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경부암 예방접종 안정성과 부작용 – 가다실과 서바릭스 접종 가격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인 <가다실>과 <서바릭스> 주사제는 2016년 6월부터 국가필수예방접종(NIP)에 포함되어 무료 접종되고 있다(만 11,12세 여성 대상).
 
카모마일 의원에서도 시행 중인데 지금까지 느낀 바는 이렇다. 전체 여성 발생 암 중 7위(2014년 국가암정보센터 집계 기준)인 자궁경부암을 주사를 통해 예방하는 획기적 컨셉에다, 돈 주고 맞으면 상당한 고가(1회 15만원, 총 3회 접종 45만 이상)인 주사제를 국가에서 무료로 풀고 있지만, 대중의 관심(특히 사춘기 딸을 둔 어머니들의)은 정말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백신이 정말 획기적인 건지, 무료면 꼭 맞아야 하는지, 무료가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자궁경부암 무료 백신은 좋은 치료

암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고 그래서 일괄적으로 예방하기가 어렵다. 암 유발 요인 중에는 바이러스도 있는데, B형이나 C형 간염바이러스가 간세포암을,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pstein-Barr virus)가 버킷 림프종(Burkitt lymphoma)을 일으키는 게 대표적이다.
 
1976년 독일의 미생물 학자인 하랄트 추어 하우젠(Harald zur Hausen)은 인간 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virus;HPV)가 여성 자궁경부암을 일으킨 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06년 미국 FDA는 MSD(Merck & Co)사의 가다실(Gardasil)을 HPV 예방접종 주사제로 승인했으며, 2007년도에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GSK)사의 서바릭스(Cervarix)를 승인한다.
 
하랄트 추어 하우젠은 2008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는데, 연구 발표가 1976년이고, HPV 백신이 처음 나온게 2006년이었으니, 자궁경부암 예방에 대한 실용적 업적을 평가받은 것이다. 그래서 가다실/서바릭스 백신에 회의적인 보호자 분을 만나면 이건 노벨상을 탈 정도로 획기적인 연구에서 나온 약제라는 사실을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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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사진은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에서 배포한 자료이다. 사람유두종바이러스는 성적 접촉으로 전파되며 대부분 무증상 감염을 일으킨다. 산부인과 검사를 일부러 받지 않는 이상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다. 다행인 것은 많은 경우 HPV 감염은 몸의 항체 등에 의해 자연소실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소수는 지속감염에 노출되고, 결국 암이 발생하게 된다.
 
성관계 대상자가 많은 여성은 자궁경부암 위험군에 속한다. 하지만 여성 본인의 성관계 파트너가 한 명이어도 그 남자가 예전에 성관계 대상자가 많았었다면 또 위험이 올라간다. 결국 성생활 습관이나 확률로 대비할 게 아니라 사춘기 이전에 미리 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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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HPV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으로 도입한 2008년부터 2013년까지의 단 5년 간 16~18세 여성에서 백신의 주 치료 타겟인 HPV 16, 18형 감염 유병률이 66%나 감소한 것을 알 수 있다. 자궁경부암 백신은 이론 배경이나 치료 효과 모두 검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가다실 / 서바릭스 부작용 공포

카모마일 진료실에서 자궁경부암 국가예방접종을 설명할 때 이렇게 좋은 주사제가 무료인 것을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무료를 기뻐하는 보호자님들은 없었고, 항간에 떠도는 부작용 소문을 더 관심있어 하셨다. 이를테면 아래 링크된 기사 같은 사례이다. 이 언론사는 HPV 예방접종 후 사망에서 사지마비, 복합부위통증증후군 등의 발생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기사 신뢰도는 회의적이라고 생각한다.
 

http://www.factoll.com/page/news_view.php?Num=3293

 
<팩트올>이 사망 사례 기사에서 인용하고 있는 영국 언론사는 데일리메일이라는 곳이다. 원본 기사는 아래 링크에 있다.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3581681/Teenage-girl-dies-five-days-having-cervical-cancer-jab-doctors-dismissed-illness-stomach-bug.html

 
<데일리메일>은 <더 선>(The Sun)과 함께 영국의 대표적 타블로이드지로 꼽힌다. 우리나라로 치면 <선데이서울>이다. 기사 내용은 장황하지만 의학적, 법적으로 확인된 증거는 나와 있지 않다.
 
