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를 읽으면 좋은 이유 VIII – 오직 미적 현상으로서만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자살했을 때 인터넷 뉴스 댓글에는 왜 저렇게 젊고 예쁘고 명성도 있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하는 글이 많았다. 하지만 유서 내용에도 있듯이 자신이 겪는 힘듦은 자신에게만 실제적이고, 가늠이 가능하다. 반대로 생각하면, 자신이 겪는 행복도 스스로에게만 지극하고 현실적이다. 그래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 않고, 행복을 자가 생산할 수 있으면 불행도 통제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기쁨을 누렸던 역사 인물을 생각해보면, 니체가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살아 생전 그의 작품은 빛을 보지 못했지만, 스스로가 자기를 인정했다. 니체의 책 <이 사람을 보라>의 목차엔 ‘나는 왜 이렇게 지혜로운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가?’ 등의 제목이 있다… 니체의 똑똑한 친구들도 니체의 글을 반 쯤 밖에 이해 못했던 것 같다. 대표적 친구인 에르빈 로데(Erwin Rohde) – 당대의 유명한 그리스 고전문헌 학자였음 – 에게 니체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나는 <짜라투스트라>로서 독일어를 완성에 이르게 했다고 자부하네. 그것은 루터와 괴테를 이은 제3의 발전이었네.

하지만 로데는 짜라투스트라 책을 힘겹게 읽었고, 그 다음으로 출간된 책 <선악의 저편>을 읽은 후에는 폭발하고 말았다. “니체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직업을 갖는거야!” 라고. (니체, 그의 삶과 철학 by 레지날드 J. 홀링데일 p65)

당시 니체는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결혼할 배우자 찾는 것도 안하고, 혼자 휴양하면서 친구에게도 대중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책만 쓰고 있었다. 안정된 직업과 가정, 사회적 지위까지 있던 로데는 니체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삶이 반영된 글에도 당연히 공감하지 못했다. 자기 능력의 백 분의 일도 인정받지 못했던 니체가 어떻게 자기확신과 행복을 가졌을까는 연구해 볼만한 주제이다. 나는 <비극의 탄생> 책에 나온 아래의 구절이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현존과 세계는 오직 미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된다.

미적인 현상은 사람에게 행복감을 준다. 예쁜 연예인을 보며 정줄 놓은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예쁜 여자 말고 다른 수많은 사물에서 그 같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지금 사는 것(현존)과 주위 세상(세계)는 더 없이 만족스러워(정당화)진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말로 유명하다. 최고가치의 상실에 대한 선언으로 해석되며, 꼭 기독교적 신에 대한 반대는 아니다. 이 말의 중요성은 신은 죽었는데 이제 뭘 할거냐는 것이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하나님처럼 섬기는 무언가가 있다. 출세나 재산, 외모, 사람들로부터 인정 같은 것이다. 이은주씨는 이걸 모두 가졌지만 행복을 얻지 못했었다. 누구나 나름의 가치 추구를 하고 있고, 충족받지 못하면 허무해지고 고독해진다. 니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서 영속적인 행복의 길을 찾았다.

자신의 상태를 예술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자신에게 닥친 슬픔과 고통,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모든 것을 순식간에 돌로 만들어버리는 고르고의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능력이다. 그것은 고통이 전혀 없는 세계에서 유래한 시선이다. (J3, 334)

니체는 자신 생의 요소와 그 누림을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게 느꼈던 것 같다. 슬프고 우울해도, 어떤 대단한 역사나 문학 안의 주인공처럼 자신을 느끼면, 고난도 미학적 현상으로 치환된다. 주위 사람들이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일자리에서 별 볼일 없는 성과를 낼 때도 즐겁게 자족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니체는 자신의 시대에 유명하지도 부유하지도 인기가 많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면 가치를 창조하는데 매우 뛰어 났고, 거기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

