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 좋은 이유 II – 친구의 의미
예전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갔다 왔었다. 전 직장은 극악한 근무강도에 총알 대신 히스테리가 난사되는 전쟁터 같은 곳이었다. 다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했고 일과 후 숙소에 모이면 그날 겪은 기막힌 체험담(억울하게 욕먹은 사건들)을 나누곤 했다. 하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진리 였던가. 친하게 지냈던 옛 동료가 식장에서 일 년 만에 나를 보고 한 말은 “어 여기 왜 오셨어요?” 였다. 분명 직장이 갈리기 전에는 평생을 연락하고 지낼 것처럼 얘기했는데.
내가 좋아했던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책의 서평에는 “비정한 현대 사회에서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모두들 외로운 섬처럼 고립되어 살아간다” 라고 적혀있었다. 맞다. 현대 사회는 비정하다. 자본주의는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이익이 없어지면 뭐든 폐기 처분되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
기계가 망가지면 버리고, 친구의 의미 도 필요 없어지면 버려진다. 인간 관계가 다 이렇게 되면 대화도 허무해진다. 도움되는 상대에게는 아첨(남자)이나 애교(여자)가 사용되고,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상대에게는 뒷담화가 사용된다.
<그리스인 조르바> 책에 소개된 우정의 아름다움은 그런 면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주인공과 조르바가 보여준 관계(작가 카잔차키스가 실제로 만난 요르고스 조르바스와의 우정이 모델이었음)는 원시적이면서 순수했고, 그리움이 넘쳤다. 소설의 도입부는 주인공이 외국으로 떠난 한 친구를 그리워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그를 대신할 다른 친구 – 조르바 – 를 만나게 될 것을 암시한다.
내 시선은 큰 배의 검은 뱃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선체는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비도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진창 위로 내리는 빗줄기가 내다보였다.
나는 검은 배와 그림자와 비와 형상을 갖춘 내 슬픔의 실체를 보았다. 생각났다. 비와 우울증이, 습기 가득한 대기 위에서 사랑하는 친구의 모습으로 화했다. ……작년이던가? 전생이던가? 어제 일이던가? 바로 이 항구로 내려와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한 것은? 나는 그날 아침의 빗줄기와 한기, 그리고 새벽의 미명을 떠올렸다. 그때 역시 내 마음은 무거웠다.
감상에 빠져있던 주인공은 배 위에서 불쑥 자기에게 말을 거는 조르바라는 남자를 만난다. 두 남자는 같이 그리스 크레타 섬에 가서 갈탄 광산 채굴 사업을 벌이지만 돈은 하나도 벌지 못하고 망한다. 그 후로 둘은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는데 서로를 잊지 못하고 편지를 주고 받는다. 주인공은 자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된 조르바를 추억하는 연대기를 쓴다. 그리고 원고를 탈고하던 날 조르바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받는다. 아래는 그 내용인데 죽기 직전까지 자유분방했던 조르바의 성격이 잘 드러나있다.
저는 이 마을 교장으로 이곳 동광 주인인 알렉시스 조르바가 지난 일요일 오후 6시에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전하고자 이 글월을 올립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교장 선생님, 이리 좀 오시오. 내겐 그리스에 친구가 하나 있소. 내가 죽거든 편지를 좀 써주시어,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그 사람을 생각했더라고 전해주시오. 그리고 나는 무슨 짓을 했건 후회는 않더라고 해주시오. 그 사람의 건투를 빌고 이제 좀 철이 들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잠깐만 더 들어요. 신부 같은 게 내 참회를 듣고 종부 성사를 하려거든 빨리 꺼지는 건 물론이고 온 김에 저주나 잔뜩 내려 주고 꺼지라고 해요. 내 평생 별짓을 다 해보았지만 아직도 못한 게 있소. 아, 나 같은 사람은 천 년을 살아야 하는 건데……”
이게 그분의 유언입니다. 유언이 끝나자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시트를 걷어붙이며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우리가(부인인 류바, 저, 이웃의 장정 몇 사람이) 달려가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모두를 한쪽으로 밀어붙이고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창문가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창틀을 거머쥐고 먼 산을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웃었습니다. 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을 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미망인 류바는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어 자기 대신 경의를 표해달라고 했습니다. 미망인 말씀에 따르면 고인은 자주 선생님 이야기를 했고 자기의 사후에는 산투리를 선생님께 드리어 정표를 삼겠다는 분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망인께서는 선생님께 이 마을을 지나는 걸음이 있으시면 손님으로 그날 밤을 쉬시고 아침에 떠나실 때는 산투리를 가지고 가시라는 것입니다.
