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가하라 전투 I – 천하를 가르는 전투
세키가하라 전투는 서기 1600년 음력 9월 15일에 미노 국 세키가하라(현 기후 현 후와군 세키가하라마치)에서 벌어진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결전이다. 천하를 가르는 전투(天下分け目の戰い; 텐카와케메노 타타카이)로 불리는 이 결전에서 일본 전국의 다이묘(봉건 영주)들이 두 패로 나뉘어 싸웠다. 한 편은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총신 이시다 미쓰나리가 지휘했던 서군이었고, 다른 편은 히데요시 사후 정권을 노리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이었다. 양측에서 각각 약 10만의 병력을 동원해 결전을 벌였지만 전투는 불과 한 나절 만에 끝난다.
타이코라는 직위로 일본 전국을 통치하던 히데요시가 죽었을 때 그를 이은 건 불과 6세의 후계자 도요토미 히데요리였다. 전국 최대의 다이묘로 약 255만석의 석고를 가지고 있던 1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권을 빼앗으려는 야심을 품는다. 히데요시는 죽으면서 나름의 안전장치를 강구해두었었다. 고다이로(五大老;오대로)와 고부교(五奉行,오봉행) 조직이 그것이다. 고다이로는 당시 전국에서 가장 세력이 강했던 다섯 명의 대 다이묘 연합체였다. 유력 다이묘들이 세력 균형을 이뤄 히데요리의 권력이 침범받는 일이 없도록 했다. 고부교는 도요토미 정권에서 행정의 실권을 쥐었던 다섯 명의 관료 연합체이다. 현대 정부로 치면 주요 장관 모임과 비슷하다. 이시다 미쓰나리는 고부교의 일원이었다.
히데요시는 고다이로들이 서로 견제하고, 고부교는 자신이 남긴 행정 지침에 따라 유력 다이묘들을 제한하는 체제를 구상했다. 하지만 문제는 고다이로의 수장 격인 이에야스의 힘이 너무 거대하다는데 있었다. 이에야스는 부교들의 행정 권한을 무력화하면서 자신을 거역하는 다른 다이묘들을 토벌하려 했다. 물론 이에야스는 속마음을 감추고 어린 후계자인 히데요리를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치르는 거라고 선전했다. 이에 미쓰나리는 불과 19만석의 소 다이묘였지만 도요토미가에 대한 충성을 기치로 반 이에야스 세력을 결집시킨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그동안 수많은 문학과 영상 작품을 통해 다루어졌다. 그중 시바 료타로作 동명 소설인 <세키가하라 전투>는 이상과 안위, 세력과 세력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 군상을 흥미롭게 묘사해 놓은 작품이다. 아래는 감명깊이 읽었던 소설 속 장면이다. 미쓰나리의 맹우인 오타니 요시쓰구는 히데요시의 촉망받는 부하였지만, 문둥병에 걸려 시력을 잃은 후 반 은거상태에 있었다. 그는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친구 미쓰나리를 위해 서군 측에 가담하여 싸운다. 한 때 호각을 이루던 전세가 아군측 다이묘의 배반이 속출하여 완전히 기울어졌을때 전쟁터에서 할복 자살함으로써 장렬한 생애를 마친다.
“슬슬 배를 가르겠네.” 요시쓰구가 이렇게 중얼거렸을 때 측근 30명 정도가 마지막 돌격을 건의했다.
“쓸데없는 일, 각자 알아서 자신의 목숨을 건사하게나.” 요시쓰구는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긴고 주나곤 향해 원한의 창을 겨누고 기쁜 마음으로 죽고 싶습니다.” 하며 달려나가 시작했다.
요시쓰구는 큰 소리로 그들을 불러 세우더니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가려거든 가게나. 그런데 그대들도 알다시피 나는 소경이네. 그대들의 분전을 볼 수가 없어. 그러니 달려나가는 자들은 한 명씩 내 앞에 와서 이름을 말하도록.”
다들 요시쓰구의 가마 앞으로 말을 타고 나와 자기 이름을 댔다. 요시쓰구가 일일이 고개를 끄덕여주면 그들은 목례를 하고 적군 속으로 달려들어갔다. 고작 5만석의 낮은 신분이었지만 요시쓰구는 무사들의 인심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Notes:
- 도요토미가의 석고는 그보다 적은 약 220만석이었다. ↩
행복의 정복 I – 수학이 재미있어서 자살 안 했던
책의 제목은 ‘행복의 정복’. 지구상 모든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별별 노력을 다 하고 있다. 월급보다 큰 돈을 들여 여행을 떠나고, 우울증에 약을 먹거나, 술 담배 마약을 취미로 삼고, 목숨걸은 불륜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는 행복을 정복한다고 말하고 있다. 딱 자기 기준으로 상담해주는 사람에게 많이 속아보았다면, 혹은 우울에 푹 잠겨있는 사람이라면 제목을 본 순간 냉소할 것 같다.
