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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세 XIII – 노니는 바다

바다는 파랑도에서 해녀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녀가 엄마 없이 살아갈 아기를 얼마나 걱정했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물은 파도치며 거품을 만들고 짠 내음을 흩뿌린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슬픔과는 관계가 없다. 여인이 죽은 다음날 파도는 전일과 다름없이 오고 갔으며 여인을 나른하게 했던 햇빛도 똑같이 내리쬐었다. 죽은 몸이 물 위에 떠 있는 것 만 다른 점이었다. 인간이 사고하는 것과 자연이 노니는 모습의 차이이다.

어른이 된 정인은 외할머니의 집 안에서 역할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건 마치 가구와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꼭 필요한 기능을 해주고 있지만 아무도 그녀의 기분을 걱정하지 않았다. 어린 손자 손녀들은 어린이 특유의 무신경함과 잔인함으로 할머니를 대했다. 항상 일에 바쁜 사위와 안팎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딸은 마음에 위로가 안 되었다. 하지만 수 십 년에 걸친 가사와 육아를 외할머니는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불평의 말을 한 적도 없다. 이렇게 의무에 충실했지만 그녀의 개인적인 욕망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어린 정인은 욕망에 민감한 개체였다. 엄마 눈길을 피해 노는 데 특히 그랬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탐심(貪心)이 없는 사람 같았다. 할머니가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게 아니란 걸 정인은 느낀 적이 있다.

그때 정인은 외할머니와 둘이서 마루에 앉아 옛날 사진 앨범을 펼쳐 보고 있었다. 거기엔 주로 정인의 아기 사진들이 있었지만 간혹 어머니의 처녀 때 모습이라든지, 할머니의 아줌마 시절 사진도 있었다. 역시나 외할아버지의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40대 시절 독사진을 무언가 애틋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면서 “이땬 나가 아적 갼찮았는디…” 라고 했다.

정인은 서울 말씨를 쓰지만 제주도 사투리는 다 알아들었다. 할머니는 “이때는 내가 아직 괜찮았었다” 라고 말씀하셨다. 손자가 보기에 40대 할머니는 할머니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아줌마 같았고 여자로서 매력이 풍기지는 않았다. 일년 365일 입고 다니던 몸뻬 바지와 꽃무늬 블라우스를 착용하지 않고 시골풍 정장을 입은 게 큰 차이점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분명 예뻐 보이고 싶고 치장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지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마음에 손자 정인을 포함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게 슬픈 사실이었다. 이렇게 욕망과는 상관없이 집안의 식모처럼 살았던 가여운 외할머니는 긴 세월이 흐르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녀를 그렇게 바꾸어 놓은 건 이번에도 자연이었다.

달과 6펜스 – 광기와 열정의 달

인생이 컨베이어 벨트 위를 흘러가는 물건 같다는 느낌이 든 적이 있다.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타성적이다. 트랙 위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었다. 나는 대학생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었고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3개월 정도 되는 시험 준비 기간 내내 집 밖을 나가지 않고 혼자 공부를 했다. 공부를 시작 했을때 공기는 따뜻했고 창 밖의 나뭇잎은 초록색이었다. 두어달이 지나자 차가운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왔고, 갈색으로 마른 잎새들이 마음을 아주 울적하게 만들었다.

시험 공부를 하면서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했었다. 이건 네 미래를 위한거야. 내 꿈을 위한 거야. 하지만 그런게 무슨 의미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렇게 살면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감사의 꽃다발을 받지도 않는다. 신이란 존재는 보이지 않고 누군가가 확실하게 증명해 낼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품은 갈망은 정당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좋은 대답은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청춘을 넘어선 사람으로, 안정된 사회적 지위와 아내와 그리고 두 아이까지 있는 증권 중개인이다. 내 나이에 화가를 지망했다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겠지만, 그가 화가를 지망한다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솔직해지고 싶었다.
 
“물론 기적이 일어나는 수도 있으니까 당신이 대화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요.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런 가능성은 만에 하나입니다. 고생만 죽도록 하고 아무 결실도 없이 결국 단념해야 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을 게 아닙니까?”
 
“그래도 나는 그리지 않을 수 없소” 그는 되풀이했다.
 
