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홍조 – 레이저 치료 이전에 시도할 것들

 

http://www.goodhousekeeping.com/beauty/makeup/tips/a32636/conceal-redness-rosacea-with-makeup/

 
현재 얼굴 홍조의 치료에 가장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피부 레이저 기계는 큐테라(Cutera)사의 엑셀V 이다. 이 레이저의 구매가는 1억2천5백만원 정도. 지방의 작은 아파트나 BMW 5시리즈 보다도 비싸다. 하지만 대형 피부 클리닉들은 이 기기를 보유하고 있고, 당연히 시술비는 엄청 비싸다… 그렇다면 얼굴 홍조를 좀더 이성적인 가격에 치료할 방법은 없는가? 당연히 있다.

MAYO Clinic Patient Care & Health Information Rosacea

 
상기 링크는 존스홉킨스(Johns Hopkins)와 함께 미국 최고의 대학병원으로 평가받는 메이요 클리닉의 얼굴 홍조(Rosacea) 관련 정보 페이지이다. 주요 내용을 부가 설명과 함께 옮겨 보겠다.


★ 얼굴 홍조의 진단

얼굴을 붉게 만드는 주요 질환은 홍조(Rosacea) 말고도 여드름(acne), 건선(psoriasis), 습진(eczema) 혹은 루프스(lupus) 등 많이 있다. 먼저 의사의 시진(視診)으로 정확한 병변 종류를 판명 받는다.


★ 얼굴 홍조의 약물 치료

1. 미르바소 Mirvaso 연고
성분명은 Brimonidine 이다. 교감신경계에 작용하는 알파 항진제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듯이 교감신경이 항진되면 심장이 뛰고, 얼굴이 발개지고, 입이 마르고, 소화가 멈춘다. 부교감신경이 항진되면 그 반대가 된다. Brimonidine은 얼굴 피부의 신경계에 작용해서 혈관을 수축시키고, 따라서 홍조를 완화시킨다. 얼굴에 바른 후 12시간 이내에 효과가 나타나는 장점이 있지만, 효과를 계속 보려면 계속 정기적으로 발라줘야 하는 단점이 있다. 미르바소는 의사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약국 판매가는 3만5천에서 4만원 정도이다.
 
2. 먹는 항생제
사람 피부에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서식할 수 있고 그래서 유발되는 대표적 질환이 여드름(propionibacterium acne균 감염)이다. 항생제는 피부의 세균을 죽이고, 염증 반응을 줄임으로써 홍조 치료 효과를 낸다. 대표적으로 쓰이는 항생제는 Doxycycline(바이브라마이신)이나 Minocycline(미노씬) 혹은 Metronidazole(후라시닐)이다. 이들 항생제 요법은 성공적인 홍조 치료 케이스로 2017년 추계 대한미용성형레이저학회에서 두 명의 연자 분에 의해 발표된 바 있다. 치료 완료 기간도 2~3주 정도로, 피부 레이저에 비해 큰 비용대비 효과가 있다. 동네 내과/피부과/가정의학과에서 처방 가능하다.
 
3. 로아큐탄 Isotretinoin
이상의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홍조에는 여드름 치료약으로도 흔히 쓰이는 로아큐탄 정을 써볼 수 있다. 약 성분인 Isotretinoin은 비타민A에서 추출된 것으로, 표피 재생 작용이 있고, 광노화 방지에도 효과적이다. 이 같은 효과 때문에 유명한 항노화 화장품 OBAGI Nu-Derm에도 주요 성분으로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다만 얼굴을 건조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고, 태아 기형을 유발하므로 임신 중에는 절대 복용 금기이다.


★ 홍조를 막는 생활습관

진료실에서 피부 트러블 상담을 해보면 세안을 너무 세게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클렌징폼을 커다랗게 손에 짜놓고, 마구 얼굴을 문질러 기름기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습관은 피부 트러블 발생과 노화에 혁혁한 공을 한다. 메이요클리닉 사이트에서도 얼굴을 너무 닦지 말고(Don’t rub or touch your face too much), 비누 성분이 없는 세안제를 사용하며(Use a nonsoap cleanser), 보습제를 자주 바르라고 하고 있다(and moisturize frequently).
 
정말 중요한 원칙이다. 필자도 세안시 비누나 클렌징폼을 전혀 안 쓴지 2년이 넘었지만 아무 일도 없고, 피부가 더 좋아진다는 걸 발견하고 있다. 다만 세안 후 보습제를 잘 바르고, 외출시 선크림을 꼭 사용해야 한다.


★ 그렇다면 레이저는 언제?