조르바는 자신의 자유와 성스러움(역설적인 성스러움)의 상징이자, 스무 살때 집을 나오면서부터 평생을 애지중지했던 악기 ‘산투리’ 를 친구에게 정표로 남겼다. 죽으면서도 친구를 생각하는 조르바의 마음이 느껴져서 읽을 때마다 눈물 나는 결말부 였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 좋은 이유 I – 숨은 꽃
양귀자님의 작품 <숨은 꽃> 은 작가님의 분신으로 보이는 여주인공이 먼 고즈넉한 시골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작가였고 글을 써야 하지만 쓸 수 없는 영감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주인공은 ‘귀신사’ 라고 하는 시골의 사찰을 찾아가는 데 도중에 김종구라는 이름의 한 남자를 만난다. 김종구는 배운 것도 없고 말도 험한 시골 남자로서 ‘황녀’ 라는 화류계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의 서방이다.
문자와 문학에 둘러싸여 심각한 고민만 하던 여 작가는 김종구로부터 어떤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그건 김종구의 말과 행동이 원시적이지만 대단히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이성을 만나면 거부 못할 매력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와 비슷한 현상이었던 것 같다.
훌륭한 문학작품은 그 자체로 정신 에너지 즉 리비도를 독자로 부터 끌어낸다. 권태에 빠져 글을 쓰지 못하던 여 작가는 작품이 내놓아야할 할 야성 에너지 – 숨은 꽃 – 을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그의 연인 황녀로부터 느꼈던 것이다. 그건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 찬란한 생기의 물결 같은 것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 에 나오는 알렉시스 조르바 역시 소설의 신경쇠약형 주인공에게 비슷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조르바는 나이 예순이 넘은 노인이지만 감각적인 힘이 충만하다. 어려서부터 집을 떠나 집시 같은 떠돌이 생활을 하는데 아래는 그 출발에 대해 주인공과 얘기하는 모습이다. 작가의 묘사가 너무나 생생해서 읽을 때마다 감탄스럽다.
“어떻게 해서 산투리를 다 배우게 되었지요?”
“스무 살 때였소. 내가 그때 올림포스 산기슭에 있는 우리 마을에서 처음 산투리 소리를 들었지요. 혼을 쭉 빼놓는 것 같습디다. 사흘 동안 밥을 못 먹었을 정도였으니까. “어디가 아파서 그러느냐?” 우리 아버지가 묻습디다. 아버지 영혼이 화평하시기를…… “산투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창피하지도 않으냐? 네가 집시냐, 거지 깡깽이가 되겠다는 것이냐?” “저는 산투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결혼하려고 꼬불쳐 둔 돈이 조금 있었지요. 유치한 생각이었소만 그 당시엔 대가리도 덜 여물었고 혈기만 왕성했지요. 병신같이 결혼 같은 걸 하려고 마음 먹었다니! 아무튼 있는 걸 몽땅 털고 몇 푼 더 보태 산투리를 하나 샀지요.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바로 이놈입니다. 나는 산투리를 들고 살로니카로 튀어 터키인 레트셉 에펜디에게 찾아갔지요. 그는 아무에게나 산투리를 가르쳐 주었지요. 그 앞에 일단 넙죽 엎드리고 봤어요. “왜 그러느냐, 꼬마 이교도야.” “산투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오냐, 그런데 왜 내 발밑에 엎드렸느냐?” “월사금으로 낼 돈이 없습니다.” “산투리에 단단히 미친 게로구나.” “네.” “그럼 여기 있어도 좋다. 젊은 친구야. 나는 월사금을 받지 않는단다.” 나는 1년을 거기 있으면서 공부했지요. 하느님이 그 영감의 무덤을 돌보아주시기를…… 지금쯤 아마 죽었을 겁니다. 하느님이, 개도 천당에다 들여놓으신다면, 레트셉 에펜디에게도 천당 문을 활짝 열어 주실 것이외다. 산투리를 다룰 줄 알게 되면서 나는 전혀 딴사람이 되었어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나 빈털터리가 될 때는 산투리를 칩니다. 그러면 기운이 생기지요. 내가 산투리를 칠 때는 당신이 말을 걸어도 좋습니다만, 내게 들리지는 않아요. 들린다고 해도 대답을 못해요. 해봐야 소용없어요. 안 되니까……”
조르바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거지 깡깽이’ 가 되지 말라고 말렸지만 이미 악기와 소리에 미쳐있던 조르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하는 ‘창피’ 는 사회의 통념이어서 족쇄가 되지만, 사람의 혼을 울리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음악을 만들고 빠져서 무아(無我)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사상과 편견이 별로 중요하지 않음을 느낀다. 이렇게 자유로워진 사람은 찬란한 힘을 가지는데, 이 힘이 <숨은 꽃>의 여작가도,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도 감동시켰던 것이다.
