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이탈리아 출신 군인으로 신성로마제국 군대 총사령관을 지냈던 라이몬도 몬테쿠콜리(Raimondo Montecuccoli)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전쟁을 수행하려면, 첫째 필요한 건 돈이다. 두번째로도 돈이 필요하다. 세번째로도 역시나 돈이 필요하다.
To wage war, you need first of all money; second, you need money, and third, you also need money.
사령관으로서 야전에 나가 돈 없어서 죽을 고생을 많이하고 이 말을 남긴게 아닐까.
한편 고대 중국의 군사전략가 손자(孫子)도 돈과 전쟁의 관계를 생각하고 아래와 같이 말했다.
(출처 孫子兵法 第二 作戰篇)
손자가 말하기를, 무릇 군사를 쓰는 법은, 치거 1,000사(駟), 혁거 1,000승(乘), 대갑 10만명에, 천리의 군량을 먹이려면, 안팎의 비용, 빈객의 쓰는 것, 교칠의 재료, 거갑의 받듦이 하루에 천금의 비용이 든다. 이러한 연후에 10만 명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다.
孫子曰 凡用兵之法, 馳車千駟 革車千乘
帶甲十萬 千里饋糧, 則內外之費 賓客之用
膠漆之材 車甲之奉, 日費千金 然後十萬之師車矣
오랫동안 군대가 전선에 있으면 국가재정이 부족해진다. 병사들의 예리함이 꺾어져 전투력이 약화되면, 다른 나라의 통치자가 그 폐단을 노리고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지혜로운 자라도 그 뒷일을 수습할 수 없다.
久暴師則國用不足
夫 鈍兵挫銳 屈力殫貨, 則諸候乘其弊而起
雖有智者 不能善其後矣
장기전으로 돈, 재정이 부족해지면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일을 수습 못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한신(韓信)같이 천재적 지휘관이 있어도 병참이 절망적이고, 병사들이 밥을 굶으면 전쟁에서 이길 도리가 없어진다.
삼국지연의 소설을 읽어보면 왕후장상들의 성격에 대한 묘사와 책략과 책략이 부딪쳐서 거기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상황이 계속 나온다. 하지만 승패를 이미 결정해주는 경제력과 그걸 지탱하는 농업, 또 그걸 분배하는 상업와 운송업 체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었다. 제갈량이 기산에 둔전을 만들고 목우유마로 곡식 운송을 편하게 했다는 부분만 생각난다.
일본 교토대 교수였던 미야자키 이치사다(1901~1995년)가 저술한 이 <중국통사> 책은 소설과 달리, 아주 실증적으로 전쟁과 역사를 논해서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돈으로 기업을 사고 움직이는 기업인이 읽어도 도움될 만한 내용이 많이 있다. 먼저 아래의 중국 명나라 말기 이자성 반란을 서술한 부분을 읽어보자.
섬서는 고대에는 국도(國都)가 위치하고 생산력이 가장 높은 비옥한 땅으로 알려졌는데, 시대가 내려옴과 함께 기후가 건조해져 자주 가뭄의 피해를 입는 척박한 땅이 되어 갔다. 그렇지만 군사상의 요충지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어서 명이 중시하는 북방의 9개 변진 중 3개 변진이 섬서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명의 북방 방위는 중점이 동부로 편중되기 쉽고 서방은 등한시 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 방면은 교통이 불편하므로 중앙에서 군수품을 운반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에 은을 급료로 주어 현지에서 조달하게 했는데, 은은 상관에 의해 횡령되기 쉽고 또 토지가 척박하기 때문에 식량을 입수하기 곤란했다. 마침내 군대가 기아를 호소해 폭동 반란을 일으키는 사태가 잇따랐지만 명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유효한 수단을 쓰지 못하는 가운데 반란은 더욱더 확대되었다. 이 반란군 토벌에 나선 정부군 또한 급양(병사나 말에 공급되는 물자)이 나쁜 데 반발해 반란을 일으킨다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자성이나 장헌충은 여러 번 패주해 포로가 될 뻔했는데, 비록 이때 그들이 포살되었다 해도 그것으로 반란이 수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조의 말기적 증상으로 일어나는 반란은 개인 한두명이 기도한 것이 아니며 굶주린 민중이나 군대가 사회적 필연의 결과로서 일으킨 반란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내란 발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화폐 경제 상황이나, 국가 통치 시스템의 붕괴, 그에 따라 반란 토벌군이 반란군에 더해지는 웃긴 과정을 조리있게 설명했다. 아래의 태평천국 난에 대한 서술도 읽어보자.