연고나 약을 먼저 써보고, 생활습관을 모두 바꾼 후 시도해 보면 된다. 요즘 피부 클리닉의 난립으로 레이저 시술 가격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괜찮은 기기로 홍조를 치료하는 데는, 1회 시술에 최소 5만원 이상 비용이 든다. 게다가 1회로 완치되는 경우는 없고 보통 5회 이상 티켓팅을 한다.

성병 필수 검사 종류, 국민건강보험 적용 가격

어느 날 일어나 출근/등교를 준비하며 샤워를 하는데 아랫도리를 보니 허연 농이 흘러내리거나, 사마귀가 울퉁불퉁 튀어 나온게 보인다면 분명 충격에 빠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성병에 걸리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이럴 때는 공포의 바다에서 헤매지 말고 아래와 같은 이성적 생각을 해보자.


★ 성기에서 농이 나와도 성병이 아닌 것이 있다.

대표적으로 세균성질염 Gardnerella와 곰팡이 질환 칸디다질염이다.

Gardnerella vaginalis 라는 세균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염은 아주 심한 비린내가 나는 물 같은 흰색/회색 분비물이 나오는 게 특징이다. 여성 질염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원인은 위험한 성접촉과 무관하다. 후라시닐정(Metronidazole 250mg 2T BID) 7일 복용으로 쉽게 치료된다. 일반 가정의학과/내과/산부인과에서 처방 받을 수 있다.

Candida albicans 라는 곰팡이로 인해 생기는 칸디다질염은 덩어리진 흰색 굳은 우유모양 분비물을 낸다. 역시 성접촉과 무관하게 발생하며, 플루코나졸(Fluconazole 150mg) 경구 단회 요법(임신 중에는 복용 금기)으로 치료된다.


★ 반대로 성병에도 무증상 감염이 많다.

클라미디아감염증(Chlamydial Infections)이 대표적이다. 의료인이 아니라면 질병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매년 질병관리본부 통계에 잡히는 성병의 30~4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전염되어도 여성 대부분(70-80%)에서 무증상 감염을, 남성에서도 50%정도는 무증상 감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자신이 성병 걸린지도 모르고 생활하게 된다.

그러다 배우자/이성친구 어느 쪽에서 증상이 발생하고 큰 사단이 벌어진다. 따라서 스스로 위험한 성접촉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동네 병원을 찾아 먼저 검사부터 받는 게 안전하다. 요즘은 전문 의료검체 위탁 검사기관이 발달해 있어, 의원급에서도 소변/혈액으로 하는 필수 성병 검사를 모두 받을 수 있다.


★ 꼭 받아야 하는 성병 검사의 종류

질병관리본부 <2016년 감염병 감시연보> 통계 그래프

상기 우리나라 성병 통계 그래프에서 알수 있는 것처럼, 클라미디아감염증과 임질(淋疾, Gonorrhea 세균 감염), 성기단순포진(헤르페스 바이러스 감염, 성기에 둥그런 사마귀), 첨규콘딜롬(HPV 바이러스 감염, 성기에 울퉁불퉁한 사마귀)등은 정말 흔한 성병이어서 이들에 대한 의사 진찰과 전문 검사가 필요하다.

매독이나 에이즈(HIV)는 각각 한 해 전국에서 1,000명 정도의 새 환자가 발생하는 비교적 드문 질환이지만, 진단을 놓치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같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

성병 진단에 대한 기록이 남겨지는 것을 꺼려해서 일부러 국민건강보험 비적용에 의무 기록 없이 검사받기 원하는 환자 분도 많다. 이런 경우 기본 요분석검사(Urinalysis)를 해서 백혈구와 세균뇨 여부를 확인하고, 경험적 항생제를 처방받을 수도 있다(의학적으로 권장하지는 않음). 그러면 건강보험 상병 기록에서 단순 요로감염으로 처리되어, 향후 어떤 방법으로도 성병 여부가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아래에 성병 필수 검사 종류와 보험 가격을 정리해 놓았다.


1. 임질균 배양 검사 (소변 검체)
· 임질의 대표적 증상은 성기 끝에서 고름이 나오는 것.
· 소변 안의 균을 배양해서 확진.
· 항생제감수성검사(어느 항생제가 가장 효과가 있는지 확인)를 할 수 있어 유용.
· 의료보험 단가 13,260 원
 
2. 클라미디아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검사 (소변 검체)
· 여성에서 많은 경우 무증상이지만, 성교통이나 배뇨통을 일으키기도 함.
· 남성에서는 배뇨통이나 고름 증상을 보임.
· 클라미디아는 배양이 잘 안되는 특수 균주이기 때문에 PCR 검사를 시행.
· 의료보험 단가 32,820 원
 
