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대세가 정해진 다음 논평하기는 쉽지만 아직 싹도 나지 않은 걸 예측하기는 어렵다. 주식도 마찬가지이다.
2015년 1월 2일, 나는 처음 중국 주식에 손을 대었다. <지금 중국 주식 천만원이면 10년 후 강남 아파트를 산다>라는 책에 감명을 받고 저자의 추천 종목에 투자를 했다. 후강통 시행 전에 출간된 책이라 홍콩 시장 종목들만 소개되어 있었다.
책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도상에 있으며, 잘 찾아보면 미래의 삼성화재, 미래의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널렸다고 했다. 확실히 우리나라가 중진국이던 1990년대 삼성화재나 삼성전자를 사두었다면 현재 수천 퍼센트를 넘는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투자로 거금을 날리고 나서 생긴 냉정함으로 돌아보면, 물론 삼성화재, 삼성전자같이 될 기업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기업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중진국에서 이제 거의 선진국에 왔듯이, 중국도 꼭 그렇게 되리라는 법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중국의 역사적 전통과 그들 공산당의 추진력을 믿었었다.
아직 후진 농업 국가이던 시절 6.25 전쟁에서 미국군을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 공격했고(맥아더 총사령관은 중공이 그들의 후진 장비를 가지고 미군에 도전할 마음도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선을 압록강에서 지구 위도 3도 정도 아래인 휴전선 근처로 밀어냈다. 덩샤오핑은 전쟁에서 인해전술 쓰듯 많은 인민을 동원해서 경제발전을 이룩하려 했는데, 참고했던 것이 싱가포르의 국가 관료 주도 경제개발 모델이었다. 이 모델은 우리나라가 군사독재 시절 추구했던 것과도 비슷하다.
자존심 강한 민족주의 감정과 우리나라 70년대 비슷한 국민 동원 능력이 결국 중국의 경제 발전을 지속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믿음은 냉철한 주식 투자에 한해 보면 거시 경제 흐름에 대한 참고점 하나가 될 뿐이었다. 이보다 복잡한 기업 분석이나 투자 기법이 결합되어야 투자에서 피눈물 흘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피눈물 많이 흘리고 깨달은 사실이다.
아무튼 2015년 나의 생애 첫 투자 종목은(나는 국내 주식 투자 경험도 없었다) 인민재산보험(2328HK)이었고, 강남 아파트 책에서 추천한 다른 종목인 BYD나 보리협흠도 매수했다. 처음 사고 계속 오르니 마음이 즐거웠다. 용기가 생겨 상해주식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스스로 종목 분석하지 않고 <지금 ‘당장’ 중국본토 A주에 투자하라> 책에서 추천한 종목들을 느낌에 따라 당장 당장 매수해 갔다.
보유 현금을 다 쓰고서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 투자금을 마련했고, 어느새 중국 주식에 투자한 총 금액이 월급의 10배가 넘는 상황이 되었다. 2015년 1월부터 그해 6월까지는 우량주라 소개된 어떤 종목에 돈을 넣어도 50%는 오르는 활황 장세이어서, 이런 무모한 일이 계속될 수 있었다. 당시 중국 주식 투자 네이버 카페에는 “XXX 종목 달려주네요 ㅎㅎㅎ” 류의 글들이 수도 없이 올려져 있었다.
필자는 아직도 다음의 대화를 생생히 기억하는데, 원통한 마음이 생생함이 되었던 것이다. 아는 동생에게 중국 주식에 투자해 천만 원 넘게 벌었다고 자랑하니, 그는 “형 그럼 지금 다 팔아버리는 게 낫지 않아?” 라고 했다. 나는 짐짓 “지금 팔면 안 되지. 아직 다 오르지도 않았는데.” 라고 대답했다. 그때가 2015년 5월이었는데, 그의 말을 따랐다면 피눈물 흘릴 일도 없었을 텐데.
2015년 6월 중국 상해시장 주식 대 폭락이 시작되었고, 홍콩시장도 뒤를 따랐다. 나는 물론 이게 잠시 있는 조정기간 일 걸로 알았다. 상해주식은 상한가 하한가 제한이 10%였는데, 투자한 전 종목이 하한가를 맞는 신기한 경험도 몇 날 했다. 홍콩시장은 상한 하한 제한이 없는 무서운 곳이었다. 가지고 있던 알리건강 이나 V1 group 이 아침 개장 후 1시간도 안 되어 20%씩 폭락하는 꼴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