아래 링크는 Vaccine Knowledge Project에서 제공하는 HPV 백신의 안정성 연구 설명이다. 이 프로젝트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University of Oxford) 소아과 교실 산하의 Oxford Vaccine Group이 운영한다.
 

http://vk.ovg.ox.ac.uk/hpv-vaccine

 
2009년에서 2016년 사이 영국에서 팔백오십만 도즈(dose) 이상의 HPV 백신 주사제가 접종되었으며, 이와 연관된 심각한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사망 사건에 대한 언급도 없으며, 덜 심각한 합병증인 체위빈맥증후군(postural orthostatic tachycardia syndrome;POTS)이나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CRPS)도 백신과는 관계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HPV 백신 국가예방접종 사업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을 포함한 전세계 65개국에 도입되어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도 국가 차원의 예방접종 사업을 권고하고 있다. 정말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면 이들 선진국 보건당국이나 WHO가 접종을 중단 시킬 것이다.



 

3. 가다실 / 서바릭스 유료 접종 필요성

국가필수예방접종 대상 나이대가 아닌 여성의 경우 자궁경부암 백신을 유료로 맞는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돈 주고라도 꼭 맞아야 할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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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V의 국내 감염 현황에 대한 통계이다. 18~79세 여성에서 감염 유병율이 34.2 퍼센트로 여성 인구의 3분의 1을 넘었다. 이렇게 흔한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어릴 때 예방주사 맞는 게 최고이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된 여성에서도 자궁경부암 백신은 HPV 지속 감염과 자궁경부 상피 내 종양(CIN)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특히나 성매개로 전염되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지금 배우자 혹은 남자친구가 예전에 어떤 복잡한 관계가 있었는지 모르는 여성이라면 예방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미국 FDA는 만9세에서 26세의 여성들에게 가다실/서바릭스 접종을 허가하고 있다. 유럽과 호주를 포함한 37개국은 미국과 기준이 달라서 27세에서 45세까지의 성인·중년 여성에 대해서도 적응증 허가를 한 상태이다.

http://healthcare.joins.com/master/healthmaster_article

 
국내 기준은 미국과 비슷해서 서바릭스는 만9~25세 여성, 가다실은 만9~26세 여성 및 남성이 대상이다. 남성은 자궁이 없어서 자궁경부암은 안걸리지만, HPV를 통해 생식기사마귀, 항문암 등이 발생하므로 접종 대상이 된다.



 

4.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종류 및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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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경부암은 위 사진처럼 흉측하게 생겼다. 이걸 일으키는 HPV는 항원형(Serotype)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가장 중요한 16 및 18형을 예방해주는 것이 서바릭스(2가)이고, 가다실은 HPV 6형, 11형, 16형, 18형을 막아주는 4가 백신이다.
 
서바릭스가 2가이고 가다실이 4가이니 가다실이 두 배 좋은 백신이고 가격도 두 배인 건 아니다. 그림 설명대로 16, 18형이 전체 자궁경부암 발생의 70%를 차지하며, 가다실에 추가된 6, 11형은 암 발생이 적은 저위험 유형에 속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가다실9 이라고 하는 9가 백신도 시판된 상태이다. 각 백신을 유료 접종 받는 경우 일정 및 평균가는 아래와 같다.
 
