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길고 긴 세월을 지나 다시 아기가 되어 있었다. 윗옷은 내복만 입고 아랫도리에는 기저기를 차고 이부자리에 누워 있었다. 요 옆에는 외숙모가 가져져다 놓은 아기 장난감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원색의 플라스틱 블록을 줄로 연결해 놓은 것도, 큰 곤봉같이 생긴 딸랑이도 있었다. 외숙모는 할머니 돌보는 것 외에 다른 가사일도 많이 해야 했는데, 할머니가 잠에서 깨서 칭얼거리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난감들을 아이가 있는 다른 집에서 얻어다 놓았는데, 다행히 곧잘 이것들을 가지고 노신다고 했다.
이불 속에 모로 누운 할머니는 어디가 불편한지 주름과 검버섯 가득한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외숙모는 할머니가 보통은 찡그린 표정이지만 어쩔 때는 맑은 눈빛을 보일 때도 있다면서 얘기를 해 주었다. 거실에 비스듬한 저녁 햇빛이 들어오던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혼자 똑바로 앉아서 멀쩡한 표정으로 벽에 걸린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외숙모는 신기해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 “할망, 도 닦안?” 그러자 할머니는 예전의 싹싹한 목소리로 “아니구다. 고마 앉아 있는 거구다.” 라고 대답하셨다고(정인은 밝고 시원했던 할머니의 말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정인은 할머니에게 밥을 먹여 드리겠다고 말했다. 외숙모는 할머니 보러 온 사람 중에 그런 거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없었는데 기특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인은 어머니가 미리 꼭 그렇게 하라고 해서 자원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수저로 떠 주는 음식을 한참을 입안에 물고 있었고 국물과 밥 알을 입가로 줄줄 흘렸다. 한 그릇을 떠드렸지만 반 그릇 정도 밖에 목으로 넘기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할머니는 다시 장난감이 널려 있는 이부자리로 돌아갔고 잠에 드셨다. 외숙모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정인도 사랑방에 가서 잠을 좀 자라고 했다. 정인은 푹신한 침대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어둡고 높고 넓은 천장을 보고 누웠는데 입술이 굳어지고, 따뜻한 눈물이 새어나와 관자놀이 방향으로 흘러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할머니가 험한 서울 거리에서 3일을 노숙하고도 별 일 없었다는 건 다행이었다. 이제 혼자 두면 어느 도시까지 가버릴지 모르는 할머니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정인의 외삼촌, 즉 외할머니의 아들이 당시에 한라산 기슭 마을에 살았는데 그쪽으로 보내드리기로 했다. 정인은 할머니가 제주도로 떠나는 걸 배웅도 못했다. 학교가야 했기 때문에.
그 후 몇 년간 정인은 할머니를 잊고 살았다. 할머니가 하던 일은 어머니가 이어서 했고 생활의 변화는 미미했다. 정인이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을 맞았을 때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를 방문하기로 했다. 정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 다 제주도 출신이었고 양가 친척들이 제주도에 많이 살았다.
정인의 일행이 외삼촌 댁에 도착하니 외삼촌 내외가 나와 반겼다. 그리곤 산보를 나간 외할머니를 모시고 오겠다며 곧 밖으로 나갔다. 시골 마을은 안전해서 할머니를 밖으로 산책 보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외할머니는 외삼촌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3년 만에 만난 손자와 사위를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쳤다. 사랑방에서 정인과 동생과 아버지는 외숙모가 차려준 차와 과자 쟁반을 가운데 두고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장모님 잘 있었수까?” 할머니는 간단하게, “잘 있었저.” 라고 대답했다.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리고 손자인 정인과 동생을 보며 말했다. “너그 두 아는 형제 다냐?” 정인은 이때 할머니가 자신의 기억 을 완전히 잊었음을 알았다.
외할머니의 삶 십 수년의 기간 동안 정인은 그녀의 희로애락의 가운데 있었다. 남편은 돈 벌러 외국에 가서 죽은 지 살았는지도 몰랐고 딸은 사나워져 있었다. 하지만 강보 속의 손자 아기는 귀여웠다. 아기는 유치원생이 되고, 말 안 듣는 국민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지나 얼굴에 여드름과 수염이 난 무뚝뚝한 중학생이 되었다. 할머니는 매일 얘에게 어떤 맛있는 걸 먹일까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앞에 앉아 있는 아이가 누군지 잊어버렸다.
