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세 VII – 개 같은 내 인생
학교가 끝나고 혼자 집에 돌아가던 어느 햇빛 따스한 날이었다. 동네 골목을 걷는데 벽에 영화 포스터 한 장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영화 제목은 ‘개 같은 내 인생’ 이었다. 정인은 화들짝 놀랐다. 포스터 속 젊은 여자는 알몸으로 비스듬히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일단 제목에 ‘개 같은’ 이란 상스러운 말을 집어 넣은게 존경심이 들었다. 정인은 상스러운게 세상의 진실 중 하나란 걸 느끼고 있었다.
당시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은 한결같이 정제된 말과 정신상태를 보여주었다. 욕을 하는 일도 없고 벗고 다니는 일은 더욱 없었다. 정인이 기억하는 드라마 중 한 장면이 있다. 한 중년 부부가 밤에 같이 자러 누웠는데 방송용 조명이 켜져 있었기에 방은 저녁 때처럼 밝았다(이미 조명 부터가 드라마의 현실감을 방해하고 있다). 남편이 곁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그렇담 우리도…” 아내가 화답했다. “아이, 당신 왜 그러세요.” 나중에 알았지만 이건 늦둥이를 만들기 위해 성행위를 시도하는 남편과 거기에 부끄럽게 반응하는 아내를 묘사한 것이었다.
정인은 다른 하이틴 드라마도 기억한다. 한 고등학교에 부임해온 올곧은 남자 담임 선생님이 주인공이었다. 어느 날 한 건장한 체격의 남자애가 반으로 전학 온다. 원래 반을 장악하고 있던 키 크고 뚱뚱한 다른 남자애는 이 전학생에게 시비를 걸었고 둘은 학교 운동장 한 켠에서 맞붙는다. 둘 다 생긴 건 험악했지만 욕도 한 마디 하지 않고 “너 그러면 안돼”, “왜 그런 말을 하지?” 식의 대사를 읊고 있었다. 물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 차고 코피 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 아이들 대사의 95 퍼센트는 욕이었다. 게다가 정인은 주먹으로 맞고 발로 걷어 차이고 코피가 났었다. 오락실의 사이버 세계에서 상대를 농락하며 눌렀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웃기지도 않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니 ‘개 같은 내 인생’ 의 벗은 여배우가 더욱 정직해 보였다. 세상의 상스러움을 받아들이려는 정인의 노력은 할리우드 영화 감상으로 이어졌다. 이건 일본 만화랑은 또 다른 폭력성을 안겨 주는 훌륭한 도구였다. 정인의 마음에 충격을 안겨준 영화는 ‘로보캅’ 과 ‘프레데터’ 였다. 로보캅에서는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의 범죄자들이 총에 맞아 파리새끼 죽듯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살육의 장면은 마치 폭죽이 마구 터지는 걸 보는 것처럼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프레데터에서는 사람의 가죽을 산채로 벗겨서 죽이는 괴물이 등장한다. 괴물은 근육질의 군인 아놀드와 대결했는데, 그를 뺀 인간 동료는 모두 괴물에게 맞아 죽었다. 하지만 아놀드는 부비트랩을 설치해서 괴물을 반 죽음 상태로 만든다. 이상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프레데터에게 다가가 특유의 무뚝뚝한 저음으로 “도대체 네 정체가 뭐냐?” 라고 말을 거는 장면은 특히 감동적이었다.
하얀 피부에 찰랑거리는 직모 머리가 순진해 보이는 정인이 폭력에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는 건 별로 놀랄 일이 못 된다. 그는 항상 무관심하다가 기분 날 때마다 윽박지르는 아버지와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잔소리를 쏟는 어머니에게 매일 괴로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정인의 무의식은 부모님을 싫어하는 마음에 대한 죄책감 또한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는 발산이 필요했고, 그 강도는 높으면 높을수록 좋았다. 그게 개 같은 인생을 살면서 멀쩡한 정신이 되는 방식이었다.