· 서바릭스 (GSK) – 1회 접종가 12~15만원 / 만9~25세 여성 0, 1, 6개월 일정 총 3회 접종
· 가다실 (MSD) – 1회 접종가 11.5~18만원 / 만14~26세 남여 0, 2, 6개월 일정 총 3회 접종
· 가다실9 (MSD) – 1회 접종가 18~20만원 / 만15~26세 남여 0, 2, 6개월 일정 총 3회 접종

니체를 읽으면 좋은 이유 VIII – 오직 미적 현상으로서만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자살했을 때 인터넷 뉴스 댓글에는 왜 저렇게 젊고 예쁘고 명성도 있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하는 글이 많았다. 하지만 유서 내용에도 있듯이 자신이 겪는 힘듦은 자신에게만 실제적이고, 가늠이 가능하다. 반대로 생각하면, 자신이 겪는 행복도 스스로에게만 지극하고 현실적이다. 그래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 않고, 행복을 자가 생산할 수 있으면 불행도 통제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기쁨을 누렸던 역사 인물을 생각해보면, 니체가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살아 생전 그의 작품은 빛을 보지 못했지만, 스스로가 자기를 인정했다. 니체의 책 <이 사람을 보라>의 목차엔 ‘나는 왜 이렇게 지혜로운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가?’ 등의 제목이 있다… 니체의 똑똑한 친구들도 니체의 글을 반 쯤 밖에 이해 못했던 것 같다. 대표적 친구인 에르빈 로데(Erwin Rohde) – 당대의 유명한 그리스 고전문헌 학자였음 – 에게 니체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나는 <짜라투스트라>로서 독일어를 완성에 이르게 했다고 자부하네. 그것은 루터와 괴테를 이은 제3의 발전이었네.

하지만 로데는 짜라투스트라 책을 힘겹게 읽었고, 그 다음으로 출간된 책 <선악의 저편>을 읽은 후에는 폭발하고 말았다. “니체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직업을 갖는거야!” 라고. (니체, 그의 삶과 철학 by 레지날드 J. 홀링데일 p65)

당시 니체는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결혼할 배우자 찾는 것도 안하고, 혼자 휴양하면서 친구에게도 대중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책만 쓰고 있었다. 안정된 직업과 가정, 사회적 지위까지 있던 로데는 니체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삶이 반영된 글에도 당연히 공감하지 못했다. 자기 능력의 백 분의 일도 인정받지 못했던 니체가 어떻게 자기확신과 행복을 가졌을까는 연구해 볼만한 주제이다. 나는 <비극의 탄생> 책에 나온 아래의 구절이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현존과 세계는 오직 미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된다.

미적인 현상은 사람에게 행복감을 준다. 예쁜 연예인을 보며 정줄 놓은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예쁜 여자 말고 다른 수많은 사물에서 그 같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지금 사는 것(현존)과 주위 세상(세계)는 더 없이 만족스러워(정당화)진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말로 유명하다. 최고가치의 상실에 대한 선언으로 해석되며, 꼭 기독교적 신에 대한 반대는 아니다. 이 말의 중요성은 신은 죽었는데 이제 뭘 할거냐는 것이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하나님처럼 섬기는 무언가가 있다. 출세나 재산, 외모, 사람들로부터 인정 같은 것이다. 이은주씨는 이걸 모두 가졌지만 행복을 얻지 못했었다. 누구나 나름의 가치 추구를 하고 있고, 충족받지 못하면 허무해지고 고독해진다. 니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서 영속적인 행복의 길을 찾았다.