프레카리아트 I – 편리한 사용과 폐기

니트족은 세련된(neat) 사람들 집단이 아닌 걸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영어 ‘NEET’ 로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이라는 뜻이다. 즉 학생도 아니고, 직업도 없고, 직업을 얻기 위한 훈련도 안 하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니트족의 심각성은 헬조선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손 꼽히는 선진국에다 일억 총중류(一億總中流) – 인구 일 억 명이 죄다 중산층 – 라는 자부심이 있던 일본에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의 저자 아마미야 가린은 눈에 띄는 경력의 소유자이다. 일본 홋카이도 시골에서 태어난 그녀는 예술적 재능이 있었지만 세련된 입시 대비 전략에는 거리가 먼 동네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미대 입시에 연거푸 떨어진다. 무작정 상경한 그녀는 편의점 알바와 식당 웨이트리스 일을 수년간 했고, 박봉과 사장의 구박에 결국에는 술집 일로 진출한다. 열심히 일해도 밑바닥에 더 박힌다는 좌절을 느낀 그녀는 대안적 활동에 뛰어든다. 처음에는 극우 펑크 록 밴드인 ‘유신적 성숙’, ‘대 일본 테러'(이름부터 정말 극우적이다)를 결성해 보컬로 활동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자신에게는 좌익 청년 운동이 더 어울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가난뱅이의 역습>, <생지옥 천국> 등 진보 시각의 저서로 유명세를 얻으며 전문작가가 되었고, 아르바이트 인생에서도 같이 탈출한다. 스스로 피끓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아마미야 가린은 사회로부터 노력이 부족하다는 취급을 받는 비정규직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이런 문제의 총체적 시작으로 지적한 것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 그리고 그걸 일본에서 용감하게 선도한 고이즈미 전 총리였다. 신자유주의가 청년 니트족과 무슨 상관인지, 어떻게 일본까지 전파되었는지 알려면 우선 그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래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언급한 책의 내용이다(page 287).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본격화되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부채 때문이에요. 어떻게 복지 국가 요소들을 약화시킬까 하는 것에 고심하는 경제학이 지배적인 사고방식이 되어갔습니다. 그때까지의 주류는 소위 케인즈 경제학이죠. 케인즈의 사고방식은 ‘실업을 어떻게 해소할까, 실업이 사회에는 악이다.’ 라는 발상 위에 서 있습니다. 구멍 파서 메우는 데도 정부가 돈을 내면 거기에서 고용이 발생합니다. 적자가 나든 빚이 되든 어쨌든 정부는 그걸 합니다. 그런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그 케인즈 경제학을 무너뜨리는 데 전력한 학자들이 언젠가부터 미국의 정권 중심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걸 통화주의monetarism 혹은 공급supply side 경제학(수요보다 공급을 중시하는 경제학. 대규모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 투자와 기업 성장을 도움으로써 국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균형 재정주의라고도 하고요. 회계 연도에서 가능한 한 수지를 맞춥니다. 정부는 돈을 쓰지도 말고 빌리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라는 영국의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고용을 촉진하고 실업을 억제하는 걸 선호했다. 하지만 영국병(1960,70년대 영국 경제 쇠퇴의 원인을 과다 복지와 연결되는 노동자의 비능률성으로 파악)과 스태그플레이션을 동반한 오일쇼크(1973,79년)로 인해 케인즈식 경제에 대한 의문이 나타난다. 그 대안으로 신자유주의가 급부상했는데,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과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대표적 정책 추진자였다. 신자유주의는 서구 열강의 경제적 부활을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동구 공산권 블록과의 경제 전쟁은 서구의 승리로 끝난다(냉전 종식). 하지만 2008년 미국 발 세계 경제 위기가 터지면서 신자유주의는 중대한 도전을 받게 된다.

서구의 신자유주의는 복지 국가의 늘어진 노동 능률을 개선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태평하게 일해도 급여와 정년이 보장되는 공기업 일자리를 대폭 민간으로 넘기고, 노동 시장의 유연화(비정규직 고용을 늘리고, 정규직 해고는 편리하게)를 추구했다. 그러면서 금융 기관의 규제를 완화해서 실물 경제와 동떨어져 움직이고, 현금 흐름 예측이 어려운 수많은 파생 금융 상품을 탄생시켰다. 이런 실체가 불분명한 사이버적 금융 상품은 2008년 가을 미국 발 대폭발을 일으킨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 불리는 이 위기에서 신용 등급이 낮은(실물 자산이 부족한) 개인들은 주택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았고, 금융기관들은 그 대출 채권을 토대로 파생 상품을 만들었고, 다른 금융기관들이 그 파생 상품에 또 파생된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런데 불황으로 실물 자산인 담보 주택 가격이 떨어지자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이어진 파생에 파생된 금융 상품들도 같이 부도가 나고 말았다. 결국 이런 상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미국 굴지의 금융 기관들이 파산했고, 그 금융 기관과 이어진 세계의 기업과 금융사 들도 같이 밑바닥에 빨려 들어갔다.

일본의 경우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의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초부터 불황이 시작되었었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10년’ 이었다가 나중에는 ‘잃어버린 20년’(2000년대), ‘잃어버린 30년’(현재)으로 자꾸 더 길게 잃어버리는 경제 위기 속에 일본 정부는 심각한 자구책을 마련한다.