“그럼 당신이 앞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삼류 화가로 그친다면, 그래도 모든 걸 버린 만큼의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정말 당신은 바보로군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뻔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 바보라면 뭐 할 말은 없겠지만”
 
“그러니까 그리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고 하지 않았소. 이 마음은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거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를 따지고 있겠소? 어떻게 해서든지 물 속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애 쓸 것 아니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의 구절이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의 삶을 모태로 한 이 소설에서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중년의 나이에 안정된 증권거래소 중계인의 자리를 버리고, 아내와 자식들도 같이 내버려두고 가난한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아내는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나서 다른 나라로 떠난 걸로 생각하고는 한 젊은이(작품의 화자)를 보내 남편을 찾게 한다.

화자는 사회적 상식을 논거로 삼아 스트릭랜드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실패로 끝난다. 그는 “그리지 않을 수 없다”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스트릭랜드는 그림이 주는 미(美)에 완전히 빠져 있었고, 그건 예쁜 여자에게 빠진 것처럼 확고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혹은 스트릭랜드가 말한대로 물에 빠져 살기 위해 허우적대는 사람과도 같았다. 안 그러면 죽기 때문에(그림을 안 그리면 너무 괴로우니) 노력하는 것이다.

아무튼 가을 바람이 차가웠던 외로운 날 나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내 이념, 혹은 늘 절실한 감정이 쏠리는 방향은 정해졌기 때문에 그걸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밥 먹는 것을 아무리 미루어도 결국에는 먹을 수 밖에 없는 것 처럼 그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모사세 XII – 파랑도

정인의 외할머니는 제주도 남쪽 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외할머니의 인생에 대해서 정인은 자세하게 들은 적이 없다. 물어 본 적도 없다. 다만 어린 정인에게 하나 이상했던 건 외할머니는 있지만 외할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분명 외할머니의 딸인 정인의 어머니가 있으니(외삼촌도 있고) 외할아버지도 존재했어야 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략하게 흘려들은 것이 전부였다. 외할아버지는 돈 벌러 외국(아마 일본)으로 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가난한 시대에 남편 없이 자식들을 키우는 여인의 신세가 얼마나 고달팠을까. 정인은 공부하고 먹고 자는 의무밖에 없는 국민학생이어서 외할머니가 길고 긴 세월 아무 보상 없는 가사 노동에 시달렸다는 것에 애틋한 감정도 없었다. 그냥 해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성악설(性惡說)에 어울리는 어린아이의 행동을 십 년은 감당하고도 외할머니는 정인을 예뻐했다. 이런 할머니의 마음에 대한 실마리는 아래 소개할 파랑도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다. 이건 외할머니가 어린 딸(정인의 어머니)에게 들려주었던 전설 이야기이다.

제주도 남쪽 어촌 마을에는 해녀(海女)들이 살았다. 그들은 까만 고무 옷을 입고 잠망경 하나 쓰고서 바다에 들어가 해삼, 전복, 소라 같은 걸 따왔다. 어느 일이나 그렇듯 많은 것을 얻으려면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마을 근처 해안에서는 귀한 해삼이나 전복을 얻을 수 없다. 조그만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서 암초 근처에 내려 잠수를 하면 비싸게 팔리는 해산물들을 따올 수 있다. 그날도 나이 든 노련한 우두머리 해녀 한 명과 대여섯의 아낙네들이 작은 배를 타고 ‘파랑도’ 라고 불리는 섬을 찾아 나갔다. 배에는 젊은 새댁 한 명도 타고 있었는데 그녀의 첫 아기는 돌도 지나지 않았다. 여인은 아침에 강보 속의 아기가 쌔근쌔근 사랑스럽게 자고 있는 걸 확인했고 웃음을 지었다.