자신의 상태를 예술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자신에게 닥친 슬픔과 고통,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모든 것을 순식간에 돌로 만들어버리는 고르고의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능력이다. 그것은 고통이 전혀 없는 세계에서 유래한 시선이다. (J3, 334)

니체는 자신 생의 요소와 그 누림을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게 느꼈던 것 같다. 슬프고 우울해도, 어떤 대단한 역사나 문학 안의 주인공처럼 자신을 느끼면, 고난도 미학적 현상으로 치환된다. 주위 사람들이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일자리에서 별 볼일 없는 성과를 낼 때도 즐겁게 자족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니체는 자신의 시대에 유명하지도 부유하지도 인기가 많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면 가치를 창조하는데 매우 뛰어 났고, 거기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

프레카리아트 I – 편리한 사용과 폐기

니트족은 세련된(neat) 사람들 집단이 아닌 걸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영어 ‘NEET’ 로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이라는 뜻이다. 즉 학생도 아니고, 직업도 없고, 직업을 얻기 위한 훈련도 안 하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니트족의 심각성은 헬조선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손 꼽히는 선진국에다 일억 총중류(一億總中流) – 인구 일 억 명이 죄다 중산층 – 라는 자부심이 있던 일본에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의 저자 아마미야 가린은 눈에 띄는 경력의 소유자이다. 일본 홋카이도 시골에서 태어난 그녀는 예술적 재능이 있었지만 세련된 입시 대비 전략에는 거리가 먼 동네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미대 입시에 연거푸 떨어진다. 무작정 상경한 그녀는 편의점 알바와 식당 웨이트리스 일을 수년간 했고, 박봉과 사장의 구박에 결국에는 술집 일로 진출한다. 열심히 일해도 밑바닥에 더 박힌다는 좌절을 느낀 그녀는 대안적 활동에 뛰어든다. 처음에는 극우 펑크 록 밴드인 ‘유신적 성숙’, ‘대 일본 테러'(이름부터 정말 극우적이다)를 결성해 보컬로 활동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자신에게는 좌익 청년 운동이 더 어울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가난뱅이의 역습>, <생지옥 천국> 등 진보 시각의 저서로 유명세를 얻으며 전문작가가 되었고, 아르바이트 인생에서도 같이 탈출한다. 스스로 피끓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아마미야 가린은 사회로부터 노력이 부족하다는 취급을 받는 비정규직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이런 문제의 총체적 시작으로 지적한 것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 그리고 그걸 일본에서 용감하게 선도한 고이즈미 전 총리였다. 신자유주의가 청년 니트족과 무슨 상관인지, 어떻게 일본까지 전파되었는지 알려면 우선 그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래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언급한 책의 내용이다(page 287).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본격화되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부채 때문이에요. 어떻게 복지 국가 요소들을 약화시킬까 하는 것에 고심하는 경제학이 지배적인 사고방식이 되어갔습니다. 그때까지의 주류는 소위 케인즈 경제학이죠. 케인즈의 사고방식은 ‘실업을 어떻게 해소할까, 실업이 사회에는 악이다.’ 라는 발상 위에 서 있습니다. 구멍 파서 메우는 데도 정부가 돈을 내면 거기에서 고용이 발생합니다. 적자가 나든 빚이 되든 어쨌든 정부는 그걸 합니다. 그런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그 케인즈 경제학을 무너뜨리는 데 전력한 학자들이 언젠가부터 미국의 정권 중심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걸 통화주의monetarism 혹은 공급supply side 경제학(수요보다 공급을 중시하는 경제학. 대규모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 투자와 기업 성장을 도움으로써 국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균형 재정주의라고도 하고요. 회계 연도에서 가능한 한 수지를 맞춥니다. 정부는 돈을 쓰지도 말고 빌리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라는 영국의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고용을 촉진하고 실업을 억제하는 걸 선호했다. 하지만 영국병(1960,70년대 영국 경제 쇠퇴의 원인을 과다 복지와 연결되는 노동자의 비능률성으로 파악)과 스태그플레이션을 동반한 오일쇼크(1973,79년)로 인해 케인즈식 경제에 대한 의문이 나타난다. 그 대안으로 신자유주의가 급부상했는데,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과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대표적 정책 추진자였다. 신자유주의는 서구 열강의 경제적 부활을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동구 공산권 블록과의 경제 전쟁은 서구의 승리로 끝난다(냉전 종식). 하지만 2008년 미국 발 세계 경제 위기가 터지면서 신자유주의는 중대한 도전을 받게 된다.

