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 광기와 열정의 달

인생이 컨베이어 벨트 위를 흘러가는 물건 같다는 느낌이 든 적이 있다.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타성적이다. 트랙 위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었다. 나는 대학생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었고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3개월 정도 되는 시험 준비 기간 내내 집 밖을 나가지 않고 혼자 공부를 했다. 공부를 시작 했을때 공기는 따뜻했고 창 밖의 나뭇잎은 초록색이었다. 두어달이 지나자 차가운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왔고, 갈색으로 마른 잎새들이 마음을 아주 울적하게 만들었다.

시험 공부를 하면서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했었다. 이건 네 미래를 위한거야. 내 꿈을 위한 거야. 하지만 그런게 무슨 의미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렇게 살면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감사의 꽃다발을 받지도 않는다. 신이란 존재는 보이지 않고 누군가가 확실하게 증명해 낼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품은 갈망은 정당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좋은 대답은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청춘을 넘어선 사람으로, 안정된 사회적 지위와 아내와 그리고 두 아이까지 있는 증권 중개인이다. 내 나이에 화가를 지망했다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겠지만, 그가 화가를 지망한다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솔직해지고 싶었다.
 
“물론 기적이 일어나는 수도 있으니까 당신이 대화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요.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런 가능성은 만에 하나입니다. 고생만 죽도록 하고 아무 결실도 없이 결국 단념해야 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을 게 아닙니까?”
 
“그래도 나는 그리지 않을 수 없소” 그는 되풀이했다.
 
“그럼 당신이 앞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삼류 화가로 그친다면, 그래도 모든 걸 버린 만큼의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정말 당신은 바보로군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뻔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 바보라면 뭐 할 말은 없겠지만”
 
“그러니까 그리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고 하지 않았소. 이 마음은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거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를 따지고 있겠소? 어떻게 해서든지 물 속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애 쓸 것 아니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의 구절이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의 삶을 모태로 한 이 소설에서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중년의 나이에 안정된 증권거래소 중계인의 자리를 버리고, 아내와 자식들도 같이 내버려두고 가난한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아내는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나서 다른 나라로 떠난 걸로 생각하고는 한 젊은이(작품의 화자)를 보내 남편을 찾게 한다.

화자는 사회적 상식을 논거로 삼아 스트릭랜드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실패로 끝난다. 그는 “그리지 않을 수 없다”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스트릭랜드는 그림이 주는 미(美)에 완전히 빠져 있었고, 그건 예쁜 여자에게 빠진 것처럼 확고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혹은 스트릭랜드가 말한대로 물에 빠져 살기 위해 허우적대는 사람과도 같았다. 안 그러면 죽기 때문에(그림을 안 그리면 너무 괴로우니) 노력하는 것이다.

아무튼 가을 바람이 차가웠던 외로운 날 나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내 이념, 혹은 늘 절실한 감정이 쏠리는 방향은 정해졌기 때문에 그걸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밥 먹는 것을 아무리 미루어도 결국에는 먹을 수 밖에 없는 것 처럼 그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화웨이, 새로운 삼성 II

화웨이의 설립자 런정페이는 1944년 중국 구이저우성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중학교 교장, 모친도 교사였던 교육자 집안이었다. 부모의 교육열 덕분인지 명문 충칭건축공정학원(현 충칭 대학교 공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이던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다.

중국 전국을 휩쓴 이 난리로 학교는 문을 닫고 학생들은 사상 투쟁 시위를 하러 몰려나갔다. 런정페이의 부친은 국민당을 위해 부역했던 경력으로 인해 홍위병들의 박해를 받았다. 하지만 런정페이는 “기억해라. 지식은 힘이다.” 라고 당부했던 아버지의 염원대로 독학에 열중했다. 대학시절 그는 전자 기술 이외에도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의 사상을 연구한다. 아래는 그에 대한 책의 내용이다.