사도세자 思悼世子, 정신병
세자인 아들은 궁중 내시와 나인들을 수 없이 죽였다. 한 번은 내시를 죽이고 그 목을 잘라 혜경궁 처소까지 들고 들어왔다. 그걸 본 아내 혜경궁 홍씨와 궁인들은 소스라쳤다. 하지만 세자 신분상 사소한 살인은 죽을 죄가 아니었다. 그가 혼란한 정신에 아버지 임금인 영조를 죽이겠다는 말까지 뱉자 결국 대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는 정치 음모론 시각에서 벗어나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갈등을 주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정신병이 있는 사람의 실체와 그와 반응하는 인간 역동이 자세히 나와있지는 않은 것 같다. 부드럽고 지적으로 보이는 배우 유아인씨에게는 기괴하고 강박적인 살인자의 이미지가 나오지 않는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은 상처받은 미남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몰입이 잘 안 되었다. 하지만 눈물 흘리는 약한 인간으로서의 세자는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정사 자료인 <조선왕조실록>과 야사 자료인 <한중록>을 살펴보면 둘 다에서 사도세자의 정신병은 확인된다.
정축년·무인년 (영조33~34년) 이후 (사도세자의) 병의 증세가 더욱 심해져 병이 발작할 때에는 (사도세자가) 궁비(宮婢)와 환시(宦侍)를 죽이고, 죽인 후에는 문득 후회하곤 하였다. – <영조실록>, 영조 38년 윤 5월 13일자
한중록은 친정 집안을 방어하기위해 혜경궁 홍씨가 기록한 것이므로 내용이 왜곡되었을 거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2014년 서울아산병원의 정신과 의사들이 한중록을 분석해서 논문을 냈고, 한중록의 내용은 허구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도세자에 대한 정신의학적 고찰’ 논문 링크
한중록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신병적 증상에 들어맞는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정신증상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순전히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술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도세자는 여러 차례의 우울삽화 및 조증삽화를 겪었으며, 기분 삽화가 재발과 관해를 반복하는 경과를 보였던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직계가족을 중심으로 가족들의 정신증상 유무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 기분장애의 가족력 또한 배제할 수 없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사도세자에게 양극성 장애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사도세자는 즐거움과 우울·분노가 극단적으로 교차하는 정신병인 양극성 장애를 앓았을 거라고 추정했다. 양극성 장애는 아직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병이다. 유전적 요인, 신경생물학, 정신약물학, 내분비 기능의 이상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신역동의 관점에서 보면 우울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대항하는 방어로 조증을 보인다는 견해가 있다. 아버지 영조의 엄격한 훈육이 아들을 질식하게 했고, 결국 유전적인 요인과 맞물려 우울증에서 조증, 정신병인 양극성 장애로 발전해갔다고 생각된다.
임금 영조는 당연히 정신병자 세자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아들과 가망 없는 화해를 시도했으며, 아들에게 왜 사람과 동물을 죽였느냐고 물었다.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용포를 부여잡더니 아래과 같이 털어놓는다.
“소자는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세자가 대답했다.
“어째서 상처를 받았느냐?” 왕이 물었다.
“아바마마께서 사랑해주시지 않아서이옵고
또, 아아, 아바마마께서 늘 저를 꾸짖으시니 소자는 아바마마가 무섭사옵니다.”
정말 슬픈 대목이었다. 하지만 영조는 아들을 더욱 꾸짖을 뿐이었다. 1762년, 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는 왕에게 아들을 죽일 것을 청하였다. 사도세자가 이미 백여명의 궁인들을 죽이고, 아버지 임금까지 죽이겠다는 말을 하고 나서이다. 만일 노론 당파의 정치 음모론(이덕일 사관)이 사실이라면 생모가 세자를 죽이는 데 가담할 이유가 없다. 그녀는 미친 아들이 사사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손자인 세손만은 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영빈 이씨는 친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간 죄의식에 괴로워하며 “내 무덤에는 풀도 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한탄했다. 영조는 세자에게 자결을 명한다. 왕족으로서 고상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내려준 것이다. 하지만 영조의 처분에 광증의 아들은 울며불며 말한다.
