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11일 운동을 마치고 부산 서구 서대신동의 고급 주택가 집으로 돌아온 김인숙(가명,39세)씨는 안방에서 무언가가 탕탕하고 부딪히고 있는 소리를 듣는다. 이상한 마음에 같이 사는 언니와 가정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탕탕 소리는 곧 멈추었다. 이윽고 안방에서 칼을 든 낯선 남자가 걸어 나오는 걸 본다.
세 번째 범행에서 자기보다 덩치가 큰 남자에게 제압당할 뻔한 위기를 겪은 정두영은 5개월 동안 범행을 저지르지 못했다. 하지만 10억이라는 목표를 위해 다시 범행을 결심한다. 넘기 쉬워 보이는 집의 담장을 넘은 후 열려 있는 현관문을 열고 조용히 침입했다. 거실에는 두 살 정도로 보이는 아기가 두영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서 혼자 놀고 있었다. 정두영은 현관 옆방에서 물건을 훔치고 나오는 중 50대 가정부와 마주친다. 그는 얼른 부엌으로 뛰어가서 칼부터 챙겨 들었다. 정두영은 가정부를 위협해 안방으로 끌고 간 다음 두 손을 묶고 방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그 위에 이불을 뒤집어씌웠다. 그사이 거실에서 혼자 있던 아기가 울자 안아다가 작은방에 놓고 문을 닫았다. 심상치 않은 소리에 2층에 있던 김인숙씨의 언니가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칼을 든 정두영과 마주친다. 그는 이 40대 여인 역시 칼로 위협해 안방으로 데려와서는 가정부 아주머니가 엎드려 있던 이불 안으로 같이 밀어 넣었다.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면 죽여버린다는 위협과 함께.
그는 묵직한 아령을 들고서 집에 있는 금고를 부수기 시작했다. 한참 금고를 부수는데 이불 속에 엎드려 있던 40대 여성이 몰래 침대 머리맡에 있던 야구방망이를 집어 들고 정두영을 뒤에서 내리쳤다. 하지만 긴장한 탓인지 방망이는 강도의 등을 스쳤을 뿐이었다. 정두영은 곧 방망이를 뺏어 들고 아주머니들을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두 여자는 곧 목숨을 잃었고, 핏자국이 사방으로 튀어있는 방에서 그는 아령으로 금고 부수기를 계속했다. 2시간 동안이나 아령을 사용했는데 그때 집주인인 김인숙씨가 들어왔다.
정두영은 그녀를 칼로 위협해서 안방으로 들어가게 한 후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려 죽이려 했다. 하지만 바닥에 쓰러진채 맞으며 비명을 지르던 여인은 자신의 아기를 생각하고는 마음을 다잡는다. 그녀는 “살려주세요. 아기가 있어요.” 라고 침착하게 말했다.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자 야구방망이는 멈췄다. 짧은 침묵 끝에 정두영은 “아기 잘 키워. 신고하면 죽인다” 라는 말을 뱉더니 그녀에게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 두영이 두 살 아기 일 때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는 두 번이나 그를 고아원에 버렸었다. 훗날 체포된 후 밝힌 바에 따르면 여인을 죽이면 아기가 자기처럼 불행한 고아가 될 거라는 생각에 살려두었다고 한다.
여인은 언니와 가정부의 피투성이 시체 옆에서 이불에 덮힌채 통증을 참으며 있었다. 정두영은 그 후로도 한참을 아령을 휘둘러서 결국 금고를 부수고는 안에 있던 금품을 챙겨 들고 사라졌다. 김인숙씨는 간신히 기어 나와 아기가 무사하다는 것부터 확인했다. 그리고는 112에 신고전화를 걸었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정두영은 방범대원을 칼로 살해한 죄로 12년간 복역한다. 1999년 교도소를 출소했을때 나이는 32세였다. 찾아 갈 곳도 없고 고용해줄 일자리는 더더욱 없었으므로 예전 절도 활동의 근거지였던 대전 충남 지역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그를 부산에 있던 친형이 부른다. 두영의 형은 고물상 간판을 걸고 가게를 하고 있었지만 실은 장물아비였다. 두영은 훔치고 형은 물건을 파는 동업 계약을 하고 수익은 7대 3 으로 나누기로 했다. 형은 서른 한 살이던 두영에게 스무 살 밖에 안된 여성 한 명을 소개시켜 주었는데 곧 동거 관계로 발전한다. 동거녀와의 사랑을 계기로 범죄 생활을 접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 하지만 여자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그의 열망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두영이 범죄자 사회에서 주워 듣기로는 ‘성인 오락실’ 이나 ‘실내 야구장’ 같은 가게를 마련하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창업 비용 10억을 마련하기 위해 강도 행각에 뛰어든다. 그는 경험상 빈집털이를 해봐야 얼마 돈을 못 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귀중품 보관 금고가 있을 법한 부자집에 일부러 사람이 있는 시간대에 침입하기로 했다. 흉기로 협박해서 금고 위치를 알아내 강탈하고 사람은 죽이는 방식이었다.
