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세 IX – 지배자와 피지배자

꼬마 정인의 지배자는 당연히 어머니였다. 아버지도 지배자이긴 했지만 군림하되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아들 말고 신경 쓸 직장 일이 많았으므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아무튼 지배자 어머니의 법전에서 허용된 행위 중 재미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정말 단 하나도!

지루함과 투쟁심을 일깨우는 것들뿐이었는데 이게 정인이 역사책에 나오는 민란의 두목들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정인은 압제자를 바라보는 눈으로 어머니를 보았고 그녀는 공부에 집중 안 하고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정인을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정인은 기어 다니는 아기의 환상을 본다. 자신도 한 때 어머니 앞에서 부드러운 하늘색 옷을 입고 턱받이를 두르고 평화롭게 놀고 있던 작은 아기였다.

정인이 가정을 벗어나 학교로 등교했을 때 그곳의 지배자는 또 따로 있었다. 아이들을 잔소리와 몽둥이로 통제하고 있던 학교 선생님들이었다. 그 때는 학원 폭력이라든지 학생 인권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유롭게 학생들을 때릴 수 있었다. 그들은 높이 솟은 아파트 단지 가운데 자리잡은 광장(아고라), 즉 학교 운동장과 성스러운 교정을 다스리는 왕처럼 살았다. 학교는 독립된 섬 같았고 그 안에서 권력은 도전 받지 않았다. 선생님의 법전도 어머니의 법전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즐거움을 봉쇄하는데 주 목적이 있었다. 학교 복도에서 만화책을 들고 다니다 걸리면 책을 빼앗겼다. 방과후에 오락실에 간 게 들통나면 싸대기를 맞았다. 수업시간에 졸다가 발견되면 머리채 휘둘림을 당했다. 한 반에 50명의 국민학생이 모여 있는 교실은 사람 모임 보다는 원숭이 집합소 같았으므로 이런 폭력이 조금 불가피하기는 했다.

선생님의 폭력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되어 아이들도 폭력의 도구적 우수성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이 모여있는 교실은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았다. 약한 애는 맞았고 강한 애는 때렸다. 쳐다보는 눈빛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야 이 새끼야 뭘 야려” 라는 대사와 함께 휙 주먹이 날아간다. 그러면 맞은 아이는 코피를 흘리며 눈빛을 얼른 내린다. 분식집 주인의 아들은 가난하다고 맞았다. 말을 더듬고 몸치였던 시장 방앗간 아이는 하루는 말 더듬었다고, 다른 하루는 몸치라고 맞았다. 이렇게 두들겨 맞은 아이가 표정이 풀리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모습도 보았다. 정인은 난만한 폭력의 위험성에 눌리는 듯한 위압감을 느꼈다. 키 작고 만화책 읽는 것과 전자 오락 외에 잘하는 게 없던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사세 VIII – 조반유리 造反有理

나이 10살에 이미 거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인은 누구의 따뜻한 품에 안겨 있었을까? 그 품에 사람은 없었다. 정인은 수줍은 남자애라서 친구가 없다시피 했다. 혼자 즐기는 오락과 만화와 영화의 품에만 안겨 있을 뿐이다. 정인은 투명하고 둥근 어항에서 헤엄치는 분홍색 금붕어였다. 따뜻한 피를 그리워하는 작은 냉혈동물이었다. 하지만 정인의 이마저 보금자리도 결국 엄마의 침입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때 정인은 드래곤볼이라는 일본 만화책에 빠져있었었다. 일주일에 이천원 밖에 안 되는 용돈을 알뜰히 모아 오백원 짜리 해적판 만화책을 차곡차곡 수집했다. 용돈은 학교 준비물을 사라고 주어졌지만 정인은 만화책을 위해 모두 희생했다. 결국 30권이 넘는 만화책 전집을 모을 수 있었는데 방 바닥에 책을 흩어놓고는 뒹굴뒹굴 구르며 아무 책이나 골라 읽곤 했다. 드래곤볼은 어느 권을 읽든 놀랍게 재미있었다.

