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 II – 허영심

어려서 읽은 동화가 실은 병적인 어른 심리를 바닥에 깔고 있다는 걸 알고 놀라울 때가 있다. 그림 형제 동화 중 하나인 ‘백설공주’ 에서 왕비는 매일마다 마법 거울 앞에서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라고 말하곤 했다(억양까지 잊혀지지 않는 대사).

왕비가 제일 예쁘다는 말을 듣는 동안은 평온했지만 어느 날 솔직한 거울이 백설공주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하자 온갖 사단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왕비는 허영이 지나쳐 자기보다 예쁜 여자는 살려둘 수 없다는 정신병으로 발전하고 말았다. 뛰어난 심리 해설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 책 초반부 부터 허영의 심리에 대해서 예리하게 파헤친다. 허영은 행복을 망치는 심리이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인 ‘사랑하는 능력’ 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허영심이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모든 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말살해 버리기 때문에, 허영심이 지나친 사람은 결국 무기력과 권태에 빠지게 된다. 허영심은 자신감이 부족한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존감을 키워야 허영심을 치료할 수 있다. 자존감을 기르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적인 대상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활동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 뿐이다.

​지나친 허영은 자신감의 부족으로부터 온다고 말하고 있다. 놀라운 해석이다. 자존심이 너무 세서 허영심이 강한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 불안해지고 공허해지고, 결국 그걸 메우기 위해 허영에 빠지는 게 맞다. 결국 허영심은 과거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던 기억으로부터 오는 반동 심리, 병적 심리가 된다.

그래서 허영심 에서 탈출하려면 먼저 상처의 기억으로 크게 어그러져 버린 자아의 감옥을 허물고, 즐겁고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인간의 본능은 완전한 자기중심성과는 거리가 멀고, 자기도취적인 경향이 있는 사람은 죄의식에 사로잡힌 인간과 마찬가지로 늘 자신을 인위적으로 제약하기 때문이다.

자아의 감옥에서 벗어난 사람이 가진 특징 중에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된다. 사랑은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받는 사랑은 마땅히 베풀어야 할 사랑을 해방시켜야 한다. 이 두 종류의 사랑이 비슷한 수준으로 존재할 때 사랑은 그 최대의 가능성을 달성할 수 있다.

자기 중심적이지 않은 사람은 남을 잘 사랑해주는 능력도 갖춘다. 이 능력이 있는 사람은 외모가 아니더라도 매력있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오프라 윈프리 같은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오만하지 않다. 이해심이 있으며 말을 재치있게 한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들이다. 허영심을 버리고 대신 가져 볼 만한 미덕이다.

니체를 읽으면 좋은 이유 VII – 무아無我의 예술

니체가 바그너를 좋아했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니체는 피아노 연주를 할 줄 알았고 작곡을 하기도 했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공자도 음악을 좋아했는데, 니체도 그랬다. 집단의 가치관인 사상을 창조하는데 있어 예술적 감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니체에게 예술은 사상과 따로 분리된 게 아니었고, 예술이 사상이고 사상이 예술인 경지를 추구했다. 사상이 머리 속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표현되면 무용이 되고, 리듬과 멜로디로 조화되면 음악이 된다.

현대 무용의 선구자인 이사도라 던컨은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데, 무용에서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 근원적이고 무의식적인 동작으로서의 최초의 움직임을 발견하는 것’ 을 추구했다. 또한 ‘귀에 들리지는 않으나 어떤 분명한 리듬에 의해 생겨나는 듯한 움직임을 발견하는 것’ 을 말하기도 했다. 던컨의 말은 니체가 얘기한 근원 정신과 연결되는 무아無我의 예술 을 잘 표현한다.

근사한 음악을 들으면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달콤한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이런 무아의 상태에서 니체는 책을 저술했다. 그의 책을 읽는 사람도 만약 교감이 잘된다면 이런 황홀경에 빠질 수 있다. 아래는 뤼디거 자프란스키作 <니체, 그의 생애와 사상의 전기>에서 옮긴 구절인데 한 번 읽어보자.