모사세 III – 유혹과 강박
아이 정인의 기억은 원초적인 감정 덩어리가 비누방울 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기억 안에는 정확한 언어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펑 터지기 쉬웠다. 정인은 외모 만 보면 그냥 사탕 막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그의 정신까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다. 어른 정인은 아이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부터 이미 굉장한 크기의 에너지가 유혹과 강박 공포의 형체를 띠고 머리를 휘젖고 있었구나 생각을 한다.
정인이 느꼈던 ‘유혹’ 을 말해주는 일화는 이렇다. 꼬마 정인은 가족들과 광나루 근처에 있는 넓은 야외 수영장에 갔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수영복을 입은 수 많은 사람들이 수영장을 어항처럼 메우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성이 정인의 시선을 완전히 정지시켰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당시에 흔치 않은 노출이 심한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보통 수영복과 다르게 가슴과 가슴사이가 길게 도로가 난 것 처럼 파여 있었다. 도로 양측으로는 당연히 유방 언덕이 솟아 있었다. 정인은 일차 성징만 가진 꼬마였다. 하지만 여자의 도발적인 모습은 원래 유혹의 대상이 아닌 꼬마에게 충분한 전기 충격을 주었다. 이 미모의 여성은 선글라스 안에서 왜 이 얘가 자기 야한 모습을 넊나가서 보고 있는 걸까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정인이 느꼈던 건 알 수 없는 미로와 같은 정신을 헤매는 강렬한 전기의 흐름이었다.
다음으로 강박이라는 건 정인에게 자연스럽게 박혀버린 생각의 흐름이다. 여기에는 엄마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다. 엄마는 정인을 늘 감시하고 통제하는 존재였다.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11년후에 벌어질 대학입시 전쟁의 조망은 정인의 가정 전체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었다. 정인은 학교 수업 진도와 숙제를 어머니에게 확인 받아야 했는데 이건 매일 벌어지는 고문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이미 공부가 더럽게 재미 없다는 걸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셰퍼드에 비유했다. 주인이 감시를 안 하면 일 안하고 먹고 노는 동물. 정인은 훗날 셰퍼드가 머리 좋고 강인하며 충성심 강한 훌륭한 개라는 걸 알았지만, 어쨌든 위로 되는 사실은 아니었다. 모든 걸 통제했던 엄마가 준 강박의 에너지는 몹시도 강한 것이어서 다른 이미지의 그녀를 떠올리기 어렵게 했다. 한 번은 부모님이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가 며칠 만에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엄마는 활짝 웃는 반가운 미소로 정인을 맞았다. 이 표정이 정인에겐 낯선 놀라움이었다. 그는 자신이 엄마에게 반가울 수 있는 존재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카프카를 읽으면 좋은 이유 V – 보이지 않는 악마
카프카는 자신의 단편소설 중 <시골의사>와 <판결>을 특히 맘에 들어 했다고 한다. 두 작품을 읽어보니 동감이 갔다. 카프카가 아니면 누구도 아닐 황량하고 아름다운 문학이었다. 아래는 단편 <시골의사>의 잊기 어려운 결미 부분이다.