서구의 신자유주의는 복지 국가의 늘어진 노동 능률을 개선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태평하게 일해도 급여와 정년이 보장되는 공기업 일자리를 대폭 민간으로 넘기고, 노동 시장의 유연화(비정규직 고용을 늘리고, 정규직 해고는 편리하게)를 추구했다. 그러면서 금융 기관의 규제를 완화해서 실물 경제와 동떨어져 움직이고, 현금 흐름 예측이 어려운 수많은 파생 금융 상품을 탄생시켰다. 이런 실체가 불분명한 사이버적 금융 상품은 2008년 가을 미국 발 대폭발을 일으킨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 불리는 이 위기에서 신용 등급이 낮은(실물 자산이 부족한) 개인들은 주택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았고, 금융기관들은 그 대출 채권을 토대로 파생 상품을 만들었고, 다른 금융기관들이 그 파생 상품에 또 파생된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런데 불황으로 실물 자산인 담보 주택 가격이 떨어지자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이어진 파생에 파생된 금융 상품들도 같이 부도가 나고 말았다. 결국 이런 상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미국 굴지의 금융 기관들이 파산했고, 그 금융 기관과 이어진 세계의 기업과 금융사 들도 같이 밑바닥에 빨려 들어갔다.

일본의 경우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의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초부터 불황이 시작되었었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10년’ 이었다가 나중에는 ‘잃어버린 20년’(2000년대), ‘잃어버린 30년’(현재)으로 자꾸 더 길게 잃어버리는 경제 위기 속에 일본 정부는 심각한 자구책을 마련한다.

고이즈미 정권은 2001년에 집권했는데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를 제창했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일환으로 노동자 파견법을 손보는데 이것이 종신고용, 연공서열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특유의 기업 고용 형태를 변형시킨다. 고이즈미의 보수 자민당 정부는 일경련(日經連; 일본경제인연합회)과 연합해서 개혁을 추진했는데 아래는 그에 대한 책의 내용이다(page 45).

불황에 직면해서 일경련은 일하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셋으로 분류할 것을 제언했다.
 
1. 장기 축적 능력 활용형
2. 고도 전문 능력 활용형
3. 고용 유연형
 
의미만으로도 알 수 있듯, 1은 기업의 중핵이 되는 사원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들은 기존의 정규직 사원같이 장기 고용에 승급, 승진도 있다. 2는 전문적인 기능을 가지는 계약 사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장기 고용이 아니라, 연봉제나 성과급이 적용된다. 그리고 3은 한시적 고용, 시급제로서 승급 같은 것은 없다. 이 3이 지금 매우 급증하고 있는 일회용 노동력이다.

이 같은 개혁은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문제와 아주 비슷한 반향을 일본 전 사회에 불러일으켰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글에서 이어하도록 하겠다.

프레카리아트 II – 위험한 데는 니가 가라

모사세 XV – 기억

할머니가 험한 서울 거리에서 3일을 노숙하고도 별 일 없었다는 건 다행이었다. 이제 혼자 두면 어느 도시까지 가버릴지 모르는 할머니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정인의 외삼촌, 즉 외할머니의 아들이 당시에 한라산 기슭 마을에 살았는데 그쪽으로 보내드리기로 했다. 정인은 할머니가 제주도로 떠나는 걸 배웅도 못했다. 학교가야 했기 때문에.

그 후 몇 년간 정인은 할머니를 잊고 살았다. 할머니가 하던 일은 어머니가 이어서 했고 생활의 변화는 미미했다. 정인이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을 맞았을 때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를 방문하기로 했다. 정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 다 제주도 출신이었고 양가 친척들이 제주도에 많이 살았다.

