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레이저 프린터 드럼 교체 – 인쇄물 글자 뭉개져 나올 때

 
2년 전, 컬러 레이저 프린터를 네이버 중고나라에서 구매 했었다. 후지제록스 CM305 df 모델이었는데 성인 남성이 두 팔로 간신히 들 수 있을 정도 크기에다, 신품 가격이 50만원을 넘는 괴물 같은 복합기였다. 인쇄 해상도는 600dpi (참고로 아이폰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326dpi), 랜선으로 연결하면 네트워크 프린터로 쓸 수 있고, 팩스/복사기/스캐너 기능이 있었다.

겉모양 깨끗한 중고를 15만원에 사고 기쁜 마음이 들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왜 그렇게 쌌는지 알 것 같다. 프린터 드럼을 새걸로 갈려면 가격이 16만 5천원이나 되니까.

컬러나 흑백 레이저 프린터 공통으로 가장 중요한 소모품은 토너와 드럼이다. 토너는 색깔 파우더가 차있는 통이다. 드럼은 그 파우더를 인쇄 종이 위에 일정 모양으로 배열시킨 다음 압력과 열로 찍어 주는 부품이라 생각하면 된다.

흑백 프린터는 토너 종류가 하나(검은색)이고, 드럼도 작고 간단하게 생겼다. 하지만 컬러 프린터는 토너가 네 종류(CYMK)나 되고, 드럼도 정말 거대하다. 아래 사진을 보자.

 

 



★ 레이저 프린터 드럼 교체 시점, 주의점

토너에 문제가 있으면 해당 색상의 글자가 흐려지는 느낌인데, 드럼이 이상하면 종이 전체 프린트가 뭉개져서 나온다. 아래 사진을 참조하자.
 

(좌) 드럼 교체 전 (우) 드럼 교체 후

드럼을 바꾸기 전과 후의 인쇄 품질을 비교한 것이다. 똑같은 문서를 인쇄했는데, 차이가 저 정도이다.

드럼 유니트를 교체하는 방법은 자신의 프린터 모델명을 구글 검색하면 PDF 매뉴얼이 나오니 참고해서 진행하면 된다. 가장 주의할 점은 차광된 실내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신도리코, 브라더, OKI 등 프린터 제품 매뉴얼에는 공통적으로, 드럼 교체시 직사광선이나 실내 조명에 5~10분 이상 노출되면 안 된다는 경고 문구가 있었다. 그래서 창문이 없는 방에 프린터를 놓고, 약한 간접 조명등만 켜놓고 작업을 했더니 문제 없이 끝낼 수 있었다.
 

남성 탈모 치료제 – 가임기 여성 접촉 시 태아 기형 가능성 연구

 
국내나 세계 시장 공통으로 남성형 탈모치료제 시장의 최강자는 머크(MSD)사의 <프로페시아> 혹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사의 <아보다트> 연질캡슐이다.

둘 다 5α-Reductase inhibitor(이하 5-ARIs) 계열 약제이다. 5-ARIs는 남성호르몬(Testosterone)이 더 강한 효능을 가진 형태인 Dihydrotestosterone(DHT)으로 변환되는 걸 막는다. 그래서 남성호르몬 관련 질병인 ‘남성형탈모’나 ‘전립선비대증’이 완화될 수 있다.

탈모전용치료제 <프로페시아>와 똑같은 성분이지만, 용량만 5배인 <프로스카>는 전립선비대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남성탈모치료동호회 등 정보가 풍부한 곳에는 프로스카정을 건강보험으로 처방 받은 후 5등분해서 하루에 한 조각 씩 복용하는 ‘비기’가 잘 알려져 있다(같은 제약회사의 같은 성분 약이라 그렇게 해도 효능 차이가 없음).

프로페시아나 프로스카 모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임신 중 여성은 복용 금기로 되어 있다. 5-ARIs 성분이 남성 태아의 외음부 기관에 기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아래 링크의 FDA 공식 배포 문건 참조).
https://www.accessdata.fda.gov/drugsatfda_docs/label/2011/020788Orig1s022lbl.pdf

그렇다면 임신 중이거나, 임신 시도를 하고 있는 여성의 남편이 탈모치료제나 전립선비대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는 경우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성의 피부에 알약이 접촉된 경우 성분이 흡수 될 수 있고, 남자의 정액에도 미량의 약 성분이 검출되므로 성접촉으로 인한 성분 전달과 태아기형유발 가능성도 이론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립선비대치료약인 프로스카를 5등분해서 탈모치료제로 쓰는 경우도 약 가루가 날림으로서 가임기 여성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도 있다. 아래 조선일보 기사를 참조해보자.