3. 매독 정밀 검사
1) RPR 정밀 (혈액 검체)
· 대표적 비트레포네마 검사(Non-Treponemal Test), 매독 감염의 1차 선별 검사
· 의료보험 단가 2,030원
2) TPLA 정밀 (혈액 검체)
· 트레포네마 검사(Treponemal Test)로 민감도와 특이도가 높아 매독의 확정 진단 검사로 쓰임
· 의료보험 단가 9,780 원
 
4. 에이즈 검사 HIV Ag/Ab (혈액 검체)
·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증에 대한 1차 선별 검사.
· 결과가 양성인 경우 보건환경연구원 제출용 확진검사를 의뢰해야 함.
· 의료보험 단가 11,300 원

이방인, 알베르 카뮈作 – 죽음도 생과 같다면

자기비하는 괴로운 생각 같지만 실은 중독성이 있다. 막장에 몰리면 유머 같은게 생겨서 그렇다. 일본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년~1948년)는 자신의 삶의 궤적을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으로 그렸었다. 소설 제목이 어울리게 가출, 불륜, 알콜중독, 마약중독, 정신병원 폐쇄병동 감금, 중간중간 총 네 차례 자살시도로 이어진 생활을 하다가, 기생과의 동반자살 성공으로 죽었다. 하지만 자기비하의 끝이 우울만은 아니어서, 대표 장편소설 <사양斜陽>에서 주인공 여성의 입을 빌어 “나는 확신한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반면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삶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탐구한 끝에 아래와 같은 문장을 남겼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그는 자살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철학적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안 하기로 했다. 이런 긴 사색의 결과를 <시지프 신화>, <이방인> 등의 저작으로 표현했다. 카뮈는 젊은 나이(만44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영광된 삶을 살다가 교통사로로 사망했다. 이것도 참 부조리 했다. “자살은 아니다” 라는 결론을 위해 그렇게 노력한 사람이 사고로 죽다니.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작가 카뮈의 성격이 투영된 존재로, 내성적이면서 무감각한 태도를 지녔다. 작품 속 대사처럼 세상에는 “아무 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라고 생각해서다. 뫼르소는 양로원에 나가 살던 어머니가 죽은 걸 알고도 슬퍼하지 않는다. 대신 장례식장에 가서 담배를 피고 사탕을 먹다가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그는 이런 행동을 눈길 끌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감정이 그에겐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사회의 이방인으로 되었다.

실은 사람은 모두 의지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아기일 때 부터 엄마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명 자체를 잃기 때문이다. 바닷가 모래 사장의 아기 거북이는 알에서 나오자마자 바닷물 쪽으로 마구 기어간다. 다른 어른 거북이가 “바닷물에 빨리 안들어가면 너는 죽어” 라고 소리쳐 준적도 없지만 아기 거북이는 본능적으로 기어간다. 인간도 비슷하게 아기는 엄마를 찾고 칭얼대도록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그러니 뫼르소가 사회성도, 가족과의 유대도 잊고 이방인이 된 것은 분명 길고 긴 세월 좌절과 배신과 분노와 허무를 견디며 조용히 그렇게 된 걸로 보인다. 비정한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장기간의 스트레스가 흔한 일이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공장에서 찍혀나오듯 사회에 나오고 있다. 그 중 이방인 기질이 특출난 사람은 어떤 사건을 일으키고 신문과 언론에 싸이코패스 범죄자로 낙인찍혀 등장한다. 뫼르소도 살인을 저지르고 사회에서 같은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범죄자와는 뛰어나게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건 그가 진지한 사색을 통해(작가 카뮈처럼) 삶의 방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확립한 사람이고, 그걸 지키느라 자기 목이 잘리는 길로 끌려 갔기 때문이다. 뫼르소에게 있어 생의 이념은 사랑이나 혁명, 잘 먹고 잘 살기 혹은 사회적 성공 같은게 아니었다. 순수한 에너지, 순수한 리비도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게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아래 단락들을 읽어보자. 뫼르소를 사랑했던 동네 여자 마리와의 일화이다.

어제는 토요일이라 약속했던 대로 마리가 찾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몹시 정욕을 느꼈다. 마리가 붉고 흰 줄무늬가 있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가죽 샌들을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탄력 있어 보이는 젖가슴이 완연히 드러나 보였고, 햇볕에 그을어 갈색이 된 얼굴이 꽃처럼 아름다웠다.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요?” 하고 마리는 말했다. 나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정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고 설명을 했다. 게다가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녀 쪽이고, 나는 그저 승낙을 했을 뿐이다. 그러자 마리는, 결혼이란 건 중대한 일이라고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아니야.” 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자기와 같은 관계로 맺어진 다른 여자로부터 같은 청혼이 있었어도 승낙을 했을 것인가. 다만 그것만이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리는 자기가 나를 사랑하는지 어떤지를 생각해 보는 듯했으나, 나는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길이 없었다. 잠시 또 묵묵히 있다가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이상스러운 사람이라고, 아마 그 때문에 자기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내가 싫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더 할 말이 없어 잠자코 있노라니까, 마리는 웃으면서 내 팔을 붙들고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언제든지 그녀가 원한다면 곧 결혼을 하자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장의 제안을 이야기해 주니까, 마리는 파리를 알고 싶다고 했다.