고이즈미 정권은 2001년에 집권했는데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를 제창했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일환으로 노동자 파견법을 손보는데 이것이 종신고용, 연공서열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특유의 기업 고용 형태를 변형시킨다. 고이즈미의 보수 자민당 정부는 일경련(日經連; 일본경제인연합회)과 연합해서 개혁을 추진했는데 아래는 그에 대한 책의 내용이다(page 45).

불황에 직면해서 일경련은 일하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셋으로 분류할 것을 제언했다.
 
1. 장기 축적 능력 활용형
2. 고도 전문 능력 활용형
3. 고용 유연형
 
의미만으로도 알 수 있듯, 1은 기업의 중핵이 되는 사원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들은 기존의 정규직 사원같이 장기 고용에 승급, 승진도 있다. 2는 전문적인 기능을 가지는 계약 사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장기 고용이 아니라, 연봉제나 성과급이 적용된다. 그리고 3은 한시적 고용, 시급제로서 승급 같은 것은 없다. 이 3이 지금 매우 급증하고 있는 일회용 노동력이다.

이 같은 개혁은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문제와 아주 비슷한 반향을 일본 전 사회에 불러일으켰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글에서 이어하도록 하겠다.

프레카리아트 II – 위험한 데는 니가 가라

모사세 XV – 기억

할머니가 험한 서울 거리에서 3일을 노숙하고도 별 일 없었다는 건 다행이었다. 이제 혼자 두면 어느 도시까지 가버릴지 모르는 할머니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정인의 외삼촌, 즉 외할머니의 아들이 당시에 한라산 기슭 마을에 살았는데 그쪽으로 보내드리기로 했다. 정인은 할머니가 제주도로 떠나는 걸 배웅도 못했다. 학교가야 했기 때문에.

그 후 몇 년간 정인은 할머니를 잊고 살았다. 할머니가 하던 일은 어머니가 이어서 했고 생활의 변화는 미미했다. 정인이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을 맞았을 때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를 방문하기로 했다. 정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 다 제주도 출신이었고 양가 친척들이 제주도에 많이 살았다.

정인의 일행이 외삼촌 댁에 도착하니 외삼촌 내외가 나와 반겼다. 그리곤 산보를 나간 외할머니를 모시고 오겠다며 곧 밖으로 나갔다. 시골 마을은 안전해서 할머니를 밖으로 산책 보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외할머니는 외삼촌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3년 만에 만난 손자와 사위를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쳤다. 사랑방에서 정인과 동생과 아버지는 외숙모가 차려준 차와 과자 쟁반을 가운데 두고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장모님 잘 있었수까?” 할머니는 간단하게, “잘 있었저.” 라고 대답했다.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리고 손자인 정인과 동생을 보며 말했다. “너그 두 아는 형제 다냐?” 정인은 이때 할머니가 자신의 기억 을 완전히 잊었음을 알았다.

외할머니의 삶 십 수년의 기간 동안 정인은 그녀의 희로애락의 가운데 있었다. 남편은 돈 벌러 외국에 가서 죽은 지 살았는지도 몰랐고 딸은 사나워져 있었다. 하지만 강보 속의 손자 아기는 귀여웠다. 아기는 유치원생이 되고, 말 안 듣는 국민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지나 얼굴에 여드름과 수염이 난 무뚝뚝한 중학생이 되었다. 할머니는 매일 얘에게 어떤 맛있는 걸 먹일까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앞에 앉아 있는 아이가 누군지 잊어버렸다.

이 사건으로부터 2년 후, 정인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이번에는 정인 혼자 제주도로 가서 친척들 집을 돌아다녔다. 외할머니는 저번의 고즈넉한 시골집이 아닌, 제주시의 작은 연립주택으로 옮겨져 외숙모의 돌봄 아래 있었다. 2년 전의 할머니는 사람을 못 알아보긴 했지만 혼자 걸어 다니고 밥을 차려먹고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무것도 못 했다.

모사세 XIV – 할머니

고등학생 정인은 제주도 시골 길을 달리는 승용차 안에 있다. 어버지는 운전을 했고 동생도 뒷자리에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안개가 서린 한라산이 보였다. 흐린 푸른빛의 산은 혼자서 지평선을 다 채운 것처럼 커 보였다. 차는 포장이 안 되어 있는 시골 흙 길로 들어섰고, 마을 어귀 표지석이 있는 곳을 지나쳤다. 그 때 정인은 바위 위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외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지나가는 차나 사람을 투명한 듯 바라보며 한없이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몇 년 만에 스치며 본 것이지만 정인의 마음 속엔 어두운 예감이 솟아올랐다. 왠지 껍질은 같지만 속은 완전히 다른 할머니 같았다.

