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즈구스, 성경으로 사람 치기 – 베르세르크 쉽게 설명 I
미우라 켄타로(三浦建太郎)작의 베르세르크(Berserk,ベルセルク)는 1990년 가을 처음 단행본 1권이 발행된 이래 24년 넘게 37권까지 진행된 중세 판타지 풍의 대작이다.
주인공인 가츠는 전쟁 중 집단 교수형으로 처형된 여인에게서 태어났다. 죽은 어머니의 자궁 밑으로 떨어져 울고 있는 아기를 지나가던 용병부대가 발견하고 부대원 중 한 명의 부인이었던 여자가 불쌍히 여겨 데려가 키운다. 가츠는 양모와 양부를 따라 전쟁터를 전전하며 성장하고 자연스럽게 용병단의 병사가 된다. 가츠는 후에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그리피스가 이끄는 용병단인 ‘매의 단’과 맞닥뜨리는데 그리피스와 일대일 대결에서 패배하고 그의 부하가 된다.
그리피스는 평민 출신으로 여자보다 아름다운 외모에 무적의 검술과 지략을 지닌 남자이다. 그는 패왕의 알이라고 불리는 ‘진홍의 베헤리트’를 가지고 있는데 이 물체는 눈코입이 달려있는 계란처럼 생겼다. 베르세르크의 세계에는 현세(現世)와 연결되는 유계(幽界)가 있고 이곳에는 고드핸드(God Hand)라고 불리는 마왕과 같은 존재들이 있다. 진홍의 베헤리트는 인과율(因果律,causality)에 따라 신의 의지를 받들 인간에게 주어지고 그 소유자를 216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일식의 날 고드핸드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그런데 베헤리트의 힘을 얻어 고드핸드가 되려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리피스는 그 때까지 자신의 부하이자 동료로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했던 매의 단 단원 들을 모두 악마인 사도(apostle)의 제물로 바친다. 이리하여 그리피스는 천 년에 한 번 완성되는 5번째이자 마지막인 고드핸드 페무토(Femto)가 된다.
페무토가 된 그리피스는 검은 매 형상의 갑주를 두른 악마 같은 모습인데, 그는 가츠가 보는 앞에서 매의 단의 단원이자 가츠의 연인이었던 캐스커를 윤간한다. 일식 의식때 제물로 바쳐진 인간은 목에 표적이 새겨지고 모두 사도들에게 잡아 먹히는데 가츠는 한 쪽 팔을 잃고 죽음 직전까지 가지만 정체불명의 해골기사에 의해 캐스커와 함께 구출된다. 해골기사는 가츠와 그리피스의 관계와 비슷하게 첫 번째 고드핸드인 보이드(Void,ボイド)에게 희생된 후 복수를 위해 떠돌던 기사였다.
가츠는 그리피스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고드핸드의 부하 격인 사도들을 찾아 죽이면서 그의 행적을 쫓는다. 가츠는 그리피스가 유계에서 현세로 강림하게 되는 장소인 ‘단죄의 탑’ 근처에서 법왕청에서 파견된 성철쇄 기사단과 만나는데 기사단의 사제 역할을 하는 ‘모즈구스’가 이때 등장한다.
미우라 켄타로는 기독교 성서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작품을 구성했다고 한다. 인간이었다가 고드핸드가 되고 그러다 현세로 강림하는 그리피스는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를 합친 이미지를 지녔다. 사제 모즈구스는 중세의 잔인한 이단 신문관을 연상시키는데 이제껏 봐온 만화의 등장인물 중 가장 독특한 표정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성격 그대로 아주 네모난 얼굴을 가졌다.
표정은 석상 같고 뭘 해도 신의 이름을 얘기한다.
평온해보이지만 실제로는 멀쩡한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 몰살시킨적이 많다.
거기에 원한을 품고 그를 습격한 무리를 성철쇄기사단과
사형집행인처럼 생긴 자기 부하들의 도움으로 몽땅 묶어놓고 아래처럼 말을 한다.
해맑은 미소가 어울려 보이기도 하지만…
모즈구스가 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혹은 자기 뜻을 거스르는 자)를 만나면
어떻게 돌변하는지는 아래를 보면 알 수 있다.
모아이 석상 같던 얼굴에 갑자기 핏줄이 곤두서고 네모난 이빨이 다 보인다.
모즈구스는 성경책(실제 기독교 성서가 아닌 작품 속 종교의 성전)을 휘둘러
불쌍한 남자의 두개골을 함몰 시켜 버린다.
성경책으로 사람을 쳐서 죽이는 모즈구스의 모습은
종교를 징벌 도구로 쓰는 사람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이후 모즈구스는 ‘단죄의 탑’ 주위에 몰려든 난민들을 상대로
더욱더 막장 이단 심문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비트코인의 성공 이유 – 암호화폐 쉽게 설명
최근의 비트코인 가격 폭등 사태를 바라보며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2년전 시작한 중국 주식 투자에서 경험했듯이, 타이밍을 일찍 잡지 못하면 돈을 벌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미 놓친 것 같은 대박을 생각하며 혼자 울적해졌다. 하지만…
상기 그래프는 톰슨-로이터, 블룸버그 등 세계 유수의 금융정보 분석 기관들이, 지난 40년간 일어났던 전지구적 금융자산 버블을 수치화 해서 내놓은 것이다. 이걸 보니 비트코인이 단시간에 얼마나 올랐는지 감이 잘 온다.