예쁜 여자에게 성욕은 느끼지만 사랑은 느끼지 않는다. 여자가 그에 대해 질문하면 솔직하게는 대답한다. 이상한 것은 마리가 그런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된 것 같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연인을 대할 때 성욕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래서 자신의 사랑이 순수하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강할수록, 길어질 수록 위선스러워진다. 뫼르소가 순수하다고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는 누구나 느끼는(어린이 제외) 가장 강렬한 열망에 편견이 없으며, 사회적 고정 관념에는 무감각하다. 작가 카뮈의 설명에 따르면 뫼르소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이런 것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사람이다.

뫼르소는 우연한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부 검사 및 대중들로부터 한껏 비난 받게 된다. 살인 자체는 사소한 시비 끝에 난 우발로 해석될 수 있었지만, 모친상 때 슬퍼하지 않은 것, 모친상 다음 날 여자랑 잤다는 사실이 같이 어울리면서 완전히 싸이코패스로 찍힌다. 하지만 뫼르소는 항상 “세상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느끼고 내면 에너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죽은 것도, 그 다음 날 여자랑 동침한 것도 스스럼 없이 느꼈었다. 그는 사회를 통해 만들어진 이방인이었고, 정직한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싸이코 취급한다.

다시금 종이 울리고 피고석 문이 열렸을 때 나에게 밀려온 것은 장내의 침묵, 그리고 그 젊은 신문기자가 눈을 옆으로 돌린 채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그 야릇한 감각이었다. 나는 마리가 있는 쪽을 보지 못했다. 시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장이 나에게 이상스러운 말로, 나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되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히는 감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 어떤 배려의 표시 같은 것 이었다고 생각된다. 간수들은 나에게 아주 부드럽게 대했다. 변호사는 나의 손목 위에 그의 손을 올려놓았다. 나는 이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재판장이 나에게 무엇이든지 덧붙여 말할 것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깊이 생각해 보았다. “없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내가 끌려 나온 것은 그때 였다.

사람을 법으로 심판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공적 힘의 공통적인 목소리는 왜 그렇게 사느냐, 너는 옳지 않다 똑바로 살아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결국 같은 차원의 세계에 산다. 자기에게 옳고 진리인 것이 항상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수는 없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신을 믿던 시대에는 그런게 통했다. 유럽에서는 기독교 사상이,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적 도리가 그 절대적 믿음이었고, 그걸 어기는 개인이나 집단을 모조리 죽이기도 했다. 뫼르소는 하지만 믿지도 않는 사회 이념에 맞게 자기를 꾸미지 않았고(어머니가 죽은 게 실은 너무 슬펐지만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재판관님! 이라고 하지 않음), 순간의 자연과 현상에 충실했다(그래서 장례식 다음날 마리랑 자고, 살인 재판이 진행되는 중간에도 밖의 거리의 뜨거운 바람과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소리에 시적 감상을 느낌). 하지만 그게 보통 사람들에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결국 사형수가 되고 만다.

그는 단두대가 설치된 광장에 주인공으로 끌려갈 날만 기다리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진지한 사색을 계속한다… 그리고 마침내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서 생과 죽음이 어색함도 공포도 없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현상을 체험한다. 세상이 자신과 닮아서 형제처럼 이어져 있는 느낌, 다르게 말하면 자기 마음의 소리와 외부 세계의 소리가 박자가 완전히 맞은 채 합주되는 것 같은 상황이다. 사형수를 위로하러 방문했던 카톨릭 사제와의 대화에서 시작해 그는 이런 생사生死의 초월을 극적으로 외쳤다. 읽으니 눈물이 났다.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은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그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그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나와 더불어 그처럼 나의 형제라고 자처하는, 특권 가진 수많은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제는 그들을 진정시키고, 한동안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히 괴어 있었다. 그는 마침내 돌아서서 사라졌다.