이 사건으로부터 2년 후, 정인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이번에는 정인 혼자 제주도로 가서 친척들 집을 돌아다녔다. 외할머니는 저번의 고즈넉한 시골집이 아닌, 제주시의 작은 연립주택으로 옮겨져 외숙모의 돌봄 아래 있었다. 2년 전의 할머니는 사람을 못 알아보긴 했지만 혼자 걸어 다니고 밥을 차려먹고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무것도 못 했다.
고등학생 정인은 제주도 시골 길을 달리는 승용차 안에 있다. 어버지는 운전을 했고 동생도 뒷자리에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안개가 서린 한라산이 보였다. 흐린 푸른빛의 산은 혼자서 지평선을 다 채운 것처럼 커 보였다. 차는 포장이 안 되어 있는 시골 흙 길로 들어섰고, 마을 어귀 표지석이 있는 곳을 지나쳤다. 그 때 정인은 바위 위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외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지나가는 차나 사람을 투명한 듯 바라보며 한없이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몇 년 만에 스치며 본 것이지만 정인의 마음 속엔 어두운 예감이 솟아올랐다. 왠지 껍질은 같지만 속은 완전히 다른 할머니 같았다.
외할머니는 정인이 아기에서 중학생이 될 동안 쭉 서울에 살았다. 할머니가 이상해진 건 정인이 중학교 3학년 되던 해 먼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부터였다. 동네도 낯선데다 아파트에 처음 살게 되어 적응을 못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뿐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자꾸 돌보던 아기 이야기를 했다. 이사오기 전 단독 주택 1층에는 정인의 가족이, 2층엔 친가 사촌 형 부부와 두 살 아기가 살았었다. 할머니는 아기를 때때로 봐주었다. 이제 집도 멀리 떨어져 다시 볼 일 없을 아기(할머니는 정인의 외할머니이고, 아기는 정인의 친가 쪽이었으니)가 유령처럼 때때로 나타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가족들이 “이제 그런 아기 없어요” 라고 말하면, “아녀, 고 쪼그만 아기 하나 이서” 라고 대답했다.
다른 증상도 생겼다. 하루는 아침에 집을 나가더니 종일 밖을 돌아다니다 저녁에 돌아왔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물으면,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희죽 웃었다. 정인은 방과 후에 헤매고 다니는 할머니를 찾으러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여행 반경은 날이 갈수록 넓어졌다. 밤새도록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다음 날 온 가족이 차를 타고 먼 동네와 노숙인 강제 수용 센터 같은 곳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나흘이 지나 성남의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는 떠날 때 입었던 옷 그대로 검은 비닐봉지 하나만 손에 들고 파출소에 앉아있었다. 봉지 안에는 생수병과 건어포 남은 것이 있었다. 며칠 동안 어디서 잤는지, 어떻게 한강다리를 건너고 서울도 벗어나 성남까지 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배고프거나 지친 기색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멍한 표정은 먼 과거만 바라보는 사람 같았다. 게다가 돌아오자마자 아기부터 찾았다.
정인의 외할머니는 제주도 남쪽 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외할머니의 인생에 대해서 정인은 자세하게 들은 적이 없다. 물어 본 적도 없다. 다만 어린 정인에게 하나 이상했던 건 외할머니는 있지만 외할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분명 외할머니의 딸인 정인의 어머니가 있으니(외삼촌도 있고) 외할아버지도 존재했어야 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략하게 흘려들은 것이 전부였다. 외할아버지는 돈 벌러 외국(아마 일본)으로 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가난한 시대에 남편 없이 자식들을 키우는 여인의 신세가 얼마나 고달팠을까. 정인은 공부하고 먹고 자는 의무밖에 없는 국민학생이어서 외할머니가 길고 긴 세월 아무 보상 없는 가사 노동에 시달렸다는 것에 애틋한 감정도 없었다. 그냥 해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성악설(性惡說)에 어울리는 어린아이의 행동을 십 년은 감당하고도 외할머니는 정인을 예뻐했다. 이런 할머니의 마음에 대한 실마리는 아래 소개할 파랑도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다. 이건 외할머니가 어린 딸(정인의 어머니)에게 들려주었던 전설 이야기이다.