파도가 높을 때만 이따금씩 보이는 파랑도는 사실 도(島)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바위덩어리였다. 우두머리 해녀는 아래 해녀들에게 절대로 배와 암초에서 멀리 떨어지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파랑도 근처의 해류는 아주 거칠었기 때문이다. 새댁 해녀는 일이 서툴렀지만 그날따라 운이 좋게도 귀한 해삼 한 마리를 딸 수 있었다. 가시 같은 돌기가 온몸에 40개나 선명하게 돋아있는 것으로 시장에서 쌀 댓 말 가격에 팔렸다. 기쁜 마음에 해삼을 어망에 담아놓고 부리나케 같은 게 또 없나 물속으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바닷속을 헤매고 다니다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늘 위 높이 떠있는 태양은 똑같이 눈부신 햇빛을 쏘아주고 있다. 왠지 사람을 노곤하게, 감상에 잠기게 하는 그런 빛… 수경 너머로 넘실대는 초록색 바닷물, 그 사이로 보이는 끝없는 수평선. 여기엔 알 수 없는 몽환이 숨겨져 있다. 바다 밑 해류에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우두머리 해녀는 그걸 민감하게 느꼈다. 소용돌이 같은 물살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거기에 휘말리면 살아서 육지로 갈 수 없다는 것도. 그녀는 멀리 떨어져버린 어린 새댁을 불렀다. 새댁은 열심히 헤엄쳐 돌아오려 했지만 배와의 거리는 점점 절망적으로 멀어졌다. 헐떡거리는 입으로 바닷물이 조금씩 들어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짠 맛이 나지않았다. 힘이 빠져 몸이 무거워지면서 감각도 멍해진 것이다. 그녀는 다가오는 확실한 죽음을 보았다. 새댁은 남은 힘을 다해 소리쳤다. “성님 인자 오지 맙서! 나가 딴 걸랑 집에 애기 줍서!”

어차피 죽게 되었으니 자기를 두고 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딴 귀한 돌기 해삼은 세상모른채 자고 있을 집의 아기에게 먹여 달라고 했다. 삶아서 부드러운 죽으로 끓여 먹여주기를… 여자는 죽어 바다에 떠다닐 시체가 되지만 마지막 생각은 아기를 떠올렸고 마지막 말이 전할 것도 그 뿐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I – Es muss sein

아파트 옥상에서 초등학생이 떨어뜨린 벽돌에 맞아 고양이 집을 만들던 여성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캣맘 사건으로 전국에 알려졌다. 초등생은 재미 삼아 벽돌을 던졌고 우연히 아래 있던 한 사람은 그걸 맞고 죽었다. 아이 장난 때문에 막을 내린 55년의 일생은 어떤 결론을 전하는 걸까? 그녀는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와 직장에 가기 위해 노력했고 또한 좋은 딸이 되기 위해서, 결혼해서 좋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도 적당한 고민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3차원 세계의 어느 한 점에 우연히 당도했고 그 지점 바로 위에는 질량과 속도를 띠고 낙하하는 물체가 있었다.

우연은 아무 필연성이나 도덕 관념 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이나 주변인은 그 의미를 물을 수 밖에 없다. 밀란 쿤데라는 우연과 타성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인간의 일생을 탐구하려 했다. 그가 먼저 화두로 던진 것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다.

영원한 재귀, 이 신화는 그것의 부정적 이면에서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가 있다. 영원히 사라져 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삶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은 아무런 무게도 없는 하찮은 것이며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삶이 아무리 잔인했든, 아름답거나 찬란했든,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와 같은 잔인함, 아름다움, 찬란함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으로,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조금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작품에서는 가벼움을 한 번으로 사라질 삶으로 보고, 무거움을 영원히 반복될 삶(니체의 영원회귀가 구현되는)으로 보고 있다. 한 번으로 사라질 삶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띤다. 캣맘 사건같은 치가 떨리는 우연으로 소중한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대변할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그걸 대변할 사건들도 차례로 펼쳐진다. 그냥 보면 가십으로 지나칠 사랑 이야기를 존재에 대한 의미로 풀어낸 작가의 능력이 감탄스럽다. 토마스란 남자와 테레사라는 여자가 보여주는 사랑은 절대적 필연일 수도 있고 아니면 걸어가다 위에서 날아오는 벽돌에 맞는 것 같은 우연일 수도 있다. 작품의 묘미는 그걸 곰곰이 생각해 보는 데 있다.

나이가 있지만 매력적인 의사인 토마스가 자신의 두 번째 아내가 된 테레사를 만나기까지는 6번의 우연이 필요했다. 첫 번째는 작은 도시에서 뇌병 케이스 환자가 생긴 것, 두 번째는 그 도시로 파견 나갈 외과 과장이 좌골 신경통에 걸려서 토마스가 대신 나가야 했다는 사실. 세 번째 우연은 토마스가 묶을 가능성이 있던 5개의 호텔 중 테레사가 일하는 레스토랑이 있던 호텔이 선택되었다는 것, 네 번째는 토마스가 프라하로 돌아갈 기차를 타기 전에 조금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 다섯 번째는 그 시간이 우연히 테레사가 일하는 시간이었다는 것. 마지막 여섯번째 우연은 테레사가 토마스의 식탁 시중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우연의 집합은 토마스와 테레사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이 여섯 개 우연 중에 하나라도 없었다면 두 남녀가 부부가 될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우연에 의해 형성된 운명에 꼭 계속 따라야 하는 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먼저 이 질문이 나오게 만든 부부의 사정을 살펴보자.