니체는, 하나의 사상이 인간의 몸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기 위해서는 언어를 통해서 아름답고 인상적인 외관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언어의 외적인 스타일에 대한 감각을 니체는 우리가 육체를 통해서 얻게 되는 느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가 언어에 반응하는 것과 우리 몸이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에 대해서도 경쾌하고, 활동하고자 하는 활기찬 욕망이 생기는 경우에서부터 늘어지고 심지어는 욕지기가 나오는 경우까지 겪는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과 타인을 감동시키는 문장을 추구했으며, 이러한 문장을 걸으면서 구상했는데 그것은 리듬을 나타내고 싶기 때문이었다. 종종 그는 자신의 사고를 만들어내고 언어를 만들어낼 장소를 탐색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읽어보면 작품 전체가 산문(散文)이 아닌 운문(韻文)으로 된 시처럼 느껴진다. 니체가 좋아한 그리스의 술 주정뱅이 신 디오니소스의 정신이 미친 시인을 통해 암송되는 것 같다.

니체를 읽으면 좋은 이유 VI – 이터널 선샤인

이터널 선샤인 이라는 영화의 이름은 알렉산더 포프의 시 ‘Eloisa to Abelard’ 에서 따왔다. 원제는 ‘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 티끌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빛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에서는 실연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슨 기계의 도움을 받아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지우려는 남녀가 등장한다. 여자가 먼저 남자의 기억을 지웠는데, 그걸 모르던 남자는 간만에 만난 여인이 자신을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쳐다보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잊혀지지 않는 장면). 아무튼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여자와 똑같은 방법을 써서 자기 기억도 지운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오감이 자석처럼 서로를 당기는 탓인지 모르지만, 다시 만난다. 처음 우연히 마주쳤던 기차가 닿는 바닷가 마을에서 조우해서 다시 똑같이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의 상징과 결말은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와 잘 통하는 면이 있다. 문학 작품에서 태양은 신神, 절대자, 하나님을 상징하고, 영원한 햇살은 영원한 사랑, 즉 아가페가 된다. 티끌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빛이라는 구절은 마음이 순수한 사람은 영원한 사랑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랑’ 은 영원회귀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삶에 대한 사랑은 대부분의 경우 긴 삶에 대한 사랑의 반대이다. 모든 사랑은 순간과 영원을 생각한다. – 그러나 결코 ‘길이’를 생각하지 않는다.

고병권 작가의 <니체의 위험한 책>에서 옮겨온 구절이다.  말 그대로 사랑은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본다. 사랑에 제대로 빠져있는 사람은 몸이 가벼워 둥둥 떠다니는 것 같고 달콤한 기분에 젖어 있다. 그런 순간에는 길이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랑이 끝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미 티끌이 들어와 버린 것이다. 이렇게 사랑은 본질 안에 영원이라는 개념을 품고 있다. 사랑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 수 있고, 자신의 공부와 일과 이상(理想)을 포함하는 운명을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사랑이 영원히 돌아온다면 영원회귀가 된다. 니체는 Amor Fati 즉 운명애(運命愛) 라는 말을 했는데, 모든 다가오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마음에 아무런 주저(티끌) 없이 자기 삶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운명애를 이룬 사람이다. 이 운명애가 극진해지면 영원회귀로 들어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래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구절들을 읽어보자.

그러나 내가 엮어져 있는 인과의 매듭은 영원히 회귀한다. – 그것이 나를 다시 창조하리라! 나 자신이 영원 회귀의 그런 원인들의 일부인 것이다. 이 태양과 더불어, 이 대지와 더불어, 이 독수리와 더불어, 이 뱀과 더불어, 나는 다시 돌아오리라. 새로운 삶, 혹은 보다 나은 삶이나 유사한 삶으로가 아니라, 최대의 것에 있어서나 최소의 것에 있어서나 지금과 동일한 이 삶으로 나는 영원히 돌아오리라. – 다시 한 번 만물의 영원 회귀를 가르치기 위해, 또다시 대지와 인간의 위대한 정오를 가르치기 위해, 다시금 인간에게 초인을 알리기 위해.

