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세 XII – 파랑도
정인의 외할머니는 제주도 남쪽 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외할머니의 인생에 대해서 정인은 자세하게 들은 적이 없다. 물어 본 적도 없다. 다만 어린 정인에게 하나 이상했던 건 외할머니는 있지만 외할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분명 외할머니의 딸인 정인의 어머니가 있으니(외삼촌도 있고) 외할아버지도 존재했어야 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략하게 흘려들은 것이 전부였다. 외할아버지는 돈 벌러 외국(아마 일본)으로 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가난한 시대에 남편 없이 자식들을 키우는 여인의 신세가 얼마나 고달팠을까. 정인은 공부하고 먹고 자는 의무밖에 없는 국민학생이어서 외할머니가 길고 긴 세월 아무 보상 없는 가사 노동에 시달렸다는 것에 애틋한 감정도 없었다. 그냥 해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성악설(性惡說)에 어울리는 어린아이의 행동을 십 년은 감당하고도 외할머니는 정인을 예뻐했다. 이런 할머니의 마음에 대한 실마리는 아래 소개할 파랑도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다. 이건 외할머니가 어린 딸(정인의 어머니)에게 들려주었던 전설 이야기이다.
제주도 남쪽 어촌 마을에는 해녀(海女)들이 살았다. 그들은 까만 고무 옷을 입고 잠망경 하나 쓰고서 바다에 들어가 해삼, 전복, 소라 같은 걸 따왔다. 어느 일이나 그렇듯 많은 것을 얻으려면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마을 근처 해안에서는 귀한 해삼이나 전복을 얻을 수 없다. 조그만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서 암초 근처에 내려 잠수를 하면 비싸게 팔리는 해산물들을 따올 수 있다. 그날도 나이 든 노련한 우두머리 해녀 한 명과 대여섯의 아낙네들이 작은 배를 타고 ‘파랑도’ 라고 불리는 섬을 찾아 나갔다. 배에는 젊은 새댁 한 명도 타고 있었는데 그녀의 첫 아기는 돌도 지나지 않았다. 여인은 아침에 강보 속의 아기가 쌔근쌔근 사랑스럽게 자고 있는 걸 확인했고 웃음을 지었다.
파도가 높을 때만 이따금씩 보이는 파랑도는 사실 도(島)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바위덩어리였다. 우두머리 해녀는 아래 해녀들에게 절대로 배와 암초에서 멀리 떨어지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파랑도 근처의 해류는 아주 거칠었기 때문이다. 새댁 해녀는 일이 서툴렀지만 그날따라 운이 좋게도 귀한 해삼 한 마리를 딸 수 있었다. 가시 같은 돌기가 온몸에 40개나 선명하게 돋아있는 것으로 시장에서 쌀 댓 말 가격에 팔렸다. 기쁜 마음에 해삼을 어망에 담아놓고 부리나케 같은 게 또 없나 물속으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바닷속을 헤매고 다니다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늘 위 높이 떠있는 태양은 똑같이 눈부신 햇빛을 쏘아주고 있다. 왠지 사람을 노곤하게, 감상에 잠기게 하는 그런 빛… 수경 너머로 넘실대는 초록색 바닷물, 그 사이로 보이는 끝없는 수평선. 여기엔 알 수 없는 몽환이 숨겨져 있다. 바다 밑 해류에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우두머리 해녀는 그걸 민감하게 느꼈다. 소용돌이 같은 물살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거기에 휘말리면 살아서 육지로 갈 수 없다는 것도. 그녀는 멀리 떨어져버린 어린 새댁을 불렀다. 새댁은 열심히 헤엄쳐 돌아오려 했지만 배와의 거리는 점점 절망적으로 멀어졌다. 헐떡거리는 입으로 바닷물이 조금씩 들어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짠 맛이 나지않았다. 힘이 빠져 몸이 무거워지면서 감각도 멍해진 것이다. 그녀는 다가오는 확실한 죽음을 보았다. 새댁은 남은 힘을 다해 소리쳤다. “성님 인자 오지 맙서! 나가 딴 걸랑 집에 애기 줍서!”