1968년 소비에트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국의 군대는 체코 프라하를 침공한다. ‘인간 얼굴을 한 공산주의’ 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던 두브체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체코의 전국은 아주 쉽게 점령되고 두브체크가 추진하던 개혁 조치는 모두 무효화 된다. 새로운 집권세력은 대중의 생각을 하나의 모범 틀에 맞추려는 공산주의의 꼴통 정책을 시작한다. 많은 지식인들은 박해를 받았고, 저항으로 대규모 해외 이주의 물결이 생겼다. 토마스도 스위스 취리히의 병원에서 좋은 자리를 제안 받고 테레사와 함께 국외로 망명한다.

하지만 테레사는 낯선 국가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국외로 나와서도 에로틱한 우정(erotic friendship) 습관에 따라 다른 여자와 놀아나는 남편 토마스에게도 지친다. 어느날 테레사는 작별의 편지를 남겨둔 채 국경을 넘어 체코로 돌아가 버린다. 당시 체코는 소비에트 군에 점령된 상태였기 때문에 테레사가 입국했다는 사실은 북한 국경을 넘어 들어간 것과 비슷한 의미가 있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다는 뜻이다.

혼자 취리히에 남은 토마스는 심각한 고민을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여섯 번의 우연한 사건의 결과인 테레사와의 결혼 관계를 이 기회에 끝낼 것인가? 이 경우엔 공산주의의 박해도 없는 취리히 병원에서 명망있는 의사로 에로틱 프렌드쉽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 아니면 존재의 무거움에 가치를 두고 떠나간 아내를 쫓아 돌아갈 수 없는 국경을 도로 넘어갈 것인가?

이 선택의 고난을 작가는 세련된 음악 테마로 표현했다. 쿤데라의 아버지는 음악학자이자 피아니스트 였고 쿤데라 자신도 대단한 음악 애호가였던 것 같다. 소재가 된 베토벤의 악장의 모티브는 독일어로 ‘Es muss sein’,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아래는 토마스가 자기를 아끼는 취리히 병원의 원장과 독대하는 장면이다.

원장은 실로 당황했다. 토마스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은 일종의 암시였다.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곡 마지막 악장은 다음의 두 모티브에 따라 작곡되었다.

Muss es sein? Es muss sein! Es muss sein!
그렇게 해야 하나? 그렇게 할 수밖에! 그렇게 할 수밖에!

이 말의 의미를 아주 명확히 하기 위해 베토벤은 이 마지막 악장의 제목을 <힘겹게 내린 결심> 이라 붙였다. 베토벤에 대한 이러한 암시로 토마스는 근본에 있어서 이미 테레사에게 되돌아간 것이었다. 왜냐하면 결국 베토벤의 4중주와 소나타를 담은 전축판 구입을 관철시켰던 것은 테레사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암시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효과가 있었다. 왜냐하면 병원장은 대단한 음악 애호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짓고 조용히 베토벤의 멜로디에 맞추어 말했다. ‘그렇게 해야 하나?’  토마스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네 그렇게 할 수밖에요’

파르메니데스와는 다르게 베토벤에게는 무거움이 명백히 어떤 긍정적인 것이었다. <힘겹게 내린 결심>은 운명의 소리(그렇게 할 수밖에!)와 연관되어 있다. 무거움, 필연성, 가치는 서로 긴밀히 연관된 세 개념이다. 필연적인 것만이 무겁고, 무게가 있는 것 만이 가치가 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토마스는 자신의 결정을 의심해본다. 정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 하고.

물리시간에 학생은 어느 누구나 실험을 통해 어떤 학문적 가설이 맞는지를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평생을 살 뿐이다. 그에게는 가정의 정당함을 실험을 통해 증명할 가능성이 없다. 그 때문에 자기 감정을 따랐던 것이 옳았는가 아니면 잘못 되었는가를 그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토마스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의지와 운명에 가치를 두고 테레사를 되찾으러 국경을 넘기로 했다. 영원회귀 사상은 운명애(愛; Amor Fati)로 인해 시작되는데, 토마스는 자신의 결정을 의심하면서도 니체의 말을 믿어본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의 사랑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처럼 아름답게 몰락하게 된다.