그가 나가 버린 뒤에,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침상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눈을 뜨자 얼굴 위에 별이 보였으니 말이다. 들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밤 냄새, 흙냄새, 소금 냄새가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잠든 그 여름의 그 희한한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근처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시간 같았었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이 틀림없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었다.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안정성과 부작용 – 가다실과 서바릭스 접종 가격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인 <가다실>과 <서바릭스> 주사제는 2016년 6월부터 국가필수예방접종(NIP)에 포함되어 무료 접종되고 있다(만 11,12세 여성 대상).
 
카모마일 의원에서도 시행 중인데 지금까지 느낀 바는 이렇다. 전체 여성 발생 암 중 7위(2014년 국가암정보센터 집계 기준)인 자궁경부암을 주사를 통해 예방하는 획기적 컨셉에다, 돈 주고 맞으면 상당한 고가(1회 15만원, 총 3회 접종 45만 이상)인 주사제를 국가에서 무료로 풀고 있지만, 대중의 관심(특히 사춘기 딸을 둔 어머니들의)은 정말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백신이 정말 획기적인 건지, 무료면 꼭 맞아야 하는지, 무료가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자궁경부암 무료 백신은 좋은 치료

암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고 그래서 일괄적으로 예방하기가 어렵다. 암 유발 요인 중에는 바이러스도 있는데, B형이나 C형 간염바이러스가 간세포암을,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pstein-Barr virus)가 버킷 림프종(Burkitt lymphoma)을 일으키는 게 대표적이다.
 
1976년 독일의 미생물 학자인 하랄트 추어 하우젠(Harald zur Hausen)은 인간 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virus;HPV)가 여성 자궁경부암을 일으킨 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06년 미국 FDA는 MSD(Merck & Co)사의 가다실(Gardasil)을 HPV 예방접종 주사제로 승인했으며, 2007년도에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GSK)사의 서바릭스(Cervarix)를 승인한다.
 
하랄트 추어 하우젠은 2008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는데, 연구 발표가 1976년이고, HPV 백신이 처음 나온게 2006년이었으니, 자궁경부암 예방에 대한 실용적 업적을 평가받은 것이다. 그래서 가다실/서바릭스 백신에 회의적인 보호자 분을 만나면 이건 노벨상을 탈 정도로 획기적인 연구에서 나온 약제라는 사실을 얘기한다.
 

상기 사진은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에서 배포한 자료이다. 사람유두종바이러스는 성적 접촉으로 전파되며 대부분 무증상 감염을 일으킨다. 산부인과 검사를 일부러 받지 않는 이상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다. 다행인 것은 많은 경우 HPV 감염은 몸의 항체 등에 의해 자연소실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소수는 지속감염에 노출되고, 결국 암이 발생하게 된다.
 
성관계 대상자가 많은 여성은 자궁경부암 위험군에 속한다. 하지만 여성 본인의 성관계 파트너가 한 명이어도 그 남자가 예전에 성관계 대상자가 많았었다면 또 위험이 올라간다. 결국 성생활 습관이나 확률로 대비할 게 아니라 사춘기 이전에 미리 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영국에서 HPV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으로 도입한 2008년부터 2013년까지의 단 5년 간 16~18세 여성에서 백신의 주 치료 타겟인 HPV 16, 18형 감염 유병률이 66%나 감소한 것을 알 수 있다. 자궁경부암 백신은 이론 배경이나 치료 효과 모두 검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가다실 / 서바릭스 부작용 공포

카모마일 진료실에서 자궁경부암 국가예방접종을 설명할 때 이렇게 좋은 주사제가 무료인 것을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무료를 기뻐하는 보호자님들은 없었고, 항간에 떠도는 부작용 소문을 더 관심있어 하셨다. 이를테면 아래 링크된 기사 같은 사례이다. 이 언론사는 HPV 예방접종 후 사망에서 사지마비, 복합부위통증증후군 등의 발생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기사 신뢰도는 회의적이라고 생각한다.
 

http://www.factoll.com/page/news_view.php?Num=3293

 
<팩트올>이 사망 사례 기사에서 인용하고 있는 영국 언론사는 데일리메일이라는 곳이다. 원본 기사는 아래 링크에 있다.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3581681/Teenage-girl-dies-five-days-having-cervical-cancer-jab-doctors-dismissed-illness-stomach-bug.html

 
<데일리메일>은 <더 선>(The Sun)과 함께 영국의 대표적 타블로이드지로 꼽힌다. 우리나라로 치면 <선데이서울>이다. 기사 내용은 장황하지만 의학적, 법적으로 확인된 증거는 나와 있지 않다.
 