2015년 말에 투자해서 지금 뛰어 내렸으면 집도 차도 회사도 같이 달라졌을 텐데.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암호화폐를 공부하며 투자 진입시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블록체인 화폐가 단지 한 번 떴던 투기 수단으로서 사라져 버릴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관리 주체가 없는 송금 – 화폐의 저비용 전지구적 이체
실물 화폐도, 예금이나 증권도 관리 기관이 필요하다. 국립은행, 민간은행, 민간금융투자회사 등이다. 이들이 우리나라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0%가량이나 된다.
MK 증권 : 금융업 올 시총 폭풍성장…은행株선 하나금융 증가율 1위
이렇게 큰 기관들이 빌딩을 임대하고, 설비를 갖추고, 직원들 월급 주고, 나라에 세금을 내고 하는데는 천문학적 돈이 들어간다.
암호화폐의 획기적인 점은 제삼의 관리 주체 없이, 즉 돈 많이 드는 기구 없이 낮은 비용으로 전세계 개인과 개인이 자산 거래를 하는 전대미문의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비트코인은 특정 국가에 상장된 특정 기업을 모체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 창시자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인류 역사상 집도 사고 땅도 살 수 있는 화폐가 실체 없는 민간인으로부터 비롯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황당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발명한 수단이 개인 스마트 기기가 지배하는 시대에 맞는 안전하면서도 획기적인 컨셉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2. 블록체인 (block chain) – 화폐의 신용성 보증
만일 자신이 찍힌 몰카 야동이 <소라넷> 같은 곳을 통해 전국에 유통되고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면, 생각만으로 모공이 송연해진다. 인터넷은 익명으로 야동을 포함한 수 많은 데이터를 무한정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집단 공유의 가능성을 전자화폐의 신용성을 위해 쓴다면 어떨지.
블록체인은 인터넷을 통해 기록되는 공공 거래 장부이다. 암호화폐의 전체 거래 리스트를 끊임없이 업데이트 하게 되는데, 각각의 기본 단위인 ‘분산 노드’의 기록은 독립적으로, 거의 실시간으로 개정되기 때문에 거래 내역을 조작해서 이익을 챙기려 하는 해커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해커 집단이라도 전세계 PC와 스마트 기기에 퍼져 있는 특정 야동을 모두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블록체인은 수많은 개인이 보유한 다른 종류 스마트 기기의 각기 다른 보안 암호와 방화벽에 의해 보호되고 있고, 한 곳의 노드에서 에러가 발생하거나 해커 공격이 들어와도, 다른 다수 노드의 데이터를 통해 정보 신뢰성(전체 장부의 거래 기록)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조작이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먼 미래에 대규모 조작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를 지닌 해커집단이 등장할 지라도, 조작자 보다는 정직한 채굴자가 되는 편이 그들의 이익에 더 부합하게 될 확률이 높다.
3. 채굴 (mining) – 화폐의 가치하락 방지
비트코인을 얻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이다.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국가 공인 화폐를 통해 구매하거나, 비트코인 거래 샵에서 현물과 교환하거나, 고성능 컴퓨터를 돌려 채굴(mining) 하는 것이다. 작업증명이라고도 불리는 ‘채굴’은 컴퓨터를 통해 복잡한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다. 수학문제의 난이도는 채굴량이 증가할 수록 계속 높아지고 있다. 장난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 점점 발행량이 줄고 자연스레 화폐 가치하락(인플레이션)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거품론을 주장하는 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비트코인은 실체가 없는 게임머니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표적 실물 화폐인 미국 달러화도 1971년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로는 국립은행이 양적완화가 필요하면 더 찍어내는 상징적 신용 담보물로 기능하고 있다. 금본위제가 아예 없었던 우리나라 원화는 더더욱 상징적인 종이 화폐이다. 국가가 존립하면 그 가치가 인정되고, 전쟁으로 망하게 되면 가치가 다시 종이 가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관리주체 없이, 인터넷 서버만으로 돌아가는 비트코인은 어떤 가치 폭락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까?
4. 암호화폐 경쟁자들 – 비트코인의 운명을 결정하리라
이더리움(Ethereum)은 비트코인에 자극을 받아 탄생한 야심찬 프로젝트이다. 똑같이 블록체인에 기반하지만 화폐(코인)의 거래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전자 계약 혹은 거래 내역을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프로토콜로도 기능한다. 이더리움이 대중화된다면, 개인이 계약 내용을 정하고 발행한 채권을 P2P로 거래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대형 은행이나 금융투자기관이 들으면 싫어할 미래이다. 그래서인지 JP 모건,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의 대기업들까지 이더리움 기반의 소프트웨어 네트워크에 테스트 협력사로 참여하여 실용성을 검증하고 있다. 막을 수 없는 대세로 판단된다면 그들로서도 지분참여를 해서 이익을 지키려 할 것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신개념이 발명되었으니 이더리움 이외에도 다른 무수한 경쟁자들이 등장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된다. 이들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암호화폐의 양적 팽창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생태계가 몰락할지, 아니면 다른 돌파구를 찾을지는 오직 시간이 지나보아야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일본 동경대 교수이자 대장성 관료 출신의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作 <가상통화 혁명>의 책구절을 옮겨보겠다. 2014년이라는 이른 시간(비트코인 시세 폭등 1년전)에 시대흐름에 민감한 사람은 이미 이런 선경지명을 가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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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은 비트코인이 중앙은행의 관리를 받지 않으므로 통화일 수 없다고 말한다. 또 금 같은 물적 자산의 보증이 업기에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비트코인은 지금까지 인류가 축적해온 통화의 상식을 거스르는 존재이며, 따라서 언젠가는 파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의 보증이나 중앙은행의 관리가 통화의 필요조건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예금통화는 중세 이탈리아의 환전상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때 이미 통화는 금화가 아닌 상태였다. 물건에서 정보로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17세기까지는 중앙은행이 없는 통화 제도가 계속되었다.