모사세 XI – 은총, 경애

모사세 XIV.jpg버림받음과 은총 恩寵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반대를 보고 있지만 서로가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몰이해와 경멸은 명확한 상처를 남기는데 이 상처는 따뜻함이라는 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일 상처가 없다면 사랑도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짝이 맞지 않는 힘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반대되는 힘들이 서로 균형을 맞추려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정인이 요한이 가진 성숙함에 끌렸던 건 박탈당하고 있었던 부모의 정이 그리워서였다고 할 수 있다.

국민학교 선생님들은 은총을 베풀 가능성을 지닌 다른 어른 집단이었다. 하지만 늘 딴 생각에 빠져 있고 성적도 별로 였던 정인은 선생님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아니 두들겨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하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몸은 교실에 있고 눈은 먼 산에 마음은 환상의 나라로 여행 가있던 정인을 갑자기 선생님이 부른다. 산수가 전공인 남자 담임 선생님이었다. 그는 삼각함수에 관한 질문을 하나 던졌고 정인의 얼굴은 곧 새하얗게 질렸다.

중년의 삐쩍 마른 담임은 떠듬떠듬 말 안 되는 대답을 하고 있는 정인을 몇 초간 무섭게 째려보았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다가와 정인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잡고 흔들었다. 정인의 머리는 사물놀이 광대처럼 휘저어졌다. 50명 정도 되는 반 아이들 눈 앞에서 이런 꼴을 당하는 건 수치심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아이의 공포와 굴욕감은 머리칼을 쥐고 흔드는 중년 남자에게 어떤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 지배욕이나 파괴본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욕망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이 또한 반대되는 힘의 균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거칠던 국민학교 시절의 담임 선생님 중에 정인을 아껴주었던 분이 한 명 있었다. 까만 뿔 테 안경이 단정했던, 똑똑하고 부드럽게 생긴 4학년 담임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처음 정인을 주목하게 된 건 그가 역사 지식이 뛰어난 학생이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일본 만화책을 모두 불태운 이후로 교양 역사책만 읽었던 정인에게 국민학교 국사는 아주 쉬운 것이었다. 선생님은 국사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가끔 던졌는데 키가 작아서 분단 맨 앞에 앉아 있던 정인은 수줍지만 정확한 대답을 매번 내놓았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감탄하는 표정으로(이건 꼬마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정인을 칭찬해주었다.

어른 정인은 지금도 경애 敬愛의 마음을 가지고 국민학교 4학년 담임 여자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분의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는 정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여기서 품어준다는 것의 의미는 사람 그대로를 사랑해준다는 뜻이다. 나이 열 살의 아이도 자기를 품어주는 사람과 자기를 들볶을 사람을 금새 구분할 줄 알았다. 민감한 판별 능력은 정인과 엄마의 비극에서 비롯된 사실이다. 엄마는 공부 못하고 빈둥대는 정인이라는 존재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떤 조건을 내세워 정인에게 공부의 동기를 주려 했다. 정인은 ‘먼나라 이웃나라’ 라고 하는 외국 역사 만화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읽고 흠뻑 빠졌었다. 어머니에게 사달라고 졸라 보았지만 대답은 한결 같았다. 공부 열심히 해서 반에서 10등 안에 들면 사준다는 것이다. 정인의 성적은 반에서 25등 정도였고 몇 년간 고정되어 있었다. 그에게 10등 안에 든다는 것의 의미는 신의 영역에 들어가라는 것과 다름 없었다.

국민학교생 동안 정인이 부모의 은총을 바랬던 대상은 먼나라 이웃나라 책 외에도 레고 장난감, 현미경 겸 망원경, 금붕어 어항, 아디다스 운동화 등등이 있었다. 하지만 정인은 10등 근처도 못 갔기 때문에 모두 얻지 못했다. 아버지는 정인과 접촉 자체가 별로 없었지만 마음이 같음은 잘 알 수 있었다. 정인의 국민학교 졸업식 날 꼬마는 6년 개근상이라는 자랑스러운 상을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그걸 보고 아버지가 금방 뱉은 말은 정인의 인생 전체에 긴 울림, 은은히 맴도는 메아리를 주었다. “우등상은 없니?”