어차피 죽게 되었으니 자기를 두고 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딴 귀한 돌기 해삼은 세상모른채 자고 있을 집의 아기에게 먹여 달라고 했다. 삶아서 부드러운 죽으로 끓여 먹여주기를… 여자는 죽어 바다에 떠다닐 시체가 되지만 마지막 생각은 아기를 떠올렸고 마지막 말이 전할 것도 그 뿐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I – Es muss sein
아파트 옥상에서 초등학생이 떨어뜨린 벽돌에 맞아 고양이 집을 만들던 여성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캣맘 사건으로 전국에 알려졌다. 초등생은 재미 삼아 벽돌을 던졌고 우연히 아래 있던 한 사람은 그걸 맞고 죽었다. 아이 장난 때문에 막을 내린 55년의 일생은 어떤 결론을 전하는 걸까? 그녀는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와 직장에 가기 위해 노력했고 또한 좋은 딸이 되기 위해서, 결혼해서 좋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도 적당한 고민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3차원 세계의 어느 한 점에 우연히 당도했고 그 지점 바로 위에는 질량과 속도를 띠고 낙하하는 물체가 있었다.
우연은 아무 필연성이나 도덕 관념 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이나 주변인은 그 의미를 물을 수 밖에 없다. 밀란 쿤데라는 우연과 타성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인간의 일생을 탐구하려 했다. 그가 먼저 화두로 던진 것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다.
영원한 재귀, 이 신화는 그것의 부정적 이면에서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가 있다. 영원히 사라져 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삶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은 아무런 무게도 없는 하찮은 것이며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삶이 아무리 잔인했든, 아름답거나 찬란했든,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와 같은 잔인함, 아름다움, 찬란함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으로,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조금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작품에서는 가벼움을 한 번으로 사라질 삶으로 보고, 무거움을 영원히 반복될 삶(니체의 영원회귀가 구현되는)으로 보고 있다. 한 번으로 사라질 삶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띤다. 캣맘 사건같은 치가 떨리는 우연으로 소중한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대변할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그걸 대변할 사건들도 차례로 펼쳐진다. 그냥 보면 가십으로 지나칠 사랑 이야기를 존재에 대한 의미로 풀어낸 작가의 능력이 감탄스럽다. 토마스란 남자와 테레사라는 여자가 보여주는 사랑은 절대적 필연일 수도 있고 아니면 걸어가다 위에서 날아오는 벽돌에 맞는 것 같은 우연일 수도 있다. 작품의 묘미는 그걸 곰곰이 생각해 보는 데 있다.
나이가 있지만 매력적인 의사인 토마스가 자신의 두 번째 아내가 된 테레사를 만나기까지는 6번의 우연이 필요했다. 첫 번째는 작은 도시에서 뇌병 케이스 환자가 생긴 것, 두 번째는 그 도시로 파견 나갈 외과 과장이 좌골 신경통에 걸려서 토마스가 대신 나가야 했다는 사실. 세 번째 우연은 토마스가 묶을 가능성이 있던 5개의 호텔 중 테레사가 일하는 레스토랑이 있던 호텔이 선택되었다는 것, 네 번째는 토마스가 프라하로 돌아갈 기차를 타기 전에 조금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 다섯 번째는 그 시간이 우연히 테레사가 일하는 시간이었다는 것. 마지막 여섯번째 우연은 테레사가 토마스의 식탁 시중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우연의 집합은 토마스와 테레사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이 여섯 개 우연 중에 하나라도 없었다면 두 남녀가 부부가 될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우연에 의해 형성된 운명에 꼭 계속 따라야 하는 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먼저 이 질문이 나오게 만든 부부의 사정을 살펴보자.