…IT 혁명 자체가 회귀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의 세계, 즉 소규모 독립 자영업자의 경제로 회귀하는 움직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대의 위대한 순환이 또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그때까지의 가내수공업을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바꿔놓았다. 동력을 사용해 기계를 움직이게 되면서 공장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다양한 산업에서 단일 기업이 원료 조달부터 최종 제품의 제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을 직접 하는 수직통합 방식이 채용되어 대기업이 경제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IT는 원칙적으로 이런 움직임을 역전시킬 수 있다. PC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작은 조직이나 개인도 기존의 대형 컴퓨터와 같은(혹은 그것을 능가하는) 계산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인터넷이 통신 비용을 크게 줄여준 덕분에 수직통합을 분해해 수평분업 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집중에서 분산으로 이행한다는 의미에서 과거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목적은 낡은 경제로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뒷받침된 분권 경제의 구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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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통화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동방 박사의 방문’을 떠올렸다. 마태복음(2장 1~13절)을 보면 예수의 탄생을 안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으며 베들레헴에 도착해 세 가지 선물을 예수에게 바쳤다. 선물 중 두 개는 약이었고 하나는 황금이었다.
나는 왜 가상통화에서 ‘동방 박사의 방문’을 떠올렸을까? 그 이유는 가상통화가 IT 혁명의 세 번째 선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선물은 개인용 컴퓨터이고, 두 번째 선물은 인터넷이다. 이 두 가지는 이미 세계를 크게 바꿔놓았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경제활동에는 항상 송금이라는 행위가 동반되는데, 이 송금과 관련해 기존의 체제가 계속되는 한 앞에서 이야기한 ‘산업혁명 이전으로 회귀’는 완전한 형태로 실현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컴퓨터 기술의 결정체인 새로운 통화가 세계를 바꾸려 하고 있다. 이 혁명이 성공한다면 현대의 동방 박사는 방문한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2014년 5월 노구치 유키오
피를 흘리지 않고 사는 꿈 – 채식주의자, 한강
도덕이나 규범도 힘의 균형 하에 작동한다. 힘 차이가 너무 나면 도덕은 무시되고, 힘센 쪽이 규범을 넘어 상대를 폭행한다. 재벌이 술에 취해 변호사를 때리고, 마카다미아 때문에 움직이는 비행기를 세우고 사무장을 내리게해도 처벌 받지 않는다. 만약 재벌 회사가 망해서 힘의 균형이 맞춰지면 그때는 제대로된 벌이 부과된다. 만약 힘의 차이가 더 현격한 사람과 동물의 관계라면 어떨까? 이 경우 도덕이라는 것은 완전히 한 쪽이 정한다. 철창 속에 사육하다가 필요할 때 꺼내 죽이고, 피와 살을 먹기 편하게 포장한다. 맛있는 제품이라고 방송국 광고도 한다. 고기를 먹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되지만, 분명 잔인하고 이기적이면서, 천연덕스럽게 처리되고 있다.
사회에서 인간 관계는 정도가 다를 뿐 명령과 복종, 폭력과 피폭력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 쪽은 이용하고, 다른 한 쪽은 이용당한다. 즉 인간 동물 관계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이런 현상들에 민감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폭력이 수반된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주의자’의 길로 들어가기로 한다. 단순히 건강을 위한 게 아니고 ‘꿈’에 의해 살아가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꿈 속에서 그녀는 육식하는 동물이 아니라 평화로운 식물이 되었고, 그래서 깨어있는 일상에서도 속옷을 안 입고, 고기도 안 먹고, 광합성 하도록 햇볕을 쬐며 살아간다. 하루는 영혜 부부가 남편 회사의 사장이 주최한 부부동반 모임에 가게 되는데 아래와 같은 이상한 반응을 얻고 만다(당연하게도).
아까부터 아내의 젖가슴을 흘끔거리고 있던 전무 부인이 말했다. 마침내 그녀의 화살은 아내에게 직접 날아왔다.
“채식을 하는 이유가 어떤 건가요? 건강 때문에…… 아니면 종교적인 거예요?”
“아니요.”
아내는 이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전혀 의식하지 않은 듯, 태연하고 조용하게 입을 떼었다. 불현듯 소름이 끼쳤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꿈을 꿨어요.”
나는 재빨리 아내의 말끝을 덮었다.
“집사람은 오랫동안 위장병을 앓았어요. 그래서 숙면을 취하지 못했죠. 한의사의 충고대로 육식을 끊은 뒤 많이 좋아졌습니다.”