조건적 사랑과 비조건적 사랑을 대변하게 된 두 인물은 정인의 꿈에 같이 등장한다. 엄마는 한 손에는 레고 장난감을 다른 한 손에는 먼나라 이웃나라 책을 들고 있었다. “공부를 잘 하면 사줄 거야” 이러면서. 정인은 헤라클레스와 거북이의 관계처럼 선물에 다가가려 하면서 결코 당도할 수 없었다. 공부의 세계는 그토록 오묘했다. 신의 은총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비극을 정인은 양 손에 유혹의 선물을 든 엄마의 꿈을 꾸며 느끼고 있다. 반대로 담임 선생님은 정인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정인이는 어쩜 이렇게 얌전하고 선생님 말을 잘 들을까.” 정인은 꿈 속에서 확고하게 느꼈다. 만일 선생님이 곤란한 일이 생겨서 “정인아 네 생명이 꼭 필요하게 되었단다” 라고 말씀하신다면 서슴없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을 거라고.

모사세 X – 햇빛 아래서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정인의 국민학교 시절 기억은 환한 햇빛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에는 콘크리트(아스팔트가 아닌)로 포장된 언덕 길이 있었다. 정인은 네모난 책 가방을 메고 고개 숙인 채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회색 시멘트 바닥에는 늘 작은 돌멩이들이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언덕 꼭대기에 이르러 얼굴을 들면 하얀 햇빛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섬광은 언덕 위에 있는 집과 가게를 하얗게 지웠고, 이어서 그 너머 높이 있는 푸른 하늘과 구름을 보여주었다. 이 풍경은 정인에게 알 수 없는 애상을 준다. 아름다운 대상을 보면 이유 없이 슬퍼질 수 있다는 걸 꼬마는 배웠다. 그리고 어른이 된 정인은 같은 감정으로 아직도 망막에 남은 것 같은 당시의 하늘을 떠올리고 있다.

햇빛은 그가 뛰어 놀던 학교 운동장도 비추고 있다. 남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축구공을 차고 있었고, 여자 애들은 운동장 구석에서 고무줄 놀이를 했다. 정인은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걸 어색해 했기 때문에 벤치에 앉아서 구경을 하거나 학교 정원의 연못에 가서 헤엄치는 붕어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했다. 정인은 그 따뜻한 봄의 운동장에서 요한이라는 아이를 처음 보았다. 요한은 학교 국어 선생님의 아들이었다. 이 얘는 다른 평범한 남자 애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마 그의 하얀 피부와 여리고 고운 얼굴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아들이었고, 늘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요한은 이미 온 학교 아이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정인은 햇빛 아래서 걸어가는 요한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치 운동장에 있는 다른 수백 명의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걸음걸이는 우아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고 있었지만 움직이는 모습이 끊겨 보였다. 첫 눈에 그에게 빠져버린 정인의 기억이 영화의 오픈 앵글 촬영처럼 움직임을 끊어지게 기록했던 것이다. 요한은 밝은 햇빛에도 조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맑은 눈 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건 관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같은 학년의 국민학생들 중에서 풍경을 관조할 수 있는 아이는 요한 밖에 없었다.

정인이 처음 요한을 바라보던 날의 기억은 어른이 된 정인의 마음에 아직도 특별하게 남아있다. 옛날의 향수가 밀려와 가벼운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을 만든다. 아이답지 않은 요한의 모습을 어른 정인은 지금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보고 있다. 그때와 별로 변함없는 흠 없는 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모습을…

햇빛이 어두워진 저녁에도, 그 다음날에도 정인은 요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기 삶의 기준이 정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요한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생겼던 것이다. 그는 고고하고 신비한 미(美)가 결정을 이룬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형질은 정인이 늘 그리워한 부성과 모성을 합쳐 놓은 모양이었다. 매일 늦게 집에 들어오고 와닿지 않는 훈계만 말하는 아버지, 매일 집에서 독수리처럼 아들의 공부를 감시하던 어머니. 이 두 명과 학교 선생님들이 설정해 놓은 세계에서는 어떤 꿈도 꿀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한을 보면 어둡고 갇힌 세계를 뛰어넘어 밝은 섬광을 당당히 마주보는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때 정인은 물론 환상을, 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춘기가 시작되지 않은 소년의 마음은 동성의 아이에게서 훗날 잊지 못할 연인을 떠올리는 것 같은 감정을 이끌어낸다. 정인은 때때로 요한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정인은 요한과 같이 먼 나라로 떠나고 있었다. 몰래 외항선에 숨어들기도 했고, 비행기 날개 위에 같이 매달려서 날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둘이 찾아간 나라에는 아무 사람도 없는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카밀레 꽃이 무수히 피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