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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새로운 삼성 I

1970년대 빌 게이츠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했고, 그 예측은 부를 안겨주었다. 퍼스널 컴퓨터(PC)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 전 세계 집과 회사 마다 컴퓨터가 쓰이게 될 모습을 상상했고, 독점 운영 소프트웨어를 만들려고 했다. 회사 이름은 작음(Micro)과 소프트웨어(Soft)를 결합한 Microsoft 로 지었다. 비슷한 시기의 스티브 잡스도 미래 IT 시대를 잘 예견했고, 회사의 로고로 생각의 혁신을 뜻하는 뉴튼의 사과 그림을 택했다.

1987년 런정페이(任正非)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퇴직 장교로 43세 였다. 애국 군인 답게 어려운 상황에도 중화유위(中華有爲), 즉 “중화민족에 미래가 있다” 고 외치며 분투했다. 그리고 그 말을 줄인 ‘화웨이’ 를 사명(社命)으로 한 회사를 설립했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2만1천 위안(우리돈 360만원), 작은 작업실에 6명의 직원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미국 특유의 개인 창의성을 강조했다면, 화웨이는 국가주의적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설립자의 개인 이력도 차이가 많이 난다. 빌 게이츠는 시애틀 명문가 출신에 변호사 아버지를 두었고, 중퇴하긴 했지만 하버드 대학 입학생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입양아 출신이지만, 리버럴 아트 분야에서 유명한 리드 대학교 중퇴에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천재 엔지니어를 동업자로 두는 행운을 누렸다. 한 명은 고급 인텔리로서 혁신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히피 예술가 기질을 가지고 혁신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런정페이는 40대 중반 퇴직 군인 신분으로 화웨이를 설립했다. 군대에서 통신장교를 지냈던 것이 IT와 연결되는 유일한 경력. 게다가 당시 중국은 IT 변방국이어서 정보통신의 혁명을 체감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런정페이와 화웨이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성공을 이루었다. 화웨이는 현재 연매출 50조원 규모의 거대 IT 기업이다. 2010년에는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2014년에는 톰슨로이터 선정 세계 100대 혁신 기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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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로컬기업에서 세계적 대기업으로 성장한 샤오미나 화웨이 같은 기업들은 쉽게 과소평가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 내수 시장의 엄청난 크기 덕분에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화웨이가 그 내수 시장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미 일류 통신 기술을 보유하고 중국에 진출해 있던 에릭스, 지멘스, 알카텔 같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했고, 중흥통신(ZTE) 같은 중국 내 라이벌과도 싸워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은 쉽게 보이지 않으며 정당하게 평가될 필요가 있다.

먼저 화웨이와 런정페이는 그들만이 쓸 수 있는 기업 전략을 사용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은 최첨단 기술력에 디자인 요소와 유저인터페이스를 가미해 독점 시장을 만들어 냈다. 제 3세계 기업으로 통신회사 후발주자였던 화웨이는 최첨단 기술력도 없고, 디자인을 신경쓰는건 사치였다. 결국 경쟁자인 다국적 기업에 앞설 수 있는 로컬 서비스에 중점을 두었다. 아래는 양사오룽이라는 저자가 런정페이와 화웨이의 발전을 분석한 <위기를 경영하라>라는 책에서 옮긴 내용이다.

그들(다국적 기업들)은 자신들의 핵심기술만 믿고 고객관리를 소홀히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각 지역 전신국과 거래할 때에도 최고 책임자 외에는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화웨이는 그렇지 않았다. 런정페이는 직원들에게 거래처에서 만나는 사람의 직무나 직책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화웨이 사람들은 제품 생산과 판매, 경쟁입찰 그리고 계약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에서 만나는 모든 담당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최고 책임자, 사무직원, 수석 엔지니어, 테스트 엔지니어 등 접촉하는 모든 고객들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도록 했다. 이런 자세는 나중에 해외시장에서도 계속되었다.
 
창업 초기, 화웨이는 중국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중국 우전부의 간부 및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큰 도움을 받은 런정페이는 이들이 퇴직한 후에도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마케팅 부서에 화웨이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분들이니 수시로 찾아가 안부를 묻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우라고 당부하고 매년 기념일을 챙겨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이미 일선에서 물러난 퇴직자들은 인연을 소중히 하고 감사할 줄 아는 런정페이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런정페이는 상대 회사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했고, 화웨이의 장단점 역시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 평가에 따라 이길 수 있는 방식으로만 철저하게 싸웠다. 손자병법 모공편(謀攻篇)에 나오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를 연상시킨다. 손자병법 말고도 기업가 런정페이를 감화시켰던 다른 사상도 있었는데 다음 글에서 연결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이어지는 글 – 화웨이, 새로운 삼성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