…정작 아내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내가 나와의 잠자리를 의도적으로 계속 피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 그녀는 숫제 청바지 차림으로 잤다 – 우리는 아직 겉보기에 정상적인 부부였다. 하루가 다르게 그녀가 여위어가고 있다는 것, 새벽에 내가 알람시계를 더듬어 끄고 몸을 일으켜보면 어둠 속에서 눈을 치켜뜬 그녀가 꼿꼿한 자세로 누워 있다는 것이 예전과 다를 뿐이었다. 회사에서 주선한 외식 후 사람들은 한동안 나를 미심쩍게 대했으나, 내가 성사시킨 프로젝트가 괄목할 만한 수입을 거둬내자 모든 것이 묻혀지는 듯했다.
영혜는 육식을 거부한 이래로 햇빛이나 나무나 물과 비슷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꿈’을 통해 그런 존재로 접어드는 건데, 비정한 세상에서 상처받은 순수한 영혼이 꿈으로 도피했다고 볼 수 있다. 영혜는 자기 환상을 남편 회사 높은 사람들에게도 천연덕스럽게 얘기한다. 꿈에 완전히 동화되어 버려서 그렇다. 그녀의 피를 흘리지 않고 사는 꿈 은 <채식주의자> 첫 번째 단편 말미에서 병원 분수대(물) 옆에서 상의를 모두 벗고(햇빛 쬐려고) 앉아 있는걸로 표현된다. 정신병 아니면 노출증 환자의 행동이라고 보였지만, 스스로에게는 광합성을 하고 사는 생명체 ‘나무’가 된 것이었다.
영혜와 다르게 현실적이었던 아버지, 어머니, 남편 등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경악해서 그녀를 정상적으로 돌려놓으려 한다. 영혜의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군인이었고, 어머니도 가족을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아래 어머니의 대사를 읽어보자.
네 꼴을 봐라. 지금. 네가 고기를 안 먹으면, 세상사람들이 널 죄다 잡아먹는 거다. 거울 좀 봐라, 네 얼굴이 어떤가 보란 말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영혜는 ‘약육’을 거부하고 있으니 세계에 남아있을 수가 없다. 덕분에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망가진 가전제품이 버려지는 것처럼”(작품 속 표현) 이혼 당한다. 그리고 언니인 인혜(지우 엄마)의 집에 얹혀 살기 시작한다. 인혜의 남편, 즉 형부는 채식주의자 영혜 주위에서 유일하게 현실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색다른 심미안을 가졌는데, 다른 사람들은 보통 변태성향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몽상적 예술 작가로서, 성실하게 가게를 운영하는 아내 인혜 덕에 먹고 살고 있다. 작품 속에서 그는 영혜의 남편과 정확히 대비되는 성격으로 나타난다. 아래는 이 남자가 이전 동서를 회상하며 한 생각이다.
그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제 동서라고 부를 필요도 없게 된 그녀의 옛 남편의 얼굴을 떠올렸다.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가치 외의 어떤 것도 믿지 않는 듯 건조한 얼굴, 상투적이지 않은 어떤 말도 뱉어본 적 없을 속된 입술이 그녀의 몸을 탐했을 거란 상상만으로 그는 일종의 수치를 느꼈다.
상기 회상에서도 느껴지듯, 영혜 형부는 일상의 틀을 벗어난, 속되지 않은 예술 작품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나이들어 배 나온 아저씨가 되도록 아무에게도 작품을 인정받지 못해 우울해 했다. 어느날 그런 울적을 아득히 날려버릴 흥분을 찾게 되는데, 그 대상이 처제 영혜의 엉덩이에 있는 ‘몽고반점’ 이었다. 우연히 자기 아내에게 처제가 아직도 몽고반점을 지니고 있다는 걸 들은 순간부터 그는 광폭한 열망을 뿜게 된다. 자해를 하고 정신병원 치료를 받고, 이혼 당하고 나서 집에 얹혀 살게된 처제를 주인공으로 어떤 표현 예술 비디오를 찍기로 했던 것이다. 채식주의자 영혜는 이 뜻밖의 제안에 쉽게 응한다.
“옷을 벗고, 몸에 물감칠을 할 거야.”
여전히 조용한 시선으로 그를 건너다보며 그녀는 입을 떼었다.
“……그리구요?”
“그러고 있으면 돼. 촬영이 끝날 때까지.”
“물감칠을…… 몸에 한다구요?”
“꽃을 그릴 거야.”
그녀의 눈이 일순 흔들린 것 같았다. 잘못 본 것인지도 몰랐다.
영혜 형부의 꿈은 리비도와 결합된 예술 창조 욕구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영혜 혼자의 나체 예술 비디오를 찍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도 꽃무늬 페인팅을 하고 처제와 함께 성행위를 하는 동영상을 촬영하게 된다. 당연히 아내에게는 사실을 숨기고 예술 작업하느라 외박한다고 둘러대었다. 퇴폐에 패륜이 결합된 행위 예술인 셈이다. 웃기고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작품의 중요한 테마를 품고 있는 것 같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리비도 즉 성욕은 모든 인간 에너지의 근본이다. 인간이 성욕만을 뿜고 행동한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고, 이 본능적 에너지를 고차원적 창조욕이나 이타행위로 전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리비도도 에너지이므로 에너지보존법칙(열역학 제1법칙)을 따른다.