런정페이는 암울했던 대학시절에 마오쩌둥 사상을 깊이 연구했다. 이는 엔지니어로서 상대적으로 경영전략에 취약했던 런정페이가 화웨이를 키우는 강력한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화웨이의 연구와 기술 개발에는 마오쩌둥 사상의 ‘우수한 병력을 집중시켜 전투에서 완벽하게 승리한다’ 는 전략이 적용되었다. 또 자기반성과 사내 캠페인 등, 그동안 화웨이의 발전과정에서 드러난 중대한 정책에도 마오쩌둥 사상의 영향이 엿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마오쩌둥 사상이라고 하면 소수의 운동권 사람만 읽는 공산주의 정치이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런정페이가 경영 지침으로 사용했던 건 마오쩌둥의 군사 전략이었던 것 같다.

마오쩌둥과 장제스의 국공내전(1946~1949년)은 2천여 년 전의 초한전(楚漢戰)과 비슷했다. 항우는 유방을 훨씬 능가하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마음대로 그를 죽일 수 있던 때도 있었다(홍문지연 鴻門之宴). 하지만 유방은 항우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해서 무너뜨렸다. 항우가 정공을 걸 때는 지연전과 유격전을 벌였고, 상대 진영을 이간시키는 책략도 필사적으로 사용했다.

마오쩌둥도 유방과 마찬가지로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전쟁을 이겼다. 전쟁 발발 당시 병력은 국민당군 430만 명 대 공산당군 120만 명으로 4배 가까이 차이가 났고, 국민당 측은 베이징, 난징, 상하이, 광저우 등 주요 도시와 공업 중심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군사 장비에 있어서도 태평양전쟁 종전 후 미군의 잉여 무기를 넘겨받은 장제스 측이 유리했다. 공산당군은 해군과 공군이 없었고, 소총으로 무장한 수많은 보병이 주력이었다.

미국은 물론,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도 마오쩌둥의 승리에 회의적이었다. 스탈린은 1945년 7월 초 모스크바를 방문한 장제스 정부의 외무장관 송자문(宋子文)과 회담하고 중소 우호 동맹 조약(Sino-soviet Treaty of Friendship and Alliance)을 체결했다. 마오쩌둥은 장제스와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해 권력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예상을 뒤집고 공산군은 불과 4년 만에 장제스의 군대를 붕괴시키고 중국 전역을 장악했다. 그들은 특유의 게릴라(빨치산) 전술을 썼는데, ’16字 전법’이라고 불리는 전술이다.

敵進我退 적이 공격하면 후퇴
敵駐我擾 적이 멈추면 교란
敵疲我打 적이 피로하면 공격
敵退我追 적이 후퇴하면 추격
 
병력에서 앞설 때만 공격하고 필요 없이 병력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준비 없이 싸워서는 안 되며, 승산 없이 싸워서도 안 된다.
농촌을 장악한 후 도시를 포위 공격, 섬멸한다.

화웨이가 경쟁 기업과 싸워온 과정도 빨치산 전쟁과 비슷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겼던 것이다. 화웨이는 기술력과 브랜드 명성이 있는 다국적 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시골 지역에서 먼저 기반을 쌓았다. 본토 기업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후 지원 서비스에 정성을 다했다. 경쟁입찰, 계약에 이르기까지 화웨이는 반드시 경쟁기업보다 많은 인력과 자금을 집중 투입해서 돌파구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단지 우수한 전술의 성과만은 아니었다. 아래는 <위기를 경영하라> 책에 실린 예화이다.

