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증후군과 살인자 철학자 – 루이 알튀세르
리플리 증후군(Ripley’s Syndrome)은 가상적인 정체성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맞추어 사는 인격 장애의 유형이다. 주로 자존심에 미달하는 학벌이나 경제∙사회적 위치에 대한 거짓말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결국 완전히 다른 사람의 삶을 인생 연기하듯 살게 된다.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 대표적 사례로 나온 적이 있는데 있는데 제목은 ‘신입생 엑스맨’ 이었다. 시작이 미스테리 영화처럼 섬뜩했다. 한 대학교 신입생 OT에서 왁자지껄 어울려 놀고 있는 남자 신입생이 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작년 다른 대학교 신입생 행사에도 참석해서 놀았었고, 사진에도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전년도 다른 학교에서도, 그 전전년도 어딘가에서도… 확인 결과 그는 6년 동안 48개의 다른 대학에 신입생으로 들어와 과 행사에 참석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며 살았던 걸로 드러났다.
취재진은 엑스맨을 찾아내 만났고 가짜 신입생 역할을 해야만 했던 이유를 듣는다. 그는 성장 과정에서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의식을 끊임없이 주입 받은 것 같다. 그의 아버지는 대학교수로 엘리트 의식이 강했고 누나 넷은 모두 일류대학에 진학해서 자랑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외동 아들인 자기만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에 진학하자 현실과 조합할 수 없었고 결국 진짜 자신이 아닌 가짜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특이 하지만 슬프기도 한 사연이었다. 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거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인격의 가면을 심리학적 용어로 ‘페르소나'(persona) 라고 한다. 페르소나는 본래 그리스의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게 심리학적으로 보편적인 단어가 된 건 어느 사람이나 조금씩은 사회적인 필요로 가면을 쓰고 살고 있어서이다.
루이 알튀세르는 알제리 태생, 프랑스 국적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다. 그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라는 자서전을 썼다. 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학술 작업으로 이름을 떨친 것도 있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목 졸라 죽이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도 있었다. 그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아내를 죽였다는 이유로 기소 면제 처분을 받았고 감옥 대신 정신 병원에 갇혀서 이 자서전을 집필하게 된다.
저자 루이 알튀세르는 평생 자신의 정체성 없이 다른 사람으로 존재한다고 느꼈다. 그가 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는지, 그런 운명을 강요한 가족의 영향과 성장 과정을 되돌아 보는 것이 책의 중심 내용이다. 신입생 엑스맨처럼 그도 진정한 자기로 살 수 없는 굴레를 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고 또 그래야만 하는 존재이다. 만일 부모의 양육이 병적인 것이라면 아이는 그 운명은 그대로 받을 수 밖에 없다. 루이 알튀세르의 어머니는 어려서 한 남자와 약혼했는데 그는 1차 세계 대전에 징집되어 나가 전쟁터에 전사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상향과 같던 옛 약혼자를 평생 잊지 못했다. 그래서 죽은 사람 약혼자의 대체물로 그의 형인 샤를르 알튀세르와 결혼 한다. 결혼 후 얻은 첫 아이에게는 옛 약혼자의 이름을 따서 ‘루이’ 라는 이름을 준다.
소년 루이 알튀세르는 어머니가 자기를 자신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공군 조종사로서 프랑스의 베르덩 하늘에서 죽었던 옛 약혼자의 그림자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아래는 이에 대한 알튀세르의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엄마가 바라는 삶을 사는 것은 가능한 일이면서 동시에 불가능한 일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삶은 “죽음의 영역 안이나 죽음의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 곧 진정한 주체성 없이 이미 죽은 인물의 대체물로서 살아가는 것에 불과했다.
이런 심리의 덫에 걸린 알튀세르는 아무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없고 또 어떤 사람의 사랑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느낀다. 사랑은 받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고, 남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면 결국 자신도 사랑받지 못한다. 알튀세르는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으면서도, 그와 반대되는 전능에 대한 열망도 키운다. 이는 우울증의 결과인데, 자기 혐오 콤플렉스는 더 파괴적인 에너지를 모아서 발산할 수 밖에 때문이다. 그 파괴의 결말은 자기 부정의 강박 때문에 온전히 사랑해주지 못했던 아내 엘렌느를 목 졸라 죽이는 걸로 나타나고 말았다.