외할머니는 정인이 아기에서 중학생이 될 동안 쭉 서울에 살았다. 할머니가 이상해진 건 정인이 중학교 3학년 되던 해 먼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부터였다. 동네도 낯선데다 아파트에 처음 살게 되어 적응을 못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뿐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자꾸 돌보던 아기 이야기를 했다. 이사오기 전 단독 주택 1층에는 정인의 가족이, 2층엔 친가 사촌 형 부부와 두 살 아기가 살았었다. 할머니는 아기를 때때로 봐주었다. 이제 집도 멀리 떨어져 다시 볼 일 없을 아기(할머니는 정인의 외할머니이고, 아기는 정인의 친가 쪽이었으니)가 유령처럼 때때로 나타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가족들이 “이제 그런 아기 없어요” 라고 말하면, “아녀, 고 쪼그만 아기 하나 이서” 라고 대답했다.

다른 증상도 생겼다. 하루는 아침에 집을 나가더니 종일 밖을 돌아다니다 저녁에 돌아왔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물으면,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희죽 웃었다. 정인은 방과 후에 헤매고 다니는 할머니를 찾으러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여행 반경은 날이 갈수록 넓어졌다. 밤새도록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다음 날 온 가족이 차를 타고 먼 동네와 노숙인 강제 수용 센터 같은 곳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나흘이 지나 성남의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는 떠날 때 입었던 옷 그대로 검은 비닐봉지 하나만 손에 들고 파출소에 앉아있었다. 봉지 안에는 생수병과 건어포 남은 것이 있었다. 며칠 동안 어디서 잤는지, 어떻게 한강다리를 건너고 서울도 벗어나 성남까지 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배고프거나 지친 기색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멍한 표정은 먼 과거만 바라보는 사람 같았다. 게다가 돌아오자마자 아기부터 찾았다.

생각 버리기 연습 – 시간은 빨리 흐르고 사랑은 사라진다

어린 시절엔 매일마다 어떤 대상을 두근거리며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일들이 계속 벌어졌고 감각 자체가 예민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쓸데없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보니 사랑을 느끼는 예민한 감각을 잃어버렸다. 응답하라 1988에서 정환이가 덕선이를 버스에서 보호해주는 장면을 보니, 중학교나 고등학생 시절 한 여자애를 사랑했던 감각이 얼마나 강렬했었는지가 상기되었다. 기쁨으로 몸이 떠다니는 것 같은 그런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순수한 사랑을 찾는 일은 연애 전문 친구보다는 스님의 조언을 듣는 게 좋을 것 같다. 전자는 욕망을 가르치고, 후자는 지속되는 사랑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토종 승려인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이 쓴 생각 버리기 연습 책은 마음을 예민하게 분석해서 어릴 적 순수했던 감각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마음이 오로지 ‘보다 강한 자극을 위해 내달리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기 어려운 이유도 담담하고 은은한 행복감보다 부정적인 사고가 더 강한 전기 자극을 뇌에 주기 때문이다.

마음은 강한 자극을 좋아한다. 그게 설령 화가 치미는 불쾌한 기억이라 할지라도 강한 자극은 자석처럼 머리에 달라붙는다. 어린 시절 머리에는 이런 강한 자극이 적었지만 크면서 기억의 찌꺼기라고 할 수 있는 덩어리들이 쌓여간다. 그렇게 되면 일을 해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어도 집중이 흐트러지고 생각이 딴 데 가있는 느낌을 받는다.

1초 동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0.1초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 0.9초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나 과거의 잡음이 남긴 메아리에 휘둘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오감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둔해지고, 멍청한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10초 중 9초는 현실감이 사라지고, 한 시간에 54분은 멍청히 있게 된다. 결국 나이를 먹어 과거를 돌아보면, ‘몇 년이 한 순간에 지난 것 같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현실 그 자체에 직결되지 않는 망상에 탐닉한 결과, 현실감이 사라지고 행복감도 사라진다.