…영업사원들이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각종 제품이 소개된 자료와 샘플을 둘러메고 밤낮으로 뛰어다녔지만, 1년 동안 전국 500여 현(縣)을 훑고 다녔음에도 주문량은 보기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한 번은 중국과 러시아의 접경 지역인 이춘 전신국과 계약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절박했던 런정페이는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영업사원뿐 아니라 수석연구원들까지 총출동시켰다. 그들은 영하 40도의 한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서 6개월 동안 머물며 기술교류, 프로세스 점검, 설비 테스트 등을 수십 차례나 거듭했다. 마침내 최종 입찰을 하던 날, 그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내심 좋은 결과를 기대했던 그들은 어찌나 속이 상했던지 체면도 잊은 채 고개를 떨구고 통곡했다고 한다.

예화에서 보이듯 화웨이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헌신은 눈부실 정도이다. 장군(경영자)의 전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걸 실행하는 병사(직원)들의 사기가 없다면 전투에서 이길 수 없다. 이렇게 계약을 못 따면 통곡까지 하는 특별한 기업 문화는 특별한 소유구조로부터 왔다.

‘여러분은 회사의 주인’ 이라는 팻말만 있고 실제 번 돈과 주식은 회장 가족들이 독점하는 회사가 많다. 반면 화웨이는 경영자와 종업원들이 회사의 주식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종업원 지주제(Employee Shareholding Plan) 회사이다. 그래서 직원의 꿈이 회사의 꿈이 되고, 회사의 목표가 직원의 목표가 되는 응집력 강한 조직을 일구어 냈다. 직장에 야전침대를 깔아 놓고 야근을 하고, ‘화웨이 늑대’ 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분투하는 정신은 제도에 기반한 충성심에서 왔다. 중국 기업에 대한 흔한 편견을 깰 만한 우수한 기업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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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새로운 삼성 I

1970년대 빌 게이츠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했고, 그 예측은 부를 안겨주었다. 퍼스널 컴퓨터(PC)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 전 세계 집과 회사 마다 컴퓨터가 쓰이게 될 모습을 상상했고, 독점 운영 소프트웨어를 만들려고 했다. 회사 이름은 작음(Micro)과 소프트웨어(Soft)를 결합한 Microsoft 로 지었다. 비슷한 시기의 스티브 잡스도 미래 IT 시대를 잘 예견했고, 회사의 로고로 생각의 혁신을 뜻하는 뉴튼의 사과 그림을 택했다.

1987년 런정페이(任正非)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퇴직 장교로 43세 였다. 애국 군인 답게 어려운 상황에도 중화유위(中華有爲), 즉 “중화민족에 미래가 있다” 고 외치며 분투했다. 그리고 그 말을 줄인 ‘화웨이’ 를 사명(社命)으로 한 회사를 설립했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2만1천 위안(우리돈 360만원), 작은 작업실에 6명의 직원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미국 특유의 개인 창의성을 강조했다면, 화웨이는 국가주의적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설립자의 개인 이력도 차이가 많이 난다. 빌 게이츠는 시애틀 명문가 출신에 변호사 아버지를 두었고, 중퇴하긴 했지만 하버드 대학 입학생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입양아 출신이지만, 리버럴 아트 분야에서 유명한 리드 대학교 중퇴에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천재 엔지니어를 동업자로 두는 행운을 누렸다. 한 명은 고급 인텔리로서 혁신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히피 예술가 기질을 가지고 혁신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런정페이는 40대 중반 퇴직 군인 신분으로 화웨이를 설립했다. 군대에서 통신장교를 지냈던 것이 IT와 연결되는 유일한 경력. 게다가 당시 중국은 IT 변방국이어서 정보통신의 혁명을 체감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런정페이와 화웨이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성공을 이루었다. 화웨이는 현재 연매출 50조원 규모의 거대 IT 기업이다. 2010년에는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2014년에는 톰슨로이터 선정 세계 100대 혁신 기업이 되었다.


 
중국 로컬기업에서 세계적 대기업으로 성장한 샤오미나 화웨이 같은 기업들은 쉽게 과소평가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 내수 시장의 엄청난 크기 덕분에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화웨이가 그 내수 시장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미 일류 통신 기술을 보유하고 중국에 진출해 있던 에릭스, 지멘스, 알카텔 같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했고, 중흥통신(ZTE) 같은 중국 내 라이벌과도 싸워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은 쉽게 보이지 않으며 정당하게 평가될 필요가 있다.

