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정인의 국민학교 시절 기억은 환한 햇빛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에는 콘크리트(아스팔트가 아닌)로 포장된 언덕 길이 있었다. 정인은 네모난 책 가방을 메고 고개 숙인 채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회색 시멘트 바닥에는 늘 작은 돌멩이들이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언덕 꼭대기에 이르러 얼굴을 들면 하얀 햇빛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섬광은 언덕 위에 있는 집과 가게를 하얗게 지웠고, 이어서 그 너머 높이 있는 푸른 하늘과 구름을 보여주었다. 이 풍경은 정인에게 알 수 없는 애상을 준다. 아름다운 대상을 보면 이유 없이 슬퍼질 수 있다는 걸 꼬마는 배웠다. 그리고 어른이 된 정인은 같은 감정으로 아직도 망막에 남은 것 같은 당시의 하늘을 떠올리고 있다.
햇빛은 그가 뛰어 놀던 학교 운동장도 비추고 있다. 남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축구공을 차고 있었고, 여자 애들은 운동장 구석에서 고무줄 놀이를 했다. 정인은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걸 어색해 했기 때문에 벤치에 앉아서 구경을 하거나 학교 정원의 연못에 가서 헤엄치는 붕어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했다. 정인은 그 따뜻한 봄의 운동장에서 요한이라는 아이를 처음 보았다. 요한은 학교 국어 선생님의 아들이었다. 이 얘는 다른 평범한 남자 애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마 그의 하얀 피부와 여리고 고운 얼굴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아들이었고, 늘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요한은 이미 온 학교 아이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정인은 햇빛 아래서 걸어가는 요한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치 운동장에 있는 다른 수백 명의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걸음걸이는 우아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고 있었지만 움직이는 모습이 끊겨 보였다. 첫 눈에 그에게 빠져버린 정인의 기억이 영화의 오픈 앵글 촬영처럼 움직임을 끊어지게 기록했던 것이다. 요한은 밝은 햇빛에도 조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맑은 눈 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건 관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같은 학년의 국민학생들 중에서 풍경을 관조할 수 있는 아이는 요한 밖에 없었다.
정인이 처음 요한을 바라보던 날의 기억은 어른이 된 정인의 마음에 아직도 특별하게 남아있다. 옛날의 향수가 밀려와 가벼운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을 만든다. 아이답지 않은 요한의 모습을 어른 정인은 지금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보고 있다. 그때와 별로 변함없는 흠 없는 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모습을…
햇빛이 어두워진 저녁에도, 그 다음날에도 정인은 요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기 삶의 기준이 정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요한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생겼던 것이다. 그는 고고하고 신비한 미(美)가 결정을 이룬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형질은 정인이 늘 그리워한 부성과 모성을 합쳐 놓은 모양이었다. 매일 늦게 집에 들어오고 와닿지 않는 훈계만 말하는 아버지, 매일 집에서 독수리처럼 아들의 공부를 감시하던 어머니. 이 두 명과 학교 선생님들이 설정해 놓은 세계에서는 어떤 꿈도 꿀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한을 보면 어둡고 갇힌 세계를 뛰어넘어 밝은 섬광을 당당히 마주보는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때 정인은 물론 환상을, 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춘기가 시작되지 않은 소년의 마음은 동성의 아이에게서 훗날 잊지 못할 연인을 떠올리는 것 같은 감정을 이끌어낸다. 정인은 때때로 요한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정인은 요한과 같이 먼 나라로 떠나고 있었다. 몰래 외항선에 숨어들기도 했고, 비행기 날개 위에 같이 매달려서 날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둘이 찾아간 나라에는 아무 사람도 없는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카밀레 꽃이 무수히 피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