정인은 하교 길에 간만에 나온 새 드래곤볼 단행본 한 권을 사고는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멀리 언덕 가에 있는 집을 바라보았는데 마당에서 무얼 태우는지 연기가 은은히 올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정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 마당 한 켠에 드래곤볼 만화책이 수북히 쌓여있었고, 어머니는 무더기 곁에 앉아서 나무 막대기를 불쏘시게 삼아 불을 지피고 있었다.

이건 정인이 그동안 즐겨온 유희활동이 집 안에서 완전히 금지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정인의 어머니는 대학입시가 얼마 안 남았다는 심려를 10살짜리 국민학생 정인을 보며 느끼고 있었다. 입학 고시까지 8년이라는 세월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타는 초조함은 시간을 주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정인은 이제 집에서 노는 꼴을 보이지 않고 어떻게든 공부하는 꼴을 보여야 했다. 어머니는 정인이 방과 후에 집에 돌아오면 저녁식사를 먹였다. 그리곤 책상에 앉혀서 공부를 시켰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책을 읽기도 했고 아니면 무슨 뜨개질 같은 걸 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된 목적은 감시였다. 정인은 전과와 문제집을 펴놓고 열심히 딴 생각에 잠겨 들었다. 국영수 과목은 모두 더럽게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정인의 마음에 들었던 과목이 있었는데 바로 역사 과목이었다.

정인은 엄마가 참고서 말고 사다 주는 드문 책이었던 한국사 만화책 전집과 교양 서적들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특히 일본 만화책을 엄마가 모조리 태워버린 이후로는 더욱 반복해서 읽었다. 그래서 학교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들은 모두 익히 외우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정인은 수 많은 역사 사건 들 중 민란에 대한 이야기에서 제일 흥미를 느꼈다. 역사의 해석에 따르면 백성들은 지배자들의 착취에 허덕이다 결국은 봉기해서 일어난다. 착취는 과도한 세금일수도 과도한 노역일 수도 있었다. 명백한 것은 사회에는 항상 소수의 지배자가 있었고 거기에 복종하며 노예로 사는 다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존재한다는 기억, 존재를 잊게 만드는 기억상실

기억은 감정과 연결되고, 감정은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추운 겨울날 새벽 거리를 걸으면 무표정한 사람들을 수없이 지나치지만 모두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같이 손을 잡고 걸었던 한 사람은 마주 잡은 손의 감각과 비스듬하게 보이던 얼굴, 외투, 나누던 말까지 모두 기억난다. 마음이 기억이 되고, 관계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그걸 끊어버리는 병도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린 사람은 기억을 잃어버린다. 사람의 뇌는 컴퓨터 메모리처럼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가 따로 존재한다. 이 부위가 알츠하이머로 인한 위축(atrophy)으로, 아니면 혈관 장애나 감염, 염증 등으로 파괴되면 사람은 기억을 잃는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던 간절한 기억도 깨끗이 날아가 버린다. 기억이 없기 때문에 매일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게 반복된다. 아래는 신경 질환에 관한 대중 저서로 유명했던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전 컬럼비아 대학 교수가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라는 책의 내용이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완전한 기억상실 뿐이다. 그것만이 내 삶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다.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 루이스 부뉴엘 1

그는 순간 속의 존재이다. 말하자면 망각이나 공백이라는 우물에 갇혀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게 과거가 없다면 미래 또한 없다. 끊임없이 변동할 뿐 아무 의미도 없는 순간순간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신경과 의사였던 저자는 뇌신경의 일부가 손상되어 기억을 자꾸 잃어버리는 환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이 없다면 과거가 없어질 뿐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도 없어진다. 결국 끝없이 변하는 순간순간만 남는다. 기억상실은 나이든 사람에게 나타나지만, 아예 기억이 시작도 안된 사람은 어떨까? 나는 집 마루에서 열심히 기어 다니는 아기 조카를 보며 기억 없이 사는 게 어떤 건지 느끼곤 한다. 작고 따뜻한 이 생명체는 자극에 반응하며 목적도 없이 순진무구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일정 이상 기억이 쌓여버린 어른은 그 집적에 반응해야만 한다.

감히 말하자면 우리는 무수히 잡다한 감각의 집적 혹은 집합체에 불과하다. 그러한 감각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차례차례 계승되고, 움직이고, 변하며, 흘러간다.