모사세 X – 햇빛 아래서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정인의 국민학교 시절 기억은 환한 햇빛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에는 콘크리트(아스팔트가 아닌)로 포장된 언덕 길이 있었다. 정인은 네모난 책 가방을 메고 고개 숙인 채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회색 시멘트 바닥에는 늘 작은 돌멩이들이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언덕 꼭대기에 이르러 얼굴을 들면 하얀 햇빛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섬광은 언덕 위에 있는 집과 가게를 하얗게 지웠고, 이어서 그 너머 높이 있는 푸른 하늘과 구름을 보여주었다. 이 풍경은 정인에게 알 수 없는 애상을 준다. 아름다운 대상을 보면 이유 없이 슬퍼질 수 있다는 걸 꼬마는 배웠다. 그리고 어른이 된 정인은 같은 감정으로 아직도 망막에 남은 것 같은 당시의 하늘을 떠올리고 있다.
햇빛은 그가 뛰어 놀던 학교 운동장도 비추고 있다. 남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축구공을 차고 있었고, 여자 애들은 운동장 구석에서 고무줄 놀이를 했다. 정인은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걸 어색해 했기 때문에 벤치에 앉아서 구경을 하거나 학교 정원의 연못에 가서 헤엄치는 붕어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했다. 정인은 그 따뜻한 봄의 운동장에서 요한이라는 아이를 처음 보았다. 요한은 학교 국어 선생님의 아들이었다. 이 얘는 다른 평범한 남자 애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마 그의 하얀 피부와 여리고 고운 얼굴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아들이었고, 늘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요한은 이미 온 학교 아이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정인은 햇빛 아래서 걸어가는 요한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치 운동장에 있는 다른 수백 명의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걸음걸이는 우아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고 있었지만 움직이는 모습이 끊겨 보였다. 첫 눈에 그에게 빠져버린 정인의 기억이 영화의 오픈 앵글 촬영처럼 움직임을 끊어지게 기록했던 것이다. 요한은 밝은 햇빛에도 조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맑은 눈 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건 관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같은 학년의 국민학생들 중에서 풍경을 관조할 수 있는 아이는 요한 밖에 없었다.
정인이 처음 요한을 바라보던 날의 기억은 어른이 된 정인의 마음에 아직도 특별하게 남아있다. 옛날의 향수가 밀려와 가벼운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을 만든다. 아이답지 않은 요한의 모습을 어른 정인은 지금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보고 있다. 그때와 별로 변함없는 흠 없는 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모습을…
햇빛이 어두워진 저녁에도, 그 다음날에도 정인은 요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기 삶의 기준이 정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요한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생겼던 것이다. 그는 고고하고 신비한 미(美)가 결정을 이룬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형질은 정인이 늘 그리워한 부성과 모성을 합쳐 놓은 모양이었다. 매일 늦게 집에 들어오고 와닿지 않는 훈계만 말하는 아버지, 매일 집에서 독수리처럼 아들의 공부를 감시하던 어머니. 이 두 명과 학교 선생님들이 설정해 놓은 세계에서는 어떤 꿈도 꿀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한을 보면 어둡고 갇힌 세계를 뛰어넘어 밝은 섬광을 당당히 마주보는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때 정인은 물론 환상을, 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춘기가 시작되지 않은 소년의 마음은 동성의 아이에게서 훗날 잊지 못할 연인을 떠올리는 것 같은 감정을 이끌어낸다. 정인은 때때로 요한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정인은 요한과 같이 먼 나라로 떠나고 있었다. 몰래 외항선에 숨어들기도 했고, 비행기 날개 위에 같이 매달려서 날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둘이 찾아간 나라에는 아무 사람도 없는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카밀레 꽃이 무수히 피어있었다.