나 역시 이해심 없는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아 본 적이 있다. 내가 느끼는 고난을 자세히 말해도, 말은 벽에 던진 배구공이 튕겨 나오듯 그 사람에게서 튕겨져 나오는 것 같았다.
상대를 판단한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의 차이는 상대에게 애정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자기만 사랑하기 때문에 대화를 아무리 나누어도 다른 사람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 반면 자신을 사랑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사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위안을 널리 퍼트릴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1872년 영국의 명문 백작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세 살 때 디프테리아 감염으로 세상을 떠났고 2년 뒤에는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기관지염 합병으로 사망한다. 이후 러셀은 조부모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친할아버지 존 러셀은 1878년 세상을 떠났는데, 러셀은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탄 친절한 늙은 신사로 기억했다.
러셀은 공교육에 반대한 할머니 덕분에 집안에서 가정교사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는데, 이는 19세기 후반 사상 혁명기에 엘리트 교육을 받는 장점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대인공포증도 키워준다(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으니). 백작 할머니는 종교적으로 보수적이었으나, 종교 이외의 부분에서는 진보적이었고 손자에게 사회적 정의에 대한 시각을 심어준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성서 출애굽기의 구절(23:2)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를 굽게 하는 증언을 할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는 러셀의 좌우명도 되었다.
러셀의 사춘기는 굉장히 고독했으며, 몇 차례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회고했다.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수학이 재미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종합하면 영국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양친은 빨리 죽고, 대인공포증과 우울증이 생겼지만 수학 공부하고 싶어서 자살 안 한 특이한 유년기이다. 아픔을 딛고 일어나 훗날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철학자, 수학자, 사회 개혁가가 되고 노벨상 까지 타게 되는 걸 보면 인간 마음의 노력은 정말 많은 걸 가능케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우울 속에서 투쟁하며 행복을 쟁취했다. 너무 우울하면 다른 좋은 사상을 느끼고 이해할 머리도 없어지고, 지쳐서 잠만 자고 싶어진다. 거꾸로 말하면 밝은 마음으로 공부하고, 잠만 자는 게 아니라 즐거운 일에 몰두한다면 행복해진다는 뜻이다. 행복은 분명히 그 길 안에 있고, 사람을 그리로 이끄는 것은 노력과 운명이다. 러셀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심리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 길로 들어섰다. 그가 빠져있었던 심리적 소용돌이와 극복 방법들은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서술은 과장되어 있지 않고, 어떤 유형의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내지도 않으며, 따뜻한 휴머니즘에 기반해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나니 제목이 전혀 거만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모사세 IV – 이승복 어린이 사건
정인의 유년에 결정적인 ‘공포’ 를 심어 주었던 사건이 있었다. 그건 ‘이승복 어린이 사건’ 이다. 국민학교 2학년 때 학교 강당에 학년 전체가 모여 이승복 어린이 영화를 보았었다. 정인은 영화의 소재가 된 사건을 미리 들어 알고 있었고 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공비는 이승복 어린이의 입을 찢어서 죽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알 수 없는 공포감이 강당을 뒤덮고 있었다. 영화는 강원도 산골의 어느 아름다운 마을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밝은 햇살도 초록색 나무로 덮인 산골짜기도 다른 아름다운 풍경도 마지막 살인사건을 위한 무대장치가 되었다. 영화 초반부는 공산당 공비들이 얼마나 평화롭고 좋은 마을을 살육의 공포에 빠뜨렸는지를 웅변해주고 있었다. 운동회를 맞아 운동장에는 이승복 어린이네 학교 아이들이 하하호호 뛰어 놀고 있다. 이승복 어린이가 나무에 올라가는데 뒤따라 올라오던 어린이가 실수로 반바지를 잡아 당기는 바람에 그의 둥그런 엉덩이가 다 드러났다. 보통 때면 깔깔 웃는 장면이었지만 전혀 웃을 수가 없었다. 정인은 어린 나이에 이미 공포 영화가 감정적으로 대비되는 장면을 차례로 보여줌으로써 극한의 공포를 끌어낸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나 보다.