아기는 아니지만, 어른의 기억상실은 병원 치료의 대상이다. 올리버 색스 교수는 자꾸 기억을 잃는 환자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매일 일기를 쓰라고 권유했다. … 그러나 나의 권유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무엇보다도 그가 항상 일기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그가 일기장을 몸에 지니고 다니게 해야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별 효과를 얻지 못했다. 그는 날마다 짧은 메모를 일기장에 착실하게 적어놓기는 했지만 바로 그 전날 자신이 쓴 것을 보고도 그것을 이해하질 못했다. 자신의 필적이나 문체는 알아보았기 때문에 그 전날 자신이 무엇인가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곤 했다.

기억상실의 종착역은 존재의 망각이다. 기억이 없어지면 자신에 대한 자각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는 대다수에게 옳지만 이 환자의 경우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한다는 걸 자주 망각한다. 그래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가 되었다. 살고 있다는 것, 생각하고 있다는 것, 모두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어떤 병은 이 모든 걸 리셋시킨다. 고상한 의미로 포장되어 있는 사람의 존재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밀어 넣는 것이다.

Notes:

  1. Luis Buñuel (1900년 2월 22일 ~ 1983년 7월 29일) 스페인, 멕시코의 영화 감독, 각본가

모사세 VII – 개 같은 내 인생

학교가 끝나고 혼자 집에 돌아가던 어느 햇빛 따스한 날이었다. 동네 골목을 걷는데 벽에 영화 포스터 한 장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영화 제목은 ‘개 같은 내 인생’ 이었다. 정인은 화들짝 놀랐다. 포스터 속 젊은 여자는 알몸으로 비스듬히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일단 제목에 ‘개 같은’ 이란 상스러운 말을 집어 넣은게 존경심이 들었다. 정인은 상스러운게 세상의 진실 중 하나란 걸 느끼고 있었다.

당시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은 한결같이 정제된 말과 정신상태를 보여주었다. 욕을 하는 일도 없고 벗고 다니는 일은 더욱 없었다. 정인이 기억하는 드라마 중 한 장면이 있다. 한 중년 부부가 밤에 같이 자러 누웠는데 방송용 조명이 켜져 있었기에 방은 저녁 때처럼 밝았다(이미 조명 부터가 드라마의 현실감을 방해하고 있다). 남편이 곁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그렇담 우리도…” 아내가 화답했다. “아이, 당신 왜 그러세요.” 나중에 알았지만 이건 늦둥이를 만들기 위해 성행위를 시도하는 남편과 거기에 부끄럽게 반응하는 아내를 묘사한 것이었다.

정인은 다른 하이틴 드라마도 기억한다. 한 고등학교에 부임해온 올곧은 남자 담임 선생님이 주인공이었다. 어느 날 한 건장한 체격의 남자애가 반으로 전학 온다. 원래 반을 장악하고 있던 키 크고 뚱뚱한 다른 남자애는 이 전학생에게 시비를 걸었고 둘은 학교 운동장 한 켠에서 맞붙는다. 둘 다 생긴 건 험악했지만 욕도 한 마디 하지 않고 “너 그러면 안돼”, “왜 그런 말을 하지?” 식의 대사를 읊고 있었다. 물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 차고 코피 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 아이들 대사의 95 퍼센트는 욕이었다. 게다가 정인은 주먹으로 맞고 발로 걷어 차이고 코피가 났었다. 오락실의 사이버 세계에서 상대를 농락하며 눌렀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웃기지도 않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니 ‘개 같은 내 인생’ 의 벗은 여배우가 더욱 정직해 보였다. 세상의 상스러움을 받아들이려는 정인의 노력은 할리우드 영화 감상으로 이어졌다. 이건 일본 만화랑은 또 다른 폭력성을 안겨 주는 훌륭한 도구였다. 정인의 마음에 충격을 안겨준 영화는 ‘로보캅’ 과 ‘프레데터’ 였다. 로보캅에서는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의 범죄자들이 총에 맞아 파리새끼 죽듯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살육의 장면은 마치 폭죽이 마구 터지는 걸 보는 것처럼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프레데터에서는 사람의 가죽을 산채로 벗겨서 죽이는 괴물이 등장한다. 괴물은 근육질의 군인 아놀드와 대결했는데, 그를 뺀 인간 동료는 모두 괴물에게 맞아 죽었다. 하지만 아놀드는 부비트랩을 설치해서 괴물을 반 죽음 상태로 만든다. 이상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프레데터에게 다가가 특유의 무뚝뚝한 저음으로 “도대체 네 정체가 뭐냐?” 라고 말을 거는 장면은 특히 감동적이었다.

