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를 예측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걸 진짜로 맞추는 사람은 드물다. 잘 맞추면 위기를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생일대의 재산을 단기에 벌 수 있어서 그렇다.
작년 개봉했던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면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을 모델로 했다는 젊은 금융인 윤정학(유아인 분)이 나온다. 그는 외환위기가 고용시장과 실물 자산시장을 처참하게 무너뜨릴 것을 예견한다(라디오 프로그램에 쇄도하는 파산한 집안 사연 엽서를 모아서 그걸 파악해냄). 그래서 가치가 천정부지로 오른 외화를 팔아서 원화를 사고, 그 원화로 가치가 떡폭락한 부동산을 샀다.
미국 포브스지가 2018년 6월 발표한 한국의 부자 순위를 보면, 박현주 회장은 개인자산 2조 1천 5백억원으로 전체 17위를 차지했다. 순위 내 대부분이 재벌 2, 3세 인물이었다. 그는 다수가 파산하는 시장에서 살아남아서 재벌급의 부를 이룬 것이다.
세계 3대 투자가(나머지 둘은 워런 버핏과 조지 소로스)로 불리는 짐 로저스도 위기에 강한 투자가이다. 1970년대에는 모두가 열광하는 인기 주식들(Nifity Fifty; 당시 기관투자자 선호 50개 종목, 현시점의 FAANG과 비슷한 느낌)을 공매도해서 돈을 벌고, 2000년대 초반에는 인기가 없던 중국주식(2008년 대폭락 전까지는 잘 올랐음)을 매수해서 또 큰 돈을 벌었다.
이렇게 선경지명 있는 짐 로저스가 지옥의 경제 묵시록 같은 말을 최근 했다.
수년 안에 최악의 베어마켓(bear market: 하락장)이 지구촌을 덮칠 것이다. 베어마켓은 역사적으로 늘 존재했지만, 이번에 닥칠 위기는 내 생애 최악의 사태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과도한 부채로 인해 전 세계 크고 작은 기업들이 줄도산할 것이다. 파산하는 개인의 수는 헤아리기도 어려울 것이다. 각국의 주식시장은 일제히 폭락하고 곳곳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올 것이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까지 얽히면 어마어마한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한국은 역동적인 내일이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불어닥칠 글로벌 경제 한파에서 무풍지대란 없다. 한국의 기업 경영자나 정부가 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지금껏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걱정하라. –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page 7
짐 로저스 생애 최악이 될 정도라면 종합주가지수가 반 토막보다 더 떨어지는 장세를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대폭락 중에도 기회가 생길 거라고 말하고 있다. 떡폭락 하더라도 바닥만 잘 잡으면 미래에셋 회장처럼 될 수 있다(이론상으로는). 로저스가 주목하는 ‘위기에 기회가 되는’ 시장에는 놀랍게도 ‘북한’이 있다.
가령 북한 사람들은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교육열이 높고 가정교육을 철저히 시킨다. 열심히 일 하고 저금한다. 이는 경제적 발전에 필요한 조건이다. 중국과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과 독일도 역사상 이와 비슷한 시기를 경험했다. 지금은 북한이 그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page 58
그는 책 중간중간에서 ‘아시아의 세기’를 말한다. 그가 주목하는 아시아 국가는 북한과 중국이다. 반면 일본과 인도의 미래는 아주 암울하게 생각한다. 주된 논거는 ‘출산율’과 ‘교육열’, ‘근면한 국민성’이다.
로저스는 일본의 근면한 국민성과 문화 발전을 높이 평가하지만, 노령화와 이민자 억제 정책, 정부부채 때문에 미래를 안 좋게 보고 있고 있다. 그냥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국가가 파탄날 정도로 암울하기 때문에, AK-47 자동소총을 미리 사둘 걸 권유할 정도이다(실제로 책에서 그렇게 말함).
인도는 인구가 많고 다채로운 나라이긴 하지만, 다문화 다종교가 국가 통합을 어렵게 하고, 결국 국가 전체를 경제 발전에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거라 보고 있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일본, 인도를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평가를 해주었다. 만약 개혁개방이 이루어진다면 그렇게 될거라는 전제조건이 있기는 하다. 로저스는 북한이 1.높은 출산율 2.근면한 국민성과 인민동원능력 3.우리나라와의 경제협력 이라는 세 가지 시너지 효과를 통해 초고속 경제성장을 할 거라고 예측했다.