상해 개항에 의해 중국 내지의 물자가 종래보다도 단거리로 외국선에 적재되게 되면 그만큼 중국의 노동력이 남아돌게 되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이치인 동시에, 외국 물자가 중국 내지로 운반되는 경로 또한 큰 변동을 겪어 종래 번영하고 있던 간선이 급속히 한산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피해를 입은 것이 광동으로부터 광서를 거치고 호남에서 양자강으로 나오는 경로이다. 특히 이 경로는 광동에 양륙된 아편이 중국 내지로 운반되는 주요 도로가 되어 있었다. 아편은 값비싼 상품이므로 보통은 교통이 불편한 이 궁벽한 산길이 관헌의 눈을 피해 빠져나가는 데 도리어 알맞았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무역 상품과 마찬가지로 아편이 양륙된 항구가 광동으로부터 상해로 이동하자 거기서 일어난 것이 광서 호남 루트 아편 상인의 실업이다. 이것이 중대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은 원래 밀매 상인이란 것의 본질은 실업자가 많고, 선의로 받아들이면 실업보험금의 수령자였다고 할 수도 있는데, 이번에 그들이 실업했다는 것은 실업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업자가 또 실업했다면 그들은 대체 어디로 가면 좋을까. 폭동, 반란을 일으키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이리하여 일어난 것이 태평천국이었다.
보통의 역사책은 태평천국군의 주축은 농민층이고, 서방에서 들어온 기독교를 지배이념으로 삼은 이색적 집단이었다고들 묘사한다. 하지만 태평천국의 역사적 진실을 논하는 데 있어서 ‘농민층’, ‘기독교’ 라는 요소보다는 인민들을 반란군이 되도록 내몬 당시 경제 상황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종교나 이념 결집 없이도 반란을 일으킬 수 있지만, 돈(경제력/물자)을 결집시키지 못하면 전쟁도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편전쟁으로 인한 상해 개항 – 내륙 물자 운송 경로의 대변화 – 호남 아편 밀매 운송업의 몰락 – 반란군 집결의 서막 식으로 실증적인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역사책을 읽으며 과거 사건을 현재의 경제 정치 상황에 대입해서 운명을 예측해보면 아주 재미있다. 아래 소개하는 책 속 논평을 읽으면 북한의 미래에 대한 시사점이 되는 것 같아 좋았다. 난세는 불경기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이 인상깊다. 아무튼 지금까지 읽었던 중국역사책 중에 최고로 꼽을 수 있는 미야자키 이치사다 교수님의 <중국통사>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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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중 다수는 우선 지방관에 임명된다. 그런데 지방관의 성적은 무엇보다도 조세 징수의 실적에 의해 평가된다. 여기에 신관료는 불문곡직 먼저 경제 재정의 실태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 성적은 중앙에 보고되고 성적의 여하에 따라 승진의 늦고 빠름이 결정되고 만다.
관료의 총수인 천자 또한 한가롭지는 않다. 조정의 대신과 함께 관료 인사의 진퇴나 국고 재정의 충실이나 결손에 노심초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관료와 군대의 봉급 지불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군대의 급여가 부도가 나는 사태에 이르면 천자는 그 지위를 보존할 수가 없다. 사실 그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었으니, 명이 멸망한 경우가 그 좋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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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에 의해 잘 다스려지는 치세가 생기고 암군에 의해 어지러운 난세가 시작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인 것처럼 생각되어 왔지만, 실은 치세란 것은 호경기, 난세란 것은 불경기의 다른 이름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호경기 불경기는 그때그때의 군주 개인의 정책에 의해 좌우되기가 어려우므로 예전부터의 군주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는 그다지 타당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