나와 내 운명은 오늘을 향해 말하지 않으며, 결코 오지 않을 날을 향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이미 말을 하기 위한 인내와 시간, 그리고 시간을 뛰어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언젠가 와야 하며 결코 지나쳐 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와야 하며 그냥 지나쳐 가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들의 위대한 하자르, 우리들의 거대하고 먼 인간제국, 차라투스트라의 천년왕국이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 자신의 운명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다시 살게 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이 고스란히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믿음이 성립하고 이것이 영원회귀의 근거가 된다. 극진한 시간에서 시간은 길이가 아니라 영원이 된다. 설령 기억이 지워진다해도 의지는 같은 운명을 다시 만들어 낸다. 마치 이터널 선샤인의 두 주인공들 처럼. 그래서 영원한 회귀 안에서는 생성이 그 자체로 시간이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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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세 V – 아이스크림 트럭

이승복 어린이 반공 영화를 본 것은 오래 지속되는 영향을 낳았다. 정인은 잔인한 살인마를 그렇게 생생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비가 출몰하는 산골 지역과는 상관없는 수도권 도시에 살고 있었지만 정인은 밤 마다 공비가 집에 들어오지 않을까 무서워했다.

훗날 다 큰 정인은 ‘리더스 다이제스트’ 라는 미국 잡지를 읽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했다. 부모는 아이가 하는 흔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라는 글이었다. 한 질문은 이랬다. 아이가 영화에서 본 괴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부모는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까요?  답은 “아빠 엄마는 이 비싼 집을 공들여 가꾸고 있단다. 여기에 괴물 같은 게 들어오게 하지는 않을꺼야” 였다. 정인은 아이들은 별별 질문을 다 하는구나 게다가 답변도 설득력있지는 않은데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자신도 아이 시절 공산당 공비가 집에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 했던 것을 떠올렸다. 이 생각은 다른 것 하나도 떠올리게 했다.

정인이 보았던 ‘싸이코'(Psycho)라는 영화에 대한 기억이었다. 옛날 영화여서 요란하지 않고 조용한 편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무서운 건 더 했다. 여기엔 죽은 엄마를 대신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싸이코 남자가 나온다. 그는 백골의 시체가 된 엄마를 고운 옷을 입힌 채 잘 앉혀둔다. 가장 무서웠던 건 샤워실에 들어가 기분좋게 샤워하던 여자를 싸이코가 찔러 죽이는 장면이었다. 어린 정인은 옷을 벗고 목욕하고 있을 때 공비가 들어오지 않을까 무척 두려워 했었다. 발가벗은 채로 칼에 난도질 당해 죽는 상상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던가! 정인은 아이 시절 이미 가장 비참한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훗날 그는 이 영화가 인간이 태생 때 부터 가지는 공포의 원형을 형상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민학생이었던 정인은 목소리도 맑고 야한 생각도 안 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성적 에너지는 모양을 바꾸어서 이상한 전기자극을 흘려주고 있었다.

이제까지 말했던 공포나 강박, 유혹은 기억이 처음 기억이 되던 시절 정인의 마음 안에 새겨졌다. 그리고 국민학생 3학년 정인은 유희에 대한 자신의 기호를 처음 확립하기 시작한다. 그건 즐거움에 대한 욕구가 탄압에 대한 반대급부로 생겼기 때문이다. 정인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항상 공부를 시키고 언제나 정인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바빠서 밤 늦게 들어왔다. 방에서 나와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라고 인사하고 다시 방에 들어가는 게 아버지와의 접촉의 정례이자 전부였다. 아버지는 항상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주말에는 집에서 죽은 듯이 널부러져 잠만 잤다. 마치 몸이 쇠이고 바닥이 자석인 것 처럼 누워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나중에 커서 전쟁 같은 직장 생활에 대해 알게 된후 어린시절 아빠가 보여준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무튼 정인에게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달려가 안길 사람은 아니었다.

정인이 달려가 안기고 싶은 대상은 모두 일본에서 건너온 것들이었다. 오락실과 일본 만화책은 낙원 같은 행복을 이 꼬마에게 주었다. 정인은 국가적인 반일감정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다. 원수에게서 맛있는 꿀을 선물 받아 먹는 사람의 심정이었을까? 하지만 죄책감도 점점 희미해졌는데, 꿀은 일등품이었고, 원수가 진짜 원수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인은 고정 도덕을 뒤집을 것을 결심한다. 반일감정을 즐거움에 대한 탄압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미 부모님으로부터 비슷한 탄압을 받는다고 느끼고 있었으므로 권위가 있는 존재는 즐거움의 방해자라고 정의되었다. 이렇게 보면 부모님도 학교도 국가도 모두 억압자 연합이었다. 그들은 항상 옳은 걸 강요하지만 정인이 뭘 재미있어 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공부 안 하면 답답하다고 소리치며 두들겨 패려고 할 뿐. 반면 ‘해야 한다고 하는 것들’ 만 우글우글 있는 학교 담장을 넘으면 즐거움의 보금자리에 갈 수 있었다.

