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파랑도에서 해녀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녀가 엄마 없이 살아갈 아기를 얼마나 걱정했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물은 파도치며 거품을 만들고 짠 내음을 흩뿌린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슬픔과는 관계가 없다. 여인이 죽은 다음날 파도는 전일과 다름없이 오고 갔으며 여인을 나른하게 했던 햇빛도 똑같이 내리쬐었다. 죽은 몸이 물 위에 떠 있는 것 만 다른 점이었다. 인간이 사고하는 것과 자연이 노니는 모습의 차이이다.
어른이 된 정인은 외할머니의 집 안에서 역할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건 마치 가구와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꼭 필요한 기능을 해주고 있지만 아무도 그녀의 기분을 걱정하지 않았다. 어린 손자 손녀들은 어린이 특유의 무신경함과 잔인함으로 할머니를 대했다. 항상 일에 바쁜 사위와 안팎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딸은 마음에 위로가 안 되었다. 하지만 수 십 년에 걸친 가사와 육아를 외할머니는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불평의 말을 한 적도 없다. 이렇게 의무에 충실했지만 그녀의 개인적인 욕망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어린 정인은 욕망에 민감한 개체였다. 엄마 눈길을 피해 노는 데 특히 그랬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탐심(貪心)이 없는 사람 같았다. 할머니가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게 아니란 걸 정인은 느낀 적이 있다.
그때 정인은 외할머니와 둘이서 마루에 앉아 옛날 사진 앨범을 펼쳐 보고 있었다. 거기엔 주로 정인의 아기 사진들이 있었지만 간혹 어머니의 처녀 때 모습이라든지, 할머니의 아줌마 시절 사진도 있었다. 역시나 외할아버지의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40대 시절 독사진을 무언가 애틋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면서 “이땬 나가 아적 갼찮았는디…” 라고 했다.
정인은 서울 말씨를 쓰지만 제주도 사투리는 다 알아들었다. 할머니는 “이때는 내가 아직 괜찮았었다” 라고 말씀하셨다. 손자가 보기에 40대 할머니는 할머니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아줌마 같았고 여자로서 매력이 풍기지는 않았다. 일년 365일 입고 다니던 몸뻬 바지와 꽃무늬 블라우스를 착용하지 않고 시골풍 정장을 입은 게 큰 차이점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분명 예뻐 보이고 싶고 치장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지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마음에 손자 정인을 포함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게 슬픈 사실이었다. 이렇게 욕망과는 상관없이 집안의 식모처럼 살았던 가여운 외할머니는 긴 세월이 흐르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녀를 그렇게 바꾸어 놓은 건 이번에도 자연이었다.
정인의 외할머니는 제주도 남쪽 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외할머니의 인생에 대해서 정인은 자세하게 들은 적이 없다. 물어 본 적도 없다. 다만 어린 정인에게 하나 이상했던 건 외할머니는 있지만 외할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분명 외할머니의 딸인 정인의 어머니가 있으니(외삼촌도 있고) 외할아버지도 존재했어야 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략하게 흘려들은 것이 전부였다. 외할아버지는 돈 벌러 외국(아마 일본)으로 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가난한 시대에 남편 없이 자식들을 키우는 여인의 신세가 얼마나 고달팠을까. 정인은 공부하고 먹고 자는 의무밖에 없는 국민학생이어서 외할머니가 길고 긴 세월 아무 보상 없는 가사 노동에 시달렸다는 것에 애틋한 감정도 없었다. 그냥 해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성악설(性惡說)에 어울리는 어린아이의 행동을 십 년은 감당하고도 외할머니는 정인을 예뻐했다. 이런 할머니의 마음에 대한 실마리는 아래 소개할 파랑도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다. 이건 외할머니가 어린 딸(정인의 어머니)에게 들려주었던 전설 이야기이다.
제주도 남쪽 어촌 마을에는 해녀(海女)들이 살았다. 그들은 까만 고무 옷을 입고 잠망경 하나 쓰고서 바다에 들어가 해삼, 전복, 소라 같은 걸 따왔다. 어느 일이나 그렇듯 많은 것을 얻으려면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마을 근처 해안에서는 귀한 해삼이나 전복을 얻을 수 없다. 조그만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서 암초 근처에 내려 잠수를 하면 비싸게 팔리는 해산물들을 따올 수 있다. 그날도 나이 든 노련한 우두머리 해녀 한 명과 대여섯의 아낙네들이 작은 배를 타고 ‘파랑도’ 라고 불리는 섬을 찾아 나갔다. 배에는 젊은 새댁 한 명도 타고 있었는데 그녀의 첫 아기는 돌도 지나지 않았다. 여인은 아침에 강보 속의 아기가 쌔근쌔근 사랑스럽게 자고 있는 걸 확인했고 웃음을 지었다.
파도가 높을 때만 이따금씩 보이는 파랑도는 사실 도(島)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바위덩어리였다. 우두머리 해녀는 아래 해녀들에게 절대로 배와 암초에서 멀리 떨어지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파랑도 근처의 해류는 아주 거칠었기 때문이다. 새댁 해녀는 일이 서툴렀지만 그날따라 운이 좋게도 귀한 해삼 한 마리를 딸 수 있었다. 가시 같은 돌기가 온몸에 40개나 선명하게 돋아있는 것으로 시장에서 쌀 댓 말 가격에 팔렸다. 기쁜 마음에 해삼을 어망에 담아놓고 부리나케 같은 게 또 없나 물속으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바닷속을 헤매고 다니다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늘 위 높이 떠있는 태양은 똑같이 눈부신 햇빛을 쏘아주고 있다. 왠지 사람을 노곤하게, 감상에 잠기게 하는 그런 빛… 수경 너머로 넘실대는 초록색 바닷물, 그 사이로 보이는 끝없는 수평선. 여기엔 알 수 없는 몽환이 숨겨져 있다. 바다 밑 해류에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우두머리 해녀는 그걸 민감하게 느꼈다. 소용돌이 같은 물살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거기에 휘말리면 살아서 육지로 갈 수 없다는 것도. 그녀는 멀리 떨어져버린 어린 새댁을 불렀다. 새댁은 열심히 헤엄쳐 돌아오려 했지만 배와의 거리는 점점 절망적으로 멀어졌다. 헐떡거리는 입으로 바닷물이 조금씩 들어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짠 맛이 나지않았다. 힘이 빠져 몸이 무거워지면서 감각도 멍해진 것이다. 그녀는 다가오는 확실한 죽음을 보았다. 새댁은 남은 힘을 다해 소리쳤다. “성님 인자 오지 맙서! 나가 딴 걸랑 집에 애기 줍서!”
어차피 죽게 되었으니 자기를 두고 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딴 귀한 돌기 해삼은 세상모른채 자고 있을 집의 아기에게 먹여 달라고 했다. 삶아서 부드러운 죽으로 끓여 먹여주기를… 여자는 죽어 바다에 떠다닐 시체가 되지만 마지막 생각은 아기를 떠올렸고 마지막 말이 전할 것도 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