제주도 남쪽 어촌 마을에는 해녀(海女)들이 살았다. 그들은 까만 고무 옷을 입고 잠망경 하나 쓰고서 바다에 들어가 해삼, 전복, 소라 같은 걸 따왔다. 어느 일이나 그렇듯 많은 것을 얻으려면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마을 근처 해안에서는 귀한 해삼이나 전복을 얻을 수 없다. 조그만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서 암초 근처에 내려 잠수를 하면 비싸게 팔리는 해산물들을 따올 수 있다. 그날도 나이 든 노련한 우두머리 해녀 한 명과 대여섯의 아낙네들이 작은 배를 타고 ‘파랑도’ 라고 불리는 섬을 찾아 나갔다. 배에는 젊은 새댁 한 명도 타고 있었는데 그녀의 첫 아기는 돌도 지나지 않았다. 여인은 아침에 강보 속의 아기가 쌔근쌔근 사랑스럽게 자고 있는 걸 확인했고 웃음을 지었다.
파도가 높을 때만 이따금씩 보이는 파랑도는 사실 도(島)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바위덩어리였다. 우두머리 해녀는 아래 해녀들에게 절대로 배와 암초에서 멀리 떨어지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파랑도 근처의 해류는 아주 거칠었기 때문이다. 새댁 해녀는 일이 서툴렀지만 그날따라 운이 좋게도 귀한 해삼 한 마리를 딸 수 있었다. 가시 같은 돌기가 온몸에 40개나 선명하게 돋아있는 것으로 시장에서 쌀 댓 말 가격에 팔렸다. 기쁜 마음에 해삼을 어망에 담아놓고 부리나케 같은 게 또 없나 물속으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바닷속을 헤매고 다니다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늘 위 높이 떠있는 태양은 똑같이 눈부신 햇빛을 쏘아주고 있다. 왠지 사람을 노곤하게, 감상에 잠기게 하는 그런 빛… 수경 너머로 넘실대는 초록색 바닷물, 그 사이로 보이는 끝없는 수평선. 여기엔 알 수 없는 몽환이 숨겨져 있다. 바다 밑 해류에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우두머리 해녀는 그걸 민감하게 느꼈다. 소용돌이 같은 물살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거기에 휘말리면 살아서 육지로 갈 수 없다는 것도. 그녀는 멀리 떨어져버린 어린 새댁을 불렀다. 새댁은 열심히 헤엄쳐 돌아오려 했지만 배와의 거리는 점점 절망적으로 멀어졌다. 헐떡거리는 입으로 바닷물이 조금씩 들어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짠 맛이 나지않았다. 힘이 빠져 몸이 무거워지면서 감각도 멍해진 것이다. 그녀는 다가오는 확실한 죽음을 보았다. 새댁은 남은 힘을 다해 소리쳤다. “성님 인자 오지 맙서! 나가 딴 걸랑 집에 애기 줍서!”
어차피 죽게 되었으니 자기를 두고 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딴 귀한 돌기 해삼은 세상모른채 자고 있을 집의 아기에게 먹여 달라고 했다. 삶아서 부드러운 죽으로 끓여 먹여주기를… 여자는 죽어 바다에 떠다닐 시체가 되지만 마지막 생각은 아기를 떠올렸고 마지막 말이 전할 것도 그 뿐이었다.
버림받음과 은총 恩寵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반대를 보고 있지만 서로가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몰이해와 경멸은 명확한 상처를 남기는데 이 상처는 따뜻함이라는 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일 상처가 없다면 사랑도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짝이 맞지 않는 힘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반대되는 힘들이 서로 균형을 맞추려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정인이 요한이 가진 성숙함에 끌렸던 건 박탈당하고 있었던 부모의 정이 그리워서였다고 할 수 있다.