영혜의 형부는 탈모와 복부 비만을 멋쩍어하는 중년 아저씨이다. 아내 인혜와 벌써 두 달 넘게 부부관계를 가지지 않고 있고, 따로 성매매를 하는 것도 아니니 에너지는 다른 곳으로 흘러가야만 했다. 그가 그냥 처제와 불륜관계를 가졌다면 훨씬 이해하기 쉬운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로서(인간 본연 에너지를 창조로 푸는) 그는 몽고반점이라는 미학적 상징에 창조 에너지를 쏟고 싶어졌다.
작품 속에서 몽고반점은 식물적이고 원초적인 이미지로 묘사되어 있다. 인간의 몸에 있지만 태고적 광합성의 흔적을 연상시키는 옅은 초록색의 반점이었다. 그는 성인이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처제 몸에 바디페인팅을 하면서 아래와 같이 생각한다.
붓이 스칠 때마다 간지러운 듯 미세히 떨리는 그녀의 육체를 느끼며 그는 전율했다. 그것은 단순한 성욕이 아니라, 무언가 근원을 건드리는, 계속해서 수십만 볼트의 전류에 감전되는 듯한 감동이었다. … 마침내 오른쪽 허벅지를 지나 가느다란 발목까지 이어지는 긴 줄기와 잎사귀를 완성했을 때 그의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형부는 원초적 성욕도 아닌, 그렇다고 세속적인 욕구도 아닌 근원적인 에너지에 다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나긴 세월 제대로 된 예술을 만들지 못한 좌절, 깊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내와의 매일의 생활 그리고 가정에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는 죄책감 등 깊은 우울을 녹여 버리는 행위였다. 그의 예술 작업 대상 영혜는 형부의 의도에 잘 따라온다. 그녀는 자꾸만 자기가 나무가 되는 ‘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꽃이 몸에 그려져 있으면 그 세계에서 벗어나 본연의 ‘동물’로 돌아온 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형부와의 실제 남녀 교합을 동반한 예술 작업에 거리낌 없이 몰입한다. 이 둘은 마지막에 이르러서 인혜에게 모든 작업 과정과 결말을 들키게 되는데 아래와 같은 상황이다. 교접을 마친 영혜는 다시 나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비워진 존재가 되었다.
“구급대를 불러놨어요.”
“뭐라구?”
아내는 희끗하게 질린 얼굴로, 다가오는 그를 피해 뒤로 물러섰다.
“영혜도, 당신도 치료가 필요하잖아요.”
그녀의 말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수초의 시간이 걸렸다.
“….나한테 정신병원에 들어가라는 거야?”
그때 매트리스 위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도, 아내도 숨을 멈췄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가 시트를 걷어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그는 보았다.
“나쁜 새끼.”
아내는 낮은 소리로, 눈물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아직 정신도 성치 않은 애를…… 저런 애를.”
아내의 젖은 입술이 파들거렸다.
그제야 아내가 온 것을 안 듯 처제가 멍한 얼굴로 이편을 건너다보았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시선이었다. 처음으로 그는 그녀의 눈이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이런아이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이 담긴,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눈이었다. 아니, 어쩌면 어린아이도 되기 이전의, 아무것도 눈동자에 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얼굴 홍조 – 레이저 치료 이전에 시도할 것들
현재 얼굴 홍조의 치료에 가장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피부 레이저 기계는 큐테라(Cutera)사의 엑셀V 이다. 이 레이저의 구매가는 1억2천5백만원 정도. 지방의 작은 아파트나 BMW 5시리즈 보다도 비싸다. 하지만 대형 피부 클리닉들은 이 기기를 보유하고 있고, 당연히 시술비는 엄청 비싸다… 그렇다면 얼굴 홍조를 좀더 이성적인 가격에 치료할 방법은 없는가? 당연히 있다.
MAYO Clinic Patient Care & Health Information Rosacea
상기 링크는 존스홉킨스(Johns Hopkins)와 함께 미국 최고의 대학병원으로 평가받는 메이요 클리닉의 얼굴 홍조(Rosacea) 관련 정보 페이지이다. 주요 내용을 부가 설명과 함께 옮겨 보겠다.
★ 얼굴 홍조의 진단
얼굴을 붉게 만드는 주요 질환은 홍조(Rosacea) 말고도 여드름(acne), 건선(psoriasis), 습진(eczema) 혹은 루프스(lupus) 등 많이 있다. 먼저 의사의 시진(視診)으로 정확한 병변 종류를 판명 받는다.
★ 얼굴 홍조의 약물 치료
1. 미르바소 Mirvaso 연고
성분명은 Brimonidine 이다. 교감신경계에 작용하는 알파 항진제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듯이 교감신경이 항진되면 심장이 뛰고, 얼굴이 발개지고, 입이 마르고, 소화가 멈춘다. 부교감신경이 항진되면 그 반대가 된다. Brimonidine은 얼굴 피부의 신경계에 작용해서 혈관을 수축시키고, 따라서 홍조를 완화시킨다. 얼굴에 바른 후 12시간 이내에 효과가 나타나는 장점이 있지만, 효과를 계속 보려면 계속 정기적으로 발라줘야 하는 단점이 있다. 미르바소는 의사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약국 판매가는 3만5천에서 4만원 정도이다.