절대로 이런 식으로 집에 돌아가지는 않겠다. 나의 번창하는 의사생활은 망했다. 후임자가 내 자리를 넘본다. 그러나 소용 없는 짓. 그가 나를 대신하지는 못할테니. 내 집 안에서는 구역질나는 마부가 날뛰고, 로자는 그의 제물이다.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벌거벗은 채, 이 불운을 극한 시대의 혹한에 맨몸으로 내던져져, 지상(地上)의 마차에다 지상의 것이 아닌 말들로, 늙은 나는 나를 이리저리 내몰고 있구나. 내 털외투가 마차 뒤에 걸려 있다. 하지만 내 손은 거기까지 닿지 않고 변덕스러운 환자 주위의 불한당들 중 어느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속았구나! 속았어! 한번 야간 비상종의 잘못된 울림을 따랐던 것 – 그것은 결코 보상할 수가 없구나.
두서없는 시골의사의 말은 시적이지만 의미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프카가 살아온 인생에서 피어난 특이한 심리상태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흔히 고독, 소외, 불안, 항거불능 같은 단어로 대표된다. 카프카의 여인 중 한 명이었던 밀레나 폴락이 남긴 추도사가 있는데, 남자를 깊이 사랑했던 여인이 쓴 것이니 만큼 그 심리에 대한 훌륭한 이해를 보여준다. 한 번 읽어보자.
카프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실하지만 세상에 낙담한 채 자신의 길만을 외롭게 걸었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무방비 상태의 인간을 전멸시키는, 보이지 않는 악마 로 가득 찬 세계를 보았다. 카프카는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예민했고, 아름답고 고결한 존재가 그렇듯 투쟁하기에는 너무 허약했다. … 카프카는 타인을 알 수 있는 위대한 감식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유별나고도 심오한 방법으로 세계를 파악했던 카프카는 그 자체로도 유별나고도 심오한 하나의 세계였다. … 이 책들은 건조한 아이러니와 감각적인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세계를 투명하게 파악하기 때문에 카프카는 이 세계를 감당할 수 없으며, 이성적 사고가 아니라면 카프카에겐 죽음만이 남는 것이다.
밀레나가 말한대로 카프카는 예민하고 고결한 존재였다. 그는 유별난 방법으로 세계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보았는데, 그건 부조리로 가득차 있는 꿈과 같은 세계였다. ‘건조한 아이러니와 감각적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는 말은 카프카는 현실의 부조리(아이러니)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능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실존주의는 보통 “정해진게 없고 모든게 부조리한 이 세상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카프카의 문학과 실존주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부분이다.
만약 카프카가 가졌던 세계관와 거리가 먼, 소속감과 정동이 뚜렷한 삶을 살았다면 그의 소설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본들 미친놈 일기장 읽는 것과 비슷할 뿐일 것 같다. 카프카의 책은 프랑스의 실존주의 사상가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는데, 그들 역시 고독하고 정신적 투쟁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무척 마음에 들어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모든 배경을 취합해 <시골의사>의 마지막 단락을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시골의사는 한번 야간 비상종의 잘못된 울림을 따랐기 때문에 의사생활이 망해버린다. 이는 인생에서 생의 방향을 정확히 인도하는 경보는 없다는 걸 의미한다. 잘못된 신호로 그는 연인 로자를 구역질나는 마부에게 넘길 수 밖에 없었다(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림). 벌거벗었다는 건 마음을 지켜주는 방어막(신앙이나 은총)이 없다는 걸 뜻하고, 말들은 원초적 본능을 상징한다(프로이트의 분석에도 나와있듯이). 하지만 지상의 것이 아닌 말이기 때문에(본능을 떠난 천상의 정신에도 매어 있으므로) 그는 혼란스럽다. 구원을 주는 털외투는 손에 닿지 않고 불한당 들은 의사(치유자)의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은 보상받을 수 없다. 정해진 게 없는 인생에서 한 번 지나간 길은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IV – 릴리푸트 읍
아버지 난장이가 굴뚝에서 떨어져 죽은 후 자식들 영수, 영호, 영희는 각각 은강자동차, 은강전기, 은강방직에 취직한다. 은강 그룹 회사의 일은 고되었지만 임금은 적었다. 네 명의 가족을 둔 그 해 도시 근로자의 최저 이론 생계비는 83,480원이었지만, 삼 남매의 수입 총액은 80,231원이었다. 즉 세 명이 죽어라 일해도 가족이 몸을 유지할 정도의 돈 밖에 못벌었다. 소설의 화자는 그래서 ‘생산 공헌도’ 라는 말을 한다. 공장이 있다면 그걸 돌리는 노동으로 인한 수익이 있을 텐데 그게 얼마인지는 상층 경영자들만 안다.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을 정도만 월급을 주고 나머지 이익은 회장과 자기들이 가져간다. 은강 그룹 말고 다른 회사의 경영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절대적으로 정당한 임금 책정 기준은 없다. 다른 회사보다 나은 임금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맞춰서 낮은 임금을 준다면? 노동자들은 어느 회사에 가도 덫에 걸린 느낌이었을 것이다. 영수는 은강 그룹 회장이 사회 복지를 위해 20억원을 희사한 다는 신문기사를 본다. 아래는 이에 대한 지부장과 영수의 대화이다.