하얀 피부에 찰랑거리는 직모 머리가 순진해 보이는 정인이 폭력에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는 건 별로 놀랄 일이 못 된다. 그는 항상 무관심하다가 기분 날 때마다 윽박지르는 아버지와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잔소리를 쏟는 어머니에게 매일 괴로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정인의 무의식은 부모님을 싫어하는 마음에 대한 죄책감 또한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는 발산이 필요했고, 그 강도는 높으면 높을수록 좋았다. 그게 개 같은 인생을 살면서 멀쩡한 정신이 되는 방식이었다.

사도세자 思悼世子, 정신병

세자인 아들은 궁중 내시와 나인들을 수 없이 죽였다. 한 번은 내시를 죽이고 그 목을 잘라 혜경궁 처소까지 들고 들어왔다. 그걸 본 아내 혜경궁 홍씨와 궁인들은 소스라쳤다. 하지만 세자 신분상 사소한 살인은 죽을 죄가 아니었다. 그가 혼란한 정신에 아버지 임금인 영조를 죽이겠다는 말까지 뱉자 결국 대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는 정치 음모론 시각에서 벗어나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갈등을 주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정신병이 있는 사람의 실체와 그와 반응하는 인간 역동이 자세히 나와있지는 않은 것 같다. 부드럽고 지적으로 보이는 배우 유아인씨에게는 기괴하고 강박적인 살인자의 이미지가 나오지 않는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은 상처받은 미남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몰입이 잘 안 되었다. 하지만 눈물 흘리는 약한 인간으로서의 세자는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정사 자료인 <조선왕조실록>과 야사 자료인 <한중록>을 살펴보면 둘 다에서 사도세자의 정신병은 확인된다.

정축년·무인년 (영조33~34년) 이후 (사도세자의) 병의 증세가 더욱 심해져 병이 발작할 때에는 (사도세자가) 궁비(宮婢)와 환시(宦侍)를 죽이고, 죽인 후에는 문득 후회하곤 하였다. – <영조실록>, 영조 38년 윤 5월 13일자

한중록은 친정 집안을 방어하기위해 혜경궁 홍씨가 기록한 것이므로 내용이 왜곡되었을 거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2014년 서울아산병원의 정신과 의사들이 한중록을 분석해서 논문을 냈고, 한중록의 내용은 허구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도세자에 대한 정신의학적 고찰’ 논문 링크

한중록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신병적 증상에 들어맞는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정신증상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순전히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술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도세자는 여러 차례의 우울삽화 및 조증삽화를 겪었으며, 기분 삽화가 재발과 관해를 반복하는 경과를 보였던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직계가족을 중심으로 가족들의 정신증상 유무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 기분장애의 가족력 또한 배제할 수 없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사도세자에게 양극성 장애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사도세자는 즐거움과 우울·분노가 극단적으로 교차하는 정신병인 양극성 장애를 앓았을 거라고 추정했다. 양극성 장애는 아직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병이다. 유전적 요인, 신경생물학, 정신약물학, 내분비 기능의 이상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신역동의 관점에서 보면 우울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대항하는 방어로 조증을 보인다는 견해가 있다. 아버지 영조의 엄격한 훈육이 아들을 질식하게 했고, 결국 유전적인 요인과 맞물려 우울증에서 조증, 정신병인 양극성 장애로 발전해갔다고 생각된다.

임금 영조는 당연히 정신병자 세자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아들과 가망 없는 화해를 시도했으며, 아들에게 왜 사람과 동물을 죽였느냐고 물었다.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용포를 부여잡더니 아래과 같이 털어놓는다.