1968년 소비에트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국의 군대는 체코 프라하를 침공한다. ‘인간 얼굴을 한 공산주의’ 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던 두브체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체코의 전국은 아주 쉽게 점령되고 두브체크가 추진하던 개혁 조치는 모두 무효화 된다. 새로운 집권세력은 대중의 생각을 하나의 모범 틀에 맞추려는 공산주의의 꼴통 정책을 시작한다. 많은 지식인들은 박해를 받았고, 저항으로 대규모 해외 이주의 물결이 생겼다. 토마스도 스위스 취리히의 병원에서 좋은 자리를 제안 받고 테레사와 함께 국외로 망명한다.
하지만 테레사는 낯선 국가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국외로 나와서도 에로틱한 우정(erotic friendship) 습관에 따라 다른 여자와 놀아나는 남편 토마스에게도 지친다. 어느날 테레사는 작별의 편지를 남겨둔 채 국경을 넘어 체코로 돌아가 버린다. 당시 체코는 소비에트 군에 점령된 상태였기 때문에 테레사가 입국했다는 사실은 북한 국경을 넘어 들어간 것과 비슷한 의미가 있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다는 뜻이다.
혼자 취리히에 남은 토마스는 심각한 고민을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여섯 번의 우연한 사건의 결과인 테레사와의 결혼 관계를 이 기회에 끝낼 것인가? 이 경우엔 공산주의의 박해도 없는 취리히 병원에서 명망있는 의사로 에로틱 프렌드쉽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 아니면 존재의 무거움에 가치를 두고 떠나간 아내를 쫓아 돌아갈 수 없는 국경을 도로 넘어갈 것인가?
이 선택의 고난을 작가는 세련된 음악 테마로 표현했다. 쿤데라의 아버지는 음악학자이자 피아니스트 였고 쿤데라 자신도 대단한 음악 애호가였던 것 같다. 소재가 된 베토벤의 악장의 모티브는 독일어로 ‘Es muss sein’,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아래는 토마스가 자기를 아끼는 취리히 병원의 원장과 독대하는 장면이다.
원장은 실로 당황했다. 토마스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은 일종의 암시였다.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곡 마지막 악장은 다음의 두 모티브에 따라 작곡되었다.
Muss es sein? Es muss sein! Es muss sein!
그렇게 해야 하나? 그렇게 할 수밖에! 그렇게 할 수밖에!
이 말의 의미를 아주 명확히 하기 위해 베토벤은 이 마지막 악장의 제목을 <힘겹게 내린 결심> 이라 붙였다. 베토벤에 대한 이러한 암시로 토마스는 근본에 있어서 이미 테레사에게 되돌아간 것이었다. 왜냐하면 결국 베토벤의 4중주와 소나타를 담은 전축판 구입을 관철시켰던 것은 테레사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암시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효과가 있었다. 왜냐하면 병원장은 대단한 음악 애호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짓고 조용히 베토벤의 멜로디에 맞추어 말했다. ‘그렇게 해야 하나?’ 토마스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네 그렇게 할 수밖에요’
파르메니데스와는 다르게 베토벤에게는 무거움이 명백히 어떤 긍정적인 것이었다. <힘겹게 내린 결심>은 운명의 소리(그렇게 할 수밖에!)와 연관되어 있다. 무거움, 필연성, 가치는 서로 긴밀히 연관된 세 개념이다. 필연적인 것만이 무겁고, 무게가 있는 것 만이 가치가 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토마스는 자신의 결정을 의심해본다. 정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 하고.
물리시간에 학생은 어느 누구나 실험을 통해 어떤 학문적 가설이 맞는지를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평생을 살 뿐이다. 그에게는 가정의 정당함을 실험을 통해 증명할 가능성이 없다. 그 때문에 자기 감정을 따랐던 것이 옳았는가 아니면 잘못 되었는가를 그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토마스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의지와 운명에 가치를 두고 테레사를 되찾으러 국경을 넘기로 했다. 영원회귀 사상은 운명애(運命愛; Amor Fati)로 인해 시작되는데, 토마스는 자신의 결정을 의심하면서도 니체의 말을 믿어본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의 사랑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처럼 아름답게 몰락하게 된다.