정인의 일행이 외삼촌 댁에 도착하니 외삼촌 내외가 나와 반겼다. 그리곤 산보를 나간 외할머니를 모시고 오겠다며 곧 밖으로 나갔다. 시골 마을은 안전해서 할머니를 밖으로 산책 보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외할머니는 외삼촌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3년 만에 만난 손자와 사위를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쳤다. 사랑방에서 정인과 동생과 아버지는 외숙모가 차려준 차와 과자 쟁반을 가운데 두고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장모님 잘 있었수까?” 할머니는 간단하게, “잘 있었저.” 라고 대답했다.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리고 손자인 정인과 동생을 보며 말했다. “너그 두 아는 형제 다냐?” 정인은 이때 할머니가 자신의 기억 을 완전히 잊었음을 알았다.

외할머니의 삶 십 수년의 기간 동안 정인은 그녀의 희로애락의 가운데 있었다. 남편은 돈 벌러 외국에 가서 죽은 지 살았는지도 몰랐고 딸은 사나워져 있었다. 하지만 강보 속의 손자 아기는 귀여웠다. 아기는 유치원생이 되고, 말 안 듣는 국민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지나 얼굴에 여드름과 수염이 난 무뚝뚝한 중학생이 되었다. 할머니는 매일 얘에게 어떤 맛있는 걸 먹일까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앞에 앉아 있는 아이가 누군지 잊어버렸다.

이 사건으로부터 2년 후, 정인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이번에는 정인 혼자 제주도로 가서 친척들 집을 돌아다녔다. 외할머니는 저번의 고즈넉한 시골집이 아닌, 제주시의 작은 연립주택으로 옮겨져 외숙모의 돌봄 아래 있었다. 2년 전의 할머니는 사람을 못 알아보긴 했지만 혼자 걸어 다니고 밥을 차려먹고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무것도 못 했다.

모사세 XIV – 할머니

고등학생 정인은 제주도 시골 길을 달리는 승용차 안에 있다. 어버지는 운전을 했고 동생도 뒷자리에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안개가 서린 한라산이 보였다. 흐린 푸른빛의 산은 혼자서 지평선을 다 채운 것처럼 커 보였다. 차는 포장이 안 되어 있는 시골 흙 길로 들어섰고, 마을 어귀 표지석이 있는 곳을 지나쳤다. 그 때 정인은 바위 위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외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지나가는 차나 사람을 투명한 듯 바라보며 한없이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몇 년 만에 스치며 본 것이지만 정인의 마음 속엔 어두운 예감이 솟아올랐다. 왠지 껍질은 같지만 속은 완전히 다른 할머니 같았다.

외할머니는 정인이 아기에서 중학생이 될 동안 쭉 서울에 살았다. 할머니가 이상해진 건 정인이 중학교 3학년 되던 해 먼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부터였다. 동네도 낯선데다 아파트에 처음 살게 되어 적응을 못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뿐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자꾸 돌보던 아기 이야기를 했다. 이사오기 전 단독 주택 1층에는 정인의 가족이, 2층엔 친가 사촌 형 부부와 두 살 아기가 살았었다. 할머니는 아기를 때때로 봐주었다. 이제 집도 멀리 떨어져 다시 볼 일 없을 아기(할머니는 정인의 외할머니이고, 아기는 정인의 친가 쪽이었으니)가 유령처럼 때때로 나타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가족들이 “이제 그런 아기 없어요” 라고 말하면, “아녀, 고 쪼그만 아기 하나 이서” 라고 대답했다.