어느 옛 여자 배우의 이야기 – 무경계, 켄 윌버
옛날 배우 문숙씨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TV 드라마에 출연했다. 나이 스무 살이 되던 해(1974년) 영화 ‘태양을 닮은 소녀’ 오디션을 보면서 당대 유명한 영화 감독이었던 이만희 씨와 처음 만났다. 그녀는 나이가 23살이 더 많고 이혼 경력도 있던 이 감독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훗날 이 감독과의 첫 만남을 “가슴이 두근두근 막 떨리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라고 회고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영화 감독이라는 직업은 지금처럼 휘황찬란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감독은 하루 촬영이 끝나면 남자 배우와 스텝들과 모여앉아 막걸리 말술을 마셨다. 빈털터리였던 이만희 감독은 집도 없어, 서울 충무로의 삼류여관에서 문숙과 동거 생활을 했다. 하지만 어려운 생활이 사랑에 지장은 되지 않았는지, 교외의 백양나무 숲으로 가서 둘 만의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이만희 감독은 75년 봄 ‘삼포 가는 길’ 영화를 편집하던 중 병원으로 실려간다. 간경화 말기였다. 고통에 참을 수 없던 이 감독은 지인들에게 ‘피주사’ 라고 불리던 알부민 주사를 놓아달라고 애원했다. 알부민 주사는 당시 미8군에서만 구할 수 있었고, 주사 후 2시간 정도만 상태가 회복됐다. 주사가 반복될수록 효과는 급격히 떨어졌다. 결국 그는 고통과 이어진 혼수 속에서 죽었다. 두 남녀가 처음 만난 지 1년 만이었다. 벅찬 사랑의 감정만 경험하고 연인을 보냈기에 그리움은 참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문숙씨가 당시를 회고하면서 한 말이다.
당시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런데 목숨을 거는 사랑을 했다. 삶이 끝난 줄 알았다. 낯선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 삶의 흔적, 고통의 흔적이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문숙씨는 백상예술상(74년)과 대종상 신인상(75년)을 수상했고, 당시 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인 배우였다. 계속 우리나라에 남았더라면 지금은 존경받는 중견 배우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과 실연은 그 모든 것을 의미 없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으로 간 그녀는 이런저런 종교의 문을 두드려 보면서 구도(求道)의 길을 걷는다. 기독교 교회의 가르침도 들어보았고, 남방 불교의 위파사나 수행도 5년이나 했다. 하지만 자신의 길을 찾은 느낌은 얻지 못했다. 그녀는 “몸이 기도가 된다” 는 인도 요가를 접하고 처음 초월의 체험을 했다고 한다.
미국 산타페에서 요가 선생을 만났다. 그는 내 몸이 기도문이 된다. 내가 영적 에너지(Spiritual energy)에 대한 통로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걸 체험했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나 다른 방식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이 방식이 나와 맞았다. … 힌두에는 여러 신이 있다. 요가의 신은 시바다. 시바는 버리는 신, 파괴의 신이다. 기독교의 회개, 불교의 참회처럼 요가는 철저하게 나를 버리는 과정이다. 육체적인 움직임을 통해 나를 버리는 작업이다.
우리나라에서 요가는 주로 다이어트 수단으로 보급되어 있지만 그녀는 전통적인 요가의 기본 사상을 설명하고 있다. 정신과 이어져 있는 몸을 움직임으로서 영적 에너지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런 요가 수행을 통해 머리에 끊임없이 맴도는 쓸모 없는 생각(거짓된 자아)을 버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다 버리고 비워진 인간 정신에는 원래 있던 것만이 남는다. 이에 대한 설명이다.
몸을 움직이다 텐션이 오는 지점에서 멈추라. 그 자세에서 길게 숨을 내뱉고, 들이마시는 걸 반복한다. 그럼 잠시 후에 텐션이 풀린다. 몸은 더 움직여진다. 그리고 그 다음 텐션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수많은 텐션, 수많은 에고를 만나고 열어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에는 수퍼에고를 만나게 된다. 슈퍼에고를 만나면 빅 마인드(Big mind)가 된다. 마음이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의식 확장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거기서 지혜도 나오고, 고요함도 나온다.