모사세 XI – 은총, 경애
버림받음과 은총 恩寵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반대를 보고 있지만 서로가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몰이해와 경멸은 명확한 상처를 남기는데 이 상처는 따뜻함이라는 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일 상처가 없다면 사랑도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짝이 맞지 않는 힘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반대되는 힘들이 서로 균형을 맞추려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정인이 요한이 가진 성숙함에 끌렸던 건 박탈당하고 있었던 부모의 정이 그리워서였다고 할 수 있다.
국민학교 선생님들은 은총을 베풀 가능성을 지닌 다른 어른 집단이었다. 하지만 늘 딴 생각에 빠져 있고 성적도 별로 였던 정인은 선생님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아니 두들겨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하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몸은 교실에 있고 눈은 먼 산에 마음은 환상의 나라로 여행 가있던 정인을 갑자기 선생님이 부른다. 산수가 전공인 남자 담임 선생님이었다. 그는 삼각함수에 관한 질문을 하나 던졌고 정인의 얼굴은 곧 새하얗게 질렸다.
중년의 삐쩍 마른 담임은 떠듬떠듬 말 안 되는 대답을 하고 있는 정인을 몇 초간 무섭게 째려보았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다가와 정인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잡고 흔들었다. 정인의 머리는 사물놀이 광대처럼 휘저어졌다. 50명 정도 되는 반 아이들 눈 앞에서 이런 꼴을 당하는 건 수치심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아이의 공포와 굴욕감은 머리칼을 쥐고 흔드는 중년 남자에게 어떤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 지배욕이나 파괴본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욕망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이 또한 반대되는 힘의 균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거칠던 국민학교 시절의 담임 선생님 중에 정인을 아껴주었던 분이 한 명 있었다. 까만 뿔 테 안경이 단정했던, 똑똑하고 부드럽게 생긴 4학년 담임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처음 정인을 주목하게 된 건 그가 역사 지식이 뛰어난 학생이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일본 만화책을 모두 불태운 이후로 교양 역사책만 읽었던 정인에게 국민학교 국사는 아주 쉬운 것이었다. 선생님은 국사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가끔 던졌는데 키가 작아서 분단 맨 앞에 앉아 있던 정인은 수줍지만 정확한 대답을 매번 내놓았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감탄하는 표정으로(이건 꼬마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정인을 칭찬해주었다.
어른 정인은 지금도 경애 敬愛의 마음을 가지고 국민학교 4학년 담임 여자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분의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는 정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여기서 품어준다는 것의 의미는 사람 그대로를 사랑해준다는 뜻이다. 나이 열 살의 아이도 자기를 품어주는 사람과 자기를 들볶을 사람을 금새 구분할 줄 알았다. 민감한 판별 능력은 정인과 엄마의 비극에서 비롯된 사실이다. 엄마는 공부 못하고 빈둥대는 정인이라는 존재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떤 조건을 내세워 정인에게 공부의 동기를 주려 했다. 정인은 ‘먼나라 이웃나라’ 라고 하는 외국 역사 만화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읽고 흠뻑 빠졌었다. 어머니에게 사달라고 졸라 보았지만 대답은 한결 같았다. 공부 열심히 해서 반에서 10등 안에 들면 사준다는 것이다. 정인의 성적은 반에서 25등 정도였고 몇 년간 고정되어 있었다. 그에게 10등 안에 든다는 것의 의미는 신의 영역에 들어가라는 것과 다름 없었다.