아래 링크는 Vaccine Knowledge Project에서 제공하는 HPV 백신의 안정성 연구 설명이다. 이 프로젝트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University of Oxford) 소아과 교실 산하의 Oxford Vaccine Group이 운영한다.
 

http://vk.ovg.ox.ac.uk/hpv-vaccine

 
2009년에서 2016년 사이 영국에서 팔백오십만 도즈(dose) 이상의 HPV 백신 주사제가 접종되었으며, 이와 연관된 심각한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사망 사건에 대한 언급도 없으며, 덜 심각한 합병증인 체위빈맥증후군(postural orthostatic tachycardia syndrome;POTS)이나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CRPS)도 백신과는 관계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HPV 백신 국가예방접종 사업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을 포함한 전세계 65개국에 도입되어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도 국가 차원의 예방접종 사업을 권고하고 있다. 정말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면 이들 선진국 보건당국이나 WHO가 접종을 중단 시킬 것이다.


 

3. 가다실 / 서바릭스 유료 접종 필요성

국가필수예방접종 대상 나이대가 아닌 여성의 경우 자궁경부암 백신을 유료로 맞는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돈 주고라도 꼭 맞아야 할지가 궁금해진다.
 

 
HPV의 국내 감염 현황에 대한 통계이다. 18~79세 여성에서 감염 유병율이 34.2 퍼센트로 여성 인구의 3분의 1을 넘었다. 이렇게 흔한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어릴 때 예방주사 맞는 게 최고이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된 여성에서도 자궁경부암 백신은 HPV 지속 감염과 자궁경부 상피 내 종양(CIN)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특히나 성매개로 전염되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지금 배우자 혹은 남자친구가 예전에 어떤 복잡한 관계가 있었는지 모르는 여성이라면 예방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미국 FDA는 만9세에서 26세의 여성들에게 가다실/서바릭스 접종을 허가하고 있다. 유럽과 호주를 포함한 37개국은 미국과 기준이 달라서 27세에서 45세까지의 성인·중년 여성에 대해서도 적응증 허가를 한 상태이다.

http://healthcare.joins.com/master/healthmaster_article

 
국내 기준은 미국과 비슷해서 서바릭스는 만9~25세 여성, 가다실은 만9~26세 여성 및 남성이 대상이다. 남성은 자궁이 없어서 자궁경부암은 안걸리지만, HPV를 통해 생식기사마귀, 항문암 등이 발생하므로 접종 대상이 된다.


 

4.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종류 및 가격

 
자궁경부암은 위 사진처럼 흉측하게 생겼다. 이걸 일으키는 HPV는 항원형(Serotype)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가장 중요한 16 및 18형을 예방해주는 것이 서바릭스(2가)이고, 가다실은 HPV 6형, 11형, 16형, 18형을 막아주는 4가 백신이다.
 
서바릭스가 2가이고 가다실이 4가이니 가다실이 두 배 좋은 백신이고 가격도 두 배인 건 아니다. 그림 설명대로 16, 18형이 전체 자궁경부암 발생의 70%를 차지하며, 가다실에 추가된 6, 11형은 암 발생이 적은 저위험 유형에 속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가다실9 이라고 하는 9가 백신도 시판된 상태이다. 각 백신을 유료 접종 받는 경우 일정 및 평균가는 아래와 같다.
 
· 서바릭스 (GSK) – 1회 접종가 12~15만원 / 만9~25세 여성 0, 1, 6개월 일정 총 3회 접종
· 가다실 (MSD) – 1회 접종가 11.5~18만원 / 만14~26세 남여 0, 2, 6개월 일정 총 3회 접종
· 가다실9 (MSD) – 1회 접종가 18~20만원 / 만15~26세 남여 0, 2, 6개월 일정 총 3회 접종

니체를 읽으면 좋은 이유 VIII – 오직 미적 현상으로서만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자살했을 때 인터넷 뉴스 댓글에는 왜 저렇게 젊고 예쁘고 명성도 있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하는 글이 많았다. 하지만 유서 내용에도 있듯이 자신이 겪는 힘듦은 자신에게만 실제적이고, 가늠이 가능하다. 반대로 생각하면, 자신이 겪는 행복도 스스로에게만 지극하고 현실적이다. 그래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 않고, 행복을 자가 생산할 수 있으면 불행도 통제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기쁨을 누렸던 역사 인물을 생각해보면, 니체가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살아 생전 그의 작품은 빛을 보지 못했지만, 스스로가 자기를 인정했다. 니체의 책 <이 사람을 보라>의 목차엔 ‘나는 왜 이렇게 지혜로운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가?’ 등의 제목이 있다… 니체의 똑똑한 친구들도 니체의 글을 반 쯤 밖에 이해 못했던 것 같다. 대표적 친구인 에르빈 로데(Erwin Rohde) – 당대의 유명한 그리스 고전문헌 학자였음 – 에게 니체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나는 <짜라투스트라>로서 독일어를 완성에 이르게 했다고 자부하네. 그것은 루터와 괴테를 이은 제3의 발전이었네.