거대한 우주는 에너지 그 자체(Energy itself)이다. 인간이 생각을 다 버리면 그 우주와 만나게 된다. 그때는 인간 개체가 우주의 에너지와 하나가 된다. 그 에너지는 살아 있고, 의식이 있고, 지혜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자아가 온 우주와 한데 섞인 것과 같은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그로써 절대 떨쳐버릴 수 없을 것 같던 슬픔도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미국의 작가이자 사상가 켄 윌버는 자신의 저서 무경계 에서 이런 종류의 합일 정신을 잘 설명해놓았다. 그가 책에서 말한 구절이 문숙씨가 털어놓은 말과 너무나 흡사해서 놀랐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사라진 것 같은 합일 의식은 간절히 찾는 사람은 체험할 수 있는 것이란 뜻이다. 쉽게 생각해보면, 술만 많이 먹어도 자신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필름이 끊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켄 윌버가 말하는 건 하룻밤 있다 사라지는 해리가 아닌, 전 세계가 나 같고, 내가 전 세계 같이 느껴지는 합일 정신, 빅마인드이다.
“나는 누구인가?” 라고 하는 물음에 대한 모든 답은 정확히 자기와 비자기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기본적인 절차에서 비롯한다. 일단 전반적인 경계선이 그어지고 나면,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대단히 복잡한 것 – 과학적, 신학적, 경제적 – 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단순하거나 모호한 채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능한 모든 답은 처음 그은 경계선에 달려 있다.
이 경계선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흔히 변경될 수 있고 변경된다는 것이다. 경계선은 다시 그어질 수 있다. 어떤 점에선, 자신의 영혼soul의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고 결코 가능하다거나, 획득할 수 있다거나,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그 영역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경계선의 가장 혁명적인 제작 또는 변경은 지고의 정체성 체험에서 일어난다. 이 지점에서는 자기 정체성 경계가 전우주를 포함할 정도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경계선이 전부 없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와 동일시할 경우, 그곳에는 더 이상 어떠한 안도 밖도 없으며 따라서 경계선을 그을 곳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자아를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명제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다. 하지만 켄 윌버는 생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며, 실제로 ‘나’ 라는 존재의 경계는 원래부터 없었다고 말한다. 알쏭달쏭하지만 굉장한 통찰력을 담고 있고 있는 말이다.
모사세 IX – 지배자와 피지배자
꼬마 정인의 지배자는 당연히 어머니였다. 아버지도 지배자이긴 했지만 군림하되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아들 말고 신경 쓸 직장 일이 많았으므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아무튼 지배자 어머니의 법전에서 허용된 행위 중 재미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정말 단 하나도!
지루함과 투쟁심을 일깨우는 것들뿐이었는데 이게 정인이 역사책에 나오는 민란의 두목들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정인은 압제자를 바라보는 눈으로 어머니를 보았고 그녀는 공부에 집중 안 하고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정인을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정인은 기어 다니는 아기의 환상을 본다. 자신도 한 때 어머니 앞에서 부드러운 하늘색 옷을 입고 턱받이를 두르고 평화롭게 놀고 있던 작은 아기였다.
정인이 가정을 벗어나 학교로 등교했을 때 그곳의 지배자는 또 따로 있었다. 아이들을 잔소리와 몽둥이로 통제하고 있던 학교 선생님들이었다. 그 때는 학원 폭력이라든지 학생 인권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유롭게 학생들을 때릴 수 있었다. 그들은 높이 솟은 아파트 단지 가운데 자리잡은 광장(아고라), 즉 학교 운동장과 성스러운 교정을 다스리는 왕처럼 살았다. 학교는 독립된 섬 같았고 그 안에서 권력은 도전 받지 않았다. 선생님의 법전도 어머니의 법전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즐거움을 봉쇄하는데 주 목적이 있었다. 학교 복도에서 만화책을 들고 다니다 걸리면 책을 빼앗겼다. 방과후에 오락실에 간 게 들통나면 싸대기를 맞았다. 수업시간에 졸다가 발견되면 머리채 휘둘림을 당했다. 한 반에 50명의 국민학생이 모여 있는 교실은 사람 모임 보다는 원숭이 집합소 같았으므로 이런 폭력이 조금 불가피하기는 했다.