짐 로저스는 미국 앨라배마 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터 땅콩 장사를 하고, 빈 병을 주워 팔았다고 한다. 장사꾼, 투자자(혹은 투기꾼)로서의 야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리고 청년기에는 명문 예일대학교에 진학해서 역사를 배우고,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가서 철학·정치·경제학도 전공했다. 상인적 소양에 역사와 경제를 아우르는 학자적 소양까지 더한 것이다. 그런 그가 말하는 미래 예측은 서구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통념에서 많이 벗어나 보인다(자유한국당이 들으면 싫어할 것 같음). 하지만 가장 안 일어날 것 같은 일이 일어나곤 하는 주식투자 세계에서는 분명 경청한 만한 고견이라 생각한다.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즉 우리나라의 IMF 사태가 발생하기 전 코스피 지수는 792.29 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위기가 최절정이던 1998년 지수는 280까지 내려갔다. 삼성전자 같은 초우량 주식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충격적인 3~4만원대로 폭락했다(금년 4월 30일 액면분할 전 삼성전자 가격은 주당 265만원).
2008년에는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 불리는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월 다우존스 지수는 6,627 저점을 찍었다.
2015년 6월 경에는 중국 증시 폭락 사태란게 발생했다. 1997년과 2008년에는 주식 계좌에 돈이 없었으므로 강 건너 불구경 할 수 있었지만, 이때는 내 해외 주식 홍콩과 상하이 계좌에 억이 넘는 돈이 들어가 있었다. 하한가를 수없이 맞으며 공포의 물타기를 감행했는데, 그 때 팔아치운 주식들이 지금 얼마인지 확인하면 눈물이 솟아나와 앞을 가릴 지경이다.
1997년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2008년 미국시장에서 냉정하게 우량주를 보유하며 지금까지 기다렸다면 분명 엄청난 수익을 얻었을 것이다(280이던 코스피는 2,500이 되었고, 6,627이던 다우는 24,886이 되었으니까).
떨어지면 다시 오른다는 건 간단한, 영원의 진리지만 막상 위기의 상황에 다다르면 머리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열심히 벌어서 주식으로 바꾼 나의 자산이 몇 달 사이 반으로 줄어든 사태를 체험하며, 진지하게 중국 주식 투자 공부를 시작했다. 여러 주식 관련 서적을 도서관에서 빌려보며 궁리했는데 그 중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한 책이 나심 니콜라스 탈렙의 <행운에 속지 마라> 였다. 아래 책 속 구절을 읽어보자.
내가 아는 바로는 트레이더의 탈진에 대해 정확하게 속성을 조사한 연구는 없다. 그러나 제대로 통제할 수 없음에도 그렇게 높은 변동성에 매일매일 노출된다면 생리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보아야 한다(이런 노출이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도 아직까지는 연구된 바가 없다). 긍정적 자극과 부정적 자극은 그 속성과 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이제 이 둘을 처리하는 두뇌의 부위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라. 이익 직후의 결정과 손실 직후의 결정은 합리성 수준이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다. – 110 페이지
저자는 경제학만이 아닌, 심리학이나 신경생리학 분야에도 두드러진 식견을 보여준다. 주식 가격의 오르내림이 기업 실적과 똑같이 비례한다면 경제학만 알아도 되겠지만, 시장은 항상 비합리적인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고 있으므로 같이 공부가 필요한 분야라 하겠다.
탈렙이 말했듯이 예상치 못한 손실을 맞은 후 사람들은 합리성이 떨어진 결정을 내린다. 필자도 그랬는데, 워렌버핏이 투자했다고 해서 나도 샀던 중국 대표 전기차 회사 BYD(01211HK) 투자가 대표적이었다. 이 종목을 2015년 2월초 27.56 홍콩달러(HKD)에 2000주 매수했다. 원화로 8백만원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중국 증시 폭락 전인 그 해 5월 BYD는 54.5 HKD 고점을 찍었다. 3달 만에 앉아서 8백만원 번 걸로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주식은 팔기 전에는 비트코인 같은 사이버머니 일 뿐이다. 폭락장이 시작되자 이게 진짜 폭락인지 조정장인지 헷갈리다가 시간을 다 보냈고, 7월 초에는 마이너스 되기 전에 팔자라는 기분으로 29.8 HKD 에 전량 매도를 했다. 위기가 지나간 후 BYD는 순조롭게 올라서 83.7 HKD 고점을 찍다가 현재는 조정이 와서 52.7 HKD 가격으로 있다. 즉 내가 그릇된 물타기로 손해본 기회비용은 BYD 한 종목만 천 만원이 넘는다. 손실 직후 결정은 역시나 합리성이 떨어진다.