정두영의 연쇄 살인 중 첫 번째는 1999년 부산 서구 부민동의 고급 주택가에서 일어났다. 그는 청소년 시절 흉기를 가지고 다니다 불심검문에 걸려서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로는 절대 칼을 지참하지 않았다. 대신 범행 현장에 가서 식칼 같은 흉기를 먼저 챙겨 두곤 했다. 이 집에서도 먼저 부엌에서 칼을 챙겼고 안방과 거실을 뒤지던 중 50대 후반의 가정부와 마주친다. 그는 아주머니를 협박해서 화장실로 데려가 미리 준비한 끈으로 양 손을 뒤로 묶고, 머리를 바닥에 마구 내리 찧어 살해한다. 그리곤 현금 33만원을 털어서 달아난다. 경찰은 피해자의 머리와 얼굴 부위가 으스러질 정도로 가격당한 것을 발견하고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추정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두영은 불안한 마음에 몸을 숨기고 언론 보도를 주시한다. 자신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는 두 번째 범행을 시작했다. 동거녀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 위해 10억을 모으는 게 목표인데 처음 강도 짓으로 33만원 밖에 못 벌었다. 자신과 연인의 행복을 타인의 죽음과 편리하게 가르는 이 무감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두 번째 범행은 첫 번째 살인 이후 세 달이 지난 9월 15일 오후, 부산 서대신동의 고급 빌라촌에서 일어났다. 옥상 지붕을 타고 꼭대기 층인 6층 베란다로 내려갔고 빈 집이었던 그곳에서 현금 수백만 원과 귀금속 등을 챙긴다. 한 탕 더 하기 위해 이웃집 베란다로 넘어 들어갔는데 애완견이 짖어대는 바람에 부엌에 있던 50대 가정부에게 들킨다. 정두영은 강아지를 발로 멀리 차버리고 아주머니를 마구 때려 살해한다. 이 집에서도 현금 수 백 만원과 귀금속을 챙기고 베란다로 나온 뒤 옥상으로 올라가 도주한다.
세 번째 범행에서 정두영은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주택에 침입해서 마주친 50대 아주머니를 때려 살해하던 중 2층에 있던 아들이 내려온 것이다. 건장한 체격의 피해자 아들은 왜소한 두영을 주먹으로 몇 대 쳐서 바닥에 뉘였다. 하지만 아들은 방심했고 그 사이 정두영은 집에 침입할 때 미리 봐두었던 현관 신발장 위의 망치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간다. 두영은 망치를 들고 돌아와 남자의 얼굴을 내리쳤다. 겁에 질렸던 정두영은 쓰러진 남자에게 미친듯이 망치를 휘둘러 두개골이 부서지고 뇌와 뇌수가 밖으로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정두영은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강도행각을 벌이면서 17명을 다치게 하고 그 중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 살인자이다. 체포 된 후 단순 강도 목적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피해자들을 잔혹하게 죽인 이유가 뭐냐는 경찰의 질문에 “제 안에 악마가 있어요. 그 악마가 한 짓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그의 강도 살인 행각을 전혀 모르고 있던 정두영의 동거녀의 부모는 “정씨는 술담배도 안하고 말 수가 적으며 점잖고 매너 있어 성실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고 진술했다. 정두영은 겉으로는 점잖지만 어떤 악마적인 분노를 마음에 숨기고 있던 것 같다. 그 안의 악마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정두영은 1968년 부산시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출생했다. 그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암으로 투병하고 있었고, 두영이 2세가 되던 해 끝내 사망한다. 남편의 죽음으로 생계가 곤란해진 정두영의 어머니는 아기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거나 영양을 공급해주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아이들을 삼촌 집에 맡기고 재혼한다. 그리고 정두영이 다섯 살 되던 해, 삼촌마저 요란스런 조카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버린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 한 번은 어머니에게, 또 한 번은 삼촌에게 버림받은 정두영은 큰 정서적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려는 듯, 일곱 살 때 어머니가 고아원으로 찾아와 두영을 새아버지 집으로 데려간다. 그대로 양친과 성장했으면 좋았겠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경제적 부담과 부부간 갈등이 커져서 두영은 도로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차라리 처음부터 계속 고아원에 두었더라면 상처를 덜 입었을 것이다.
두영은 어머니에게 두 번이나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운 가운데 공격적 행동을 일삼아서 문제아가 된다. 고아원 안 남자 아이들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 같아서, 세면 때리고 약하면 맞는 게 보통이었다. 선천적으로 작은 체구 때문에 놀림과 괴롭힘을 많이 당한 두영은 결국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폭력’ 뿐 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만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두영은 고아원의 통제를 물리치고 거리로 나가 범죄를 생계수단으로 삼아 살기 시작했다. 직업을 얻을만한 기술도 없고, 자길 보살펴줄 사람도 없었으므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다 자란 정두영은 키가 168cm에 체중 54kg인 작은 체구였다. 그래서 보호 장비로 항상 칼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열 여덟 살이던 1986년 5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마주친 교사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는 자기를 불심검문하는 방범대원을 칼로 찔러 살해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12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