먼저 화웨이와 런정페이는 그들만이 쓸 수 있는 기업 전략을 사용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은 최첨단 기술력에 디자인 요소와 유저인터페이스를 가미해 독점 시장을 만들어 냈다. 제 3세계 기업으로 통신회사 후발주자였던 화웨이는 최첨단 기술력도 없고, 디자인을 신경쓰는건 사치였다. 결국 경쟁자인 다국적 기업에 앞설 수 있는 로컬 서비스에 중점을 두었다. 아래는 양사오룽이라는 저자가 런정페이와 화웨이의 발전을 분석한 <위기를 경영하라>라는 책에서 옮긴 내용이다.

그들(다국적 기업들)은 자신들의 핵심기술만 믿고 고객관리를 소홀히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각 지역 전신국과 거래할 때에도 최고 책임자 외에는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화웨이는 그렇지 않았다. 런정페이는 직원들에게 거래처에서 만나는 사람의 직무나 직책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화웨이 사람들은 제품 생산과 판매, 경쟁입찰 그리고 계약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에서 만나는 모든 담당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최고 책임자, 사무직원, 수석 엔지니어, 테스트 엔지니어 등 접촉하는 모든 고객들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도록 했다. 이런 자세는 나중에 해외시장에서도 계속되었다.
 
창업 초기, 화웨이는 중국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중국 우전부의 간부 및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큰 도움을 받은 런정페이는 이들이 퇴직한 후에도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마케팅 부서에 화웨이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분들이니 수시로 찾아가 안부를 묻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우라고 당부하고 매년 기념일을 챙겨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이미 일선에서 물러난 퇴직자들은 인연을 소중히 하고 감사할 줄 아는 런정페이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런정페이는 상대 회사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했고, 화웨이의 장단점 역시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 평가에 따라 이길 수 있는 방식으로만 철저하게 싸웠다. 손자병법 모공편(謀攻篇)에 나오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를 연상시킨다. 손자병법 말고도 기업가 런정페이를 감화시켰던 다른 사상도 있었는데 다음 글에서 연결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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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세 XII – 파랑도

정인의 외할머니는 제주도 남쪽 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외할머니의 인생에 대해서 정인은 자세하게 들은 적이 없다. 물어 본 적도 없다. 다만 어린 정인에게 하나 이상했던 건 외할머니는 있지만 외할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분명 외할머니의 딸인 정인의 어머니가 있으니(외삼촌도 있고) 외할아버지도 존재했어야 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략하게 흘려들은 것이 전부였다. 외할아버지는 돈 벌러 외국(아마 일본)으로 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가난한 시대에 남편 없이 자식들을 키우는 여인의 신세가 얼마나 고달팠을까. 정인은 공부하고 먹고 자는 의무밖에 없는 국민학생이어서 외할머니가 길고 긴 세월 아무 보상 없는 가사 노동에 시달렸다는 것에 애틋한 감정도 없었다. 그냥 해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성악설(性惡說)에 어울리는 어린아이의 행동을 십 년은 감당하고도 외할머니는 정인을 예뻐했다. 이런 할머니의 마음에 대한 실마리는 아래 소개할 파랑도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다. 이건 외할머니가 어린 딸(정인의 어머니)에게 들려주었던 전설 이야기이다.