아버님 아버님, 잘못하였사오니, 이제는 하라 하옵시는대로 하고, 글도 읽고 말씀도 다 들을 것이니, 이리 마오소서.
하지만 이미 돌아갈 길은 없었다. 사도세자는 여름 폭염 속에 뒤주에 갇혀 사경을 헤매다 8일 만에 아사(餓死) 한다. 시체로 나온 세자에게는 자기 오줌을 받아 마신 흔적이 있었다. 조선시대 가장 기괴하고 슬펐던 부자(父子) 간의 갈등 사건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아들 정조는 아비가 미쳐서 죽어가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왕으로 즉위하던 날 대전에 모인 신하들 앞에서 처음 꺼낸 말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었다. 그는 뒤주에서 죽은 아버지를 장성하여 왕이 될 때까지 하루도 잊지 못한 것 같다. 영화 <사도>의 말미에 정조(소지섭 분)가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부채춤을 추며 울던 모습은 그래서 가장 슬픈 장면이었다.
모사세 VI – 거리의 싸움꾼
정인이 즐긴 두 번째 주요 유희는 오락실이었다. 이건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가장 즐거운 취미활동이 되었다. 어떻게 돈이 들어오든 100원만 생기면 먼저 오락실로 달려갔다. 허름한 상가 건물 지하에 있는 오락실에서 들리는 효과음은 몽환적이었다. 담배연기가 안개처럼 깔려 있는 어두운 실내는 숭고한 인생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정인은 어른이 된 지금도 그때 듣던 동화같은 전자음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마치 그 소리가 어린 시절의 꿈을 되살려 주는 주문이 되는 것 처럼.
당시에는 스트리트 파이터 2 라는 게임이 전국 오락실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선택할 수 있는 주인공 수가 8명이나 되고 공격버튼이 6개나 있던 획기적인 게임이었다. 조이스틱을 잽싸게 돌리고 버튼을 타다다닥 눌러서 펼치는 공격 동작은 아주 부드러웠다. 정인은 인간 신체의 움직임이 구현하는 아름다움을 현대 무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락실 오락을 통해서 배웠다. 특히 같이 구르면서 발을 상대 배 위에 놓고 던져 버리는 켄의 기술은 실로 예술의 경지였다.
8명의 주인공은 각자 뚜렸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 괴물에 가까운 놈들도 있었고 비교적 사람에 가까운 놈들도 있었다. 브랑카, 달심, 장기에프, 혼다가 전자에 속했고 류, 켄, 가일, 춘리는 후자였다. 이 게임의 백미는 일 대 일 대전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이전의 오락이 혼자 아니면 둘이서 같이 미션을 완수하는 것이었던 반면 스트리트 파이터는 두 명이 맞붙어 실력을 겨루는 게임이다. 오락실 마다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애들 몇 명씩 생겨났는데 이들 뒤에는 조작법을 구경하려는 관중이 구름처럼 몰리곤 했다. 실력만 있으면 다른 사람을 게임 상에서 줘 팰수 있고 게다가 자신의 실력을 놀라운 듯 보는 관중이 있다는 사실은 정인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그는 미친듯이 조이스틱을 움직이며 연습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2 에서 최강은 가일과 달심이었다. 둘 다 장풍을 쏠 수 있었고 특화된 얍삽이 기술이 있었다. 하지만 정인은 대중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중국 무술 소녀 춘리를 가장 아꼈다. 그녀는 까만 스타킹 신은 반짝이는 다리로 멋도 모르는 국민학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만 강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가볍고 점프가 빠르지만 가일이나 류, 켄 같이 대공기가 강한 놈들에게 쉽게 잡히는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정인은 애정을 가지고 춘리의 싸움 기술을 혁신시켰다. 그는 춘리의 빠른 스탭을 이용해서 이리저리 지상에서 움직이다 갑자기 하단 발 차기를 썼다. 페이크 동작을 넣고 갑자기 상대방 등 뒤로 휙 점프를 해서 바로 던지기 기술을 걸었다. 상대방은 이 새로운 기술에 정신없이 속아 넘어갔다.