탈모약 비싸서… 전립선비대증약 쪼개 먹다간 큰일

이 기사를 읽고나서 간접적인 접촉으로 프로스카/프로페시아 약이 태아 기형을 어느정도 유발할 수 있는지 관련 논문을 찾아보았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해로울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생식기 기형인 사람 아기가 태어난 관련 사례는 없었고, 쥐(rat)와 붉은털 원숭이(rhesus monkey)를 이용한 동물 실험을 통해서만 가능성이 판명된 정도이다.

Finasteride – FDA prescribing information, side effects and uses by www.drugs.com

상기 링크는 약제 정보 인터넷 사이트 중 데이터베이스 양과 방문자 수에서 세계 최대인 Drugs.com 의 Finasteride(프로스카/프로페시아 약의 성분명) 설명 페이지이다. 관련 연구 논문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임신한 암컷 쥐에게 고농도의 Finasteride를 투여했더니, 태아 쥐에서 수컷 성기의 발달 장애가 보였다. 하지만, 임신한 암컷 쥐는 Finasteride를 투여받지 않고, 수컷 쥐는 고용량을 투여받은 경우(즉 탈모치료제/전립선비대 치료제를 복용하는 남성의 임신한 배우자에 대한 위험 예시)는 아무런 선천기형이 발생하지 않았다.

붉은털 원숭이 실험의 경우, 임신한 암컷 원숭이에 대한 Finasteride 정맥 투여에서는 원숭이 수컷 태아의 성기 기형이 발견되지 않았고, Finasteride 경구 투여에서는 성기 기형이 발견되었다.

결국 믿을 만한 정식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1.탈모치료제에 대한 피부 접촉 2.탈모치료제 가루 날림 흡입 3.탈모치료제 복용 중인 남자와의 성접촉 등 세 가지 경우에서 태아기형 유발 위험은 경미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Drugs.com 페이지에도 씌여 있듯이, 만일 임산부(특히 남아를 임신한 임산부의 경우)가 실수로 Finasteride 성분의 탈모치료제/전립선비대치료제와 접촉하게 된 경우 즉각 해당 부위를 물과 비누로 씻는 게 권고된다. 건강한 태아를 위해서 작은 위험이라도 무릅쓰지 않는 게 좋기 때문이다.
(drugs.com 원문 – If a pregnant woman comes in contact with crushed or broken Finasteride tablets USP, the contact area should be washed immediately with soap and water.)
 

입술 필러 자세한 설명 – 가능한 부작용 및 유지기간, 시술 동영상

 
입술 필러는 적당히 볼륨감 있는(도톰한) 입술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 한다. 입술을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얇게 만들고 싶다면 필러는 그 정반대가 된다.
 


​​

★ 부작용 가능성

입술 필러도 다른 필러와 마찬가지로 부작용에 주의하는 게 최우선이다. 입술 안 쪽과 주변에는 다행히 큰 동맥이 없어서, 코 필러처럼 실명 같은 치명적 부작용이 발생 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입술이 퉁퉁 붓고 멍이 드는 부작용은 가능하다.
​ 

출처 (좌) Pinterest (우) semanticscholar.org


​ 

상기 사진은 입술 주변의 동맥(artery) 주행을 보여준다. 이런 동맥을 필러 주사기로 정통으로 찌르고, 끈적한 젤리 형태의 필러를 주입하게 되면 혈액 공급 차단으로 인한 피부 괴사가 생길 수 있다. 동맥혈 유출로 인한 피하혈종(피부 밑에 피가 고임)도 가능하다.
 
​​


​​

★ 입술 필러 시술 기법

 

출처 ResearchGate.net


 

혈관 관련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입술 필러 시술시에는 상기 그림과 같은 기법을 이용한다. 입술과 피부 경계(vermilion border)를 따라서 주사 바늘을 삽입하고 천천히 역행하면서 필러를 주입한다(하얀 굵은 선).