제주도 남쪽 어촌 마을에는 해녀(海女)들이 살았다. 그들은 까만 고무 옷을 입고 잠망경 하나 쓰고서 바다에 들어가 해삼, 전복, 소라 같은 걸 따왔다. 어느 일이나 그렇듯 많은 것을 얻으려면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마을 근처 해안에서는 귀한 해삼이나 전복을 얻을 수 없다. 조그만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서 암초 근처에 내려 잠수를 하면 비싸게 팔리는 해산물들을 따올 수 있다. 그날도 나이 든 노련한 우두머리 해녀 한 명과 대여섯의 아낙네들이 작은 배를 타고 ‘파랑도’ 라고 불리는 섬을 찾아 나갔다. 배에는 젊은 새댁 한 명도 타고 있었는데 그녀의 첫 아기는 돌도 지나지 않았다. 여인은 아침에 강보 속의 아기가 쌔근쌔근 사랑스럽게 자고 있는 걸 확인했고 웃음을 지었다.

파도가 높을 때만 이따금씩 보이는 파랑도는 사실 도(島)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바위덩어리였다. 우두머리 해녀는 아래 해녀들에게 절대로 배와 암초에서 멀리 떨어지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파랑도 근처의 해류는 아주 거칠었기 때문이다. 새댁 해녀는 일이 서툴렀지만 그날따라 운이 좋게도 귀한 해삼 한 마리를 딸 수 있었다. 가시 같은 돌기가 온몸에 40개나 선명하게 돋아있는 것으로 시장에서 쌀 댓 말 가격에 팔렸다. 기쁜 마음에 해삼을 어망에 담아놓고 부리나케 같은 게 또 없나 물속으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바닷속을 헤매고 다니다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늘 위 높이 떠있는 태양은 똑같이 눈부신 햇빛을 쏘아주고 있다. 왠지 사람을 노곤하게, 감상에 잠기게 하는 그런 빛… 수경 너머로 넘실대는 초록색 바닷물, 그 사이로 보이는 끝없는 수평선. 여기엔 알 수 없는 몽환이 숨겨져 있다. 바다 밑 해류에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우두머리 해녀는 그걸 민감하게 느꼈다. 소용돌이 같은 물살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거기에 휘말리면 살아서 육지로 갈 수 없다는 것도. 그녀는 멀리 떨어져버린 어린 새댁을 불렀다. 새댁은 열심히 헤엄쳐 돌아오려 했지만 배와의 거리는 점점 절망적으로 멀어졌다. 헐떡거리는 입으로 바닷물이 조금씩 들어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짠 맛이 나지않았다. 힘이 빠져 몸이 무거워지면서 감각도 멍해진 것이다. 그녀는 다가오는 확실한 죽음을 보았다. 새댁은 남은 힘을 다해 소리쳤다. “성님 인자 오지 맙서! 나가 딴 걸랑 집에 애기 줍서!”

어차피 죽게 되었으니 자기를 두고 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딴 귀한 돌기 해삼은 세상모른채 자고 있을 집의 아기에게 먹여 달라고 했다. 삶아서 부드러운 죽으로 끓여 먹여주기를… 여자는 죽어 바다에 떠다닐 시체가 되지만 마지막 생각은 아기를 떠올렸고 마지막 말이 전할 것도 그 뿐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I – Es muss sein

아파트 옥상에서 초등학생이 떨어뜨린 벽돌에 맞아 고양이 집을 만들던 여성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캣맘 사건으로 전국에 알려졌다. 초등생은 재미 삼아 벽돌을 던졌고 우연히 아래 있던 한 사람은 그걸 맞고 죽었다. 아이 장난 때문에 막을 내린 55년의 일생은 어떤 결론을 전하는 걸까? 그녀는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와 직장에 가기 위해 노력했고 또한 좋은 딸이 되기 위해서, 결혼해서 좋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도 적당한 고민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3차원 세계의 어느 한 점에 우연히 당도했고 그 지점 바로 위에는 질량과 속도를 띠고 낙하하는 물체가 있었다.

우연은 아무 필연성이나 도덕 관념 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이나 주변인은 그 의미를 물을 수 밖에 없다. 밀란 쿤데라는 우연과 타성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인간의 일생을 탐구하려 했다. 그가 먼저 화두로 던진 것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다.

