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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카리아트 II – 위험한 데는 니가 가라


 
중학생 시절 환상의 영화였던 <에일리언> 시리즈에는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 속 세계관에는 하얀 우유 같은 피를 가진 인조인간(synthetic)이 나온다. 제조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인간보다 하위의 존재이다. 영화 2탄에서 주인공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비롯한 일행이 다수의 에일리언에게 포위되었을 때, 누군가 위험한 배관을 통과해 드롭쉽(dropship)을 부르러 가는 게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영화 전체를 통해 오도방정을 떨던 허드슨 일병(빌 팩스톤)은 인조인간 비숍(랜스 헨릭슨)을 그 임무에 보내야 한다고 흥분해서 떠든다.(Right, Bishop should go. Good idea.)

비숍은 체념한 듯 이렇게 말한다. “나도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인조인간이라고 바보는 아니니까요.” (Believe me, I’d prefer not to. I may be synthetic, but I’m not stupid.)

영화에서는 에일리언이 우글거리는 통로에 인조인간을 보내면 되었지만, 지금 현실 세계에서는 위험한 작업에 비정규직 일회용 청부 인력을 보내고 있다. <프레카리아트 –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책에 나온 생생한 묘사는 아래와 같다. 일본회사 <니콘>은 고위험 작업에 자기네 직원을 쓰지 않고 대신 청부 회사 <네크스타>에게 의뢰를 한다. 네크스타는 ‘유지’ 라는 남자를 작업에 투입했고, 유지 씨는 나중에 자살한다.

1월에는 동생이 유지 씨를 찾아왔다. 유지 씨는 평소 별로 가지 않는 게임센터에 동생을 데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는 게임을 하지 않고 게임에 열중한 동생을 싱글벙글 웃으며 그저 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재판에 의견서를 제출한 정신과 의사는 이 행동에 대해 “추억 만들기 행동의 가능성이 보인다.”고 기술했다. 과로에 의해 이미 우울증이 발병한 것이다. 이즈음부터 유지 씨의 머리에는 ‘자살’ 이라는 말이 맴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위장 청부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유지 씨가 죽었을 때 어머니는, 네크스타 쪽 직원에게 “(유지 씨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잘 모르겠다.” 는 것이었다. “클린룸이라는 방에서 일했지만, 저희는 들어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청부 회사는 현장이 어떤지도 모르고, 노동자가 어떤 심한 취급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관리라는 것도 소용이 없다. 파견처 회사는, 자기 회사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부리는 데에 무슨 방법이든 가리지 않는다.
 
유지 씨의 경우에 업무상 지시는 니콘이 내렸고, 네크스타는 업무 지시를 전혀 하지 않았다. 또한 유지 씨의 노동 시간에 대해서도 네크스타는 니콘에서 월말에 보고를 받아봐야 한다는 식이었고, 네크스타 쪽 직원은 유지 씨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면담을 할 뿐이었다. 결국, 외부에서 온 노동자인 유지 씨는 약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사용되기만 하다가 지칠 대로 지쳐 우울증이 생겼고 자살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것이 구조적인 ‘살인’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니콘 같은 대기업은 퇴직금이나 사회보험료를 안 주는 인력을 딱 필요할 때만 써서 좋다. 소중하기도 하고, 불만을 토로할 가능성 있는 정직원을 보호할 수 있어서도 좋다. 네크스타 같은 청부 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이런 일 의뢰가 끊임없으므로 돈을 벌어서 좋다. 유지 씨 같은 프레카리아트 처지 사람은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이런 곳에서 일하다 우울증에 빠져 자살의 길로 간다.

이 책을 읽고 제일 느낀 점은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유교식 자본주의 모델로 전후 경제 발전을 이끌고, 1980년대 말만 해도 향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상되었었다(지금의 중국도 같은 예상하에 있다). 하지만 익히 알려져 있듯이 1990년대 초부터 벌어진 부동산 버블 붕괴로 경제성장률 0퍼센트대를 10년 넘게 달성하며 경제가 주저 앉았다. 이런 장기 불황의 타개책 하나로 일본 대기업 집단과 정부는 비정규직 프레카리아트 노동 양식을 보급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시스템 하에서 유리한 자는 계속 유리해지고, 불리한 자는 계속 이용당한다는 점이다. 에일리언의 인조인간 처럼 이용당하는 사람들의 볼멘 목소리가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에서도 커지고 있는 걸로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책 안의 자조적인 구절을 인용해 보겠다. 나도 우리나라 TV에서 화장으로 무장한(치킨 먹을 때도 1mm 두께 얼굴 화장 하고 먹는다) 연예인이 현실과 동떨어진 꿈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광고를 볼 때면 비슷한 감상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도 텔레비전에서 전자제품 광고 같은 걸 보고 있자니 현란한 화면 너머에서 ‘이 상품은 위장 청부로 일하는 프리터의 미래를 소진시켜 만든 것입니다.’ 같은 내레이션까지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