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은 ‘행복의 정복’. 지구상 모든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별별 노력을 다 하고 있다. 월급보다 큰 돈을 들여 여행을 떠나고, 우울증에 약을 먹거나, 술 담배 마약을 취미로 삼고, 목숨걸은 불륜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는 행복을 정복한다고 말하고 있다. 딱 자기 기준으로 상담해주는 사람에게 많이 속아보았다면, 혹은 우울에 푹 잠겨있는 사람이라면 제목을 본 순간 냉소할 것 같다.
나 역시 이해심 없는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아 본 적이 있다. 내가 느끼는 고난을 자세히 말해도, 말은 벽에 던진 배구공이 튕겨 나오듯 그 사람에게서 튕겨져 나오는 것 같았다.
상대를 판단한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의 차이는 상대에게 애정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자기만 사랑하기 때문에 대화를 아무리 나누어도 다른 사람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 반면 자신을 사랑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사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위안을 널리 퍼트릴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1872년 영국의 명문 백작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세 살 때 디프테리아 감염으로 세상을 떠났고 2년 뒤에는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기관지염 합병으로 사망한다. 이후 러셀은 조부모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친할아버지 존 러셀은 1878년 세상을 떠났는데, 러셀은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탄 친절한 늙은 신사로 기억했다.
러셀은 공교육에 반대한 할머니 덕분에 집안에서 가정교사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는데, 이는 19세기 후반 사상 혁명기에 엘리트 교육을 받는 장점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대인공포증도 키워준다(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으니). 백작 할머니는 종교적으로 보수적이었으나, 종교 이외의 부분에서는 진보적이었고 손자에게 사회적 정의에 대한 시각을 심어준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성서 출애굽기의 구절(23:2)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를 굽게 하는 증언을 할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는 러셀의 좌우명도 되었다.
러셀의 사춘기는 굉장히 고독했으며, 몇 차례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회고했다.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수학이 재미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종합하면 영국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양친은 빨리 죽고, 대인공포증과 우울증이 생겼지만 수학 공부하고 싶어서 자살 안 한 특이한 유년기이다. 아픔을 딛고 일어나 훗날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철학자, 수학자, 사회 개혁가가 되고 노벨상 까지 타게 되는 걸 보면 인간 마음의 노력은 정말 많은 걸 가능케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우울 속에서 투쟁하며 행복을 쟁취했다. 너무 우울하면 다른 좋은 사상을 느끼고 이해할 머리도 없어지고, 지쳐서 잠만 자고 싶어진다. 거꾸로 말하면 밝은 마음으로 공부하고, 잠만 자는 게 아니라 즐거운 일에 몰두한다면 행복해진다는 뜻이다. 행복은 분명히 그 길 안에 있고, 사람을 그리로 이끄는 것은 노력과 운명이다. 러셀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심리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 길로 들어섰다. 그가 빠져있었던 심리적 소용돌이와 극복 방법들은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서술은 과장되어 있지 않고, 어떤 유형의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내지도 않으며, 따뜻한 휴머니즘에 기반해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나니 제목이 전혀 거만하지 않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