2. 먹는 항생제
사람 피부에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서식할 수 있고 그래서 유발되는 대표적 질환이 여드름(propionibacterium acne균 감염)이다. 항생제는 피부의 세균을 죽이고, 염증 반응을 줄임으로써 홍조 치료 효과를 낸다. 대표적으로 쓰이는 항생제는 Doxycycline(바이브라마이신)이나 Minocycline(미노씬) 혹은 Metronidazole(후라시닐)이다. 이들 항생제 요법은 성공적인 홍조 치료 케이스로 2017년 추계 대한미용성형레이저학회에서 두 명의 연자 분에 의해 발표된 바 있다. 치료 완료 기간도 2~3주 정도로, 피부 레이저에 비해 큰 비용대비 효과가 있다. 동네 내과/피부과/가정의학과에서 처방 가능하다.
3. 로아큐탄 Isotretinoin
이상의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홍조에는 여드름 치료약으로도 흔히 쓰이는 로아큐탄 정을 써볼 수 있다. 약 성분인 Isotretinoin은 비타민A에서 추출된 것으로, 표피 재생 작용이 있고, 광노화 방지에도 효과적이다. 이 같은 효과 때문에 유명한 항노화 화장품 OBAGI Nu-Derm에도 주요 성분으로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다만 얼굴을 건조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고, 태아 기형을 유발하므로 임신 중에는 절대 복용 금기이다.
★ 홍조를 막는 생활습관
진료실에서 피부 트러블 상담을 해보면 세안을 너무 세게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클렌징폼을 커다랗게 손에 짜놓고, 마구 얼굴을 문질러 기름기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습관은 피부 트러블 발생과 노화에 혁혁한 공을 한다. 메이요클리닉 사이트에서도 얼굴을 너무 닦지 말고(Don’t rub or touch your face too much), 비누 성분이 없는 세안제를 사용하며(Use a nonsoap cleanser), 보습제를 자주 바르라고 하고 있다(and moisturize frequently).
정말 중요한 원칙이다. 필자도 세안시 비누나 클렌징폼을 전혀 안 쓴지 2년이 넘었지만 아무 일도 없고, 피부가 더 좋아진다는 걸 발견하고 있다. 다만 세안 후 보습제를 잘 바르고, 외출시 선크림을 꼭 사용해야 한다.
★ 그렇다면 레이저는 언제?
연고나 약을 먼저 써보고, 생활습관을 모두 바꾼 후 시도해 보면 된다. 요즘 피부 클리닉의 난립으로 레이저 시술 가격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괜찮은 기기로 홍조를 치료하는 데는, 1회 시술에 최소 5만원 이상 비용이 든다. 게다가 1회로 완치되는 경우는 없고 보통 5회 이상 티켓팅을 한다.
성병 필수 검사 종류, 국민건강보험 적용 가격
어느 날 일어나 출근/등교를 준비하며 샤워를 하는데 아랫도리를 보니 허연 농이 흘러내리거나, 사마귀가 울퉁불퉁 튀어 나온게 보인다면 분명 충격에 빠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성병에 걸리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이럴 때는 공포의 바다에서 헤매지 말고 아래와 같은 이성적 생각을 해보자.
★ 성기에서 농이 나와도 성병이 아닌 것이 있다.
대표적으로 세균성질염 Gardnerella와 곰팡이 질환 칸디다질염이다.
Gardnerella vaginalis 라는 세균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염은 아주 심한 비린내가 나는 물 같은 흰색/회색 분비물이 나오는 게 특징이다. 여성 질염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원인은 위험한 성접촉과 무관하다. 후라시닐정(Metronidazole 250mg 2T BID) 7일 복용으로 쉽게 치료된다. 일반 가정의학과/내과/산부인과에서 처방 받을 수 있다.
Candida albicans 라는 곰팡이로 인해 생기는 칸디다질염은 덩어리진 흰색 굳은 우유모양 분비물을 낸다. 역시 성접촉과 무관하게 발생하며, 플루코나졸(Fluconazole 150mg) 경구 단회 요법(임신 중에는 복용 금기)으로 치료된다.
★ 반대로 성병에도 무증상 감염이 많다.
클라미디아감염증(Chlamydial Infections)이 대표적이다. 의료인이 아니라면 질병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매년 질병관리본부 통계에 잡히는 성병의 30~4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전염되어도 여성 대부분(70-80%)에서 무증상 감염을, 남성에서도 50%정도는 무증상 감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자신이 성병 걸린지도 모르고 생활하게 된다.
그러다 배우자/이성친구 어느 쪽에서 증상이 발생하고 큰 사단이 벌어진다. 따라서 스스로 위험한 성접촉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동네 병원을 찾아 먼저 검사부터 받는 게 안전하다. 요즘은 전문 의료검체 위탁 검사기관이 발달해 있어, 의원급에서도 소변/혈액으로 하는 필수 성병 검사를 모두 받을 수 있다.
★ 꼭 받아야 하는 성병 검사의 종류
상기 우리나라 성병 통계 그래프에서 알수 있는 것처럼, 클라미디아감염증과 임질(淋疾, Gonorrhea 세균 감염), 성기단순포진(헤르페스 바이러스 감염, 성기에 둥그런 사마귀), 첨규콘딜롬(HPV 바이러스 감염, 성기에 울퉁불퉁한 사마귀)등은 정말 흔한 성병이어서 이들에 대한 의사 진찰과 전문 검사가 필요하다.