선생님의 폭력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되어 아이들도 폭력의 도구적 우수성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이 모여있는 교실은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았다. 약한 애는 맞았고 강한 애는 때렸다. 쳐다보는 눈빛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야 이 새끼야 뭘 야려” 라는 대사와 함께 휙 주먹이 날아간다. 그러면 맞은 아이는 코피를 흘리며 눈빛을 얼른 내린다. 분식집 주인의 아들은 가난하다고 맞았다. 말을 더듬고 몸치였던 시장 방앗간 아이는 하루는 말 더듬었다고, 다른 하루는 몸치라고 맞았다. 이렇게 두들겨 맞은 아이가 표정이 풀리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모습도 보았다. 정인은 난만한 폭력의 위험성에 눌리는 듯한 위압감을 느꼈다. 키 작고 만화책 읽는 것과 전자 오락 외에 잘하는 게 없던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사세 VIII – 조반유리 造反有理
나이 10살에 이미 거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인은 누구의 따뜻한 품에 안겨 있었을까? 그 품에 사람은 없었다. 정인은 수줍은 남자애라서 친구가 없다시피 했다. 혼자 즐기는 오락과 만화와 영화의 품에만 안겨 있을 뿐이다. 정인은 투명하고 둥근 어항에서 헤엄치는 분홍색 금붕어였다. 따뜻한 피를 그리워하는 작은 냉혈동물이었다. 하지만 정인의 이마저 보금자리도 결국 엄마의 침입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때 정인은 드래곤볼이라는 일본 만화책에 빠져있었었다. 일주일에 이천원 밖에 안 되는 용돈을 알뜰히 모아 오백원 짜리 해적판 만화책을 차곡차곡 수집했다. 용돈은 학교 준비물을 사라고 주어졌지만 정인은 만화책을 위해 모두 희생했다. 결국 30권이 넘는 만화책 전집을 모을 수 있었는데 방 바닥에 책을 흩어놓고는 뒹굴뒹굴 구르며 아무 책이나 골라 읽곤 했다. 드래곤볼은 어느 권을 읽든 놀랍게 재미있었다.
정인은 하교 길에 간만에 나온 새 드래곤볼 단행본 한 권을 사고는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멀리 언덕 가에 있는 집을 바라보았는데 마당에서 무얼 태우는지 연기가 은은히 올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정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 마당 한 켠에 드래곤볼 만화책이 수북히 쌓여있었고, 어머니는 무더기 곁에 앉아서 나무 막대기를 불쏘시게 삼아 불을 지피고 있었다.
이건 정인이 그동안 즐겨온 유희활동이 집 안에서 완전히 금지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정인의 어머니는 대학입시가 얼마 안 남았다는 심려를 10살짜리 국민학생 정인을 보며 느끼고 있었다. 입학 고시까지 8년이라는 세월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타는 초조함은 시간을 주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정인은 이제 집에서 노는 꼴을 보이지 않고 어떻게든 공부하는 꼴을 보여야 했다. 어머니는 정인이 방과 후에 집에 돌아오면 저녁식사를 먹였다. 그리곤 책상에 앉혀서 공부를 시켰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책을 읽기도 했고 아니면 무슨 뜨개질 같은 걸 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된 목적은 감시였다. 정인은 전과와 문제집을 펴놓고 열심히 딴 생각에 잠겨 들었다. 국영수 과목은 모두 더럽게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정인의 마음에 들었던 과목이 있었는데 바로 역사 과목이었다.