국민학교 선생님들은 은총을 베풀 가능성을 지닌 다른 어른 집단이었다. 하지만 늘 딴 생각에 빠져 있고 성적도 별로 였던 정인은 선생님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아니 두들겨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하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몸은 교실에 있고 눈은 먼 산에 마음은 환상의 나라로 여행 가있던 정인을 갑자기 선생님이 부른다. 산수가 전공인 남자 담임 선생님이었다. 그는 삼각함수에 관한 질문을 하나 던졌고 정인의 얼굴은 곧 새하얗게 질렸다.
중년의 삐쩍 마른 담임은 떠듬떠듬 말 안 되는 대답을 하고 있는 정인을 몇 초간 무섭게 째려보았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다가와 정인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잡고 흔들었다. 정인의 머리는 사물놀이 광대처럼 휘저어졌다. 50명 정도 되는 반 아이들 눈 앞에서 이런 꼴을 당하는 건 수치심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아이의 공포와 굴욕감은 머리칼을 쥐고 흔드는 중년 남자에게 어떤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 지배욕이나 파괴본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욕망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이 또한 반대되는 힘의 균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거칠던 국민학교 시절의 담임 선생님 중에 정인을 아껴주었던 분이 한 명 있었다. 까만 뿔 테 안경이 단정했던, 똑똑하고 부드럽게 생긴 4학년 담임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처음 정인을 주목하게 된 건 그가 역사 지식이 뛰어난 학생이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일본 만화책을 모두 불태운 이후로 교양 역사책만 읽었던 정인에게 국민학교 국사는 아주 쉬운 것이었다. 선생님은 국사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가끔 던졌는데 키가 작아서 분단 맨 앞에 앉아 있던 정인은 수줍지만 정확한 대답을 매번 내놓았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감탄하는 표정으로(이건 꼬마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정인을 칭찬해주었다.
어른 정인은 지금도 경애 敬愛의 마음을 가지고 국민학교 4학년 담임 여자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분의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는 정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여기서 품어준다는 것의 의미는 사람 그대로를 사랑해준다는 뜻이다. 나이 열 살의 아이도 자기를 품어주는 사람과 자기를 들볶을 사람을 금새 구분할 줄 알았다. 민감한 판별 능력은 정인과 엄마의 비극에서 비롯된 사실이다. 엄마는 공부 못하고 빈둥대는 정인이라는 존재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떤 조건을 내세워 정인에게 공부의 동기를 주려 했다. 정인은 ‘먼나라 이웃나라’ 라고 하는 외국 역사 만화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읽고 흠뻑 빠졌었다. 어머니에게 사달라고 졸라 보았지만 대답은 한결 같았다. 공부 열심히 해서 반에서 10등 안에 들면 사준다는 것이다. 정인의 성적은 반에서 25등 정도였고 몇 년간 고정되어 있었다. 그에게 10등 안에 든다는 것의 의미는 신의 영역에 들어가라는 것과 다름 없었다.
국민학교생 동안 정인이 부모의 은총을 바랬던 대상은 먼나라 이웃나라 책 외에도 레고 장난감, 현미경 겸 망원경, 금붕어 어항, 아디다스 운동화 등등이 있었다. 하지만 정인은 10등 근처도 못 갔기 때문에 모두 얻지 못했다. 아버지는 정인과 접촉 자체가 별로 없었지만 마음이 같음은 잘 알 수 있었다. 정인의 국민학교 졸업식 날 꼬마는 6년 개근상이라는 자랑스러운 상을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그걸 보고 아버지가 금방 뱉은 말은 정인의 인생 전체에 긴 울림, 은은히 맴도는 메아리를 주었다. “우등상은 없니?”