국민학교생 동안 정인이 부모의 은총을 바랬던 대상은 먼나라 이웃나라 책 외에도 레고 장난감, 현미경 겸 망원경, 금붕어 어항, 아디다스 운동화 등등이 있었다. 하지만 정인은 10등 근처도 못 갔기 때문에 모두 얻지 못했다. 아버지는 정인과 접촉 자체가 별로 없었지만 마음이 같음은 잘 알 수 있었다. 정인의 국민학교 졸업식 날 꼬마는 6년 개근상이라는 자랑스러운 상을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그걸 보고 아버지가 금방 뱉은 말은 정인의 인생 전체에 긴 울림, 은은히 맴도는 메아리를 주었다. “우등상은 없니?”
조건적 사랑과 비조건적 사랑을 대변하게 된 두 인물은 정인의 꿈에 같이 등장한다. 엄마는 한 손에는 레고 장난감을 다른 한 손에는 먼나라 이웃나라 책을 들고 있었다. “공부를 잘 하면 사줄 거야” 이러면서. 정인은 헤라클레스와 거북이의 관계처럼 선물에 다가가려 하면서 결코 당도할 수 없었다. 공부의 세계는 그토록 오묘했다. 신의 은총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비극을 정인은 양 손에 유혹의 선물을 든 엄마의 꿈을 꾸며 느끼고 있다. 반대로 담임 선생님은 정인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정인이는 어쩜 이렇게 얌전하고 선생님 말을 잘 들을까.” 정인은 꿈 속에서 확고하게 느꼈다. 만일 선생님이 곤란한 일이 생겨서 “정인아 네 생명이 꼭 필요하게 되었단다” 라고 말씀하신다면 서슴없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을 거라고.
내 안에 악마가 있다 III – 아기와 엄마를 피했던 악마
2000년 3월 11일 운동을 마치고 부산 서구 서대신동의 고급 주택가 집으로 돌아온 김인숙(가명,39세)씨는 안방에서 무언가가 탕탕하고 부딪히고 있는 소리를 듣는다. 이상한 마음에 같이 사는 언니와 가정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탕탕 소리는 곧 멈추었다. 이윽고 안방에서 칼을 든 낯선 남자가 걸어 나오는 걸 본다.
세 번째 범행에서 자기보다 덩치가 큰 남자에게 제압당할 뻔한 위기를 겪은 정두영은 5개월 동안 범행을 저지르지 못했다. 하지만 10억이라는 목표를 위해 다시 범행을 결심한다. 넘기 쉬워 보이는 집의 담장을 넘은 후 열려 있는 현관문을 열고 조용히 침입했다. 거실에는 두 살 정도로 보이는 아기가 두영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서 혼자 놀고 있었다. 정두영은 현관 옆방에서 물건을 훔치고 나오는 중 50대 가정부와 마주친다. 그는 얼른 부엌으로 뛰어가서 칼부터 챙겨 들었다. 정두영은 가정부를 위협해 안방으로 끌고 간 다음 두 손을 묶고 방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그 위에 이불을 뒤집어씌웠다. 그사이 거실에서 혼자 있던 아기가 울자 안아다가 작은방에 놓고 문을 닫았다. 심상치 않은 소리에 2층에 있던 김인숙씨의 언니가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칼을 든 정두영과 마주친다. 그는 이 40대 여인 역시 칼로 위협해 안방으로 데려와서는 가정부 아주머니가 엎드려 있던 이불 안으로 같이 밀어 넣었다.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면 죽여버린다는 위협과 함께.
그는 묵직한 아령을 들고서 집에 있는 금고를 부수기 시작했다. 한참 금고를 부수는데 이불 속에 엎드려 있던 40대 여성이 몰래 침대 머리맡에 있던 야구방망이를 집어 들고 정두영을 뒤에서 내리쳤다. 하지만 긴장한 탓인지 방망이는 강도의 등을 스쳤을 뿐이었다. 정두영은 곧 방망이를 뺏어 들고 아주머니들을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두 여자는 곧 목숨을 잃었고, 핏자국이 사방으로 튀어있는 방에서 그는 아령으로 금고 부수기를 계속했다. 2시간 동안이나 아령을 사용했는데 그때 집주인인 김인숙씨가 들어왔다.