담장 너머에서는 사람이 설탕더미로 변해갔다. 어느 미남 청년 사장이 몰고 다니는 아이스크림 트럭 에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냉동 트럭 안에 들어가 무더기로 쌓인 아이스크림을 같이 핥아 먹었다. 그렇게 계속 핥다 보니 아이들은 어느새 사람이 아닌 아이스크림으로 변해 버렸다. 끝없이 떠도는 서커스단이 동네로 찾아오기도 했다. 단원 중에는 아름다운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서커스 단이 공연을 열면 이 예쁜 소녀를 뺀 다른 단원들은 모두 묘기를 부리다 사고로 죽었다. 단장은 소녀를 유혹의 미끼로 사용해서 관객들을 단원으로 불러 모은다. 이 이상한 서커스단은 이렇게 영원히 동네를 돌아다녔다. 이런 환상의 세계를 정인은 살고 있었지만 어른들은 물론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니체를 읽으면 좋은 이유 V – 운명의 주인

​고난과 시련이란 이름의 마차를 타고
폭풍 이는 벌판 위에 영원히 피어나라
Wake up, my queen 첫 눈물의 여왕이여
Now arise, my queen 운명의 주인이여
너 홀로 의지의 배를 타고 내게로 오라
이 영겁의 고독에서 몸부림치는
날 구해다오

넥스트(N.EX.T)의 ‘사탄의 신부(新婦)’ 라는 곡의 가사이다. 이제 고인이 된 신해철님은 철학과 출신 답게 실존주의 분위기의 가사를 자주 썼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운명의 주인이여’ 라는 부분에서 항상 감동을 받았다. 운명의 주인 이라는 말은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된다는 것과 비슷한 뜻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니체 해설서를 많이 쓴 고병권 작가님의 책 구절을 읽어보자.

우리가 니체를 동정할 필요는 없다. 동정을 받아야 할 쪽은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시작과 끝만이 아니라 생애의 대부분에서 주인 노릇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왜 만들어 놓은지도 모르는 가치와 규범에 복종하고, 미리 정해져 있던 길을 따라 의미없는 생을 이어간다면 그 생은 죽음보다도 비참한 게 아닐까. 그러나 니체는 적어도 자기 삶의 많은 순간들에서 주인이었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용했다. 스스로를 돌이켜 봤을 때, 인생의 처음 20년 정도는 외부에서 정해놓은 가치와 규범에 복종했던 삶이었다. 너무 당연한거라 느끼고 의식도 못하고 있었지만 삶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중산층으로 태어나 학벌을 만들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하지만 그렇게 정해진 생을 사는 건 결국 허무의 문제를 불러온다.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필요가 있다. 운명의 주인 이라는 말에는 우선 자기 운명은 멋진 것이라는 함의가 있고, 또 그것의 주인은 오직 자신 뿐이라는 자신감도 담겨있다. 내 운명은 거지같이 살다가 거지같이 죽는거야 라고 믿는 운명의 주인은 없다. 그렇다면 니체 자신이 생각한 운명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의 저서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를 읽으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나는 나의 운명을 안다. 언젠가는 나의 이름에는 엄청난 사실이 추억으로 연상이 될 것이다. 즉 세상에서 전대미문의 대 위기와 가장 심원한 양심의 갈등, 그리고 이제까지 신뢰되고 요구되었으며,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에 거역하여 만들어졌던 결정에 대한 추억 말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처럼 스스로를 새 시대의 사상적 구원자로 생각했던 것 같다. 2천년 전의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하거나 그마저 넘어서는. 그래서 앞으로도 기독교계로부터는 영원히 욕을 먹을 것 같다. 니체는 이렇게 거대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평범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과는 지구와 별처럼 떨어진 사색을 했다. 따라서 그의 책을 이해하려면 그의 입장을 상상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처음 읽으면 횡설수설로 들리는 니체의 저작들은 당대의 유명한 사상가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들에게 니체는 정신을 해방시키는 종교의 교주였다.

