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버리기 연습 – 시간은 빨리 흐르고 사랑은 사라진다

어린 시절엔 매일마다 어떤 대상을 두근거리며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일들이 계속 벌어졌고 감각 자체가 예민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쓸데없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보니 사랑을 느끼는 예민한 감각을 잃어버렸다. 응답하라 1988에서 정환이가 덕선이를 버스에서 보호해주는 장면을 보니, 중학교나 고등학생 시절 한 여자애를 사랑했던 감각이 얼마나 강렬했었는지가 상기되었다. 기쁨으로 몸이 떠다니는 것 같은 그런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순수한 사랑을 찾는 일은 연애 전문 친구보다는 스님의 조언을 듣는 게 좋을 것 같다. 전자는 욕망을 가르치고, 후자는 지속되는 사랑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토종 승려인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이 쓴 생각 버리기 연습 책은 마음을 예민하게 분석해서 어릴 적 순수했던 감각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마음이 오로지 ‘보다 강한 자극을 위해 내달리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기 어려운 이유도 담담하고 은은한 행복감보다 부정적인 사고가 더 강한 전기 자극을 뇌에 주기 때문이다.

마음은 강한 자극을 좋아한다. 그게 설령 화가 치미는 불쾌한 기억이라 할지라도 강한 자극은 자석처럼 머리에 달라붙는다. 어린 시절 머리에는 이런 강한 자극이 적었지만 크면서 기억의 찌꺼기라고 할 수 있는 덩어리들이 쌓여간다. 그렇게 되면 일을 해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어도 집중이 흐트러지고 생각이 딴 데 가있는 느낌을 받는다.

1초 동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0.1초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 0.9초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나 과거의 잡음이 남긴 메아리에 휘둘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오감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둔해지고, 멍청한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10초 중 9초는 현실감이 사라지고, 한 시간에 54분은 멍청히 있게 된다. 결국 나이를 먹어 과거를 돌아보면, ‘몇 년이 한 순간에 지난 것 같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현실 그 자체에 직결되지 않는 망상에 탐닉한 결과, 현실감이 사라지고 행복감도 사라진다.

행복은 순간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데서 온다(seize the day). 오감을 다해 대상에 집중할 수 없으면 행복도 같이 사라진다. 만약 어떤 남자가 자기 여자친구 A를 꼭 안아주는데 실은 다른 여자 B를 그리는 잡념을 가진다면 포옹의 기쁨이 그만큼 사라진다. 여자 A도 나무나 돌이 아닌 이상 남자친구가 이상한 것을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데도 자신의 유일한 시공(時空)으로서의 대상에 집중하지 않으면 즐거움이 탈색된다. 스님이 다시 요약해서 말해주는 부분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원인은, 과거로부터 엄청나게 축적되어온 생각이라는 잡음이 현실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정보를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의 잡음이 현실감각에 완전히 승리할 때, 사람들은 둔해진다.

따라서 어릴 적 사랑을 되돌리는 방법은 먼저 몰두할 수 있는 일과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에 자신의 오감을 놓고 다른 강하고 필요 없는 자극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이건 아령을 가지고 근육 운동을 하듯이 생각을 가지고 하는 수련이 필요한 부분이다. 불교의 참선이나 요가처럼, 또는 기독교의 기도처럼 마음에 티끌을 없애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못 생김

인터넷 뉴스를 보면 연예인 사진 수 만 개를 볼 수 있다. 기사 제목은 항상 자극적이다. “XX의 굴욕 없는 뒤태”, “초미니를 입고 계단 오르는 OOO”. 엘리트 지식인인 신문 기자들이 왜 매일 이런 제목을 만드는지 생각할 수 있다. 인터넷 광고 수익은 기사의 클릭 횟수에 비례해서 지불된다. 사이트 방문 횟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본능과 연결되는 기사를 만들어야 한다.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는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주목할만한 실험을 했다. 개한테 음식을 주면서 매번 종소리를 딸랑 냈더니 나중에는 음식을 안 주고 딸랑 소리만 내도 개가 침을 흘리는 것을 발견했다. 파블로프는 이 실험의 성과로 19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어렵지 않고 별로 비용도 안 들 것 같은 이 실험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유는 그 광범위한 적용 가능성 때문이다. 인간의 고차원적 행동이라는 것도 자극과 반응, 거기에 끼어든 조건 형성, 조건 반사가 복잡하게 쌓이고 쌓여서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블로프의 이론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광고 전략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한 자극(예프고 야한 사진)과 동반된 조건 반사(네티즌의 클릭)를 통해 광고사는 수익을 창출한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연예인 사진이나 성형외과 광고가 없는 곳은 경복궁 같은 유적지 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온 도시를 광고판으로 만들었고 그중 미모는 가장 강한 마력을 지녔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아무 마력이 없는 예쁘지 않은 존재는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는 질문에 대한 괜찮은 해답을 준다.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사람들의 주목을 쉽게 끌 만큼 못 생긴 여자이다. 그녀는 추녀가 겪을 수 있는 온갖 치욕과 멸시를 당해왔다. 남자 작가의 글이지만 여자의 아픔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아마도 작가 역시 사회적인 스펙 싸움에서 져서 굴욕을 당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동감을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래는 여주인공의 회고이다.