“소자는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세자가 대답했다.
“어째서 상처를 받았느냐?” 왕이 물었다.
“아바마마께서 사랑해주시지 않아서이옵고
또, 아아, 아바마마께서 늘 저를 꾸짖으시니 소자는 아바마마가 무섭사옵니다.”

정말 슬픈 대목이었다. 하지만 영조는 아들을 더욱 꾸짖을 뿐이었다. 1762년, 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는 왕에게 아들을 죽일 것을 청하였다. 사도세자가 이미 백여명의 궁인들을 죽이고, 아버지 임금까지 죽이겠다는 말을 하고 나서이다. 만일 노론 당파의 정치 음모론(이덕일 사관)이 사실이라면 생모가 세자를 죽이는 데 가담할 이유가 없다. 그녀는 미친 아들이 사사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손자인 세손만은 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영빈 이씨는 친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간 죄의식에 괴로워하며 “내 무덤에는 풀도 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한탄했다. 영조는 세자에게 자결을 명한다. 왕족으로서 고상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내려준 것이다. 하지만 영조의 처분에 광증의 아들은 울며불며 말한다.

아버님 아버님, 잘못하였사오니, 이제는 하라 하옵시는대로 하고, 글도 읽고 말씀도 다 들을 것이니, 이리 마오소서.

하지만 이미 돌아갈 길은 없었다. 사도세자는 여름 폭염 속에 뒤주에 갇혀 사경을 헤매다 8일 만에 아사(餓死) 한다. 시체로 나온 세자에게는 자기 오줌을 받아 마신 흔적이 있었다. 조선시대 가장 기괴하고 슬펐던 부자(父子) 간의 갈등 사건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아들 정조는 아비가 미쳐서 죽어가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왕으로 즉위하던 날 대전에 모인 신하들 앞에서 처음 꺼낸 말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었다. 그는 뒤주에서 죽은 아버지를 장성하여 왕이 될 때까지 하루도 잊지 못한 것 같다. 영화 <사도>의 말미에 정조(소지섭 분)가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부채춤을 추며 울던 모습은 그래서 가장 슬픈 장면이었다.

모사세 VI – 거리의 싸움꾼

정인이 즐긴 두 번째 주요 유희는 오락실이었다. 이건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가장 즐거운 취미활동이 되었다. 어떻게 돈이 들어오든 100원만 생기면 먼저 오락실로 달려갔다. 허름한 상가 건물 지하에 있는 오락실에서 들리는 효과음은 몽환적이었다. 담배연기가 안개처럼 깔려 있는 어두운 실내는 숭고한 인생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정인은 어른이 된 지금도 그때 듣던 동화같은 전자음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마치 그 소리가 어린 시절의 꿈을 되살려 주는 주문이 되는 것 처럼.

당시에는 스트리트 파이터 2 라는 게임이 전국 오락실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선택할 수 있는 주인공 수가 8명이나 되고 공격버튼이 6개나 있던 획기적인 게임이었다. 조이스틱을 잽싸게 돌리고 버튼을 타다다닥 눌러서 펼치는 공격 동작은 아주 부드러웠다. 정인은 인간 신체의 움직임이 구현하는 아름다움을 현대 무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락실 오락을 통해서 배웠다. 특히 같이 구르면서 발을 상대 배 위에 놓고 던져 버리는 켄의 기술은 실로 예술의 경지였다.

