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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눈물을 잉크 삼아 쓰는 중국 주식 투자 후기 I

저의 회고는 2016년 6월 25일 브렉시트 다음 날부터 시작합니다.

어제 브렉시트(brexit)로 나의 중국 주식, 즉 상해와 홍콩 시장 종목들은 다시 수직 낙하를 했다. 충분히 떨어졌었다고 생각했지만 더 떨어져 버렸다. 이제 HTS를 켜고 손익률을 확인하는 게 두려울 정도이다. 평소 소비에 있어 검소와 가성비(가격대 성능비)를 추구했던 내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중국 주식에 넣게 되었는지, 악몽 같은 지금 상황에서도 의아한 기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이렇게 말을 했다. “Life can only be understood backwards; but it must be lived forwards”. 삶은 살아보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미래를 보며 살아야 한다 라는 의미이다. 지금 피눈물을 잉크 삼아 중국 주식 투자 후기를 쓰는 이유는, 과거를 회고해서 정리하고, 그중 이해되는 것에서 희망을 찾아 향후 투자에 시금석으로 삼으려는 의미이다.

필자의 주식 투자는 중국이란 나라의 역사책을 읽는 게 재미있고, 미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데서 시작되었다.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中國에 있다고 믿고 동서남북의 나라들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등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중화사상(中華思想)도 결정적 도전을 받는 시기가 왔다. 아편전쟁으로 문이 열리는 서구 열강의 침략이었다. 이전의 오랑캐들은 전쟁을 걸면서도 중국을 세계 최고, 최대의 국가로 인정 했었다. 거란의 요나라도 여진의 금나라도 몽골의 원나라도 만주의 청나라도 그랬다. 그런데 서양 세력은 중국을 뛰어넘는 군사력 이외에도 고유의 문명, 문화적 발전상을 가지고 있었다.

2천 년 가까이 공맹(孔孟)의 유교 문명을 자신들, 그리고 다른 모든 민족이 추구해야하는 지고(至高)의 이상이라 여겼던 중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자존심 상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상적 돌파구를 찾는다. 그중 하나가 당시 세계의 부르주아(bourgeois) 문명 국가들을 유령처럼 홀리고 있던 공산주의 사상이었다. 창시자인 독일의 마르크스는 중국과 같은 농업생산 국가에서 근대적 공산혁명이 일어날 거라 전혀 생각지 않았다고 하지만, 혁명은 일어나고 말았다.

지도자인 모택동은 중국 강서 남부 산간의 정강산(井冈山)에서 35세 나이에 수 백명의 평민 출신 군대를 이끌고 일을 시작했다. 공산주의 간판을 걸고 있었지만 평범한 외부인에게는 산에 사는 비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초라한 집단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향후 중국 전토를 점령하고 현대 중국을 지배하는 엘리트의 뿌리가 되었다. 이들은 서양에서 건너온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역사 발전 이론을 공부했지만, 구체적 실현 수단은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 중국에는 자본주의 발달이 미약해서 대형 자본가들도 별로 없었으므로 봉건 지주와 민족주의적 군벌 연합 세력(장개석)을 주요 투쟁 대상으로 삼았다. 마르크스가 써놓은 이론과는 다른 정치 군사적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요즘 해외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IS를 보면 홍비(紅匪)로 불리던 예전 중국 공산 게릴라 집단과 비슷한 방식으로 싸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모택동과 주덕(朱德)의 중국 공산당 홍군(紅軍)은 현대 유격 전술의 완성자 답게 대규모 정규군을 이끄는 세력(장개석 군)에게 악몽 같은 전술과 의지를 선보였다. 현대의 서방 군대에게 IS가 악몽인 것과 비슷하다. 적이 다가오면 산으로 숨고, 적이 산까지 들어오면 매복했다가 한 명씩 사살하고, 지친 적이 후퇴하면 쫓아가서 기회를 잡아 타격했다. 화가 난 장개석이 정강산 전체를 70만 대군을 동원해 포위하고, 콘크리트 토치카와 가시철조망을 구축하며 신중하게 접근하자 이들은 대규모 탈출전을 벌였다. 장장 370일에 걸쳐, 9600km의 거리(서울 부산 거리의 30배)를 걸어서 중국 서부 내륙의 연안(延安)으로 이동했다(大長征).

이들은 중국에 들어온 일본제국군과도 싸웠고, 일본이 패망하자 장개석 군대와 다시 싸워 그들을 작은 섬 대만으로 쫓아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6.25 전쟁에서 그들은 2차세계대전을 통해 최강의 군대로 입증된 미국군에게 도전했다. 미국이 일본에 썼던 핵폭탄을 중공군 상대로도 쓸 거라는 예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모택동은 “상대가 원자폭탄을 쓰면 우리는 수류탄을 쓴다” 고 말하며 전쟁에 개입했다. 중공군 정도는 간단히 압살해 버릴 수 있다던 맥아더의 호언과는 달리, 팽덕회가 이끄는 중공군은 두 달여 만에 북한 전역을 미군과 연합군에게서 도로 빼앗았다. 공업 생산량이 미국에 비해서 없다시피 한, 그래서 전쟁에 필요한 중화기 생산 물량이 극단적으로 뒤짐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낸 전적이다. 산업 기반이 없는 IS가 서방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보이는 대담하고 막 나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만일 우리나라가 중공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미국에게 싸움을 걸었을까? 미국은 원자탄을 자기 마음먹은 자리에 떨어뜨릴 수 있고, 대규모 함대가 있어 해안 어디서든 상륙 작전을 벌일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와 소총만 가진 군대로 전쟁을 할 수 있었을까? 물론 절대 못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중공은 했고, IS도 지금 하고 있다. 세계 대부분 나라가 못할 일을 중공과 IS는 시도했으니 둘 사이에는 결정적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건 하나의 이념으로 지배 국민을 강하게 결집시키는 능력이다. 중공은 중화 민족주의와 결합된 공산주의 사상으로, IS는 이슬람 근본주의 사상으로 그런 전체주의를 이루었다. 중국은 전체주의의 힘을 가지고 전쟁 말고도 눈부신 경제 성장까지 이루었다. 전쟁으로 미국에 타격을 입혀서 쉽게 침략하지 못하는 군사 강국이 된 건 모택동 대의 공로이고, 10억이 넘는 국민을 경제 발전에 동원해서 현재 G2의 위상으로 국가를 올린 것은 등소평 대의 공로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서 하도록 하겠다.

피눈물을 잉크 삼아 쓰는 중국 주식 투자 후기 II