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이라는 드라마가 존재한다. 하지만 감상한 시청자는 아무도 없는데, 올해 5월 방영 예정이었지만, 2월 대학병원 전공의가 대거 이탈하자 여론이 나빠져 공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저렇게 유명한 배우를 쓰고도 방영조차 할 수 없다니 의사 집단에 대한 대중 인식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론과 반대로 복귀하는 전공의 수는 미미하다. 현대판 의사 길드라 할 수 있는 조직에 큰 타격이 될 증원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수의료 패키지는 1회성이 아닌, 향후 5년간 2천명씩 총 1만명을 늘리는 정책이다.
만약 현 정부의 계획이 모두 실행된다면, 5년 후에는 우리보다 인구가 2.5배 많은 일본의 전체 의과대학 정원인 9,403명보다도 우리나라 정원이 3천명 정도 더 많아지게 된다(일본 후생노동성厚生労働省 2024년 자료 기준).
https://www.mhlw.go.jp/content/10803000/001234296.pdf
이렇게 올해 2월 정부가 발표한 개혁 정책은 전공의들 뿐 아니라 의대생들에게도 큰 정신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정부는 이들이 느낄 심리적 동요를 백안시 했고, 소요가 일어난다 해도 법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믿은 듯 하다.
그러나 내년에 의대 증원이 시작된다해도 문제가 발생한다. 휴학 의대생들과 의대교수들의 협력 없이는 실제적 효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인데, 이유는 아래와 같다.
· 전공의가 복귀를 해도, 의대생이 안 돌아오면 새 전공의가 배출되기 않음. 내년에도 대학병원 사태가 지속되고, 공중보건의 군의관의 수급도 막힘.
· 의대 교수는 내년 신입생을 면접으로 뽑을 권한도 있고, 유급시킬 권한이 있음. 게다가 의사국가고시 출제 의원도 교수라 정부가 늘린 숫자만큼 의대생 졸업을 못하게 만들 수 있음.
· 의대 실습은 도제식이라 전공의(레지던트), 의대 교수에게 실습 평점을 받고 배우는 건데 늘어난 인원 교육을 감당 못하게 됨.
결국 정부가 교육부 장관님 발언대로 6개월 기다려서 승리를 선포하고 증원을 진행해도 의과대학 내부에서 사보타지(sabotage)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정부는 필수의료 위기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하고, 필자도 속한 의사 집단은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가 세계에서 가성비가 제일 뛰어나다고 선전한다. 의사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따라 판단은 갈리지만, 냉철하게 숫자로 판단해 보면 좋을 것 같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은 필수의료 위기의 정도를 세계 국가별로 검증할 수 있던 사건이었다. 3년 이상 지속된 범유행 동안 세계적으로 6백8십만명 이상이 사망했다(2023.5.2일 기준 statista 집계).
OECD 공식 보고서(링크)를 통해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응을 비교할 수 있다. 사망률은 호주 일본과 함께 가장 낮은 군이었다(아래 사진).
위기가 심각했던 2020년도를 전년과 비교해서 중요한 검사나 수술이 얼마나 잘 가동 되었나 비교하는 표가 있다. 아래 사진의 빨간 네모의 Coronary angioplasty는 관상동맥 성형술 즉 스텐트(stent) 삽입술을 뜻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님이 2014년 심근경색 발병 시 받았던 시술이기도 하다.
영국(United Kingdom)은 2019년에 비해 코로나 위기가 한창이던 2020년, 치료 시술이 12.5% 감소했다. 이탈리아(Italy)는 14.9% 감소, 아일랜드(Ireland)는 21.2%나 줄어들었다. 즉 매년 비슷한 수의 심정지 위험 환자가 발생한다면, 20% 이상 – 5명 중 1명 – 이 치료 못 받고 목숨을 잃을 정도로 필수의료가 악화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8% 감소로 이스라엘(Israel)에 이은 OECD 2위였다.
순환기내과의 관상동맥성형술은 신경과/영상의학과의 뇌졸중 중재술, 신경외과의 수술과 함께 대학병원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관리된다다. 당장 사람의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치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OECD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위기 징후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 같은 선진국도 코로나 사망자 시체가 쌓여 대량 매장을 하는 위기를 겪었다(상기 사진).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향후 고령화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고갈, 필수 의료 붕괴가 진행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당장 의사 수가 많이 부족한 정도는 아닌 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확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래는 미국의학협회(AMA;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서 낸 기사이다.
챗GPT가 미국 의사국가고시(USMLE)를 통과했다, 이제 의학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하는가 묻고 있다. 챗GPT가 우리나라 의사 필기시험도 쉽게 통과할 걸로 예상된다.
결국 단순 대량 암기로 시험보는 의학 교육의 중요성은 떨어지고, 실제 의료 현장에 대응하도록 실습을 잘 받아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의사 역할의 많은 부분을 대신할 미래가 올 것이고, 그에 따른 의대 교육 패러다임 변화도 예상된다. 의대 정원이 늘어도 이런 새로운 교육이 보장된다면 정당성이 생길 수 있다.