매우 험상 굳게 생긴 공산당 공비들은 어두운 밤을 타서 산골짜기 마을로 침입한다. 그리고 드디어 이승복 어린이 가족의 집에 초대도 받지 않고 난입한다. 처음부터 죽이러 들어간 건 아니어서 가족들과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눈다. 이승복 어린이가 공비 살인마의 심기를 거스른 건 아주 사소한 계기였다. 공비가 승복 어린이의 연필을 보더니 “이거 미제 맞지?” 라고 말한 것을 어린이가 “아니에요. 이건 국산이에요” 라고 대답한 게 시초였다. 공비는 이렇게 좋은 연필을 남한이 만들었을리 없다고 말하며 흥분한다. 하지만 이승복 어린이는 물러서지 않았고 급기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는 치명적인 말을 하고 만다.
정인은 입 안에 새빨간 피가 가득 찬 채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던 이승복 어린이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했다. 북한군은 말 한마디 잘못 뱉은 아이의 입술 양쪽에 엄지 손가락을 걸고 찢어 숨통을 끊었다. 북한군은 악마를 넘어선 존재였다. 악마도 색깔은 까맣고 꼬리가 갈라져 귀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새빨간 피가 새하얗게 될 수 없듯이 북한군은 결코 좋은 존재가 될 수 없었다. 악마를 능가하는 악마, 악마를 연쇄 살인으로 죽이는 악마였다!
정인이 경악에 찬 채 어두운 강당을 나와서 주위의 아이들을 살펴보니 다들 눈이 벌개져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이들이 우는 게 방금 본 공포 영화가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죽은 이승복 어린이가 불쌍해서 그러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 좋은 이유 II – 친구의 의미
내가 좋아했던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책의 서평에는 “비정한 현대 사회에서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모두들 외로운 섬처럼 고립되어 살아간다” 라고 적혀있었다. 맞다. 현대 사회는 비정하다. 자본주의는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이익이 없어지면 뭐든 폐기 처분되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
기계가 망가지면 버리고, 친구의 의미 도 필요 없어지면 버려진다. 인간 관계가 다 이렇게 되면 대화도 허무해진다. 도움되는 상대에게는 아첨(남자)이나 애교(여자)가 사용되고,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상대에게는 뒷담화가 사용된다.
<그리스인 조르바> 책에 소개된 우정의 아름다움은 그런 면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주인공과 조르바가 보여준 관계(작가 카잔차키스가 실제로 만난 요르고스 조르바스와의 우정이 모델이었음)는 원시적이면서 순수했고, 그리움이 넘쳤다. 소설의 도입부는 주인공이 외국으로 떠난 한 친구를 그리워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그를 대신할 다른 친구 – 조르바 – 를 만나게 될 것을 암시한다.
내 시선은 큰 배의 검은 뱃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선체는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비도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진창 위로 내리는 빗줄기가 내다보였다.
나는 검은 배와 그림자와 비와 형상을 갖춘 내 슬픔의 실체를 보았다. 생각났다. 비와 우울증이, 습기 가득한 대기 위에서 사랑하는 친구의 모습으로 화했다. ……작년이던가? 전생이던가? 어제 일이던가? 바로 이 항구로 내려와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한 것은? 나는 그날 아침의 빗줄기와 한기, 그리고 새벽의 미명을 떠올렸다. 그때 역시 내 마음은 무거웠다.
감상에 빠져있던 주인공은 배 위에서 불쑥 자기에게 말을 거는 조르바라는 남자를 만난다. 두 남자는 같이 그리스 크레타 섬에 가서 갈탄 광산 채굴 사업을 벌이지만 돈은 하나도 벌지 못하고 망한다. 그 후로 둘은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는데 서로를 잊지 못하고 편지를 주고 받는다. 주인공은 자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된 조르바를 추억하는 연대기를 쓴다. 그리고 원고를 탈고하던 날 조르바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받는다. 아래는 그 내용인데 죽기 직전까지 자유분방했던 조르바의 성격이 잘 드러나있다.
