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I – 상처 받아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책 서문에서 반복해서 말한다.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는 작가 자신이면서 독자 자신이기도 하다” 라고. 감정을 이입해서 소년이 자라나는 걸 지켜봐 달라는 의미이고, 그래서 성장을 위한 사이코드라마의 성격이 있다.
그렇다면 소년에게서 결핍된 것은 무엇이고 성장을 위해서 어떤 경험이 필요한 걸까? 그건 작가의 유년시절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 일본 전후 세대로 교토에서 태어났다. 당시 보기드문 무녀독남 가정이었고 부모님 두분이 모두 국어교사였다. 베이비 붐 시대, 가족마다 아이들이 북적였지만 그는 조용한 외아들로 책 많이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이런 배경의 주인공은 다른 작품들인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스푸트니크의 연인>에도 등장한다. 그러니까 인생이 애착 대상을 찾는 여행 비슷했으리라 상상할 수 있고, 그게 녹여든 작품이 많은 외로운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흔든다. “사에키 씨는 잘 모르고 있어요. 내가 돌아갈 세계 같은 건 어디에도 없어요.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사랑을 받거나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기억이 없습니다. 나 자신 말고는 누구에게 의지해야 좋을지도 모르고요. 사에키 씨가 말하는 ‘원래의 생활’ 같은 건, 나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에요.”
<해변의 카프카 2권 371페이지>
15세 소년 다무라 카프카는 위의 단락이 말하는 것처럼 사랑 없이 살아왔다.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니의 상실과 아버지로부터의 격리라고 할 수 있다. 다무라 카프카가 4살 아이 였던 시절 어머니는 카프카 군의 누나를 데리고 집을 나갔다. 자식 둘 중에 아들은 놓고 딸 만 데리고 떠난 건데, 그게 어린아이에게 어떤 트라우마가 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화가인 아버지와 둘이서 살고 있지만 대화가 없었고, 가족 외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이 없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것,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게 유일하게 의미있는 활동이었다. 다무라 소년은 집을 떠나야 했는데, 이유는 아버지의 저주에서 풀려나기 위해서 였다.
소년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 누나와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될거라는 저주인데, 그리스 오이디푸스 신화를 오마주(hommage) 한 것 같다.
다무라 카프카는 도쿄의 집에서 가출해서 시코쿠 지역으로 가는데, 거기서 운명이 이어진 인물인 사에키 씨, 즉 소년의 어머니에 대응되는 사람을 만난다. 사에키 씨는 가출소년 다무라의 임시직장이라 할 수 있는 <고무라 기념 도서관>의 관장이자 안내자로 일하고 있다.
★ 그림자가 반 밖에 없는 인간
그림자는 실물을 반사한 건데, 그게 반 밖에 없다는 건 실물도 반이라는 뜻이다. 작품에는 이렇게 그림자가 흐린 사람이 두 명 나오는데, 한 명은 사에키 씨고 다른 한 명은 나카타라는 고양이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노인이다.
사에키씨는 다무라 카프카 소년의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는 소년의 연인이기도 하다. 남자의 가장 강한 애착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둘, 어머니와 연인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는 데, 다른 대중문화 작품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나카타 노인은 다무라 소년의 다른 분신인데, 2번째 주인공이다. 사에키씨와 나카타씨 이 둘이 실체를 잃고 세상에 반 밖에 존재하지 않게 된 이유는 유년 시절의 정신적 외상 때문이다.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사랑(애착대상)을 찾는게 성장소설(Bildungsroman)이자 사이코드라마(Psychodrama)인 <해변의 카프카>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특이하게도 상처 받은 사람을 표현하는데 그냥 표정이 힘들어 보인다 하는 게 아니라 그림자가 반 밖에 없고, 본체는 둘로 나뉘어서 한쪽은 이계(異界), 즉 다른 세상에 가있고 현실 세상에는 껍데기 같은 사람이 있는 걸로 해놓았다. 그게 사에키 씨와 나카타 씨이다. 그리고 다른 세계로는 ‘입구의 돌’을 열면 갈 수 있다. 왜 이런 초현실주의적 장치를 사용했는지는 다음 글에서 이어서 얘기하도록 하겠다.
해변의 카프카 II – 꿈 속의 꿈에서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