아무튼 중국 증시 폭락 사태 이후 피눈물로 배운 원칙은 아래와 같다.
– 부가 설명 : 성철 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만약 성철 스님같은 유명인이 아닌 껄렁한 주위 남자가 똑같은 말을 했다면 ‘뭔 헛소리야’ 라는 반응을 들을 것이다. ‘돈을 잃지 않는 것’ 은 단순한 말이지만, 심각하게 듣는 사람에게는 명언이 되고, 아닌 사람에게는 헛소리가 된다.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익금 만을 재투자해야 하고, 수익금을 다시 주식에 몰빵하지 않는게 좋다. 자제력을 발휘해서 은행예적금이나 증권사 CMA에라도 일부 저장해 두자. 현금이 없으면 좋은 종목이 폭락해도 들어갈 수가 없어진다.
– 2015년 6월 중국 증시 대 붕괴전, 그걸 예측한 전문가는 없었다. 연말까지 상해지수가 1만 포인트(3년 지난 현재 그 1/3에도 못 갔다)에 갈 거라는 전문가는 있었다. 증시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너무 많아서, 90% 제반여건이 우호적이어도, 나머지 10%가 안 좋아서 폭락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예측에 냉소하자는 게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도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 미리 정해놓고 있어야 한다. 그릇된 자신감으로 예측에 확신을 가지면 <행운에 속지마라> 책에 소개된 아래 사례처럼 된다. 저자가 알고 지낸, 뉴욕 맨해튼 파크 애비뉴 고급 주거지에 살며, 15년 넘게 트레이딩 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전문 트레이더도 자만에 빠져 파산했다.
내가 알고 지낸 동료들 가운데 역사가 주는 교훈을 무시한 사람들이 가장 처참하게 파산했다. 그런 사람 중에 파산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정말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파산한 방식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단지 돈을 잃는 데 그치지 않았다. 돈을 잃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시점에 돈을 잃었다. 크든 작든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그 위험에 일격을 당하는 일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파산한 트레이더들의 특징을 보면, 이들은 자신이 시장을 잘 파악하고 있으므로 불리한 사건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들이 위험을 감수한 것은 용감해서가 아니라 단지 무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비슷한 이유로 파산한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다. 1987년 주식시장 붕괴 때 파산한 사람들, 1990년 일본 붕괴 때 파산한 사람들, 1994년 채권시장 붕괴 때 파산한 사람들, 1998년 러시아 사태 때 파산한 사람들, 나스닥 주식을 공매도 했다가 파산한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모두 “이번에는 다르다” 또는 “우리 시장은 다르다”고 주장하며 체계적이고 지성적인 듯한 경제 논리를 내세웠다. 서점마다 이런 붕괴를 자세히 설명하는 책들이 널려 있었는데도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공개된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 95 페이지
– 상해증시가 한창 잘나가던 2015년 상반기, 일대일로(一帶一路) 관련 인프라 주식이 폭등했다. 나는 조바심에 중국철도건설(601186), 대진철도(601006) 같은 종목을 대량으로 추격 매수했다. 그리고 아직도 이 두 종목은 마이너스 25%에서 마이너스 50% 정도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종자돈이 감당할 수 있을만큼 분할해서 매수하고, 상승장에서도 분할 익절로 리스크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나는 양도소득세가 면제되는 250만원 만큼은 매년 익절하고 있다. 반면 폭락장에서는 멘탈이 무너져 좋은 주식을 싼 값에 팔 생각을 하지 말고, 평소 눈여겨 보던 우량주를 저가 매수할 생각을 하자. 워렌 버핏은 1988년 다우지수가 하루에 20% 폭락한 블랙먼데이 직후 코카콜라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고 한다. 필자는 현재 중국 주식 계좌가 플러스 전환한 상태인데, 폭락장에서 평안보험(601318)이나 알리바바(BABA), 상해자동차(600104) 같은 괜찮은 종목 들을 집중 매수한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