입술에 고르게 볼륨을 주기 위해서는 주사 포인트를 5~6 군데 잡고 소량씩 필러를 주입한다(microdroplet technique, 햐얀 점들). 입술 안에는 연조직(피부나 근육 같은 말랑말랑한 조직) 밖에 없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양을 주사하면 덩어리가 질 수 있다.
 



★ 입술 부위에 추천되는 필러 제품 – 쥬비덤 or 레스틸렌

입술은 필러 제품의 성상과 품질에 많이 영향을 받는 부위이다.

​매일 말을 하고 식사를 하느라 입술은 계속 움직이는데, 그러면서 분해대사가 촉진된다. 그래서 점성이 강하면서 주입감이 뛰어난 레스틸렌(Restylane)이나 쥬비덤(Juvederm) 같은 외산 프리미엄 제품이 많이 쓰인다. 그중에서도 쥬비덤 볼벨라(Volbella)는 입술 필러에 특화된 제형이다.

비특화 국산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 2주일 정도만에 필러 볼륨이 다 사라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프리미엄 제품의 경우 최대 12개월 정도 유지된다.
 

앨러간사 쥬비덤 볼벨라 제품. 단품 구매시 도매가가 주사기 1개당 20만원을 넘는다.


​ 



★ 입술 필러 시술의 실제

아래에 서초동 카모마일 의원에서 시행한 입술 필러 시술의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 두었다.
 

상부 입술의 볼륨감이 적은 편이고, 하부 입술은 좌우 비대칭이 있다. 필러 시술로 교정되었다(동영상 참조).

 


​ 

짐 로저스의 예측 – 수 년안에 다가올 전지구적 경제위기

경제 위기를 예측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걸 진짜로 맞추는 사람은 드물다. 잘 맞추면 위기를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생일대의 재산을 단기에 벌 수 있어서 그렇다.

작년 개봉했던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면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을 모델로 했다는 젊은 금융인 윤정학(유아인 분)이 나온다. 그는 외환위기가 고용시장과 실물 자산시장을 처참하게 무너뜨릴 것을 예견한다(라디오 프로그램에 쇄도하는 파산한 집안 사연 엽서를 모아서 그걸 파악해냄). 그래서 가치가 천정부지로 오른 외화를 팔아서 원화를 사고, 그 원화로 가치가 떡폭락한 부동산을 샀다.

미국 포브스지가 2018년 6월 발표한 한국의 부자 순위를 보면, 박현주 회장은 개인자산 2조 1천 5백억원으로 전체 17위를 차지했다. 순위 내 대부분이 재벌 2, 3세 인물이었다. 그는 다수가 파산하는 시장에서 살아남아서 재벌급의 부를 이룬 것이다.

세계 3대 투자가(나머지 둘은 워런 버핏과 조지 소로스)로 불리는 짐 로저스도 위기에 강한 투자가이다. 1970년대에는 모두가 열광하는 인기 주식들(Nifity Fifty; 당시 기관투자자 선호 50개 종목, 현시점의 FAANG과 비슷한 느낌)을 공매도해서 돈을 벌고, 2000년대 초반에는 인기가 없던 중국주식(2008년 대폭락 전까지는 잘 올랐음)을 매수해서 또 큰 돈을 벌었다.

이렇게 선경지명 있는 짐 로저스가 지옥의 경제 묵시록 같은 말을 최근 했다.

​수년 안에 최악의 베어마켓(bear market: 하락장)이 지구촌을 덮칠 것이다. 베어마켓은 역사적으로 늘 존재했지만, 이번에 닥칠 위기는 내 생애 최악의 사태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과도한 부채로 인해 전 세계 크고 작은 기업들이 줄도산할 것이다. 파산하는 개인의 수는 헤아리기도 어려울 것이다. 각국의 주식시장은 일제히 폭락하고 곳곳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올 것이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까지 얽히면 어마어마한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한국은 역동적인 내일이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불어닥칠 글로벌 경제 한파에서 무풍지대란 없다. 한국의 기업 경영자나 정부가 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지금껏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걱정하라. –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page 7

짐 로저스 생애 최악이 될 정도라면 종합주가지수가 반 토막보다 더 떨어지는 장세를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대폭락 중에도 기회가 생길 거라고 말하고 있다. 떡폭락 하더라도 바닥만 잘 잡으면 미래에셋 회장처럼 될 수 있다(이론상으로는). 로저스가 주목하는 ‘위기에 기회가 되는’ 시장에는 놀랍게도 ‘북한’이 있다.