세상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단다, 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저의 어둠을 장애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수히… 저를 장애인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저는 분명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들과 함께 학교를 다녀야 했고, 남들과 비슷한 옷을 입어야 했고… 그리고 언제나 남들과 다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역시나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라는 여자의 운명입니다.
 
어린 시절은… 그랬습니다. 남자아이들은 제게… 적어도 제게는 언제나 짐승과 같았습니다. 사람을 습격하는 짐승… 배가 고프지 않아도 무언가를 물어뜯는 짐승… 순수한 장난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짐승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아이들이 두렵습니다. 순수한 만큼, 어떤 죄책감이나 거리낌도 없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이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아이들과 같은 정신연령을 지닌 어른들도 많습니다. 어떤 성자가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해도, 제 삶은 결국 이들과 함께.. 이들에 속해 있어야 했습니다.

작가는 또한 미모 지상주의의 성질에 대해 예리한 분석을 한다. 그것은 본능과 생리 반응에 수반된 결과만이 아니었다. 미모 숭배는 배금주의나 학벌지상주의와 마찬가지로 세상 모든 것에 등급을 매기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경쟁시키는 사회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있다(에리히 프롬의 책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움). 소설의 히로인과 히어로는 그런 이념과 싸우며 자신들만의 사랑을 만들어 간다. 아래는 그들이 부서지고 나서 깨달은 생각을 말해주는 남자 주인공의 말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서로를 간호하는 느낌으로 걸어가던 길고 긴 골목도 잊을 수 없다. 인간의 골목… 그저 인생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불과한 인간들의 골목… 모든 인간은 투병 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미운 오리 새끼와 백조

바쁘기만 한 학교와 직장에서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모두들 외로운 섬처럼 고립되어 살아간다. 분명 친한 것처럼 느껴지는 동료가 있지만, 그건 같이 일할 동안만 느끼는 착각일 때가 많다. 직장을 옮기고 공유할 게 없어지면 인간관계는 기능을 다한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사람 얼굴이 꺼지듯 나는 그 사람이 필요한 존재에서 지워져 버린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고 냉소에 빠질 필요는 없다. 진심 어린 작가가 쓴 진심 어린 글을 읽으면 세상에는 잇속을 초월한 괜찮은 인간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를 읽으며 영화 게이샤의 추억(Memoirs of a Geisha)이 생각났다. 두 작품 모두에서 어린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 명은 소년이고 다른 한 명은 소녀였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게이샤의 추억의 주인공 치요(오고 스즈카 분)는 딸을 다 키우면 굶어 죽을 형편이던 집안에서 났다. 치요의 부모는 하는 수 없이 치요는 게이샤 집에 하인으로, 치요의 언니는 홍등가에 돈을 받고 판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 아버지에게 이런 식으로 버림받은 치요의 마음은 많이 아팠을 것이다. 게이샤 집에서도 학대 받으며 하녀 일을 하던 중 이와무라 회장(와타나베 켄 분)을 만난다.