하지만 로데는 짜라투스트라 책을 힘겹게 읽었고, 그 다음으로 출간된 책 <선악의 저편>을 읽은 후에는 폭발하고 말았다. “니체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직업을 갖는거야!” 라고. (니체, 그의 삶과 철학 by 레지날드 J. 홀링데일 p65)

당시 니체는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결혼할 배우자 찾는 것도 안하고, 혼자 휴양하면서 친구에게도 대중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책만 쓰고 있었다. 안정된 직업과 가정, 사회적 지위까지 있던 로데는 니체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삶이 반영된 글에도 당연히 공감하지 못했다. 자기 능력의 백 분의 일도 인정받지 못했던 니체가 어떻게 자기확신과 행복을 가졌을까는 연구해 볼만한 주제이다. 나는 <비극의 탄생> 책에 나온 아래의 구절이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현존과 세계는 오직 미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된다.

미적인 현상은 사람에게 행복감을 준다. 예쁜 연예인을 보며 정줄 놓은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예쁜 여자 말고 다른 수많은 사물에서 그 같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지금 사는 것(현존)과 주위 세상(세계)는 더 없이 만족스러워(정당화)진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말로 유명하다. 최고가치의 상실에 대한 선언으로 해석되며, 꼭 기독교적 신에 대한 반대는 아니다. 이 말의 중요성은 신은 죽었는데 이제 뭘 할거냐는 것이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하나님처럼 섬기는 무언가가 있다. 출세나 재산, 외모, 사람들로부터 인정 같은 것이다. 이은주씨는 이걸 모두 가졌지만 행복을 얻지 못했었다. 누구나 나름의 가치 추구를 하고 있고, 충족받지 못하면 허무해지고 고독해진다. 니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서 영속적인 행복의 길을 찾았다.

자신의 상태를 예술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자신에게 닥친 슬픔과 고통,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모든 것을 순식간에 돌로 만들어버리는 고르고의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능력이다. 그것은 고통이 전혀 없는 세계에서 유래한 시선이다. (J3, 334)

니체는 자신 생의 요소와 그 누림을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게 느꼈던 것 같다. 슬프고 우울해도, 어떤 대단한 역사나 문학 안의 주인공처럼 자신을 느끼면, 고난도 미학적 현상으로 치환된다. 주위 사람들이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일자리에서 별 볼일 없는 성과를 낼 때도 즐겁게 자족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니체는 자신의 시대에 유명하지도 부유하지도 인기가 많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면 가치를 창조하는데 매우 뛰어 났고, 거기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

프레카리아트 I – 편리한 사용과 폐기

니트족은 세련된(neat) 사람들 집단이 아닌 걸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영어 ‘NEET’ 로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이라는 뜻이다. 즉 학생도 아니고, 직업도 없고, 직업을 얻기 위한 훈련도 안 하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니트족의 심각성은 헬조선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손 꼽히는 선진국에다 일억 총중류(一億總中流) – 인구 일 억 명이 죄다 중산층 – 라는 자부심이 있던 일본에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의 저자 아마미야 가린은 눈에 띄는 경력의 소유자이다. 일본 홋카이도 시골에서 태어난 그녀는 예술적 재능이 있었지만 세련된 입시 대비 전략에는 거리가 먼 동네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미대 입시에 연거푸 떨어진다. 무작정 상경한 그녀는 편의점 알바와 식당 웨이트리스 일을 수년간 했고, 박봉과 사장의 구박에 결국에는 술집 일로 진출한다. 열심히 일해도 밑바닥에 더 박힌다는 좌절을 느낀 그녀는 대안적 활동에 뛰어든다. 처음에는 극우 펑크 록 밴드인 ‘유신적 성숙’, ‘대 일본 테러'(이름부터 정말 극우적이다)를 결성해 보컬로 활동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자신에게는 좌익 청년 운동이 더 어울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가난뱅이의 역습>, <생지옥 천국> 등 진보 시각의 저서로 유명세를 얻으며 전문작가가 되었고, 아르바이트 인생에서도 같이 탈출한다. 스스로 피끓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아마미야 가린은 사회로부터 노력이 부족하다는 취급을 받는 비정규직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이런 문제의 총체적 시작으로 지적한 것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 그리고 그걸 일본에서 용감하게 선도한 고이즈미 전 총리였다. 신자유주의가 청년 니트족과 무슨 상관인지, 어떻게 일본까지 전파되었는지 알려면 우선 그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래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언급한 책의 내용이다(page 287).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본격화되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부채 때문이에요. 어떻게 복지 국가 요소들을 약화시킬까 하는 것에 고심하는 경제학이 지배적인 사고방식이 되어갔습니다. 그때까지의 주류는 소위 케인즈 경제학이죠. 케인즈의 사고방식은 ‘실업을 어떻게 해소할까, 실업이 사회에는 악이다.’ 라는 발상 위에 서 있습니다. 구멍 파서 메우는 데도 정부가 돈을 내면 거기에서 고용이 발생합니다. 적자가 나든 빚이 되든 어쨌든 정부는 그걸 합니다. 그런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그 케인즈 경제학을 무너뜨리는 데 전력한 학자들이 언젠가부터 미국의 정권 중심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걸 통화주의monetarism 혹은 공급supply side 경제학(수요보다 공급을 중시하는 경제학. 대규모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 투자와 기업 성장을 도움으로써 국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균형 재정주의라고도 하고요. 회계 연도에서 가능한 한 수지를 맞춥니다. 정부는 돈을 쓰지도 말고 빌리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라는 영국의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고용을 촉진하고 실업을 억제하는 걸 선호했다. 하지만 영국병(1960,70년대 영국 경제 쇠퇴의 원인을 과다 복지와 연결되는 노동자의 비능률성으로 파악)과 스태그플레이션을 동반한 오일쇼크(1973,79년)로 인해 케인즈식 경제에 대한 의문이 나타난다. 그 대안으로 신자유주의가 급부상했는데,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과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대표적 정책 추진자였다. 신자유주의는 서구 열강의 경제적 부활을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동구 공산권 블록과의 경제 전쟁은 서구의 승리로 끝난다(냉전 종식). 하지만 2008년 미국 발 세계 경제 위기가 터지면서 신자유주의는 중대한 도전을 받게 된다.