가령 북한 사람들은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교육열이 높고 가정교육을 철저히 시킨다. 열심히 일 하고 저금한다. 이는 경제적 발전에 필요한 조건이다. 중국과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과 독일도 역사상 이와 비슷한 시기를 경험했다. 지금은 북한이 그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page 58

그는 책 중간중간에서 ‘아시아의 세기’를 말한다. 그가 주목하는 아시아 국가는 북한과 중국이다. 반면 일본과 인도의 미래는 아주 암울하게 생각한다. 주된 논거는 ‘출산율’과 ‘교육열’, ‘근면한 국민성’이다.

로저스는 일본의 근면한 국민성과 문화 발전을 높이 평가하지만, 노령화와 이민자 억제 정책, 정부부채 때문에 미래를 안 좋게 보고 있고 있다. 그냥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국가가 파탄날 정도로 암울하기 때문에, AK-47 자동소총을 미리 사둘 걸 권유할 정도이다(실제로 책에서 그렇게 말함).

인도는 인구가 많고 다채로운 나라이긴 하지만, 다문화 다종교가 국가 통합을 어렵게 하고, 결국 국가 전체를 경제 발전에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거라 보고 있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일본, 인도를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평가를 해주었다. 만약 개혁개방이 이루어진다면 그렇게 될거라는 전제조건이 있기는 하다. 로저스는 북한이 1.높은 출산율 2.근면한 국민성과 인민동원능력 3.우리나라와의 경제협력 이라는 세 가지 시너지 효과를 통해 초고속 경제성장을 할 거라고 예측했다.

짐 로저스는 미국 앨라배마 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터 땅콩 장사를 하고, 빈 병을 주워 팔았다고 한다. 장사꾼, 투자자(혹은 투기꾼)로서의 야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리고 청년기에는 명문 예일대학교에 진학해서 역사를 배우고,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가서 철학·정치·경제학도 전공했다. 상인적 소양에 역사와 경제를 아우르는 학자적 소양까지 더한 것이다. 그런 그가 말하는 미래 예측은 서구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통념에서 많이 벗어나 보인다(자유한국당이 들으면 싫어할 것 같음). 하지만 가장 안 일어날 것 같은 일이 일어나곤 하는 주식투자 세계에서는 분명 경청한 만한 고견이라 생각한다.

역사책 추천 – 미야자키 이치사다 <중국 통사>

중세 이탈리아 출신 군인으로 신성로마제국 군대 총사령관을 지냈던 라이몬도 몬테쿠콜리(Raimondo Montecuccoli)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전쟁을 수행하려면, 첫째 필요한 건 돈이다. 두번째로도 돈이 필요하다. 세번째로도 역시나 돈이 필요하다.
 
To wage war, you need first of all money; second, you need money, and third, you also need money.

사령관으로서 야전에 나가 돈 없어서 죽을 고생을 많이하고 이 말을 남긴게 아닐까.

한편 고대 중국의 군사전략가 손자(孫子)도 돈과 전쟁의 관계를 생각하고 아래와 같이 말했다.
(출처 孫子兵法 第二 作戰篇)

손자가 말하기를, 무릇 군사를 쓰는 법은, 치거 1,000사(駟), 혁거 1,000승(乘), 대갑 10만명에, 천리의 군량을 먹이려면, 안팎의 비용, 빈객의 쓰는 것, 교칠의 재료, 거갑의 받듦이 하루에 천금의 비용이 든다. 이러한 연후에 10만 명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다.
 
孫子曰 凡用兵之法, 馳車千駟 革車千乘
帶甲十萬 千里饋糧, 則內外之費 賓客之用
膠漆之材 車甲之奉, 日費千金 然後十萬之師車矣
 
오랫동안 군대가 전선에 있으면 국가재정이 부족해진다. 병사들의 예리함이 꺾어져 전투력이 약화되면, 다른 나라의 통치자가 그 폐단을 노리고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지혜로운 자라도 그 뒷일을 수습할 수 없다.
 
久暴師則國用不足
夫 鈍兵挫銳 屈力殫貨, 則諸候乘其弊而起
雖有智者 不能善其後矣

장기전으로 돈, 재정이 부족해지면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일을 수습 못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한신(韓信)같이 천재적 지휘관이 있어도 병참이 절망적이고, 병사들이 밥을 굶으면 전쟁에서 이길 도리가 없어진다.