행복은 순간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데서 온다(seize the day). 오감을 다해 대상에 집중할 수 없으면 행복도 같이 사라진다. 만약 어떤 남자가 자기 여자친구 A를 꼭 안아주는데 실은 다른 여자 B를 그리는 잡념을 가진다면 포옹의 기쁨이 그만큼 사라진다. 여자 A도 나무나 돌이 아닌 이상 남자친구가 이상한 것을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데도 자신의 유일한 시공(時空)으로서의 대상에 집중하지 않으면 즐거움이 탈색된다. 스님이 다시 요약해서 말해주는 부분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원인은, 과거로부터 엄청나게 축적되어온 생각이라는 잡음이 현실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정보를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의 잡음이 현실감각에 완전히 승리할 때, 사람들은 둔해진다.

따라서 어릴 적 사랑을 되돌리는 방법은 먼저 몰두할 수 있는 일과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에 자신의 오감을 놓고 다른 강하고 필요 없는 자극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이건 아령을 가지고 근육 운동을 하듯이 생각을 가지고 하는 수련이 필요한 부분이다. 불교의 참선이나 요가처럼, 또는 기독교의 기도처럼 마음에 티끌을 없애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못 생김

인터넷 뉴스를 보면 연예인 사진 수 만 개를 볼 수 있다. 기사 제목은 항상 자극적이다. “XX의 굴욕 없는 뒤태”, “초미니를 입고 계단 오르는 OOO”. 엘리트 지식인인 신문 기자들이 왜 매일 이런 제목을 만드는지 생각할 수 있다. 인터넷 광고 수익은 기사의 클릭 횟수에 비례해서 지불된다. 사이트 방문 횟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본능과 연결되는 기사를 만들어야 한다.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는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주목할만한 실험을 했다. 개한테 음식을 주면서 매번 종소리를 딸랑 냈더니 나중에는 음식을 안 주고 딸랑 소리만 내도 개가 침을 흘리는 것을 발견했다. 파블로프는 이 실험의 성과로 19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어렵지 않고 별로 비용도 안 들 것 같은 이 실험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유는 그 광범위한 적용 가능성 때문이다. 인간의 고차원적 행동이라는 것도 자극과 반응, 거기에 끼어든 조건 형성, 조건 반사가 복잡하게 쌓이고 쌓여서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블로프의 이론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광고 전략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한 자극(예프고 야한 사진)과 동반된 조건 반사(네티즌의 클릭)를 통해 광고사는 수익을 창출한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연예인 사진이나 성형외과 광고가 없는 곳은 경복궁 같은 유적지 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온 도시를 광고판으로 만들었고 그중 미모는 가장 강한 마력을 지녔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아무 마력이 없는 예쁘지 않은 존재는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는 질문에 대한 괜찮은 해답을 준다.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사람들의 주목을 쉽게 끌 만큼 못 생긴 여자이다. 그녀는 추녀가 겪을 수 있는 온갖 치욕과 멸시를 당해왔다. 남자 작가의 글이지만 여자의 아픔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아마도 작가 역시 사회적인 스펙 싸움에서 져서 굴욕을 당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동감을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래는 여주인공의 회고이다.

세상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단다, 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저의 어둠을 장애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수히… 저를 장애인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저는 분명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들과 함께 학교를 다녀야 했고, 남들과 비슷한 옷을 입어야 했고… 그리고 언제나 남들과 다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역시나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라는 여자의 운명입니다.
 
어린 시절은… 그랬습니다. 남자아이들은 제게… 적어도 제게는 언제나 짐승과 같았습니다. 사람을 습격하는 짐승… 배가 고프지 않아도 무언가를 물어뜯는 짐승… 순수한 장난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짐승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아이들이 두렵습니다. 순수한 만큼, 어떤 죄책감이나 거리낌도 없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이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아이들과 같은 정신연령을 지닌 어른들도 많습니다. 어떤 성자가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해도, 제 삶은 결국 이들과 함께.. 이들에 속해 있어야 했습니다.

작가는 또한 미모 지상주의의 성질에 대해 예리한 분석을 한다. 그것은 본능과 생리 반응에 수반된 결과만이 아니었다. 미모 숭배는 배금주의나 학벌지상주의와 마찬가지로 세상 모든 것에 등급을 매기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경쟁시키는 사회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있다(에리히 프롬의 책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움). 소설의 히로인과 히어로는 그런 이념과 싸우며 자신들만의 사랑을 만들어 간다. 아래는 그들이 부서지고 나서 깨달은 생각을 말해주는 남자 주인공의 말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서로를 간호하는 느낌으로 걸어가던 길고 긴 골목도 잊을 수 없다. 인간의 골목… 그저 인생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불과한 인간들의 골목… 모든 인간은 투병 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