서구의 신자유주의는 복지 국가의 늘어진 노동 능률을 개선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태평하게 일해도 급여와 정년이 보장되는 공기업 일자리를 대폭 민간으로 넘기고, 노동 시장의 유연화(비정규직 고용을 늘리고, 정규직 해고는 편리하게)를 추구했다. 그러면서 금융 기관의 규제를 완화해서 실물 경제와 동떨어져 움직이고, 현금 흐름 예측이 어려운 수많은 파생 금융 상품을 탄생시켰다. 이런 실체가 불분명한 사이버적 금융 상품은 2008년 가을 미국 발 대폭발을 일으킨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 불리는 이 위기에서 신용 등급이 낮은(실물 자산이 부족한) 개인들은 주택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았고, 금융기관들은 그 대출 채권을 토대로 파생 상품을 만들었고, 다른 금융기관들이 그 파생 상품에 또 파생된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런데 불황으로 실물 자산인 담보 주택 가격이 떨어지자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이어진 파생에 파생된 금융 상품들도 같이 부도가 나고 말았다. 결국 이런 상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미국 굴지의 금융 기관들이 파산했고, 그 금융 기관과 이어진 세계의 기업과 금융사 들도 같이 밑바닥에 빨려 들어갔다.

일본의 경우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의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초부터 불황이 시작되었었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10년’ 이었다가 나중에는 ‘잃어버린 20년’(2000년대), ‘잃어버린 30년’(현재)으로 자꾸 더 길게 잃어버리는 경제 위기 속에 일본 정부는 심각한 자구책을 마련한다.

고이즈미 정권은 2001년에 집권했는데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를 제창했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일환으로 노동자 파견법을 손보는데 이것이 종신고용, 연공서열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특유의 기업 고용 형태를 변형시킨다. 고이즈미의 보수 자민당 정부는 일경련(日經連; 일본경제인연합회)과 연합해서 개혁을 추진했는데 아래는 그에 대한 책의 내용이다(page 45).

불황에 직면해서 일경련은 일하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셋으로 분류할 것을 제언했다.
 
1. 장기 축적 능력 활용형
2. 고도 전문 능력 활용형
3. 고용 유연형
 
의미만으로도 알 수 있듯, 1은 기업의 중핵이 되는 사원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들은 기존의 정규직 사원같이 장기 고용에 승급, 승진도 있다. 2는 전문적인 기능을 가지는 계약 사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장기 고용이 아니라, 연봉제나 성과급이 적용된다. 그리고 3은 한시적 고용, 시급제로서 승급 같은 것은 없다. 이 3이 지금 매우 급증하고 있는 일회용 노동력이다.

이 같은 개혁은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문제와 아주 비슷한 반향을 일본 전 사회에 불러일으켰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글에서 이어하도록 하겠다.

프레카리아트 II – 위험한 데는 니가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