​삼국지연의 소설을 읽어보면 왕후장상들의 성격에 대한 묘사와 책략과 책략이 부딪쳐서 거기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상황이 계속 나온다. 하지만 승패를 이미 결정해주는 경제력과 그걸 지탱하는 농업, 또 그걸 분배하는 상업와 운송업 체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었다. 제갈량이 기산에 둔전을 만들고 목우유마로 곡식 운송을 편하게 했다는 부분만 생각난다.

​일본 교토대 교수였던 미야자키 이치사다(1901~1995년)가 저술한 이 <중국통사> 책은 소설과 달리, 아주 실증적으로 전쟁과 역사를 논해서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돈으로 기업을 사고 움직이는 기업인이 읽어도 도움될 만한 내용이 많이 있다. 먼저 아래의 중국 명나라 말기 이자성 반란을 서술한 부분을 읽어보자.

​섬서는 고대에는 국도(國都)가 위치하고 생산력이 가장 높은 비옥한 땅으로 알려졌는데, 시대가 내려옴과 함께 기후가 건조해져 자주 가뭄의 피해를 입는 척박한 땅이 되어 갔다. 그렇지만 군사상의 요충지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어서 명이 중시하는 북방의 9개 변진 중 3개 변진이 섬서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명의 북방 방위는 중점이 동부로 편중되기 쉽고 서방은 등한시 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 방면은 교통이 불편하므로 중앙에서 군수품을 운반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에 은을 급료로 주어 현지에서 조달하게 했는데, 은은 상관에 의해 횡령되기 쉽고 또 토지가 척박하기 때문에 식량을 입수하기 곤란했다. 마침내 군대가 기아를 호소해 폭동 반란을 일으키는 사태가 잇따랐지만 명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유효한 수단을 쓰지 못하는 가운데 반란은 더욱더 확대되었다. 이 반란군 토벌에 나선 정부군 또한 급양(병사나 말에 공급되는 물자)이 나쁜 데 반발해 반란을 일으킨다는 결과가 되었다.
​ 
…그러므로 이자성이나 장헌충은 여러 번 패주해 포로가 될 뻔했는데, 비록 이때 그들이 포살되었다 해도 그것으로 반란이 수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조의 말기적 증상으로 일어나는 반란은 개인 한두명이 기도한 것이 아니며 굶주린 민중이나 군대가 사회적 필연의 결과로서 일으킨 반란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내란 발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화폐 경제 상황이나, 국가 통치 시스템의 붕괴, 그에 따라 반란 토벌군이 반란군에 더해지는 웃긴 과정을 조리있게 설명했다. 아래의 태평천국 난에 대한 서술도 읽어보자.

​상해 개항에 의해 중국 내지의 물자가 종래보다도 단거리로 외국선에 적재되게 되면 그만큼 중국의 노동력이 남아돌게 되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이치인 동시에, 외국 물자가 중국 내지로 운반되는 경로 또한 큰 변동을 겪어 종래 번영하고 있던 간선이 급속히 한산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피해를 입은 것이 광동으로부터 광서를 거치고 호남에서 양자강으로 나오는 경로이다. 특히 이 경로는 광동에 양륙된 아편이 중국 내지로 운반되는 주요 도로가 되어 있었다. 아편은 값비싼 상품이므로 보통은 교통이 불편한 이 궁벽한 산길이 관헌의 눈을 피해 빠져나가는 데 도리어 알맞았던 것이다.
​ 
그런데 다른 무역 상품과 마찬가지로 아편이 양륙된 항구가 광동으로부터 상해로 이동하자 거기서 일어난 것이 광서 호남 루트 아편 상인의 실업이다. 이것이 중대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은 원래 밀매 상인이란 것의 본질은 실업자가 많고, 선의로 받아들이면 실업보험금의 수령자였다고 할 수도 있는데, 이번에 그들이 실업했다는 것은 실업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업자가 또 실업했다면 그들은 대체 어디로 가면 좋을까. 폭동, 반란을 일으키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이리하여 일어난 것이 태평천국이었다.

