕만을 뿜고 행동한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고, 이 본능적 에너지를 고차원적 창조욕이나 이타행위로 전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리비도도 에너지이므로 에너지보존법칙(열역학 제1법칙)을 따른다.
영혜의 형부는 탈모와 복부 비만을 멋쩍어하는 중년 아저씨이다. 아내 인혜와 벌써 두 달 넘게 부부관계를 가지지 않고 있고, 따로 성매매를 하는 것도 아니니 에너지는 다른 곳으로 흘러가야만 했다. 그가 그냥 처제와 불륜관계를 가졌다면 훨씬 이해하기 쉬운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로서(인간 본연 에너지를 창조로 푸는) 그는 몽고반점이라는 미학적 상징에 창조 에너지를 쏟고 싶어졌다.
작품 속에서 몽고반점은 식물적이고 원초적인 이미지로 묘사되어 있다. 인간의 몸에 있지만 태고적 광합성의 흔적을 연상시키는 옅은 초록색의 반점이었다. 그는 성인이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처제 몸에 바디페인팅을 하면서 아래와 같이 생각한다.
붓이 스칠 때마다 간지러운 듯 미세히 떨리는 그녀의 육체를 느끼며 그는 전율했다. 그것은 단순한 성욕이 아니라, 무언가 근원을 건드리는, 계속해서 수십만 볼트의 전류에 감전되는 듯한 감동이었다. … 마침내 오른쪽 허벅지를 지나 가느다란 발목까지 이어지는 긴 줄기와 잎사귀를 완성했을 때 그의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형부는 원초적 성욕도 아닌, 그렇다고 세속적인 욕구도 아닌 근원적인 에너지에 다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나긴 세월 제대로 된 예술을 만들지 못한 좌절, 깊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내와의 매일의 생활 그리고 가정에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는 죄책감 등 깊은 우울을 녹여 버리는 행위였다. 그의 예술 작업 대상 영혜는 형부의 의도에 잘 따라온다. 그녀는 자꾸만 자기가 나무가 되는 ‘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꽃이 몸에 그려져 있으면 그 세계에서 벗어나 본연의 ‘동물’로 돌아온 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형부와의 실제 남녀 교합을 동반한 예술 작업에 거리낌 없이 몰입한다. 이 둘은 마지막에 이르러서 인혜에게 모든 작업 과정과 결말을 들키게 되는데 아래와 같은 상황이다. 교접을 마친 영혜는 다시 나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비워진 존재가 되었다.
“구급대를 불러놨어요.”
“뭐라구?”
아내는 희끗하게 질린 얼굴로, 다가오는 그를 피해 뒤로 물러섰다.
“영혜도, 당신도 치료가 필요하잖아요.”
그녀의 말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수초의 시간이 걸렸다.
“….나한테 정신병원에 들어가라는 거야?”
그때 매트리스 위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도, 아내도 숨을 멈췄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가 시트를 걷어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그는 보았다.
“나쁜 새끼.”
아내는 낮은 소리로, 눈물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아직 정신도 성치 않은 애를…… 저런 애를.”
아내의 젖은 입술이 파들거렸다.
그제야 아내가 온 것을 안 듯 처제가 멍한 얼굴로 이편을 건너다보았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시선이었다. 처음으로 그는 그녀의 눈이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이런아이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이 담긴,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눈이었다. 아니, 어쩌면 어린아이도 되기 이전의, 아무것도 눈동자에 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