저는 이 마을 교장으로 이곳 동광 주인인 알렉시스 조르바가 지난 일요일 오후 6시에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전하고자 이 글월을 올립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교장 선생님, 이리 좀 오시오. 내겐 그리스에 친구가 하나 있소. 내가 죽거든 편지를 좀 써주시어,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그 사람을 생각했더라고 전해주시오. 그리고 나는 무슨 짓을 했건 후회는 않더라고 해주시오. 그 사람의 건투를 빌고 이제 좀 철이 들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잠깐만 더 들어요. 신부 같은 게 내 참회를 듣고 종부 성사를 하려거든 빨리 꺼지는 건 물론이고 온 김에 저주나 잔뜩 내려 주고 꺼지라고 해요. 내 평생 별짓을 다 해보았지만 아직도 못한 게 있소. 아, 나 같은 사람은 천 년을 살아야 하는 건데……”
이게 그분의 유언입니다. 유언이 끝나자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시트를 걷어붙이며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우리가(부인인 류바, 저, 이웃의 장정 몇 사람이) 달려가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모두를 한쪽으로 밀어붙이고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창문가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창틀을 거머쥐고 먼 산을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웃었습니다. 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을 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미망인 류바는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어 자기 대신 경의를 표해달라고 했습니다. 미망인 말씀에 따르면 고인은 자주 선생님 이야기를 했고 자기의 사후에는 산투리를 선생님께 드리어 정표를 삼겠다는 분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망인께서는 선생님께 이 마을을 지나는 걸음이 있으시면 손님으로 그날 밤을 쉬시고 아침에 떠나실 때는 산투리를 가지고 가시라는 것입니다.
조르바는 자신의 자유와 성스러움(역설적인 성스러움)의 상징이자, 스무 살때 집을 나오면서부터 평생을 애지중지했던 악기 ‘산투리’ 를 친구에게 정표로 남겼다. 죽으면서도 친구를 생각하는 조르바의 마음이 느껴져서 읽을 때마다 눈물 나는 결말부 였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 좋은 이유 I – 숨은 꽃
양귀자님의 작품 <숨은 꽃> 은 작가님의 분신으로 보이는 여주인공이 먼 고즈넉한 시골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작가였고 글을 써야 하지만 쓸 수 없는 영감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주인공은 ‘귀신사’ 라고 하는 시골의 사찰을 찾아가는 데 도중에 김종구라는 이름의 한 남자를 만난다. 김종구는 배운 것도 없고 말도 험한 시골 남자로서 ‘황녀’ 라는 화류계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의 서방이다.
문자와 문학에 둘러싸여 심각한 고민만 하던 여 작가는 김종구로부터 어떤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그건 김종구의 말과 행동이 원시적이지만 대단히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이성을 만나면 거부 못할 매력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와 비슷한 현상이었던 것 같다.
훌륭한 문학작품은 그 자체로 정신 에너지 즉 리비도를 독자로 부터 끌어낸다. 권태에 빠져 글을 쓰지 못하던 여 작가는 작품이 내놓아야할 할 야성 에너지 – 숨은 꽃 – 을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그의 연인 황녀로부터 느꼈던 것이다. 그건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 찬란한 생기의 물결 같은 것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 에 나오는 알렉시스 조르바 역시 소설의 신경쇠약형 주인공에게 비슷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조르바는 나이 예순이 넘은 노인이지만 감각적인 힘이 충만하다. 어려서부터 집을 떠나 집시 같은 떠돌이 생활을 하는데 아래는 그 출발에 대해 주인공과 얘기하는 모습이다. 작가의 묘사가 너무나 생생해서 읽을 때마다 감탄스럽다.
“어떻게 해서 산투리를 다 배우게 되었지요?”