영원한 재귀, 이 신화는 그것의 부정적 이면에서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가 있다. 영원히 사라져 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삶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은 아무런 무게도 없는 하찮은 것이며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삶이 아무리 잔인했든, 아름답거나 찬란했든,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와 같은 잔인함, 아름다움, 찬란함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으로,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조금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작품에서는 가벼움을 한 번으로 사라질 삶으로 보고, 무거움을 영원히 반복될 삶(니체의 영원회귀가 구현되는)으로 보고 있다. 한 번으로 사라질 삶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띤다. 캣맘 사건같은 치가 떨리는 우연으로 소중한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대변할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그걸 대변할 사건들도 차례로 펼쳐진다. 그냥 보면 가십으로 지나칠 사랑 이야기를 존재에 대한 의미로 풀어낸 작가의 능력이 감탄스럽다. 토마스란 남자와 테레사라는 여자가 보여주는 사랑은 절대적 필연일 수도 있고 아니면 걸어가다 위에서 날아오는 벽돌에 맞는 것 같은 우연일 수도 있다. 작품의 묘미는 그걸 곰곰이 생각해 보는 데 있다.

나이가 있지만 매력적인 의사인 토마스가 자신의 두 번째 아내가 된 테레사를 만나기까지는 6번의 우연이 필요했다. 첫 번째는 작은 도시에서 뇌병 케이스 환자가 생긴 것, 두 번째는 그 도시로 파견 나갈 외과 과장이 좌골 신경통에 걸려서 토마스가 대신 나가야 했다는 사실. 세 번째 우연은 토마스가 묶을 가능성이 있던 5개의 호텔 중 테레사가 일하는 레스토랑이 있던 호텔이 선택되었다는 것, 네 번째는 토마스가 프라하로 돌아갈 기차를 타기 전에 조금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 다섯 번째는 그 시간이 우연히 테레사가 일하는 시간이었다는 것. 마지막 여섯번째 우연은 테레사가 토마스의 식탁 시중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우연의 집합은 토마스와 테레사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이 여섯 개 우연 중에 하나라도 없었다면 두 남녀가 부부가 될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우연에 의해 형성된 운명에 꼭 계속 따라야 하는 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먼저 이 질문이 나오게 만든 부부의 사정을 살펴보자.

1968년 소비에트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국의 군대는 체코 프라하를 침공한다. ‘인간 얼굴을 한 공산주의’ 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던 두브체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체코의 전국은 아주 쉽게 점령되고 두브체크가 추진하던 개혁 조치는 모두 무효화 된다. 새로운 집권세력은 대중의 생각을 하나의 모범 틀에 맞추려는 공산주의의 꼴통 정책을 시작한다. 많은 지식인들은 박해를 받았고, 저항으로 대규모 해외 이주의 물결이 생겼다. 토마스도 스위스 취리히의 병원에서 좋은 자리를 제안 받고 테레사와 함께 국외로 망명한다.

하지만 테레사는 낯선 국가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국외로 나와서도 에로틱한 우정(erotic friendship) 습관에 따라 다른 여자와 놀아나는 남편 토마스에게도 지친다. 어느날 테레사는 작별의 편지를 남겨둔 채 국경을 넘어 체코로 돌아가 버린다. 당시 체코는 소비에트 군에 점령된 상태였기 때문에 테레사가 입국했다는 사실은 북한 국경을 넘어 들어간 것과 비슷한 의미가 있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다는 뜻이다.

혼자 취리히에 남은 토마스는 심각한 고민을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여섯 번의 우연한 사건의 결과인 테레사와의 결혼 관계를 이 기회에 끝낼 것인가? 이 경우엔 공산주의의 박해도 없는 취리히 병원에서 명망있는 의사로 에로틱 프렌드쉽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 아니면 존재의 무거움에 가치를 두고 떠나간 아내를 쫓아 돌아갈 수 없는 국경을 도로 넘어갈 것인가?