그는 길거리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던 소녀 치요를 발견하고는 빙수를 사주며 위로의 말을 해준다. 지금은 울고 있지만 커서는 훌륭한 게이샤가 될 것이라고(게이샤는 일본에서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미모와 교양을 갖춘 예능인의 위치에 있었다). 그 순간 희망 없이 살아가던 소녀는 하나의 꿈을 품는다. 치요는 회장에게서 받은 돈을 손에 쥐고 천 개의 주(朱)색 기둥이 늘어선 길을 달려 신사로 간다. 한 달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동전을 전부 신전에 바치고는 진심을 다해 기도한다. 꼭 게이샤로 성공해서 회장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주인공 제제는 뽀르뚜가(마누엘 발라다리스)를 만나면서 비슷한 감격에 젖는다. 빈민가 소년인 제제는 싸움만 일삼아 가족들로부터 검은 양 취급을 받았다. 제제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사소한 잘못에도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뽀르뚜가는 그의 거친 행동 이면에 애정을 갈구하는 순수함이 있다는 것을 알아본다. 집 뒤 뜰에 있는 라임 오렌지 나무를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대화를 하는 것도 소통 할 수 있는 사람을 그리워해서 보인 행동이었다.

제제의 인생은 그를 유일하게 이해하고 사랑해주었던 뽀르뚜가로 인해 완전히 변한다. 미운오리새끼는 백조가 되었고, 처음 받은 사랑은 감격스러워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작품은 이제 48세의 어른이 된 제제가 죽은 뽀르뚜가를 그리움에 회상하며 말을 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눈물 없이 읽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모사세 XIII – 노니는 바다

바다는 파랑도에서 해녀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녀가 엄마 없이 살아갈 아기를 얼마나 걱정했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물은 파도치며 거품을 만들고 짠 내음을 흩뿌린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슬픔과는 관계가 없다. 여인이 죽은 다음날 파도는 전일과 다름없이 오고 갔으며 여인을 나른하게 했던 햇빛도 똑같이 내리쬐었다. 죽은 몸이 물 위에 떠 있는 것 만 다른 점이었다. 인간이 사고하는 것과 자연이 노니는 모습의 차이이다.

어른이 된 정인은 외할머니의 집 안에서 역할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건 마치 가구와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꼭 필요한 기능을 해주고 있지만 아무도 그녀의 기분을 걱정하지 않았다. 어린 손자 손녀들은 어린이 특유의 무신경함과 잔인함으로 할머니를 대했다. 항상 일에 바쁜 사위와 안팎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딸은 마음에 위로가 안 되었다. 하지만 수 십 년에 걸친 가사와 육아를 외할머니는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불평의 말을 한 적도 없다. 이렇게 의무에 충실했지만 그녀의 개인적인 욕망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어린 정인은 욕망에 민감한 개체였다. 엄마 눈길을 피해 노는 데 특히 그랬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탐심(貪心)이 없는 사람 같았다. 할머니가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게 아니란 걸 정인은 느낀 적이 있다.

그때 정인은 외할머니와 둘이서 마루에 앉아 옛날 사진 앨범을 펼쳐 보고 있었다. 거기엔 주로 정인의 아기 사진들이 있었지만 간혹 어머니의 처녀 때 모습이라든지, 할머니의 아줌마 시절 사진도 있었다. 역시나 외할아버지의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40대 시절 독사진을 무언가 애틋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면서 “이땬 나가 아적 갼찮았는디…” 라고 했다.

정인은 서울 말씨를 쓰지만 제주도 사투리는 다 알아들었다. 할머니는 “이때는 내가 아직 괜찮았었다” 라고 말씀하셨다. 손자가 보기에 40대 할머니는 할머니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아줌마 같았고 여자로서 매력이 풍기지는 않았다. 일년 365일 입고 다니던 몸뻬 바지와 꽃무늬 블라우스를 착용하지 않고 시골풍 정장을 입은 게 큰 차이점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분명 예뻐 보이고 싶고 치장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지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마음에 손자 정인을 포함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게 슬픈 사실이었다. 이렇게 욕망과는 상관없이 집안의 식모처럼 살았던 가여운 외할머니는 긴 세월이 흐르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녀를 그렇게 바꾸어 놓은 건 이번에도 자연이었다.

달과 6펜스 – 광기와 열정의 달

인생이 컨베이어 벨트 위를 흘러가는 물건 같다는 느낌이 든 적이 있다.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타성적이다. 트랙 위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었다. 나는 대학생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었고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3개월 정도 되는 시험 준비 기간 내내 집 밖을 나가지 않고 혼자 공부를 했다. 공부를 시작 했을때 공기는 따뜻했고 창 밖의 나뭇잎은 초록색이었다. 두어달이 지나자 차가운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왔고, 갈색으로 마른 잎새들이 마음을 아주 울적하게 만들었다.