“스무 살 때였소. 내가 그때 올림포스 산기슭에 있는 우리 마을에서 처음 산투리 소리를 들었지요. 혼을 쭉 빼놓는 것 같습디다. 사흘 동안 밥을 못 먹었을 정도였으니까. “어디가 아파서 그러느냐?” 우리 아버지가 묻습디다. 아버지 영혼이 화평하시기를…… “산투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창피하지도 않으냐? 네가 집시냐, 거지 깡깽이가 되겠다는 것이냐?” “저는 산투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결혼하려고 꼬불쳐 둔 돈이 조금 있었지요. 유치한 생각이었소만 그 당시엔 대가리도 덜 여물었고 혈기만 왕성했지요. 병신같이 결혼 같은 걸 하려고 마음 먹었다니! 아무튼 있는 걸 몽땅 털고 몇 푼 더 보태 산투리를 하나 샀지요.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바로 이놈입니다. 나는 산투리를 들고 살로니카로 튀어 터키인 레트셉 에펜디에게 찾아갔지요. 그는 아무에게나 산투리를 가르쳐 주었지요. 그 앞에 일단 넙죽 엎드리고 봤어요. “왜 그러느냐, 꼬마 이교도야.” “산투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오냐, 그런데 왜 내 발밑에 엎드렸느냐?” “월사금으로 낼 돈이 없습니다.” “산투리에 단단히 미친 게로구나.” “네.” “그럼 여기 있어도 좋다. 젊은 친구야. 나는 월사금을 받지 않는단다.” 나는 1년을 거기 있으면서 공부했지요. 하느님이 그 영감의 무덤을 돌보아주시기를…… 지금쯤 아마 죽었을 겁니다. 하느님이, 개도 천당에다 들여놓으신다면, 레트셉 에펜디에게도 천당 문을 활짝 열어 주실 것이외다. 산투리를 다룰 줄 알게 되면서 나는 전혀 딴사람이 되었어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나 빈털터리가 될 때는 산투리를 칩니다. 그러면 기운이 생기지요. 내가 산투리를 칠 때는 당신이 말을 걸어도 좋습니다만, 내게 들리지는 않아요. 들린다고 해도 대답을 못해요. 해봐야 소용없어요. 안 되니까……”
조르바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거지 깡깽이’ 가 되지 말라고 말렸지만 이미 악기와 소리에 미쳐있던 조르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하는 ‘창피’ 는 사회의 통념이어서 족쇄가 되지만, 사람의 혼을 울리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음악을 만들고 빠져서 무아(無我)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사상과 편견이 별로 중요하지 않음을 느낀다. 이렇게 자유로워진 사람은 찬란한 힘을 가지는데, 이 힘이 <숨은 꽃>의 여작가도,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도 감동시켰던 것이다.
모사세 III – 유혹과 강박
아이 정인의 기억은 원초적인 감정 덩어리가 비누방울 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기억 안에는 정확한 언어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펑 터지기 쉬웠다. 정인은 외모 만 보면 그냥 사탕 막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그의 정신까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다. 어른 정인은 아이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부터 이미 굉장한 크기의 에너지가 유혹과 강박 공포의 형체를 띠고 머리를 휘젖고 있었구나 생각을 한다.
정인이 느꼈던 ‘유혹’ 을 말해주는 일화는 이렇다. 꼬마 정인은 가족들과 광나루 근처에 있는 넓은 야외 수영장에 갔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수영복을 입은 수 많은 사람들이 수영장을 어항처럼 메우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성이 정인의 시선을 완전히 정지시켰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당시에 흔치 않은 노출이 심한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보통 수영복과 다르게 가슴과 가슴사이가 길게 도로가 난 것 처럼 파여 있었다. 도로 양측으로는 당연히 유방 언덕이 솟아 있었다. 정인은 일차 성징만 가진 꼬마였다. 하지만 여자의 도발적인 모습은 원래 유혹의 대상이 아닌 꼬마에게 충분한 전기 충격을 주었다. 이 미모의 여성은 선글라스 안에서 왜 이 얘가 자기 야한 모습을 넊나가서 보고 있는 걸까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정인이 느꼈던 건 알 수 없는 미로와 같은 정신을 헤매는 강렬한 전기의 흐름이었다.
다음으로 강박이라는 건 정인에게 자연스럽게 박혀버린 생각의 흐름이다. 여기에는 엄마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다. 엄마는 정인을 늘 감시하고 통제하는 존재였다.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11년후에 벌어질 대학입시 전쟁의 조망은 정인의 가정 전체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었다. 정인은 학교 수업 진도와 숙제를 어머니에게 확인 받아야 했는데 이건 매일 벌어지는 고문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이미 공부가 더럽게 재미 없다는 걸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셰퍼드에 비유했다. 주인이 감시를 안 하면 일 안하고 먹고 노는 동물. 정인은 훗날 셰퍼드가 머리 좋고 강인하며 충성심 강한 훌륭한 개라는 걸 알았지만, 어쨌든 위로 되는 사실은 아니었다. 모든 걸 통제했던 엄마가 준 강박의 에너지는 몹시도 강한 것이어서 다른 이미지의 그녀를 떠올리기 어렵게 했다. 한 번은 부모님이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가 며칠 만에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엄마는 활짝 웃는 반가운 미소로 정인을 맞았다. 이 표정이 정인에겐 낯선 놀라움이었다. 그는 자신이 엄마에게 반가울 수 있는 존재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