다른 증상도 생겼다. 하루는 아침에 집을 나가더니 종일 밖을 돌아다니다 저녁에 돌아왔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물으면,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희죽 웃었다. 정인은 방과 후에 헤매고 다니는 할머니를 찾으러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여행 반경은 날이 갈수록 넓어졌다. 밤새도록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다음 날 온 가족이 차를 타고 먼 동네와 노숙인 강제 수용 센터 같은 곳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나흘이 지나 성남의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는 떠날 때 입었던 옷 그대로 검은 비닐봉지 하나만 손에 들고 파출소에 앉아있었다. 봉지 안에는 생수병과 건어포 남은 것이 있었다. 며칠 동안 어디서 잤는지, 어떻게 한강다리를 건너고 서울도 벗어나 성남까지 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배고프거나 지친 기색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멍한 표정은 먼 과거만 바라보는 사람 같았다. 게다가 돌아오자마자 아기부터 찾았다.

생각 버리기 연습 – 시간은 빨리 흐르고 사랑은 사라진다

어린 시절엔 매일마다 어떤 대상을 두근거리며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일들이 계속 벌어졌고 감각 자체가 예민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쓸데없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보니 사랑을 느끼는 예민한 감각을 잃어버렸다. 응답하라 1988에서 정환이가 덕선이를 버스에서 보호해주는 장면을 보니, 중학교나 고등학생 시절 한 여자애를 사랑했던 감각이 얼마나 강렬했었는지가 상기되었다. 기쁨으로 몸이 떠다니는 것 같은 그런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순수한 사랑을 찾는 일은 연애 전문 친구보다는 스님의 조언을 듣는 게 좋을 것 같다. 전자는 욕망을 가르치고, 후자는 지속되는 사랑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토종 승려인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이 쓴 생각 버리기 연습 책은 마음을 예민하게 분석해서 어릴 적 순수했던 감각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마음이 오로지 ‘보다 강한 자극을 위해 내달리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기 어려운 이유도 담담하고 은은한 행복감보다 부정적인 사고가 더 강한 전기 자극을 뇌에 주기 때문이다.

마음은 강한 자극을 좋아한다. 그게 설령 화가 치미는 불쾌한 기억이라 할지라도 강한 자극은 자석처럼 머리에 달라붙는다. 어린 시절 머리에는 이런 강한 자극이 적었지만 크면서 기억의 찌꺼기라고 할 수 있는 덩어리들이 쌓여간다. 그렇게 되면 일을 해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어도 집중이 흐트러지고 생각이 딴 데 가있는 느낌을 받는다.

1초 동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0.1초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 0.9초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나 과거의 잡음이 남긴 메아리에 휘둘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오감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둔해지고, 멍청한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10초 중 9초는 현실감이 사라지고, 한 시간에 54분은 멍청히 있게 된다. 결국 나이를 먹어 과거를 돌아보면, ‘몇 년이 한 순간에 지난 것 같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현실 그 자체에 직결되지 않는 망상에 탐닉한 결과, 현실감이 사라지고 행복감도 사라진다.

행복은 순간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데서 온다(seize the day). 오감을 다해 대상에 집중할 수 없으면 행복도 같이 사라진다. 만약 어떤 남자가 자기 여자친구 A를 꼭 안아주는데 실은 다른 여자 B를 그리는 잡념을 가진다면 포옹의 기쁨이 그만큼 사라진다. 여자 A도 나무나 돌이 아닌 이상 남자친구가 이상한 것을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데도 자신의 유일한 시공(時空)으로서의 대상에 집중하지 않으면 즐거움이 탈색된다. 스님이 다시 요약해서 말해주는 부분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원인은, 과거로부터 엄청나게 축적되어온 생각이라는 잡음이 현실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정보를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의 잡음이 현실감각에 완전히 승리할 때, 사람들은 둔해진다.

따라서 어릴 적 사랑을 되돌리는 방법은 먼저 몰두할 수 있는 일과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에 자신의 오감을 놓고 다른 강하고 필요 없는 자극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이건 아령을 가지고 근육 운동을 하듯이 생각을 가지고 하는 수련이 필요한 부분이다. 불교의 참선이나 요가처럼, 또는 기독교의 기도처럼 마음에 티끌을 없애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