조건적 사랑과 비조건적 사랑을 대변하게 된 두 인물은 정인의 꿈에 같이 등장한다. 엄마는 한 손에는 레고 장난감을 다른 한 손에는 먼나라 이웃나라 책을 들고 있었다. “공부를 잘 하면 사줄 거야” 이러면서. 정인은 헤라클레스와 거북이의 관계처럼 선물에 다가가려 하면서 결코 당도할 수 없었다. 공부의 세계는 그토록 오묘했다. 신의 은총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비극을 정인은 양 손에 유혹의 선물을 든 엄마의 꿈을 꾸며 느끼고 있다. 반대로 담임 선생님은 정인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정인이는 어쩜 이렇게 얌전하고 선생님 말을 잘 들을까.” 정인은 꿈 속에서 확고하게 느꼈다. 만일 선생님이 곤란한 일이 생겨서 “정인아 네 생명이 꼭 필요하게 되었단다” 라고 말씀하신다면 서슴없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을 거라고.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정인의 국민학교 시절 기억은 환한 햇빛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에는 콘크리트(아스팔트가 아닌)로 포장된 언덕 길이 있었다. 정인은 네모난 책 가방을 메고 고개 숙인 채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회색 시멘트 바닥에는 늘 작은 돌멩이들이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언덕 꼭대기에 이르러 얼굴을 들면 하얀 햇빛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섬광은 언덕 위에 있는 집과 가게를 하얗게 지웠고, 이어서 그 너머 높이 있는 푸른 하늘과 구름을 보여주었다. 이 풍경은 정인에게 알 수 없는 애상을 준다. 아름다운 대상을 보면 이유 없이 슬퍼질 수 있다는 걸 꼬마는 배웠다. 그리고 어른이 된 정인은 같은 감정으로 아직도 망막에 남은 것 같은 당시의 하늘을 떠올리고 있다.
햇빛은 그가 뛰어 놀던 학교 운동장도 비추고 있다. 남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축구공을 차고 있었고, 여자 애들은 운동장 구석에서 고무줄 놀이를 했다. 정인은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걸 어색해 했기 때문에 벤치에 앉아서 구경을 하거나 학교 정원의 연못에 가서 헤엄치는 붕어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했다. 정인은 그 따뜻한 봄의 운동장에서 요한이라는 아이를 처음 보았다. 요한은 학교 국어 선생님의 아들이었다. 이 얘는 다른 평범한 남자 애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마 그의 하얀 피부와 여리고 고운 얼굴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아들이었고, 늘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요한은 이미 온 학교 아이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정인은 햇빛 아래서 걸어가는 요한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치 운동장에 있는 다른 수백 명의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걸음걸이는 우아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고 있었지만 움직이는 모습이 끊겨 보였다. 첫 눈에 그에게 빠져버린 정인의 기억이 영화의 오픈 앵글 촬영처럼 움직임을 끊어지게 기록했던 것이다. 요한은 밝은 햇빛에도 조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맑은 눈 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건 관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같은 학년의 국민학생들 중에서 풍경을 관조할 수 있는 아이는 요한 밖에 없었다.
정인이 처음 요한을 바라보던 날의 기억은 어른이 된 정인의 마음에 아직도 특별하게 남아있다. 옛날의 향수가 밀려와 가벼운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을 만든다. 아이답지 않은 요한의 모습을 어른 정인은 지금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보고 있다. 그때와 별로 변함없는 흠 없는 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모습을…
햇빛이 어두워진 저녁에도, 그 다음날에도 정인은 요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기 삶의 기준이 정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요한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생겼던 것이다. 그는 고고하고 신비한 미(美)가 결정을 이룬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형질은 정인이 늘 그리워한 부성과 모성을 합쳐 놓은 모양이었다. 매일 늦게 집에 들어오고 와닿지 않는 훈계만 말하는 아버지, 매일 집에서 독수리처럼 아들의 공부를 감시하던 어머니. 이 두 명과 학교 선생님들이 설정해 놓은 세계에서는 어떤 꿈도 꿀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한을 보면 어둡고 갇힌 세계를 뛰어넘어 밝은 섬광을 당당히 마주보는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때 정인은 물론 환상을, 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춘기가 시작되지 않은 소년의 마음은 동성의 아이에게서 훗날 잊지 못할 연인을 떠올리는 것 같은 감정을 이끌어낸다. 정인은 때때로 요한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정인은 요한과 같이 먼 나라로 떠나고 있었다. 몰래 외항선에 숨어들기도 했고, 비행기 날개 위에 같이 매달려서 날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둘이 찾아간 나라에는 아무 사람도 없는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카밀레 꽃이 무수히 피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