너는 너 자신의 주인, 또한 네 덕성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예전에는 덕성이 너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도구일 뿐이다. 너는 자신의 의사 결정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더 높은 목표를 위해서 네 힘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는 모든 가치 판단을 할 때 미래를 지향하고 고려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많은 깨달음을 주는 니체의 말이다. 덕성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정해놓은 것이다. 우리나라 상황을 예로 들면 열심히 공부하는 것, 열심히 일하는 것,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 등이다. 당연하게 정해져 있어서 실제로 옳은지 생각도 안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절실히 깨닫은 목표의식이 없다면 그건 노예의 덕성이다. 왜 공부하는지, 왜 일하는지, 왜 이념을 수호해야 하는지 생각없이 시키는 대로 한다면 결국 허무의 문제가 찾아온다. 높은 목표를 찾으면 노예의 덕성을 뛰어 넘을 수 있다. 예전에는 강박이고 피로를 주던 덕성이 이제는 필요할 때 쓰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 목표의식은 자신의 운명을 찾았을 때만 충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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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 전투 II – 이에야스의 책략

메이지유신 후 일본의 신정부는 프로이센과 프랑스간의 전쟁인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독일 육군의 편제와 전술을 도입하고자 했다. 그래서 독일의 클레멘스 메켈 소령을 군사고문으로 초빙했는데 일본인들은 메켈에게 결과를 알리지 않은 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의 양군의 병력 포진도를 보여주었다. 메켈은 서군의 승리를 장담했다.

하지만 실제 전투의 결과는 한 나절도 버티지 못한 서군의 참패였다. 서군의 주요 다이묘였던 이시다 미쓰나리, 오타니 요시쓰구, 우키타 히데이에, 고니시 유키나가의 3만 3천여명 군대는 전투에서 괴멸, 와해되었다.

전투 시작 당시 서군 측의 미쓰나리는 사사오 산(笹尾山)에, 우키타 히데이에는 덴만 산(天満山),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마쓰오 산(松尾山)에 각각 포진했다. 게다가 총대장을 맡은 모리 가문을 대표해서 참전한 모리 히데모토는 전선 후방의 난구 산(南宮山)에 주둔해서 동군의 퇴로를 끊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동군의 총 대장 이에야스는 산 아래 좁은 분지에 학익진(鶴翼の陣) 형태로 포위된 진세를 상관치 않고 전투를 시작한다. 외교 책략으로 이미 모리와 고바야카와의 배신을 확정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리 데루모토는 석고 120만석으로 서부 일본의 최대 다이묘이자 히데요시 정권하 다섯 유력 다이묘의 모임인 고다이로(五大老,오대로)의 일원이었다. 데루모토는 서군의 총 대장으로 추대되었지만 전쟁에 대한 모리 가문내의 의견이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했다. 결국 그는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하지도 않고 오사카 성에서 후계자 히데요리를 보호하며 자중하고 있었다.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히데요시의 정실인 네네의 조카였던 인연으로 추코쿠의 다이묘였던 고바야카와가의 양자로 들어간 인물이다. 서군 내에서 주력군을 이루는 약 1만2천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던 그는 전투 전 이미 이에야스측과 내통한 상태였다. 결전 초기 서군에 우세한 전세가 펼쳐지자 사태를 방관하며 그대로 산 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초조해진 이에야스 측의 위협 사격을 당했고, 결국 아군의 허리를 찌르는 결정적인 배신을 감행한다.

서군의 실질적인 총수 이시다 미쓰나리는 동군과 대등한 병력을 집결하고 유리한 위치에 포진시켰지만 전군을 일사 분란하게 지휘할 수가 없었다. 서군을 대표할 직위도 없었고 이에야스처럼 자기 영지에서 대군의 중추가 될 병력을 동원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히데요리가 장성한 성인이어서 전쟁터에 참전할 수 있었다면 그 상징성 때문에 싸움의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히데요리는 오사카 성 밖을 나가본적도 없던 8세의 어린아이였다. 그래서 이에야스는 히데요리가 크기 전에 전쟁을 일으키려고 동분서주했다.

이에야스는 영지에서 약 7만명의 하타모토(旗本;はたもと;다이묘직계군사)를 동원했고 이중 반을 세키가하라에 투입했다. 그리고 전쟁 전 외교 책략으로 서군을 분열시켜 놓았다. 결국 전투를 방관한 모리 군과 전투 중에 창 끝을 돌린 고바야카와 군으로 인해 세키가하라의 승부는 결정되었다. 클레멘스 메켈 같은 전문 군인이 금방 예측했던 포진 상의 우위를 정치적 책략으로 무력화시킨 이에야스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