정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고 많은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이 국민학생은 하루 종일 스트리트 파이터만 생각했다. 페이크에 더 완벽을 기하기 위해 하단 발이 아닌 중단 주먹을 쓰기도 했고 제자리 점프를 그냥 뛰기도 했다. 밤이 될 때까지 오락실에서 있다 집에 돌아와도 춘리만 생각했다. 밤에 불끄고 잘 때도 어두운 천장에서는 상상 속의 춘리가 이리저리 점프하며 날아다녔다.
그렇게 몇 달을 오락실에 다니니 정인은 유명한 고수가 되어 있었다. 관객들은 춘리가 가일이나 달심을 농락하며 이기는 모습을 경외감에 차서 바라보았다. 그날도 정인은 학교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오락실로 달려가 백원 동전을 넣고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정인에게 도전한 상대방은 류를 쓰고 있었는데 정인과 높은 오락기계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첫 판에 정인은 류를 완전히 가지고 놀았다. 류가 장풍을 쏘면 제자리 점프로 피했고 류가 앞으로 점프하면 재빨리 뒤로 물러나 착지 지점에 하단 발차기를 걸어 넘어뜨렸다. 오락기 뒤 편의 남자가 씨발 씨발하며 동전을 다시 넣는 소리가 들렸다. 정인은 또 여유있게 그를 눌러주었다. 그는 가일로 바꾸어서 도전해왔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정인은 절대 허점이 큰 동작을 쓰지 않았다. 가일의 소닉붐을 피하며 접근해 아래 발차기를 하고 그대로 던지기로 연결시켰다. 그렇게 몇 번 당한 상대가 긴장해 어쩔줄 모르고 있으면 휙 등 뒤로 날아가 또 던지기를 걸었다.
하지만 이때 정인은 너무나 자기 실력에 도취되어 있었다. 조금은 가상 현실 세계에서 물러나 현실의 분노가 초래하는 씩씩 소리에 주의했어야 했다. 정인은 콤보 어택을 시작했다. 이건 날라차기의 타점을 최대한 늦춰서 때리고 지상에서 연속 공격을 하는 건데 2~3번의 콤보가 성공하면 잘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상대방은 5단, 6단 콤보까지 얻어맞고 있었다.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은 전혀 방어를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잔뜩 열받아 있던 상대는 정인을 두들겨 패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거리의 싸움꾼 이 오락실의 싸움꾼이 된 것이다. 첫 공격은 중단 발차기 였다. 일격에 정인은 오락실 의자 뒤로 털썩 쓰러졌다. 이어서 그가 구사하는 콤보에 때리는 족족 맞았다. 때리면서 “이 X새끼가 얍삽이를 써!”, “X발놈이 그딴식으로 께임을 해!” 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정인의 등 뒤에서 그의 플레이를 구경하던 관객들은 어느새 현실 세계의 폭행으로 바뀐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게 그들에게는 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정인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수그린채 계속 불쌍하게 얻어맞았고, 오락실 동전 교환 아줌마가 와서 말리는 바람에 이 싸움꾼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행복의 정복 II – 허영심
어려서 읽은 동화가 실은 병적인 어른 심리를 바닥에 깔고 있다는 걸 알고 놀라울 때가 있다. 그림 형제 동화 중 하나인 ‘백설공주’ 에서 왕비는 매일마다 마법 거울 앞에서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라고 말하곤 했다(억양까지 잊혀지지 않는 대사).
왕비가 제일 예쁘다는 말을 듣는 동안은 평온했지만 어느 날 솔직한 거울이 백설공주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하자 온갖 사단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왕비는 허영이 지나쳐 자기보다 예쁜 여자는 살려둘 수 없다는 정신병으로 발전하고 말았다. 뛰어난 심리 해설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 책 초반부 부터 허영의 심리에 대해서 예리하게 파헤친다. 허영은 행복을 망치는 심리이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인 ‘사랑하는 능력’ 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허영심이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모든 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말살해 버리기 때문에, 허영심이 지나친 사람은 결국 무기력과 권태에 빠지게 된다. 허영심은 자신감이 부족한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존감을 키워야 허영심을 치료할 수 있다. 자존감을 기르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적인 대상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활동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 뿐이다.