이 선택의 고난을 작가는 세련된 음악 테마로 표현했다. 쿤데라의 아버지는 음악학자이자 피아니스트 였고 쿤데라 자신도 대단한 음악 애호가였던 것 같다. 소재가 된 베토벤의 악장의 모티브는 독일어로 ‘Es muss sein’,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아래는 토마스가 자기를 아끼는 취리히 병원의 원장과 독대하는 장면이다.

원장은 실로 당황했다. 토마스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은 일종의 암시였다.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곡 마지막 악장은 다음의 두 모티브에 따라 작곡되었다.

Muss es sein? Es muss sein! Es muss sein!
그렇게 해야 하나? 그렇게 할 수밖에! 그렇게 할 수밖에!

이 말의 의미를 아주 명확히 하기 위해 베토벤은 이 마지막 악장의 제목을 <힘겹게 내린 결심> 이라 붙였다. 베토벤에 대한 이러한 암시로 토마스는 근본에 있어서 이미 테레사에게 되돌아간 것이었다. 왜냐하면 결국 베토벤의 4중주와 소나타를 담은 전축판 구입을 관철시켰던 것은 테레사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암시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효과가 있었다. 왜냐하면 병원장은 대단한 음악 애호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짓고 조용히 베토벤의 멜로디에 맞추어 말했다. ‘그렇게 해야 하나?’  토마스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네 그렇게 할 수밖에요’

파르메니데스와는 다르게 베토벤에게는 무거움이 명백히 어떤 긍정적인 것이었다. <힘겹게 내린 결심>은 운명의 소리(그렇게 할 수밖에!)와 연관되어 있다. 무거움, 필연성, 가치는 서로 긴밀히 연관된 세 개념이다. 필연적인 것만이 무겁고, 무게가 있는 것 만이 가치가 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토마스는 자신의 결정을 의심해본다. 정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 하고.

물리시간에 학생은 어느 누구나 실험을 통해 어떤 학문적 가설이 맞는지를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평생을 살 뿐이다. 그에게는 가정의 정당함을 실험을 통해 증명할 가능성이 없다. 그 때문에 자기 감정을 따랐던 것이 옳았는가 아니면 잘못 되었는가를 그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토마스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의지와 운명에 가치를 두고 테레사를 되찾으러 국경을 넘기로 했다. 영원회귀 사상은 운명애(愛; Amor Fati)로 인해 시작되는데, 토마스는 자신의 결정을 의심하면서도 니체의 말을 믿어본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의 사랑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처럼 아름답게 몰락하게 된다.

모사세 XI – 은총, 경애

버림받음과 은총 恩寵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반대를 보고 있지만 서로가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몰이해와 경멸은 명확한 상처를 남기는데 이 상처는 따뜻함이라는 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일 상처가 없다면 사랑도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짝이 맞지 않는 힘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반대되는 힘들이 서로 균형을 맞추려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정인이 요한이 가진 성숙함에 끌렸던 건 박탈당하고 있었던 부모의 정이 그리워서였다고 할 수 있다.

국민학교 선생님들은 은총을 베풀 가능성을 지닌 다른 어른 집단이었다. 하지만 늘 딴 생각에 빠져 있고 성적도 별로 였던 정인은 선생님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아니 두들겨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하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몸은 교실에 있고 눈은 먼 산에 마음은 환상의 나라로 여행 가있던 정인을 갑자기 선생님이 부른다. 산수가 전공인 남자 담임 선생님이었다. 그는 삼각함수에 관한 질문을 하나 던졌고 정인의 얼굴은 곧 새하얗게 질렸다.