매독이나 에이즈(HIV)는 각각 한 해 전국에서 1,000명 정도의 새 환자가 발생하는 비교적 드문 질환이지만, 진단을 놓치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같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
성병 진단에 대한 기록이 남겨지는 것을 꺼려해서 일부러 국민건강보험 비적용에 의무 기록 없이 검사받기 원하는 환자 분도 많다. 이런 경우 기본 요분석검사(Urinalysis)를 해서 백혈구와 세균뇨 여부를 확인하고, 경험적 항생제를 처방받을 수도 있다(의학적으로 권장하지는 않음). 그러면 건강보험 상병 기록에서 단순 요로감염으로 처리되어, 향후 어떤 방법으로도 성병 여부가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아래에 성병 필수 검사 종류와 보험 가격을 정리해 놓았다.
1. 임질균 배양 검사 (소변 검체)
· 임질의 대표적 증상은 성기 끝에서 고름이 나오는 것.
· 소변 안의 균을 배양해서 확진.
· 항생제감수성검사(어느 항생제가 가장 효과가 있는지 확인)를 할 수 있어 유용.
· 의료보험 단가 13,260 원
2. 클라미디아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검사 (소변 검체)
· 여성에서 많은 경우 무증상이지만, 성교통이나 배뇨통을 일으키기도 함.
· 남성에서는 배뇨통이나 고름 증상을 보임.
· 클라미디아는 배양이 잘 안되는 특수 균주이기 때문에 PCR 검사를 시행.
· 의료보험 단가 32,820 원
3. 매독 정밀 검사
1) RPR 정밀 (혈액 검체)
· 대표적 비트레포네마 검사(Non-Treponemal Test), 매독 감염의 1차 선별 검사
· 의료보험 단가 2,030원
2) TPLA 정밀 (혈액 검체)
· 트레포네마 검사(Treponemal Test)로 민감도와 특이도가 높아 매독의 확정 진단 검사로 쓰임
· 의료보험 단가 9,780 원
4. 에이즈 검사 HIV Ag/Ab (혈액 검체)
·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증에 대한 1차 선별 검사.
· 결과가 양성인 경우 보건환경연구원 제출용 확진검사를 의뢰해야 함.
· 의료보험 단가 11,300 원
이방인, 알베르 카뮈作 – 죽음도 생과 같다면
자기비하는 괴로운 생각 같지만 실은 중독성이 있다. 막장에 몰리면 유머 같은게 생겨서 그렇다. 일본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년~1948년)는 자신의 삶의 궤적을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으로 그렸었다. 소설 제목이 어울리게 가출, 불륜, 알콜중독, 마약중독, 정신병원 폐쇄병동 감금, 중간중간 총 네 차례 자살시도로 이어진 생활을 하다가, 기생과의 동반자살 성공으로 죽었다. 하지만 자기비하의 끝이 우울만은 아니어서, 대표 장편소설 <사양斜陽>에서 주인공 여성의 입을 빌어 “나는 확신한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반면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삶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탐구한 끝에 아래와 같은 문장을 남겼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그는 자살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철학적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안 하기로 했다. 이런 긴 사색의 결과를 <시지프 신화>, <이방인> 등의 저작으로 표현했다. 카뮈는 젊은 나이(만44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영광된 삶을 살다가 교통사로로 사망했다. 이것도 참 부조리 했다. “자살은 아니다” 라는 결론을 위해 그렇게 노력한 사람이 사고로 죽다니.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작가 카뮈의 성격이 투영된 존재로, 내성적이면서 무감각한 태도를 지녔다. 작품 속 대사처럼 세상에는 “아무 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라고 생각해서다. 뫼르소는 양로원에 나가 살던 어머니가 죽은 걸 알고도 슬퍼하지 않는다. 대신 장례식장에 가서 담배를 피고 사탕을 먹다가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그는 이런 행동을 눈길 끌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감정이 그에겐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사회의 이방인으로 되었다.
실은 사람은 모두 의지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아기일 때 부터 엄마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명 자체를 잃기 때문이다. 바닷가 모래 사장의 아기 거북이는 알에서 나오자마자 바닷물 쪽으로 마구 기어간다. 다른 어른 거북이가 “바닷물에 빨리 안들어가면 너는 죽어” 라고 소리쳐 준적도 없지만 아기 거북이는 본능적으로 기어간다. 인간도 비슷하게 아기는 엄마를 찾고 칭얼대도록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그러니 뫼르소가 사회성도, 가족과의 유대도 잊고 이방인이 된 것은 분명 길고 긴 세월 좌절과 배신과 분노와 허무를 견디며 조용히 그렇게 된 걸로 보인다. 비정한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장기간의 스트레스가 흔한 일이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공장에서 찍혀나오듯 사회에 나오고 있다. 그 중 이방인 기질이 특출난 사람은 어떤 사건을 일으키고 신문과 언론에 싸이코패스 범죄자로 낙인찍혀 등장한다. 뫼르소도 살인을 저지르고 사회에서 같은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범죄자와는 뛰어나게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건 그가 진지한 사색을 통해(작가 카뮈처럼) 삶의 방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확립한 사람이고, 그걸 지키느라 자기 목이 잘리는 길로 끌려 갔기 때문이다. 뫼르소에게 있어 생의 이념은 사랑이나 혁명, 잘 먹고 잘 살기 혹은 사회적 성공 같은게 아니었다. 순수한 에너지, 순수한 리비도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게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아래 단락들을 읽어보자. 뫼르소를 사랑했던 동네 여자 마리와의 일화이다.