“이건 제가 신문 기사를 오려 두었던 것입니다.”
“나도 그 기사를 봤어.”
“회장님이 사회 복지를 위해 해마다 20억원을 내놓으시겠다는 기사지?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해마다 거액을 희사하시겠다는 거야. 이미 복지 재단의 이사진이 결정됐을걸. 그건 훌륭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노사협의 때 회사측에 상기시켜 주실 게 있습니다.”
“그게 뭐지?”
“그 돈은 조합원들의 것입니다.”
“어째서?”
“아무도 일한 만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금은 너무 쌉니다. 제가 받아야 할 정당한 액수에서 깎여진 돈도 그 20억원에 포함됩니다.”
“좋은 걸 지적해 줬네.”
“정작 받을 권리가 있는 노동자들에게 주지 않은 돈을 이제 어떤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는 건지 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회장은 회사 노동자들에게는 최저 생계비도 안 되는 월급을 주고 있다. 직원들에게는 인색하지만 사회복지기금 기부는 한다. 회사 돈으로 하면서 좋은 평판은 자신이 누린다. 차라리 회장이 자기 집안 만을 위해 돈을 쓰는 게 솔직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런 조직 안에서 노동자들이 생산 공헌도를 위해 싸워봐도 얻을 게 별로 없었다. 원체 일이 바쁘기 때문에 투쟁할 틈이 없기도 했다. 게다가 공장 안에서는 경영자 뿐 아니라 선참 직원도 아래 사람을 괴롭힌다.
나는 승용차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부품들을 날라다 주었다. 한 대의 승용차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품으로 만들어졌다. 선참 공원들은 열심히 일했다. 조립 라인의 조립공들은 나를 또 하나의 보조 기계로 보았다. 공장장에게는 공원 전체가 기계였다.
공장에선 사람도 기계처럼 기능으로 평가되었다. 기능이 떨어지면 폐기 처분(해고)되는 것도 기계와 같았다. 행복과 의미를 위해 일을 하는 건데 일을 위해 의미를 포기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답답한 세상에 지친 난장이의 아들과 딸은 국제 난장이 마을 ‘릴리푸트읍’ 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며 사는 소박한 삶을 꿈꾸고 있다.
영희의 이야기를 나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영희는 독일 하스트로 호수 근처에 있다는 릴리푸트 읍 이야기를 했다. 자세히 듣지 않아도 슬픈 이야기였다. 돌아간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나려고 했다. 릴리푸트 읍은 국제 난장이 마을이다. 여러 나라의 난장이들이 그곳에 모여 살고 있다. 키가 칠십 팔 센티미터로 세계에서 제일 작은 사나이인 터키인 난장이도 최근에 그곳으로 이주했다. 릴리푸트 읍의난장이 인구는 늘어만 간다. 릴리푸트 읍을 제외한 곳은 난장이들이 살기에 모든 것의 규모가 너무 커서 불편하고 또 위험하다.
지금 릴리푸트 읍의 난장이들은 자기들의 특수 의료 문제, 사회 심리적인 문제, 그리고 재정 문제 등을 토의하고 있다. 해결해야 될 몇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우리는 극히 행복하다>고 마리안느 사르 읍장은 말했다.
태평천국의 난 I – 중국 역사상 가장 기이한 사건
예전에 이단 종교 단체라고 불리는 곳에 잠시 몸을 담근 적이 있다. 그 곳은 간판은 정통 교회였지만 실상은 교단 설립자 목사님을 새로운 그리스도로 추종하고 있었다. 교회에 입회하자마자 “우리 목사님은 그리스도시다!” 라고 말해주지는 않는다. 성경공부를 같이 많이 하고 교회 사람들과도 충분히 친해진 다음 그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준다. 필자는 교회에 들어온지 3개월 만에 들었다.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머리가 하예지는 기분을 잊지 못하겠다.