보통의 역사책은 태평천국군의 주축은 농민층이고, 서방에서 들어온 기독교를 지배이념으로 삼은 이색적 집단이었다고들 묘사한다. 하지만 태평천국의 역사적 진실을 논하는 데 있어서 ‘농민층’, ‘기독교’ 라는 요소보다는 인민들을 반란군이 되도록 내몬 당시 경제 상황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종교나 이념 결집 없이도 반란을 일으킬 수 있지만, 돈(경제력/물자)을 결집시키지 못하면 전쟁도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편전쟁으로 인한 상해 개항 – 내륙 물자 운송 경로의 대변화 – 호남 아편 밀매 운송업의 몰락 – 반란군 집결의 서막 식으로 실증적인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역사책을 읽으며 과거 사건을 현재의 경제 정치 상황에 대입해서 운명을 예측해보면 아주 재미있다. 아래 소개하는 책 속 논평을 읽으면 북한의 미래에 대한 시사점이 되는 것 같아 좋았다. 난세는 불경기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이 인상깊다. 아무튼 지금까지 읽었던 중국역사책 중에 최고로 꼽을 수 있는 미야자키 이치사다 교수님의 <중국통사> 책이었다.

72 page
그들 중 다수는 우선 지방관에 임명된다. 그런데 지방관의 성적은 무엇보다도 조세 징수의 실적에 의해 평가된다. 여기에 신관료는 불문곡직 먼저 경제 재정의 실태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 성적은 중앙에 보고되고 성적의 여하에 따라 승진의 늦고 빠름이 결정되고 만다.
관료의 총수인 천자 또한 한가롭지는 않다. 조정의 대신과 함께 관료 인사의 진퇴나 국고 재정의 충실이나 결손에 노심초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관료와 군대의 봉급 지불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군대의 급여가 부도가 나는 사태에 이르면 천자는 그 지위를 보존할 수가 없다. 사실 그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었으니, 명이 멸망한 경우가 그 좋은 예이다.
​ 
83 page
…명군에 의해 잘 다스려지는 치세가 생기고 암군에 의해 어지러운 난세가 시작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인 것처럼 생각되어 왔지만, 실은 치세란 것은 호경기, 난세란 것은 불경기의 다른 이름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호경기 불경기는 그때그때의 군주 개인의 정책에 의해 좌우되기가 어려우므로 예전부터의 군주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는 그다지 타당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모사세 XVI – 장난감

할머니는 길고 긴 세월을 지나 다시 아기가 되어 있었다. 윗옷은 내복만 입고 아랫도리에는 기저기를 차고 이부자리에 누워 있었다. 요 옆에는 외숙모가 가져져다 놓은 아기 장난감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원색의 플라스틱 블록을 줄로 연결해 놓은 것도, 큰 곤봉같이 생긴 딸랑이도 있었다. 외숙모는 할머니 돌보는 것 외에 다른 가사일도 많이 해야 했는데, 할머니가 잠에서 깨서 칭얼거리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난감들을 아이가 있는 다른 집에서 얻어다 놓았는데, 다행히 곧잘 이것들을 가지고 노신다고 했다.

이불 속에 모로 누운 할머니는 어디가 불편한지 주름과 검버섯 가득한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외숙모는 할머니가 보통은 찡그린 표정이지만 어쩔 때는 맑은 눈빛을 보일 때도 있다면서 얘기를 해 주었다. 거실에 비스듬한 저녁 햇빛이 들어오던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혼자 똑바로 앉아서 멀쩡한 표정으로 벽에 걸린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외숙모는 신기해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 “할망, 도 닦안?” 그러자 할머니는 예전의 싹싹한 목소리로 “아니구다. 고마 앉아 있는 거구다.” 라고 대답하셨다고(정인은 밝고 시원했던 할머니의 말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정인은 할머니에게 밥을 먹여 드리겠다고 말했다. 외숙모는 할머니 보러 온 사람 중에 그런 거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없었는데 기특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인은 어머니가 미리 꼭 그렇게 하라고 해서 자원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수저로 떠 주는 음식을 한참을 입안에 물고 있었고 국물과 밥 알을 입가로 줄줄 흘렸다. 한 그릇을 떠드렸지만 반 그릇 정도 밖에 목으로 넘기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할머니는 다시 장난감이 널려 있는 이부자리로 돌아갔고 잠에 드셨다. 외숙모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정인도 사랑방에 가서 잠을 좀 자라고 했다. 정인은 푹신한 침대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어둡고 높고 넓은 천장을 보고 누웠는데 입술이 굳어지고, 따뜻한 눈물이 새어나와 관자놀이 방향으로 흘러내려가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