정두영은 그녀를 칼로 위협해서 안방으로 들어가게 한 후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려 죽이려 했다. 하지만 바닥에 쓰러진채 맞으며 비명을 지르던 여인은 자신의 아기를 생각하고는 마음을 다잡는다. 그녀는 “살려주세요. 아기가 있어요.” 라고 침착하게 말했다.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자 야구방망이는 멈췄다. 짧은 침묵 끝에 정두영은 “아기 잘 키워. 신고하면 죽인다” 라는 말을 뱉더니 그녀에게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 두영이 두 살 아기 일 때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는 두 번이나 그를 고아원에 버렸었다. 훗날 체포된 후 밝힌 바에 따르면 여인을 죽이면 아기가 자기처럼 불행한 고아가 될 거라는 생각에 살려두었다고 한다.
여인은 언니와 가정부의 피투성이 시체 옆에서 이불에 덮힌채 통증을 참으며 있었다. 정두영은 그 후로도 한참을 아령을 휘둘러서 결국 금고를 부수고는 안에 있던 금품을 챙겨 들고 사라졌다. 김인숙씨는 간신히 기어 나와 아기가 무사하다는 것부터 확인했다. 그리고는 112에 신고전화를 걸었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내 안에 악마가 있다 II – 살인자가 되다
정두영은 방범대원을 칼로 살해한 죄로 12년간 복역한다. 1999년 교도소를 출소했을때 나이는 32세였다. 찾아 갈 곳도 없고 고용해줄 일자리는 더더욱 없었으므로 예전 절도 활동의 근거지였던 대전 충남 지역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그를 부산에 있던 친형이 부른다. 두영의 형은 고물상 간판을 걸고 가게를 하고 있었지만 실은 장물아비였다. 두영은 훔치고 형은 물건을 파는 동업 계약을 하고 수익은 7대 3 으로 나누기로 했다. 형은 서른 한 살이던 두영에게 스무 살 밖에 안된 여성 한 명을 소개시켜 주었는데 곧 동거 관계로 발전한다. 동거녀와의 사랑을 계기로 범죄 생활을 접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 하지만 여자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그의 열망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두영이 범죄자 사회에서 주워 듣기로는 ‘성인 오락실’ 이나 ‘실내 야구장’ 같은 가게를 마련하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창업 비용 10억을 마련하기 위해 강도 행각에 뛰어든다. 그는 경험상 빈집털이를 해봐야 얼마 돈을 못 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귀중품 보관 금고가 있을 법한 부자집에 일부러 사람이 있는 시간대에 침입하기로 했다. 흉기로 협박해서 금고 위치를 알아내 강탈하고 사람은 죽이는 방식이었다.
정두영의 연쇄 살인 중 첫 번째는 1999년 부산 서구 부민동의 고급 주택가에서 일어났다. 그는 청소년 시절 흉기를 가지고 다니다 불심검문에 걸려서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로는 절대 칼을 지참하지 않았다. 대신 범행 현장에 가서 식칼 같은 흉기를 먼저 챙겨 두곤 했다. 이 집에서도 먼저 부엌에서 칼을 챙겼고 안방과 거실을 뒤지던 중 50대 후반의 가정부와 마주친다. 그는 아주머니를 협박해서 화장실로 데려가 미리 준비한 끈으로 양 손을 뒤로 묶고, 머리를 바닥에 마구 내리 찧어 살해한다. 그리곤 현금 33만원을 털어서 달아난다. 경찰은 피해자의 머리와 얼굴 부위가 으스러질 정도로 가격당한 것을 발견하고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추정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두영은 불안한 마음에 몸을 숨기고 언론 보도를 주시한다. 자신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는 두 번째 범행을 시작했다. 동거녀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 위해 10억을 모으는 게 목표인데 처음 강도 짓으로 33만원 밖에 못 벌었다. 자신과 연인의 행복을 타인의 죽음과 편리하게 가르는 이 무감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두 번째 범행은 첫 번째 살인 이후 세 달이 지난 9월 15일 오후, 부산 서대신동의 고급 빌라촌에서 일어났다. 옥상 지붕을 타고 꼭대기 층인 6층 베란다로 내려갔고 빈 집이었던 그곳에서 현금 수백만 원과 귀금속 등을 챙긴다. 한 탕 더 하기 위해 이웃집 베란다로 넘어 들어갔는데 애완견이 짖어대는 바람에 부엌에 있던 50대 가정부에게 들킨다. 정두영은 강아지를 발로 멀리 차버리고 아주머니를 마구 때려 살해한다. 이 집에서도 현금 수 백 만원과 귀금속을 챙기고 베란다로 나온 뒤 옥상으로 올라가 도주한다.