정인은 엄마가 참고서 말고 사다 주는 드문 책이었던 한국사 만화책 전집과 교양 서적들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특히 일본 만화책을 엄마가 모조리 태워버린 이후로는 더욱 반복해서 읽었다. 그래서 학교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들은 모두 익히 외우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정인은 수 많은 역사 사건 들 중 민란에 대한 이야기에서 제일 흥미를 느꼈다. 역사의 해석에 따르면 백성들은 지배자들의 착취에 허덕이다 결국은 봉기해서 일어난다. 착취는 과도한 세금일수도 과도한 노역일 수도 있었다. 명백한 것은 사회에는 항상 소수의 지배자가 있었고 거기에 복종하며 노예로 사는 다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존재한다는 기억, 존재를 잊게 만드는 기억상실
기억은 감정과 연결되고, 감정은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추운 겨울날 새벽 거리를 걸으면 무표정한 사람들을 수없이 지나치지만 모두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같이 손을 잡고 걸었던 한 사람은 마주 잡은 손의 감각과 비스듬하게 보이던 얼굴, 외투, 나누던 말까지 모두 기억난다. 마음이 기억이 되고, 관계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그걸 끊어버리는 병도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린 사람은 기억을 잃어버린다. 사람의 뇌는 컴퓨터 메모리처럼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가 따로 존재한다. 이 부위가 알츠하이머로 인한 위축(atrophy)으로, 아니면 혈관 장애나 감염, 염증 등으로 파괴되면 사람은 기억을 잃는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던 간절한 기억도 깨끗이 날아가 버린다. 기억이 없기 때문에 매일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게 반복된다. 아래는 신경 질환에 관한 대중 저서로 유명했던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전 컬럼비아 대학 교수가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라는 책의 내용이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완전한 기억상실 뿐이다. 그것만이 내 삶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다.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 루이스 부뉴엘 1
그는 순간 속의 존재이다. 말하자면 망각이나 공백이라는 우물에 갇혀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게 과거가 없다면 미래 또한 없다. 끊임없이 변동할 뿐 아무 의미도 없는 순간순간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신경과 의사였던 저자는 뇌신경의 일부가 손상되어 기억을 자꾸 잃어버리는 환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이 없다면 과거가 없어질 뿐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도 없어진다. 결국 끝없이 변하는 순간순간만 남는다. 기억상실은 나이든 사람에게 나타나지만, 아예 기억이 시작도 안된 사람은 어떨까? 나는 집 마루에서 열심히 기어 다니는 아기 조카를 보며 기억 없이 사는 게 어떤 건지 느끼곤 한다. 작고 따뜻한 이 생명체는 자극에 반응하며 목적도 없이 순진무구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일정 이상 기억이 쌓여버린 어른은 그 집적에 반응해야만 한다.
감히 말하자면 우리는 무수히 잡다한 감각의 집적 혹은 집합체에 불과하다. 그러한 감각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차례차례 계승되고, 움직이고, 변하며, 흘러간다.
아기는 아니지만, 어른의 기억상실은 병원 치료의 대상이다. 올리버 색스 교수는 자꾸 기억을 잃는 환자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매일 일기를 쓰라고 권유했다. … 그러나 나의 권유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무엇보다도 그가 항상 일기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그가 일기장을 몸에 지니고 다니게 해야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별 효과를 얻지 못했다. 그는 날마다 짧은 메모를 일기장에 착실하게 적어놓기는 했지만 바로 그 전날 자신이 쓴 것을 보고도 그것을 이해하질 못했다. 자신의 필적이나 문체는 알아보았기 때문에 그 전날 자신이 무엇인가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곤 했다.
기억상실의 종착역은 존재의 망각이다. 기억이 없어지면 자신에 대한 자각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는 대다수에게 옳지만 이 환자의 경우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한다는 걸 자주 망각한다. 그래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가 되었다. 살고 있다는 것, 생각하고 있다는 것, 모두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어떤 병은 이 모든 걸 리셋시킨다. 고상한 의미로 포장되어 있는 사람의 존재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밀어 넣는 것이다.
Notes:
- Luis Buñuel (1900년 2월 22일 ~ 1983년 7월 29일) 스페인, 멕시코의 영화 감독, 각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