지나친 허영은 자신감의 부족으로부터 온다고 말하고 있다. 놀라운 해석이다. 자존심이 너무 세서 허영심이 강한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 불안해지고 공허해지고, 결국 그걸 메우기 위해 허영에 빠지는 게 맞다. 결국 허영심은 과거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던 기억으로부터 오는 반동 심리, 병적 심리가 된다.
그래서 허영심 에서 탈출하려면 먼저 상처의 기억으로 크게 어그러져 버린 자아의 감옥을 허물고, 즐겁고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인간의 본능은 완전한 자기중심성과는 거리가 멀고, 자기도취적인 경향이 있는 사람은 죄의식에 사로잡힌 인간과 마찬가지로 늘 자신을 인위적으로 제약하기 때문이다.
자아의 감옥에서 벗어난 사람이 가진 특징 중에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된다. 사랑은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받는 사랑은 마땅히 베풀어야 할 사랑을 해방시켜야 한다. 이 두 종류의 사랑이 비슷한 수준으로 존재할 때 사랑은 그 최대의 가능성을 달성할 수 있다.
자기 중심적이지 않은 사람은 남을 잘 사랑해주는 능력도 갖춘다. 이 능력이 있는 사람은 외모가 아니더라도 매력있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오프라 윈프리 같은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오만하지 않다. 이해심이 있으며 말을 재치있게 한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들이다. 허영심을 버리고 대신 가져 볼 만한 미덕이다.
니체를 읽으면 좋은 이유 VII – 무아無我의 예술
니체가 바그너를 좋아했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니체는 피아노 연주를 할 줄 알았고 작곡을 하기도 했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공자도 음악을 좋아했는데, 니체도 그랬다. 집단의 가치관인 사상을 창조하는데 있어 예술적 감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니체에게 예술은 사상과 따로 분리된 게 아니었고, 예술이 사상이고 사상이 예술인 경지를 추구했다. 사상이 머리 속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표현되면 무용이 되고, 리듬과 멜로디로 조화되면 음악이 된다.
현대 무용의 선구자인 이사도라 던컨은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데, 무용에서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 근원적이고 무의식적인 동작으로서의 최초의 움직임을 발견하는 것’ 을 추구했다. 또한 ‘귀에 들리지는 않으나 어떤 분명한 리듬에 의해 생겨나는 듯한 움직임을 발견하는 것’ 을 말하기도 했다. 던컨의 말은 니체가 얘기한 근원 정신과 연결되는 무아無我의 예술 을 잘 표현한다.
근사한 음악을 들으면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달콤한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이런 무아의 상태에서 니체는 책을 저술했다. 그의 책을 읽는 사람도 만약 교감이 잘된다면 이런 황홀경에 빠질 수 있다. 아래는 뤼디거 자프란스키作 <니체, 그의 생애와 사상의 전기>에서 옮긴 구절인데 한 번 읽어보자.
니체는, 하나의 사상이 인간의 몸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기 위해서는 언어를 통해서 아름답고 인상적인 외관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언어의 외적인 스타일에 대한 감각을 니체는 우리가 육체를 통해서 얻게 되는 느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가 언어에 반응하는 것과 우리 몸이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에 대해서도 경쾌하고, 활동하고자 하는 활기찬 욕망이 생기는 경우에서부터 늘어지고 심지어는 욕지기가 나오는 경우까지 겪는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과 타인을 감동시키는 문장을 추구했으며, 이러한 문장을 걸으면서 구상했는데 그것은 리듬을 나타내고 싶기 때문이었다. 종종 그는 자신의 사고를 만들어내고 언어를 만들어낼 장소를 탐색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읽어보면 작품 전체가 산문(散文)이 아닌 운문(韻文)으로 된 시처럼 느껴진다. 니체가 좋아한 그리스의 술 주정뱅이 신 디오니소스의 정신이 미친 시인을 통해 암송되는 것 같다.