세 번째 범행에서 정두영은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주택에 침입해서 마주친 50대 아주머니를 때려 살해하던 중 2층에 있던 아들이 내려온 것이다. 건장한 체격의 피해자 아들은 왜소한 두영을 주먹으로 몇 대 쳐서 바닥에 뉘였다. 하지만 아들은 방심했고 그 사이 정두영은 집에 침입할 때 미리 봐두었던 현관 신발장 위의 망치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간다. 두영은 망치를 들고 돌아와 남자의 얼굴을 내리쳤다. 겁에 질렸던 정두영은 쓰러진 남자에게 미친듯이 망치를 휘둘러 두개골이 부서지고 뇌와 뇌수가 밖으로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내 안에 악마가 있다 I – 어머니에게 두 번 버림받음
정두영은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강도행각을 벌이면서 17명을 다치게 하고 그 중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 살인자이다. 체포 된 후 단순 강도 목적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피해자들을 잔혹하게 죽인 이유가 뭐냐는 경찰의 질문에 “제 안에 악마가 있어요. 그 악마가 한 짓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그의 강도 살인 행각을 전혀 모르고 있던 정두영의 동거녀의 부모는 “정씨는 술담배도 안하고 말 수가 적으며 점잖고 매너 있어 성실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고 진술했다. 정두영은 겉으로는 점잖지만 어떤 악마적인 분노를 마음에 숨기고 있던 것 같다. 그 안의 악마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정두영은 1968년 부산시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출생했다. 그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암으로 투병하고 있었고, 두영이 2세가 되던 해 끝내 사망한다. 남편의 죽음으로 생계가 곤란해진 정두영의 어머니는 아기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거나 영양을 공급해주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아이들을 삼촌 집에 맡기고 재혼한다. 그리고 정두영이 다섯 살 되던 해, 삼촌마저 요란스런 조카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버린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 한 번은 어머니에게, 또 한 번은 삼촌에게 버림받은 정두영은 큰 정서적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려는 듯, 일곱 살 때 어머니가 고아원으로 찾아와 두영을 새아버지 집으로 데려간다. 그대로 양친과 성장했으면 좋았겠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경제적 부담과 부부간 갈등이 커져서 두영은 도로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차라리 처음부터 계속 고아원에 두었더라면 상처를 덜 입었을 것이다.
두영은 어머니에게 두 번이나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운 가운데 공격적 행동을 일삼아서 문제아가 된다. 고아원 안 남자 아이들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 같아서, 세면 때리고 약하면 맞는 게 보통이었다. 선천적으로 작은 체구 때문에 놀림과 괴롭힘을 많이 당한 두영은 결국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폭력’ 뿐 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만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두영은 고아원의 통제를 물리치고 거리로 나가 범죄를 생계수단으로 삼아 살기 시작했다. 직업을 얻을만한 기술도 없고, 자길 보살펴줄 사람도 없었으므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다 자란 정두영은 키가 168cm에 체중 54kg인 작은 체구였다. 그래서 보호 장비로 항상 칼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열 여덟 살이던 1986년 5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마주친 교사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는 자기를 불심검문하는 방범대원을 칼로 찔러 살해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12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