어떻게 멀쩡히 눈 앞에 보이는 중년 남성을 신(神)으로 믿는 믿음을 공유할 수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해본 결과 이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 공동체 안에서 일원들은 서로 형제 자매처럼 살고 있었다. 급하고 칙칙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절대 경험 못하는 동지애를 누린다는 점이 아주 특별하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믿음 아래 엄청난 열정을 뿜고 있었다. 즉 확실한 인생의 목표를 얻음으로써(너무 비현실적인 것이긴 하지만) 행복해했고, 그래서 밤낮없이 새 그리스도를 위해 일했다.
믿을 만한 친구가 없어 외롭고, 인생의 의미를 못 찾아 허무한 사람은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단체가 된 것이다. 그렇게 이단 단체에서 이상한 경험을 한 이후로 종교성이라는 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많은 책을 읽었었다. 그 중 19세기 중국에서 일어난 태평천국의 난 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 대청제국(大淸帝國)과 태평천국(太平天國)이 벌인 1850년부터 1864년까지의 15년 내전으로 2천 만 명으로 추산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1 세계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내전(內戰)이다. 이것만으로도 특별하지만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기독교적 신정혁명을 표방한 반란이라는 점이 더욱 특이하다.
유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 제자백가의 하나인 유가(儒家)로 등장하였고,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때 정식으로 국가의 학문이 되었다. 이후로 마오쩌둥의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2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중국의 지배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다. 태평천국은 이 정도의 역사와 기반을 가진 사상을 단번에 뒤집어 엎으려고 했다. 그들은 기독교 여호와 신을 천부상제(天父上帝)로, 총수인 홍수전(洪秀全)을 천왕(天王)으로 내세웠고 놀랍게도 15년 동안 중국 양자강 남부를 석권했다. 이 기이한 천하대란(天下大亂)은 홍수전이라는 과거 낙방생이 열병에 걸려 꾸었던 환몽(幻夢)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래는 조너선 D. 스펜스 저작의 <신의 아들>에서 옮긴 단락이다. 중국사를 전공한 미국 예일(Yale) 대학 교수였던 저자는 홍수전의 꿈을 묵시록 성격을 띈 고대 종교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
홍수전과 그의 신도들을 엄청난 파국으로 이끈 계시적인 환몽의 근원은 기원전 2천년 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무렵에 계시적인 환몽이 나타나기 전에도 또 다른 형식의 신앙이 많은 문명에서 성행했다. 이런 현상은 대체로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도이란어파 문명에서 매우 두드러졌다. 이런 신앙이 과거를 이해하는 방식에 의하면, 만물은 한쪽에는 질서와 번영의 힘을 가지고 있고, 다른 쪽에는 암흑, 혼돈, 파괴의 힘을 가지고 있다. 만물은 또 이 두 힘 사이에서 미묘하면서도 지속적인 균형을 보여 왔다.
기원전 1500년경에는 우리가 천년왕국이라고 부르는 신앙의 유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신앙 유형은 조로아스터 또는 차라투스트라로 잘 알려진 페르시아의 예언자가 처음 만들어 낸 것으로, 그는 자신이 창시한 신앙에서 최후의 세계가 나타날 가능성을 약속했다. 최후의 세계란 ‘혼돈이 없는 질서의 세계’이자, 역사를 초월하여 영원히 평화로운 무결점의 ‘경이로운’ 세계이며,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신이 통치하는 변치 않는 제국이었다.
이제 다가오게 될 파괴의 시대는 가까운 미래의 어떤 특정한 시기로 정해졌다. 이 조짐은 질병, 기근, 폭군의 학정으로 나타났고, 종종 거대하고 파괴적인 대홍수를 동반했다. 거룩한 구세주와 그의 명령을 받은 현세의 영도자의 안내에 따라 소수의 인류만이 이 혹독한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기간이 끝나면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상적인 공동체 안에 함께 모여, 언제까지나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갈 것이었다.
Notes:
- 질병과 기근으로 인한 사망 포함. 출처 Taiping Rebellion, Britannica Concise, “Necrometrics.” Nineteenth Century Death Tolls. Wikipedia에서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