시험 공부를 하면서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했었다. 이건 네 미래를 위한거야. 내 꿈을 위한 거야. 하지만 그런게 무슨 의미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렇게 살면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감사의 꽃다발을 받지도 않는다. 신이란 존재는 보이지 않고 누군가가 확실하게 증명해 낼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품은 갈망은 정당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좋은 대답은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청춘을 넘어선 사람으로, 안정된 사회적 지위와 아내와 그리고 두 아이까지 있는 증권 중개인이다. 내 나이에 화가를 지망했다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겠지만, 그가 화가를 지망한다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솔직해지고 싶었다.
 
“물론 기적이 일어나는 수도 있으니까 당신이 대화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요.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런 가능성은 만에 하나입니다. 고생만 죽도록 하고 아무 결실도 없이 결국 단념해야 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을 게 아닙니까?”
 
“그래도 나는 그리지 않을 수 없소” 그는 되풀이했다.
 
“그럼 당신이 앞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삼류 화가로 그친다면, 그래도 모든 걸 버린 만큼의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정말 당신은 바보로군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뻔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 바보라면 뭐 할 말은 없겠지만”
 
“그러니까 그리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고 하지 않았소. 이 마음은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거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를 따지고 있겠소? 어떻게 해서든지 물 속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애 쓸 것 아니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의 구절이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의 삶을 모태로 한 이 소설에서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중년의 나이에 안정된 증권거래소 중계인의 자리를 버리고, 아내와 자식들도 같이 내버려두고 가난한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아내는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나서 다른 나라로 떠난 걸로 생각하고는 한 젊은이(작품의 화자)를 보내 남편을 찾게 한다.

화자는 사회적 상식을 논거로 삼아 스트릭랜드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실패로 끝난다. 그는 “그리지 않을 수 없다”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스트릭랜드는 그림이 주는 미(美)에 완전히 빠져 있었고, 그건 예쁜 여자에게 빠진 것처럼 확고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혹은 스트릭랜드가 말한대로 물에 빠져 살기 위해 허우적대는 사람과도 같았다. 안 그러면 죽기 때문에(그림을 안 그리면 너무 괴로우니) 노력하는 것이다.

아무튼 가을 바람이 차가웠던 외로운 날 나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내 이념, 혹은 늘 절실한 감정이 쏠리는 방향은 정해졌기 때문에 그걸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밥 먹는 것을 아무리 미루어도 결국에는 먹을 수 밖에 없는 것 처럼 그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화웨이, 새로운 삼성 II

화웨이의 설립자 런정페이는 1944년 중국 구이저우성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중학교 교장, 모친도 교사였던 교육자 집안이었다. 부모의 교육열 덕분인지 명문 충칭건축공정학원(현 충칭 대학교 공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이던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다.

중국 전국을 휩쓴 이 난리로 학교는 문을 닫고 학생들은 사상 투쟁 시위를 하러 몰려나갔다. 런정페이의 부친은 국민당을 위해 부역했던 경력으로 인해 홍위병들의 박해를 받았다. 하지만 런정페이는 “기억해라. 지식은 힘이다.” 라고 당부했던 아버지의 염원대로 독학에 열중했다. 대학시절 그는 전자 기술 이외에도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의 사상을 연구한다. 아래는 그에 대한 책의 내용이다.

런정페이는 암울했던 대학시절에 마오쩌둥 사상을 깊이 연구했다. 이는 엔지니어로서 상대적으로 경영전략에 취약했던 런정페이가 화웨이를 키우는 강력한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화웨이의 연구와 기술 개발에는 마오쩌둥 사상의 ‘우수한 병력을 집중시켜 전투에서 완벽하게 승리한다’ 는 전략이 적용되었다. 또 자기반성과 사내 캠페인 등, 그동안 화웨이의 발전과정에서 드러난 중대한 정책에도 마오쩌둥 사상의 영향이 엿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마오쩌둥 사상이라고 하면 소수의 운동권 사람만 읽는 공산주의 정치이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런정페이가 경영 지침으로 사용했던 건 마오쩌둥의 군사 전략이었던 것 같다.

