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인 아들은 궁중 내시와 나인들을 수 없이 죽였다. 한 번은 내시를 죽이고 그 목을 잘라 혜경궁 처소까지 들고 들어왔다. 그걸 본 아내 혜경궁 홍씨와 궁인들은 소스라쳤다. 하지만 세자 신분상 사소한 살인은 죽을 죄가 아니었다. 그가 혼란한 정신에 아버지 임금인 영조를 죽이겠다는 말까지 뱉자 결국 대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는 정치 음모론 시각에서 벗어나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갈등을 주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정신병이 있는 사람의 실체와 그와 반응하는 인간 역동이 자세히 나와있지는 않은 것 같다. 부드럽고 지적으로 보이는 배우 유아인씨에게는 기괴하고 강박적인 살인자의 이미지가 나오지 않는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은 상처받은 미남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몰입이 잘 안 되었다. 하지만 눈물 흘리는 약한 인간으로서의 세자는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정사 자료인 <조선왕조실록>과 야사 자료인 <한중록>을 살펴보면 둘 다에서 사도세자의 정신병은 확인된다.
정축년·무인년 (영조33~34년) 이후 (사도세자의) 병의 증세가 더욱 심해져 병이 발작할 때에는 (사도세자가) 궁비(宮婢)와 환시(宦侍)를 죽이고, 죽인 후에는 문득 후회하곤 하였다. – <영조실록>, 영조 38년 윤 5월 13일자
한중록은 친정 집안을 방어하기위해 혜경궁 홍씨가 기록한 것이므로 내용이 왜곡되었을 거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2014년 서울아산병원의 정신과 의사들이 한중록을 분석해서 논문을 냈고, 한중록의 내용은 허구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도세자에 대한 정신의학적 고찰’ 논문 링크
한중록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신병적 증상에 들어맞는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정신증상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순전히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술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도세자는 여러 차례의 우울삽화 및 조증삽화를 겪었으며, 기분 삽화가 재발과 관해를 반복하는 경과를 보였던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직계가족을 중심으로 가족들의 정신증상 유무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 기분장애의 가족력 또한 배제할 수 없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사도세자에게 양극성 장애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사도세자는 즐거움과 우울·분노가 극단적으로 교차하는 정신병인 양극성 장애를 앓았을 거라고 추정했다. 양극성 장애는 아직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병이다. 유전적 요인, 신경생물학, 정신약물학, 내분비 기능의 이상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신역동의 관점에서 보면 우울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대항하는 방어로 조증을 보인다는 견해가 있다. 아버지 영조의 엄격한 훈육이 아들을 질식하게 했고, 결국 유전적인 요인과 맞물려 우울증에서 조증, 정신병인 양극성 장애로 발전해갔다고 생각된다.
임금 영조는 당연히 정신병자 세자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아들과 가망 없는 화해를 시도했으며, 아들에게 왜 사람과 동물을 죽였느냐고 물었다.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용포를 부여잡더니 아래과 같이 털어놓는다.
“소자는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세자가 대답했다.
“어째서 상처를 받았느냐?” 왕이 물었다.
“아바마마께서 사랑해주시지 않아서이옵고
또, 아아, 아바마마께서 늘 저를 꾸짖으시니 소자는 아바마마가 무섭사옵니다.”
정말 슬픈 대목이었다. 하지만 영조는 아들을 더욱 꾸짖을 뿐이었다. 1762년, 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는 왕에게 아들을 죽일 것을 청하였다. 사도세자가 이미 백여명의 궁인들을 죽이고, 아버지 임금까지 죽이겠다는 말을 하고 나서이다. 만일 노론 당파의 정치 음모론(이덕일 사관)이 사실이라면 생모가 세자를 죽이는 데 가담할 이유가 없다. 그녀는 미친 아들이 사사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손자인 세손만은 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영빈 이씨는 친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간 죄의식에 괴로워하며 “내 무덤에는 풀도 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한탄했다. 영조는 세자에게 자결을 명한다. 왕족으로서 고상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내려준 것이다. 하지만 영조의 처분에 광증의 아들은 울며불며 말한다.
아버님 아버님, 잘못하였사오니, 이제는 하라 하옵시는대로 하고, 글도 읽고 말씀도 다 들을 것이니, 이리 마오소서.
하지만 이미 돌아갈 길은 없었다. 사도세자는 여름 폭염 속에 뒤주에 갇혀 사경을 헤매다 8일 만에 아사(餓死) 한다. 시체로 나온 세자에게는 자기 오줌을 받아 마신 흔적이 있었다. 조선시대 가장 기괴하고 슬펐던 부자(父子) 간의 갈등 사건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아들 정조는 아비가 미쳐서 죽어가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왕으로 즉위하던 날 대전에 모인 신하들 앞에서 처음 꺼낸 말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었다. 그는 뒤주에서 죽은 아버지를 장성하여 왕이 될 때까지 하루도 잊지 못한 것 같다. 영화 <사도>의 말미에 정조(소지섭 분)가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부채춤을 추며 울던 모습은 그래서 가장 슬픈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