의학 교육의 다른 이슈는 고령화이다. 우리나라 베이비 붐 시대는 1955년경 부터 1974년, 한해 출생아 수가 90만명 넘던 때이다. 이 연령대가 은퇴를 하고 요양을 하게 되는 시기가 2025년 부터 2044년이 된다.
감사원의 2021년 보고서를 보면, 2047년 즉 지금으로부터 23년 후에는 인구구조 그래프가 역 피라미드 모양이 된다. 개발도상국이었던 때는 피라미드 모양이었다.
https://www.bai.go.kr/bai/result/branch/detail?srno=2622
결국 소아과 산부인과는 지금보다 절반은 줄어들고, 요양원 요양병원 실버타운은 2~3배로 늘어날 미래이다. 지역별로 보면, 2047년에는 수도권 외에는 거의 소멸 단계로 간다고 예측된다.
지금은 강남 아파트에 놀이터도 있고, 피트니스 센터도 있지만, 2047년에는 지방 아파트는 텅 비고, 강남 아파트는 살아 남는데, 그게 실버타운과 비슷해지는 미래가 점쳐지고 있다. 60세 이상 인구가 59.0%이어서, 서울 도시 자체가 노인 마을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젊은 노동인력은 외국인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감사원의 보고서가 과장된 것이 아닌 게, 베이비 붐 시대에는 한 해 출생아가 90만명이었는데, 작년 2023년에는 1/4 가까이 빠진 23만명 밖에 되지 않았다.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서 당장 의료인력 수급을 손보는 건 좋다. 하지만 정원이 1년간 60% 늘어나는데 의대 교육의 질이 유지된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노인의학과 요양 치료에 대한 내용이 늘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의대 증원과 직접 부딪치는 당사자는 지금 휴업 중인 전공의가 아니라 의대 학생과 교수이다. 2차 당사자는 전공의, 3차는 의협에 속한 의사 집단이다. 의대 학생 수 문제를 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나 개원의 집단인 의협이 주도해 풀 수는 없고, 1차 당사자가 정부와 협상할 수 있게 도움을 주면 된다.
그렇게 의료계 단일 팀을 만들어서 단일 안을 내야 하는데, 정부도 수긍할 수 있고, 여론의 지지도 받을 수 있고, 의대 교육도 망가뜨리지 않는 방안이 뭐냐고 한다면, 단 두가지가 남는다.
하나는 의대 정원을 기존 의대에 배분해서 늘리는 게 아닌, 신설 의대를 만들어서 하는 것이고, 둘은 의사 면허 시험을 개방해서 해외 의사를 수급하는 방법이다.
두 방법 모두에서 기존 의대교육의 붕괴는 막을 수 있다.
신설 의대안은 정부 정책 브리핑 사이트 기고에도 언급된 바 있다.
https://www.korea.kr/news/contributePolicyView.do?newsId=148927063#contributePolicy
포항공대나 카이스트 아니면 다른 거점 국립대에 의사과학자 양성에 특화된 의대를 만들고 대기업과 산학협력을 해서 바이오헬스 산업을 키울 수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테크 기업이 의료 서비스를 혁신하도록 인력 양성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이미 하고 있는 발전 방향이다.
현 정부가 주도적으로 의과대학 단과대를 설립하고 새로 교원을 뽑고 공공성과 전문성을 부여해서 학생을 키울 수 있으니까 역량을 시험할 기회가 되고, 성공하면 온전히 정부의 공이 된다.
의사 면허 시험 개방의 경우는, 미국이나 영연방 국가도 외국 의대 졸업생의 응시를 받고 있고, 우리나라 의사도 그렇게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형평성의 문제가 없다. 필수 의료과의 부족한 인력을 외국인 의사 쿼터로 할당하는 방식을 취하면 된다.
고령화로 각국 노동 인력이 우리나라로 들어올 미래에, 의료서비스 시장의 다양화와 서비스 경쟁 자극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공의 파업을 의사 밥그룹 싸움으로 느끼는 여론을 달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올해 4월 대통령 명의 정부 담화에서 필수의료 붕괴의 이유를 의사 직역 카르텔의 문제, 증원을 조직적으로 막았다는 데 두었었다. 다행히 의대 학생과 교수는 카르텔의 일부가 아니다. 학생은 근로자도 파업자도 아니고, 의대 교수는 법적으로 교원 신분에, 수억 연봉의 고소득 의사 집단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와의 협상에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다.
의정 양측에서 의료 대란으로 사망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걸 공동 목표로 하면서, 필수 이익선을 정부는 의사 숫자 늘리기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의사 측은 기존 의대생 학습권 보장으로, 합의를 하고 국민의 지지를 얻었으면 한다.
코로나 기간에도 전 세계에서 환자 사망률이 가장 낮았던 우리나라이다. 질병도 아닌 정책 논쟁 때문에 죽지 않아야 할 환자가 죽어가는 건 비극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