마오쩌둥과 장제스의 국공내전(1946~1949년)은 2천여 년 전의 초한전(楚漢戰)과 비슷했다. 항우는 유방을 훨씬 능가하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마음대로 그를 죽일 수 있던 때도 있었다(홍문지연 鴻門之宴). 하지만 유방은 항우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해서 무너뜨렸다. 항우가 정공을 걸 때는 지연전과 유격전을 벌였고, 상대 진영을 이간시키는 책략도 필사적으로 사용했다.

마오쩌둥도 유방과 마찬가지로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전쟁을 이겼다. 전쟁 발발 당시 병력은 국민당군 430만 명 대 공산당군 120만 명으로 4배 가까이 차이가 났고, 국민당 측은 베이징, 난징, 상하이, 광저우 등 주요 도시와 공업 중심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군사 장비에 있어서도 태평양전쟁 종전 후 미군의 잉여 무기를 넘겨받은 장제스 측이 유리했다. 공산당군은 해군과 공군이 없었고, 소총으로 무장한 수많은 보병이 주력이었다.

미국은 물론,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도 마오쩌둥의 승리에 회의적이었다. 스탈린은 1945년 7월 초 모스크바를 방문한 장제스 정부의 외무장관 송자문(宋子文)과 회담하고 중소 우호 동맹 조약(Sino-soviet Treaty of Friendship and Alliance)을 체결했다. 마오쩌둥은 장제스와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해 권력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예상을 뒤집고 공산군은 불과 4년 만에 장제스의 군대를 붕괴시키고 중국 전역을 장악했다. 그들은 특유의 게릴라(빨치산) 전술을 썼는데, ’16字 전법’이라고 불리는 전술이다.

敵進我退 적이 공격하면 후퇴
敵駐我擾 적이 멈추면 교란
敵疲我打 적이 피로하면 공격
敵退我追 적이 후퇴하면 추격
 
병력에서 앞설 때만 공격하고 필요 없이 병력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준비 없이 싸워서는 안 되며, 승산 없이 싸워서도 안 된다.
농촌을 장악한 후 도시를 포위 공격, 섬멸한다.

화웨이가 경쟁 기업과 싸워온 과정도 빨치산 전쟁과 비슷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겼던 것이다. 화웨이는 기술력과 브랜드 명성이 있는 다국적 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시골 지역에서 먼저 기반을 쌓았다. 본토 기업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후 지원 서비스에 정성을 다했다. 경쟁입찰, 계약에 이르기까지 화웨이는 반드시 경쟁기업보다 많은 인력과 자금을 집중 투입해서 돌파구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단지 우수한 전술의 성과만은 아니었다. 아래는 <위기를 경영하라> 책에 실린 예화이다.

…영업사원들이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각종 제품이 소개된 자료와 샘플을 둘러메고 밤낮으로 뛰어다녔지만, 1년 동안 전국 500여 현(縣)을 훑고 다녔음에도 주문량은 보기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한 번은 중국과 러시아의 접경 지역인 이춘 전신국과 계약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절박했던 런정페이는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영업사원뿐 아니라 수석연구원들까지 총출동시켰다. 그들은 영하 40도의 한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서 6개월 동안 머물며 기술교류, 프로세스 점검, 설비 테스트 등을 수십 차례나 거듭했다. 마침내 최종 입찰을 하던 날, 그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내심 좋은 결과를 기대했던 그들은 어찌나 속이 상했던지 체면도 잊은 채 고개를 떨구고 통곡했다고 한다.

예화에서 보이듯 화웨이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헌신은 눈부실 정도이다. 장군(경영자)의 전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걸 실행하는 병사(직원)들의 사기가 없다면 전투에서 이길 수 없다. 이렇게 계약을 못 따면 통곡까지 하는 특별한 기업 문화는 특별한 소유구조로부터 왔다.

‘여러분은 회사의 주인’ 이라는 팻말만 있고 실제 번 돈과 주식은 회장 가족들이 독점하는 회사가 많다. 반면 화웨이는 경영자와 종업원들이 회사의 주식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종업원 지주제(Employee Shareholding Plan) 회사이다. 그래서 직원의 꿈이 회사의 꿈이 되고, 회사의 목표가 직원의 목표가 되는 응집력 강한 조직을 일구어 냈다. 직장에 야전침대를 깔아 놓고 야근을 하고, ‘화웨이 늑대’ 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분투하는 정신은 제도에 기반한 충성심에서 왔다. 중국 기업에 대한 흔한 편견을 깰 만한 우수한 기업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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