어제는 토요일이라 약속했던 대로 마리가 찾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몹시 정욕을 느꼈다. 마리가 붉고 흰 줄무늬가 있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가죽 샌들을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탄력 있어 보이는 젖가슴이 완연히 드러나 보였고, 햇볕에 그을어 갈색이 된 얼굴이 꽃처럼 아름다웠다.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요?” 하고 마리는 말했다. 나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정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고 설명을 했다. 게다가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녀 쪽이고, 나는 그저 승낙을 했을 뿐이다. 그러자 마리는, 결혼이란 건 중대한 일이라고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아니야.” 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자기와 같은 관계로 맺어진 다른 여자로부터 같은 청혼이 있었어도 승낙을 했을 것인가. 다만 그것만이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리는 자기가 나를 사랑하는지 어떤지를 생각해 보는 듯했으나, 나는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길이 없었다. 잠시 또 묵묵히 있다가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이상스러운 사람이라고, 아마 그 때문에 자기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내가 싫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더 할 말이 없어 잠자코 있노라니까, 마리는 웃으면서 내 팔을 붙들고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언제든지 그녀가 원한다면 곧 결혼을 하자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장의 제안을 이야기해 주니까, 마리는 파리를 알고 싶다고 했다.
예쁜 여자에게 성욕은 느끼지만 사랑은 느끼지 않는다. 여자가 그에 대해 질문하면 솔직하게는 대답한다. 이상한 것은 마리가 그런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된 것 같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연인을 대할 때 성욕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래서 자신의 사랑이 순수하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강할수록, 길어질 수록 위선스러워진다. 뫼르소가 순수하다고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는 누구나 느끼는(어린이 제외) 가장 강렬한 열망에 편견이 없으며, 사회적 고정 관념에는 무감각하다. 작가 카뮈의 설명에 따르면 뫼르소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이런 것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사람이다.
뫼르소는 우연한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부 검사 및 대중들로부터 한껏 비난 받게 된다. 살인 자체는 사소한 시비 끝에 난 우발로 해석될 수 있었지만, 모친상 때 슬퍼하지 않은 것, 모친상 다음 날 여자랑 잤다는 사실이 같이 어울리면서 완전히 싸이코패스로 찍힌다. 하지만 뫼르소는 항상 “세상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느끼고 내면 에너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죽은 것도, 그 다음 날 여자랑 동침한 것도 스스럼 없이 느꼈었다. 그는 사회를 통해 만들어진 이방인이었고, 정직한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싸이코 취급한다.
다시금 종이 울리고 피고석 문이 열렸을 때 나에게 밀려온 것은 장내의 침묵, 그리고 그 젊은 신문기자가 눈을 옆으로 돌린 채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그 야릇한 감각이었다. 나는 마리가 있는 쪽을 보지 못했다. 시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장이 나에게 이상스러운 말로, 나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되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히는 감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 어떤 배려의 표시 같은 것 이었다고 생각된다. 간수들은 나에게 아주 부드럽게 대했다. 변호사는 나의 손목 위에 그의 손을 올려놓았다. 나는 이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재판장이 나에게 무엇이든지 덧붙여 말할 것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깊이 생각해 보았다. “없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내가 끌려 나온 것은 그때 였다.
사람을 법으로 심판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공적 힘의 공통적인 목소리는 왜 그렇게 사느냐, 너는 옳지 않다 똑바로 살아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결국 같은 차원의 세계에 산다. 자기에게 옳고 진리인 것이 항상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수는 없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신을 믿던 시대에는 그런게 통했다. 유럽에서는 기독교 사상이,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적 도리가 그 절대적 믿음이었고, 그걸 어기는 개인이나 집단을 모조리 죽이기도 했다. 뫼르소는 하지만 믿지도 않는 사회 이념에 맞게 자기를 꾸미지 않았고(어머니가 죽은 게 실은 너무 슬펐지만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재판관님! 이라고 하지 않음), 순간의 자연과 현상에 충실했다(그래서 장례식 다음날 마리랑 자고, 살인 재판이 진행되는 중간에도 밖의 거리의 뜨거운 바람과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소리에 시적 감상을 느낌). 하지만 그게 보통 사람들에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결국 사형수가 되고 만다.
그는 단두대가 설치된 광장에 주인공으로 끌려갈 날만 기다리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진지한 사색을 계속한다… 그리고 마침내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서 생과 죽음이 어색함도 공포도 없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현상을 체험한다. 세상이 자신과 닮아서 형제처럼 이어져 있는 느낌, 다르게 말하면 자기 마음의 소리와 외부 세계의 소리가 박자가 완전히 맞은 채 합주되는 것 같은 상황이다. 사형수를 위로하러 방문했던 카톨릭 사제와의 대화에서 시작해 그는 이런 생사生死의 초월을 극적으로 외쳤다. 읽으니 눈물이 났다.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은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그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그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나와 더불어 그처럼 나의 형제라고 자처하는, 특권 가진 수많은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제는 그들을 진정시키고, 한동안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히 괴어 있었다. 그는 마침내 돌아서서 사라졌다.
그가 나가 버린 뒤에,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침상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눈을 뜨자 얼굴 위에 별이 보였으니 말이다. 들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밤 냄새, 흙냄새, 소금 냄새가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잠든 그 여름의 그 희한한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근처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시간 같았었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이 틀림없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