8명의 주인공은 각자 뚜렸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 괴물에 가까운 놈들도 있었고 비교적 사람에 가까운 놈들도 있었다. 브랑카, 달심, 장기에프, 혼다가 전자에 속했고 류, 켄, 가일, 춘리는 후자였다. 이 게임의 백미는 일 대 일 대전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이전의 오락이 혼자 아니면 둘이서 같이 미션을 완수하는 것이었던 반면 스트리트 파이터는 두 명이 맞붙어 실력을 겨루는 게임이다. 오락실 마다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애들 몇 명씩 생겨났는데 이들 뒤에는 조작법을 구경하려는 관중이 구름처럼 몰리곤 했다. 실력만 있으면 다른 사람을 게임 상에서 줘 팰수 있고 게다가 자신의 실력을 놀라운 듯 보는 관중이 있다는 사실은 정인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그는 미친듯이 조이스틱을 움직이며 연습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2 에서 최강은 가일과 달심이었다. 둘 다 장풍을 쏠 수 있었고 특화된 얍삽이 기술이 있었다. 하지만 정인은 대중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중국 무술 소녀 춘리를 가장 아꼈다. 그녀는 까만 스타킹 신은 반짝이는 다리로 멋도 모르는 국민학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만 강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가볍고 점프가 빠르지만 가일이나 류, 켄 같이 대공기가 강한 놈들에게 쉽게 잡히는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정인은 애정을 가지고 춘리의 싸움 기술을 혁신시켰다. 그는 춘리의 빠른 스탭을 이용해서 이리저리 지상에서 움직이다 갑자기 하단 발 차기를 썼다. 페이크 동작을 넣고 갑자기 상대방 등 뒤로 휙 점프를 해서 바로 던지기 기술을 걸었다. 상대방은 이 새로운 기술에 정신없이 속아 넘어갔다.

정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고 많은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이 국민학생은 하루 종일 스트리트 파이터만 생각했다. 페이크에 더 완벽을 기하기 위해 하단 발이 아닌 중단 주먹을 쓰기도 했고 제자리 점프를 그냥 뛰기도 했다. 밤이 될 때까지 오락실에서 있다 집에 돌아와도 춘리만 생각했다. 밤에 불끄고 잘 때도 어두운 천장에서는 상상 속의 춘리가 이리저리 점프하며 날아다녔다.

그렇게 몇 달을 오락실에 다니니 정인은 유명한 고수가 되어 있었다. 관객들은 춘리가 가일이나 달심을 농락하며 이기는 모습을 경외감에 차서 바라보았다. 그날도 정인은 학교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오락실로 달려가 백원 동전을 넣고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정인에게 도전한 상대방은 류를 쓰고 있었는데 정인과 높은 오락기계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첫 판에 정인은 류를 완전히 가지고 놀았다. 류가 장풍을 쏘면 제자리 점프로 피했고 류가 앞으로 점프하면 재빨리 뒤로 물러나 착지 지점에 하단 발차기를 걸어 넘어뜨렸다. 오락기 뒤 편의 남자가 씨발 씨발하며 동전을 다시 넣는 소리가 들렸다. 정인은 또 여유있게 그를 눌러주었다. 그는 가일로 바꾸어서 도전해왔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정인은 절대 허점이 큰 동작을 쓰지 않았다. 가일의 소닉붐을 피하며 접근해 아래 발차기를 하고 그대로 던지기로 연결시켰다. 그렇게 몇 번 당한 상대가 긴장해 어쩔줄 모르고 있으면 휙 등 뒤로 날아가 또 던지기를 걸었다.

하지만 이때 정인은 너무나 자기 실력에 도취되어 있었다. 조금은 가상 현실 세계에서 물러나 현실의 분노가 초래하는 씩씩 소리에 주의했어야 했다. 정인은 콤보 어택을 시작했다. 이건 날라차기의 타점을 최대한 늦춰서 때리고 지상에서 연속 공격을 하는 건데 2~3번의 콤보가 성공하면 잘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상대방은 5단, 6단 콤보까지 얻어맞고 있었다.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은 전혀 방어를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잔뜩 열받아 있던 상대는 정인을 두들겨 패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거리의 싸움꾼 이 오락실의 싸움꾼이 된 것이다. 첫 공격은 중단 발차기 였다. 일격에 정인은 오락실 의자 뒤로 털썩 쓰러졌다. 이어서 그가 구사하는 콤보에 때리는 족족 맞았다. 때리면서 “이 X새끼가 얍삽이를 써!”, “X발놈이 그딴식으로 께임을 해!” 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정인의 등 뒤에서 그의 플레이를 구경하던 관객들은 어느새 현실 세계의 폭행으로 바뀐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게 그들에게는 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정인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수그린채 계속 불쌍하게 얻어맞았고, 오락실 동전 교환 아줌마가 와서 말리는 바람에 이 싸움꾼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