니체를 읽으면 좋은 이유 VI – 이터널 선샤인
이터널 선샤인 이라는 영화의 이름은 알렉산더 포프의 시 ‘Eloisa to Abelard’ 에서 따왔다. 원제는 ‘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 티끌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빛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에서는 실연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슨 기계의 도움을 받아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지우려는 남녀가 등장한다. 여자가 먼저 남자의 기억을 지웠는데, 그걸 모르던 남자는 간만에 만난 여인이 자신을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쳐다보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잊혀지지 않는 장면). 아무튼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여자와 똑같은 방법을 써서 자기 기억도 지운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오감이 자석처럼 서로를 당기는 탓인지 모르지만, 다시 만난다. 처음 우연히 마주쳤던 기차가 닿는 바닷가 마을에서 조우해서 다시 똑같이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의 상징과 결말은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와 잘 통하는 면이 있다. 문학 작품에서 태양은 신神, 절대자, 하나님을 상징하고, 영원한 햇살은 영원한 사랑, 즉 아가페가 된다. 티끌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빛이라는 구절은 마음이 순수한 사람은 영원한 사랑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랑’ 은 영원회귀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삶에 대한 사랑은 대부분의 경우 긴 삶에 대한 사랑의 반대이다. 모든 사랑은 순간과 영원을 생각한다. – 그러나 결코 ‘길이’를 생각하지 않는다.
고병권 작가의 <니체의 위험한 책>에서 옮겨온 구절이다. 말 그대로 사랑은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본다. 사랑에 제대로 빠져있는 사람은 몸이 가벼워 둥둥 떠다니는 것 같고 달콤한 기분에 젖어 있다. 그런 순간에는 길이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랑이 끝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미 티끌이 들어와 버린 것이다. 이렇게 사랑은 본질 안에 영원이라는 개념을 품고 있다. 사랑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 수 있고, 자신의 공부와 일과 이상(理想)을 포함하는 운명을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사랑이 영원히 돌아온다면 영원회귀가 된다. 니체는 Amor Fati 즉 운명애(運命愛) 라는 말을 했는데, 모든 다가오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마음에 아무런 주저(티끌) 없이 자기 삶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운명애를 이룬 사람이다. 이 운명애가 극진해지면 영원회귀로 들어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래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구절들을 읽어보자.
그러나 내가 엮어져 있는 인과의 매듭은 영원히 회귀한다. – 그것이 나를 다시 창조하리라! 나 자신이 영원 회귀의 그런 원인들의 일부인 것이다. 이 태양과 더불어, 이 대지와 더불어, 이 독수리와 더불어, 이 뱀과 더불어, 나는 다시 돌아오리라. 새로운 삶, 혹은 보다 나은 삶이나 유사한 삶으로가 아니라, 최대의 것에 있어서나 최소의 것에 있어서나 지금과 동일한 이 삶으로 나는 영원히 돌아오리라. – 다시 한 번 만물의 영원 회귀를 가르치기 위해, 또다시 대지와 인간의 위대한 정오를 가르치기 위해, 다시금 인간에게 초인을 알리기 위해.
나와 내 운명은 오늘을 향해 말하지 않으며, 결코 오지 않을 날을 향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이미 말을 하기 위한 인내와 시간, 그리고 시간을 뛰어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언젠가 와야 하며 결코 지나쳐 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와야 하며 그냥 지나쳐 가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들의 위대한 하자르, 우리들의 거대하고 먼 인간제국, 차라투스트라의 천년왕국이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 자신의 운명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다시 살게 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이 고스란히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믿음이 성립하고 이것이 영원회귀의 근거가 된다. 극진한 시간에서 시간은 길이가 아니라 영원이 된다. 설령 기억이 지워진다해도 의지는 같은 운명을 다시 만들어 낸다. 마치 이터널 선샤인의 두 주인공들 처럼. 그래서 영원한 회귀 안에서는 생성이 그 자체로 시간이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