중년의 삐쩍 마른 담임은 떠듬떠듬 말 안 되는 대답을 하고 있는 정인을 몇 초간 무섭게 째려보았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다가와 정인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잡고 흔들었다. 정인의 머리는 사물놀이 광대처럼 휘저어졌다. 50명 정도 되는 반 아이들 눈 앞에서 이런 꼴을 당하는 건 수치심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아이의 공포와 굴욕감은 머리칼을 쥐고 흔드는 중년 남자에게 어떤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 지배욕이나 파괴본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욕망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이 또한 반대되는 힘의 균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거칠던 국민학교 시절의 담임 선생님 중에 정인을 아껴주었던 분이 한 명 있었다. 까만 뿔 테 안경이 단정했던, 똑똑하고 부드럽게 생긴 4학년 담임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처음 정인을 주목하게 된 건 그가 역사 지식이 뛰어난 학생이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일본 만화책을 모두 불태운 이후로 교양 역사책만 읽었던 정인에게 국민학교 국사는 아주 쉬운 것이었다. 선생님은 국사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가끔 던졌는데 키가 작아서 분단 맨 앞에 앉아 있던 정인은 수줍지만 정확한 대답을 매번 내놓았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감탄하는 표정으로(이건 꼬마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정인을 칭찬해주었다.

어른 정인은 지금도 경애 敬愛의 마음을 가지고 국민학교 4학년 담임 여자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분의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는 정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여기서 품어준다는 것의 의미는 사람 그대로를 사랑해준다는 뜻이다. 나이 열 살의 아이도 자기를 품어주는 사람과 자기를 들볶을 사람을 금새 구분할 줄 알았다. 민감한 판별 능력은 정인과 엄마의 비극에서 비롯된 사실이다. 엄마는 공부 못하고 빈둥대는 정인이라는 존재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떤 조건을 내세워 정인에게 공부의 동기를 주려 했다. 정인은 ‘먼나라 이웃나라’ 라고 하는 외국 역사 만화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읽고 흠뻑 빠졌었다. 어머니에게 사달라고 졸라 보았지만 대답은 한결 같았다. 공부 열심히 해서 반에서 10등 안에 들면 사준다는 것이다. 정인의 성적은 반에서 25등 정도였고 몇 년간 고정되어 있었다. 그에게 10등 안에 든다는 것의 의미는 신의 영역에 들어가라는 것과 다름 없었다.

국민학교생 동안 정인이 부모의 은총을 바랬던 대상은 먼나라 이웃나라 책 외에도 레고 장난감, 현미경 겸 망원경, 금붕어 어항, 아디다스 운동화 등등이 있었다. 하지만 정인은 10등 근처도 못 갔기 때문에 모두 얻지 못했다. 아버지는 정인과 접촉 자체가 별로 없었지만 마음이 같음은 잘 알 수 있었다. 정인의 국민학교 졸업식 날 꼬마는 6년 개근상이라는 자랑스러운 상을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그걸 보고 아버지가 금방 뱉은 말은 정인의 인생 전체에 긴 울림, 은은히 맴도는 메아리를 주었다. “우등상은 없니?”

조건적 사랑과 비조건적 사랑을 대변하게 된 두 인물은 정인의 꿈에 같이 등장한다. 엄마는 한 손에는 레고 장난감을 다른 한 손에는 먼나라 이웃나라 책을 들고 있었다. “공부를 잘 하면 사줄 거야” 이러면서. 정인은 헤라클레스와 거북이의 관계처럼 선물에 다가가려 하면서 결코 당도할 수 없었다. 공부의 세계는 그토록 오묘했다. 신의 은총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비극을 정인은 양 손에 유혹의 선물을 든 엄마의 꿈을 꾸며 느끼고 있다. 반대로 담임 선생님은 정인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정인이는 어쩜 이렇게 얌전하고 선생님 말을 잘 들을까.” 정인은 꿈 속에서 확고하게 느꼈다. 만일 선생님이 곤란한 일이 생겨서 “정인아 네 생명이 꼭 필요하게 되었단다” 라고 말씀하신다면 서슴없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